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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 축제의 지휘자 MC 섭이

    화학공학 12, 임경섭 동문

    대학 축제의 지휘자 MC 섭이

    밤하늘 별이 빛나기 위해서 묵묵하게 뒷받침하는 밤하늘. 축제의 막이 오르기 위해서는 축제의 지휘자, MC를 빼놓을 수 없다. 학생들이 기다리는 이는 비단 아티스트만이 아니다. MC 섭이로 활동 중인 임경섭 동문은 자신만의 재치와 독특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수많은 이들을 기다리고 열광하게 한다. 본인의 유튜브 채널 <섭이네>에 업로드한 축제 영상은 축제의 빛나던 순간을 불러오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는 관객들과의 시너지를 만들어 내며 대학 축제 MC 일인자로 자리 잡았다. MC계의 새로운 길을 연 MC 섭이, 임경섭 동문을 만나보았다. Q. 성균관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어떤 학생이셨나요?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돌연변이였죠.(웃음) 실제로 학교 수업을 제대로 나간 적이 많이 없고요.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미팅, 엠티, CC, 동아리 회장, 수업 빠지고 디도 앞 잔디에서 막걸리 마시기 등 많은 경험을 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사건 사고도 잦았죠. 일례로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신관 기숙사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요. 입주 첫날, 이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다 같이 모여서 술을 먹었습니다. 근데 하필 저희 옆집이 기숙사 조교님이 사시던 곳이라, 바로 적발이 되었고 그날로 영구 퇴실 조치를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지명수배 전단지처럼 신관 기숙사 곳곳에 제 이름이 붙어있었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무리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물론 재밌어서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을 좋아하지?'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건 뭘까?' "선배님은 만약에 제 나이 때로 돌아오신다면 어떤 걸 하시겠어요?" "너는 어떨 때 가장 행복해?" 이러한 질문들을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었고, 그때 했던 이야기와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그러한 데이터들이 쌓이고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점점 생기면서 '국민 MC'라는 꿈을 꾸게 된 것 같습니다. Q. MC가 되야겠다고 결심한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연장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생각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사는 이유는 그것을 알기 위해 사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펜에도 글을 쓰는 역할이 있듯이 나에게도 역할과 쓰임이 있을 것이다. 역할이란 무엇인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을 내리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일종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특히 대학생 시절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온 힘과 시간을 다 쏟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군대 전역 일주일 전,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정리했고, 저 자신이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고 정의할 수 있었어요. 그때 당시, 군대 의무 당직을 서면서 저를 정의한 이 한 줄을 적는데 정말 영화처럼 TV에 유재석님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저기 있다면 어떨까?'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길로 저는 국민MC라는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했던 모든 것들이 결국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Q. MC라는 직업의 매력과 어려움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MC가 Master of Ceremonies의 약자인 것처럼, 일종의 지휘자 역할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행사나 프로그램도 같이 방향을 맞춰가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초창기여서 많은 관심을 받고 하는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MC는 자신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을 돋보여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됐어요.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였는지, 사람들이 무대에 서는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진행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MC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됐습니다. 밤하늘 별빛이 반짝이기 위해서, 묵묵히 뒤에서 배경이 되어주는 밤하늘의 존재가 진정한 MC의 역할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 MC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관계자분들을 만날 때 힘든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 한번 관계자들이 담배 피우면서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요. "야 MC가 중요하냐? 연예인 섭외가 우선이지. MC는 아무나 돌리면 돼." 그날 제가 MC였기 때문에, 마음이 더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더 열심히 달려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Q. 대학 축제뿐 아니라 많은 행사의 진행자로 참여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언제였나요? 진부한 얘기지만 유재석님을 만났을 때 같아요. 과거 MBC <놀면뭐하니?>에서 유재석님이 유산슬로 활동하실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유산슬의 첫 팬미팅 사회를 제가 맡았습니다. 작가님을 통해서 섭외 연락을 받았는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안녕하세요. <놀면뭐하니?> 작가 000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예????" 