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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代 문장가 '소동파' 진적(眞籍) 5일간 최초공개 2020.09.16
  • 전략기획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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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내용

宋代 문장가 '소동파' 진적(眞籍) 5일간 최초공개
- 성대박물관 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 국내유입경로 밝혀내
- 9월18일 저녁6시, 포털다음의 카카오갤러리 온라인전시 동시오픈  
- 《파두완벽(坡肚阮癖)》특별전 개최, 소동파의 마음과 김정희의 예술혼 



박물관(관장 조환)은 9월18일부터 제39회 기획전 《파두완벽(坡肚阮癖)》에서 송대 문장가 ‘소동파’의 진적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1095)를 단 5일간(9.18∼24, 공휴일 휴관) 최초 공개한다고 밝혔다. 언택트 시대에 발맞춰 전시는 9월 18일 저녁 6시, 포털 다음의 카카오갤러리 온라인전시로 동시 오픈되며, 일반관람은 예약제로 실시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蘇東坡, 1037∼1101)가 백수산(白水山)을 유람하고 쓴 시,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는 지난 천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문인들에게 회자되어온 유명한 시(詩)다. 소동파의 진적으로 확인된 '목석도(木石圖)'가 최근 크리스티 미술품 옥션서 사상 최고가 670억원에 팔린 것만 보아도, 소동파를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소동파의 진적이 국내에 유입된 경로에 학계 및 일반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백수산불적사유기는 소동파가 북송 철종 소성(紹聖) 2년(1095, 고려 헌종1) 3월에 현재 광둥성(廣東省) 후이저우시(惠州市)에 위치한 백수산(白水山) 불적사(佛跡寺)를 유람하면서 남긴 글이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은 1950년대 후반 친족관계에 있던 파평 윤씨(坡平 尹氏)의 종손이 미국으로 이민갈 때 이 작품을 구입했다. 이 작품의 전승관계는 원나라 인종이 충숙왕에게 하사한 남송의 비각(秘閣) 문서 가운데 하나로, 이언충(李彦忠)이 공신에 책봉될 때 충숙왕으로부터 하사받았다. 이언충의 아들 이광기(李光起) 때 윤원무(尹元茂)로 넘겨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윤탁(尹鐸)의 종손으로 전승이 이어졌다. 소동파의 진적은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보물이었기 때문에 왕실과 권력자 모두가 탐내는 작품이었다. 파평윤씨(坡平尹氏)는 고려초 공신집안으로 조선 때까지 최고의 가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은밀하게 소장[秘藏]’이 가능했다.


송나라에서 ‘보물’인 소동파의 진적이 고려로 온 이유는 고려의 충선왕이 원의 황제계승에 관여하여 인종(仁宗)을 등극시켰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인종이 멸망한 남송 황실 도서관인 비각(祕閣)의 도서를 충선왕의 아들인 충숙왕에게 하사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 권34 충숙왕 원년(1314) 7월 갑인일 기사에 원 황제[仁宗]이 충숙왕에게 남송의 왕실도서관[秘閣]에 소장된 서적 4,371책 17,000권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그 직후 충선왕을 보좌한 공로로 ‘공신(功臣)’이 된 이언충은 원에서 하사받은 비각의 문서인 동파서를 수여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언충은 7년 후인 충숙왕 8년(1321) 10월에 원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고, 이때 동파서에 원말4대가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과 조맹부의 아들 조옹(趙雍, 1289∼1369) 등의 발문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검여는 환갑을 맞은 1971년 본인의 제명과 이가원의 발문을 더해 동파서를 재표구했다. 1975년 한국을 찾은 요몽곡(姚夢谷, 1912∼1993)의 감정을 받았고, 1976년 5월 동파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한다. 송나라 제일의 서예가이자 문장가인 소동파는 영향을 받지 않은 후대 문인이 없을 정도로 서권기(書卷氣)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재능을 발휘하여 시문서화(詩文書畵)의 최고작들을 남겼으며, 좌담(座談)을 잘하고 유머를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서정적인 당시(唐詩)를 밟고 철학적 요소가 짙은 시경(詩境)을 개척하였고, 도가적 예술혼을 불후의 명작 〈적벽부(赤壁賦)〉와 <백수산불적사유기> 등에 새겨놓음으로써 우리 시대 예술가가 지녀야할 즐기며 취하는 예술의 가치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파두완벽(坡肚阮癖)》특별전 개최, 소동파의 마음과 김정희의 예술혼
 검여 유희강을 오마주한 현대작가들의 法古創新도 눈길  

