성균관대학교 박물관, 《벽치광작(癖痴狂作); 수집과 컬랙션》특별전 개최
- 몰입·수집·창작의 문화사, ‘벽(癖)’의 미학을 따라가는 전시
- 역매 오경석의 『천죽재차록』 원본, 최초 공개

우리 대학 박물관은 60년 역사를 회갑 잔치로 풀어낸 기념전시에 이어, 수집의 기원과 컬렉션의 원류를 조명하는 제44회 특별기획전 《벽치광작(癖痴狂作)-수집과 컬랙션》을 개최한다. 전시는 본교 박물관(관장 김대식) 기획전시실에서 2025년 6월 12일부터 2026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몰입한 사람들’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며,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취미, 수집, 창작의 에너지를 박물관적 시선으로 풀어낸다.

▲ '천죽재차록' 추사체 관련 내용, 역매 오경석(1831∼1879)의 메모
전시에서는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천죽재차록(天竹齋箚錄)』이 최초로 공개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가 단절될 위기 속에서 위창(葦滄)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을 비롯해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석묵』, 『근묵』 등을 편찬하여 조선 서화사를 체계화했다. 이 작업의 기초가 된 것이 바로 부친 오경석이 남긴 수집과 정리의 기록이며, 그 실체는 『천죽재차록』에 담겨 있다.
오경석은 역관 가문 출신으로, 1853년부터 1875년까지 총 13차례 연행에 참여하며 조선과 중국의 서화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기록으로 남겼다. 『천죽재차록』에는 서화 감식과 필적 분석, 고증학자의 견해는 물론, 고려·조선 서화에 대한 문화적 자부심, 추사 김정희와 박제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 사적 탁본 경위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근역서화징』에 실리지 않은 오경석의 개인적 사유와 분석은, 위창이 생략했던 ‘보다 솔직한’ 내용들로,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 박제가 글씨
전시는 ‘벽(癖)’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통적으로 ‘벽’은 어떤 일에 과도하게 몰입한 상태를 의미하며, 유교 사회에서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조선 후기, 박제가를 비롯한 북학파 지식인들은 벽을 오히려 ‘창조의 원천’으로 보았다. “사람에게 벽이 없다면 그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박제가의 말은 몰입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사상적 전환점으로 주목된다.
우리 대학 박물관은 유교와 선비문화를 깊이 있게 탐구해오며, 유물 하나하나의 의미와 맥락을 복원하고 그 가치를 대중과 공유하는 박물관적 태도를 실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으로, 오경석의 부채와 편지, 목록류 등 서화 수집의 미시사를 구성하는 주요 자료들이 함께 소개된다.
관람 동선에서는 조선의 대표적 몰입가들도 만날 수 있다. 정조가 인정한 천재이자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부른 이덕무는 평생 2만여 권의 책을 읽고, 규장각에서 각종 도서를 정리하며 총 67권 31책을 저술했다. 조선 중기의 김득신은 하루 12시간씩 독서에 몰입하며, 『사기』 『백이전』을 11만 3천 번 읽었고, 36편의 책을 1만 회에서 2만 회씩 반복해 읽은 독서광이었다. 이들의 삶은 오늘날 ‘덕후’, ‘파고들기’, ‘수집광’이라는 단어에 담긴 몰입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 (왼쪽부터) 강은희 바늘쌈지, 김경민 인형, 조우현 이호정 꼬레고마 시리즈
전시의 마지막은 현대의 ‘호작(好作)’ 개념으로 확장된다. 호작은 생존이나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좋아서 만드는’ 창작 행위이다. 직업과 관계없이 밤새 바늘을 꿰고, 나무를 다듬고, 인형에 한복을 입히는 이들의 작업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미적 감각과 감동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목활자와 이를 위한 도구, 전통 복식을 입은 인형 시리즈 ‘꼬레고마’, 디즈니 베이비돌에 한복을 입힌 퓨전 작업, 남은 옷감으로 만든 바늘쌈지와 복식 소품 등 자발적 몰입이 빚어낸 다양한 창작물들이 소개된다. 이들은 취향 기반의 창작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는 흐름을 상징한다.
《벽치광작(癖痴狂作)》은 수집과 몰입, 창작이라는 인간 고유의 행위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대의 문화, 기억, 기록으로 진화해온 과정을 풀어낸 전시다. 특히 오경석과 오세창 부자의 수집과 정리벽은 문화 자립의 상징으로,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한다. 김대식 관장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몰입의 태도야말로 가장 순수한 문화 창조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전시가 개인의 취향이 문화로 전환되는 감동의 순간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전시 개요
- 전시기간: 2025년 6월 12일(목) ~ 2026년 3월 31일(월)
- 장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기획전시실(600주년기념관 지하 1층)
- 관람시간: 월요일~금요일 10:00 ~ 17:00(입장 마감: 오후 4시 30분)
- 휴관일: 토·일요일, 공휴일
- 문의: 02-760-1322 / 1323
- 개막식 안내:
· 일시: 2025년 6월 12일(목) 오전 10시
· 장소: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기획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