전화를 마치고 어머니와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좋아했던 그 기억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렇게 밤을 새워가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팬미팅 준비를 했고, 당일 변동 사항이 많았음에도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유재석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생에 첫 팬미팅인데 이렇게 진행을 잘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유재석님을 보고 꿈을 꿨던 아이가, 유재석님의 첫 팬미팅을 진행한다는 것 그 자체로 저한테는 영광이었고 꿈이었습니다. ▲ MBC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중 Q. 일반 행사와 대학 축제는 분위기가 다른데요, 각각의 행사를 준비할 때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느 행사든 마찬가지지만, 행사의 대상과 주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행사의 주최가 원하는 목적이 정보 전달, 재미, 감동 중 어떤 것인지 같은 것들이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면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대학 축제와 일반 행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학 축제는 공연 팀이 매우 많아서 변동되는 사항이 많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즉흥적으로 잘 끌어 나갈 수 있도록 평상시에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편입니다. Q. 이번 축제 시즌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아요. 변경 사항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이런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동문님만의 대처 방법이 있나요? 그냥 기도합니다. 차 안에서 저만의 기우제를 지내고요. 비가 오면 보는 관객들도 짜증이 나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방법이 딱 있기보다는, 평소보다 두 배 더 열심히 합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을 하고요. 그럼 놀랍게도 관객들이 그 진심을 알아주십니다. 그때부터 호응과 반응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 참 뿌듯한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거짓 없이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임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Q. 학생들과 함께하는 콘텐츠가 유튜브 채널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요. 큐시트나 대본이 없는 즉석 콘텐츠를 진행하는 동문님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상대방을 안심시켜 주는 푸근한 인상이 제 비결 인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무대 경험이나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는 경험이 많이 없어서 저는 그 분위기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 마다 가진 매력이 있거든요. 그 매력을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매력이 보이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 (좌) 2016 대동제 | (우) 2023 대동제 Q. MC뿐만이 아니라 유튜브에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진행하시는 것 같아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이유와,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저란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MC로만 국한된 MC섭이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 임경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국민 MC라는 꿈을 꾸고 있어서 단순히 사회자로서의 일만 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Q. MC 섭이와 인간 임경섭의 차이점이 있나요? 예전에는 없었는데, 어느 정도 책임감이 생기고 나서 차이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진행 할 때도 평상시처럼 편안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하고 저를 섭외해 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에 따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좀 더 다듬어진 모습으로 임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실제 모습은 생각보다 말이 적습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 사람 결국 이뤄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타고난 천재형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히 정진하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야 많은 사람이 용기 내서 자신의 꿈을 꾸고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저의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멋진 말이나 감동적인 말은 저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께 듣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저는 그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몇 마디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너무 아등바등하면서 살지 마시고, 너무 노력하지 마시고,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어차피 삶은 흘러갑니다. 내가 죽어라 잡고 있겠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시고 현재를 느끼시고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바람을 느끼시고, 햇살을 느끼시고, 꽃 냄새를 맡으시고, 새소리를 들으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웃으시고, 친구랑 수다를 떠시고, 맛있는 걸 사드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고, 노래를 흥얼거리시고 춤을 추십시오. 원대한 목표나 꿈보다 일상에서 주는 소소한 행복들이 제가 볼 땐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조금 지내보니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당히 노력하시고 적당히 기회를 보세요. 어차피 우리들은 성균인이라, 될놈입니다. 성균웹진 윤지민 기자