 
박물관(관장 조환)이 준비한 2020년 전시의 제목은 《파두완벽(坡肚阮癖)》으로, 파두완벽은 소동파(蘇軾 東坡, 1037∼1101)의 마음과 추사 김정희(阮堂 金正喜, 1786∼1856)의 예술혼이라는 뜻으로 검여 유희강(劍如 柳熙綱, 1911∼1976)선생이 즐겨쓰신 소완재(蘇阮齋)라는 호의 뜻을 검여 선생이 스스로 풀어쓴 구절이다. 이번 전시는 본교의 전신인 명륜전문학교 출신으로 추사 이래 최고의 명필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검여 유희강 선생님의 작품을 전시한 2019년 《검무(劍舞)》展에 이은 두 번째 기증전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파두완벽’은 소동파가 추구한 자유로운 예술세계인 ‘상의(尙意)’를 표현한 ‘파두(坡肚)’와 추사 김정희의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나타낸 ‘완벽(阮癖)’을 이어받아 검여 선생이 추구한 창출한 예술세계이다. 검여가 쓰러지기 전인 무신년(1968) 봄에 인권변호사이며 감사원장을 역임한 서실 사백 한승헌 변호사의 두 번째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써준 우수서(右手書; 오른손 글씨) 시기의 작품이다. 검여는 글귀하나에도 선배 예술가를 향한 숭앙(崇仰)의 마음과 후학을 향한 실천의 뜻을 담아 예술혼을 불태웠다. ‘추사 이후 최고의 명필’, ‘불굴의 예술혼’이라 불린 검여의 생애는 1968년 뇌일혈로 쓰러져 오른손이 마비된 이후에도, ‘좌수서(左手書; 왼손 글씨)’로 34미터 필생의 역작 <관서악부>를 탄생시킬 만큼 한편의 극적인 일화를 남겼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유족분들의 무상기증을 통해 200여 년 전 신광수와 강세황을 필두로 한 풍류문학을 재조명했고, 이번 전시에서는 1,000년을 가로지른 시공의 대서사시를 엮어내는 최고의 기회와 만나게 되었다. 


기증받은 작품들은 공개되지 않은 습작 혹은 미완성작으로 치열한 예술혼이 깃든 검여 선생의 작품세계를 잘 표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검여 선생이 소장했던  소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1095)가 최초로 공개된다. 그밖에 완당의 작품과 함께 이를 계승한 검여 선생님의 문자향서권기가 베어 나오는 미공개 및 대표작들도 선보인다. 전인(全人) 예술의 가치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재해석한 현대작가 남주 선화자, 상산 박영현, 신영훈, 신제현, 신학, 연당 지은숙, 이동환, 정연두, 조환 등의 서예·판화·동양화·설치·미디어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예술혼을 신화화시킨 감동적인 스토리는 예술혼을 이받은 9명의 현대작가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검여가 소동파와 완당을 자신의 예술 안에서 구현했듯이, 오늘을 사는 작가들은 소동파·완당·검여를 다시금 요청함으로써 ‘소완재가 과거의 이름이 아닌 전하여 통하는[傳統] 미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검여가 소동파와 완당을 깊이 이해하여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듯이, 이들을 오마주한 9인의 작가들은 서예·한국화·판화·조각·미디어·퍼포먼스라는 오늘의 언어로 소완재를 재소환하였다. 검여가 쓰러지기 전인 1967년 《사상계》에 발표한  <완당론>이 오늘의 작가들에 의해 <검여론>으로 재편된 것이다. 우리는 검여를 소동파와 더불어 완당을 계승하고, 동서고금을 오늘에 되살려낸 천재이자 지적 유머를 갖춘 전인 예술가라고 평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문인정신의 가치 속에서 소동파와 완당을 계승·발전시키면서, 옛 것을 답습하기보다 존숭의 마음을 창조의 원형으로 삼고자 했다. 이는 전통과 첨단의 조화를 추구해온 성균관대학교의 건학이념이 갖는 가치와 맥을 함께 하며, 검여 선생님의 정신적 유산을 예술적 실천을 통해 이어가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전시관람 문의 및 예약 ☎760-1216, 1322, 주말, 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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