    • No. 44
    • 2023-10-27
    • 6211
  • Kelley &ndash; SKK GSB EMBA의 가장 좋은 점은▼평생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친구들을 32명이나 얻은 것

    Executive MBA 김동원 동문 (Class of 2021)

    Kelley – SKK GSB EMBA의 가장 좋은 점은평생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친구들을 32명이나 얻은 것

    Executive MBA 김동원 동문 (Class of 2021, 모더나 대외협력총괄 전무) 안녕하세요. 2021년에 성균관대 SKK GSB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를 졸업한 김동원입니다. 입학 전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화이자, 필립 모리스 인터내셔널 등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메신저 RNA(mRNA) 플랫폼 방식의 COVID-19 백신으로 잘 알려진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기업 모더나에서 대외협력 총괄 전무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진학 동기와 목표 20여년간 대외협력과 정책 분야 전문가로 오래 활동하면서 경영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습니다. 마침 후배의 권유로 성균관대학교 SKK GSB의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 과정을(이하 Kelley – SKK GSB EMBA) 알게 되었고 입학했습니다. 여러 학교 중에서 Kelley – SKK GSB EMBA를 선택한 이유 우선 국내 MBA 과정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다국적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으려면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인데, MBA 수업을 통해서도 이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일석이조이니까요. 그리고 다른 MBA 과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았습니다. 1.5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MBA 과정을 졸업 가능한 점은 업무와 커리어 관리 양쪽으로 무척 바쁜 임원급에는 아주 중요한 이점 중 하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Dual MBA 과정인 점입니다. 한국 명문 성균관대학교 SKK GSB와 미국 명문 인디애나대학교 Kelley School of Business 양 쪽 교수진의 수업을 국내에서 직접 들을 수 있고, 두 대학 MBA 학위를 동시에 취득하는 것은 이 과정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직장인이 2년의 커리어 공백을 감수하며 해외 MBA 과정에 진학하는 것은 많은 비용 뿐 아니라 상당한 커리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이 과정이 Dual MBA인 점이 실제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 저는 Kelley – SKK GSB EMBA 11 기 부회장으로 활동했기에, 동기들의 소식을 자세히 듣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커리어 발전을 위해 MBA 과정에 진학합니다. 저희 기수의 70% 이상이 졸업 후 더 나은 포지션으로 이직을 하였거나 기존 회사에서 승진을 했습니다. 놀라운 성과입니다. Kelley – SKK GSB EMBA 과정이 졸업생의 커리어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제 경우에는 MBA 졸업 후 2번의 성공적인 이직을 했고, 3년간 매해 승진도 했습니다. 연봉도 이에 비례해서 크게 올랐습니다. Kelley – SKK GSB EMBA 과정은 이렇게 거듭된 커리어 발전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크게 세가지 방면입니다. 첫째, MBA 경험은 이직 면접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이미지 갖게 합니다. Kelley – SKK GSB EMBA 자체의 네임 밸류도 있지만 재직하면서 MBA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 자체도 ‘성실성’을 보장하는 척도로 작용하곤 했습니다. 두 번째는 MBA 네트워크의 도움입니다. 저는 이직할 때 마다 MBA 동기와 선배들의 조언과 레퍼런스 – 즉, 소개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이는 임원급으로 올라갈수록 더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마지막은 지속적인 ‘동기부여’ 입니다. MBA 입학 전에도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 임원 코스를 밟고 있던 터라 새로운 도전이나 기회들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MBA 과정을 하면서 나의 현재 세상 밖에는 정말 더 스마트하고 능력 있는, 열정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20여년간 일하다 보면, 업무나 만나는 사람들, 주위 환경이 익숙해지고 새로운 꿈과 기회들에 대해서 무디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EMBA 과정에서 내가 겪어 보지 못했던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능력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토론하고, 때로는 배우던 시간들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Kelley – SKK GSB EMBA의 가장 좋은 점으로는 평생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치관이나 인생 목적이 비슷한 ‘친구들’을 32명이나 얻은 것입니다. 매주 함께 수업을 듣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같이 하면서 우정을 쌓은 것은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지난 주말도 그 중 4가족과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또 다른 동기들과는 투자 모임을 지속하면서 EMBA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MBA는 다른 인맥들과 달리, 비슷한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더 빠르고 단단하게 유대 관계가 형성된다고 봅니다. 저는 SKK GSB 총 동문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이 네트워크를 더 크게, 활발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Kelley – SKK GSB EMBA는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좋을까요? Kelley – SKK GSB EMBA 과정은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더 발전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에게 맞는 과정입니다. 프로그램과 커리큘럼의 장점을 감안하면 다국적 기업이나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국내 대기업의 임원급, 그리고 CEO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과정입니다. 저희 동기 중에는 졸업 후 해외 본사로 옮긴 동기들도 있고, EMBA에서 배운 지식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한 동기들도 있습니다. 이 과정을 준비할 때 꼭 필요한 것은 ‘의지’와 ‘성실성’입니다. 1년 반 동안 주중 격무에 시달리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종일 수업에 집중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다른 EMBA 과정들에 비해 과제와 학업량도 많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마쳤을 때 여러분들은 ‘A better version of yourself’, 전 보다 훨씬 발전된 자신을 만나실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분들은 지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더 성장하고 발전하길 원하는 분들께는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끝.

    • No. 43
    • 2023-10-17
    • 5503
  • 불광불급(不狂不及), 야구에 미치다

    독어독문학과 81, 양해영 동문

    불광불급(不狂不及), 야구에 미치다

    양해영 동문은 지난 2017년까지 한국 야구협회(KBO)의 사무총장으로 재임했으며 현재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부회장을 맡고 있다. KBSA는 프로 야구를 제외한 모든 야구 리그를 관장하는 단체이다. 2017년, 양해영 동문은 KBSA 실무 부회장직을 겸임하며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야구계의 공조를 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야구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아마추어 야구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양해영 동문이 가진 커리어를 더욱 반짝이게 한다. 한국 야구계의 기틀과도 같은 양해영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KBSA 부회장 양해영입니다. KBO에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사무총장으로 지낸 후 현재는 아마추어, 대학 야구 등을 관장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 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 2017년까지 KBO 사무총장으로 계시고, 현재는 KBSA라는 단체의 부회장직으로 계십니다. KBSA는 야구팬들에게도 조금 생소한 단체인데요, KBO가 하는 일과, KBSA가 하는 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KBO는 프로야구에 대해서만 관리, 운영이 이루어지는 단체입니다. 반면 KBSA는 프로야구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야구, 소프트볼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곳이라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초/중/고/대학 야구는 물론 여자 야구, 소프트볼, 사회인 야구 등 프로야구를 제외한 모든 분야를 다루다 보니 일 하는 범위는 훨씬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워낙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받아서 KBO에서 사무총장직을 수행할 때는 지금보다 더 신경 쓸 일이 많았습니다. KBO 사무총장으로서는 프로야구의 경기 운영, 분쟁, 대외적 홍보 등 거의 모든 일들을 관할했어요. 특히 구단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에요. 하다못해 드래프트 제도를 변경할 때도 구단의 유불리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요. 그래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웃음). KBSA 부회장으로 일하는 지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야구에 있는 많은 문제를 안정화하고, 아마추어 야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인기를 회복하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나가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 많습니다. | 아마추어 야구는 프로야구에 비해 대중들의 관심도 작고 지원도 작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프로야구와 아마추어 야구 간의 공조가 잘 이루어지고, KBSA에 대한 지원도 많이 늘어났는데요, 이런 변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사실 2016년에, 한국 프로야구 협회가 '사고단체'로 지정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대한 체육 협회에서 사고 단체로 지정하고, 대한 체육 협회가 한국 프로야구 협회를 관리/운영했습니다. 동시에 대한 체육 협회와 국민 생활 체육 협회가 통합된 체육계의 큰 변화도 있었습니다. 초/중/고 그리고 사회인 야구계까지가 통합된 것이죠. 이때 제가 KBO사무총장을 맡았던 시기인데, ‘아마추어 야구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김응용 회장님이 KBSA 회장을 맡으셨는데, 김응용 회장님 체제 하에 KBO가 아마추어 야구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자금 지원과 행정적 지원을 맡게 된 거죠. 아마추어 야구 실무를 맡으면서 아마추어 야구계에 대한 행정적 안정, 그리고 수입원이 없다는 아마추어 야구의 운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금전적/행정적 지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프로야구와의 유기적 공조 체제가 완성되어서 아마추어 야구계의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아마추어 야구계에 대한 공조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요즘 프로로 지명된 신인 선수 중에서는 지명되기도 전에 너무 많은 투구 수를 소화하고 부상을 입는 등 여전히 혹사 문제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말씀하시는 혹사 문제는 제가 KBO 사무총장직을 겸할 때, 이미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제가 혹사 문제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하고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유망주였던 선수들이 프로 구단에 지명되어 입단 후에 바로 하는 일이 수술이었을 정도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수들은 그냥 프로 야구계에서 사라져 버리거나, 제대로 야구 인생을 소화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 이미 투구 수 제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투구 수 제한에 대한 이미지 정착을 유도했어요. 당시 일선 지도자들은 반대했지만, 저는 선수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은 혹사 문제에 대한 논란이 예전처럼 많이 불거지지는 않아요. 연투가 길어지는 것에 대한 남아있는 논란은 경기 운영, 경기 환경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구단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전만큼 혹사 논란이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 양해영 동문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KBO 사무총장을 겸직하실 때 비디오 판독 프로그램도 도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디오 판독 프로그램에 대한 중장기 발전 방안은 무엇일까요? 비디오판독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에 가장 큰 문제가 시차 문제, 그러니까 심판이 볼 카운트를 하기까지 판정이 전달되는 시차 문제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남은 문제는 스트라이크존의 설정 문제에요. 스트라이크존의 넓이나 크기는 야구계의 공감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전체 야구계가 일관되게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 이 문제도 해결되고 야구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비디오 판독 프로그램을 빨리 도입하기로 한 이유가 있어요. 고등학생 선수들에게 아마추어 야구는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의 판정에 의해 억울한 상황이 생기고 대학 진학에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진학에 불공정성이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빨리 도입했습니다. 최대한 방송사에서 비디오 판독에 대한 중계를 많이 하도록 부탁해서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사라지도록 노력했어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디오판독 프로그램이 출발한 거라 볼 수 있겠습니다. | 대학 야구 활성화.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대학 야구도 KBSA가 관할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대학야구연맹이라는 단체를 통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며 그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습니다. 다만 대학 야구 경기 자체가 많이 개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년에 10게임밖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집니다. 게임을 소화할 기회 자체가 적다 보니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이 경기 기회가 많은 지방으로 이동해서 실력을 키우는 경우도 허다해요. 더불어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에게 공정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든다는 미명 하에, 선수가 아닌 학생들과 동등한 학업 성과를 요구하는 상황 자체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기량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교육계와 행정계가 발맞추어 함께 야구 선수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KBO 사무총장에 6년간 몸담으시면서 프로야구 10개 구단 체제 완성 등 많은 성과를 내셨습니다. KBO 사무총장직이 끝난 지금, 아쉬움이 남지는 않으신가요? 글쎄요. 10개 구단 통합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게 아쉽네요. 구단별로 각개 전투를 하는 시스템을 통합하고 싶었거든요. 10개 구단이 경쟁하는 것과는 별개로 10개 구단이 함께 협업해서 상품을 출시하고 로드샵을 만들어 티켓을 판매하는 등의 마케팅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가 자본주의적 성격이라는 것도 맞지만, 10개 구단이 같이 수익을 창출하고 야구계의 발전을 이끄는 사회주의적 성격도 존재합니다. 10개 구단의 협업 마케팅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루어지지 못해서 조금 아쉽네요. | 체육 전공을 하신 것도 아니고, 우리 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어문 계열 학생이 졸업 후 KBO에 입사해서 35년간 야구계에 몸담은 것이 살짝 의아하게 느껴지는데요, KBO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생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 대표, 중학교 때는 축구부로 활동할 만큼 오랫동안 운동을 좋아했어요. 운동에 전념하다 자꾸 성적이 떨어져서 집에는 운동하는 걸 비밀로 했을 정도입니다(웃음). 중학교 때 운동을 그만두고 재수를 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사회인 야구단을 만들건데 같이하자고 말이죠. 그때 함께한 동창 중에 성균관대 킹고야구반 소속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계기로 대학에 진학해서도 킹고 야구반에 가입하면서 대학 내내 야구에 미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수업에는 가끔 들어가고, 거의 킹고 야구반 동아리방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체육과 학생으로 오해도 많이 받아서 '쟤는 체육학과인데 왜 독문학을 부전공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러던중 학교로 KBO에서 추천장이 와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야구에 미쳐서 사는 걸로 학교에 소문이 나 있어서 체육학과 교수님들께서도 당연히 저를 보내셨습니다. 처음 KBO에 입사해서는 총무/관리직을 수행했어요. 당시 빙그레 이글스가 KBO 리그에 들어오면서 가입금 30억을 야구회관 건립에 썼던 시기라, 건물 관리 등 총무 업무를 담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 야구에 미쳐있었던 양해영 동문님의 대학 시절이 더욱 궁금해지는데요.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가 1학년 때, 성균관대와 서울대의 야구 정기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성서전‘이라고 불렀던 대회인데,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야구부와 대운동장에서 경기를 펼치게 되었어요. 대운동장 옆 펜스에 관중들이 다 달라붙어서 구경하고, 유명 개그맨이 경기 중계를 할 정도로 인기있었던 대회였습니다. 그때 제가 대표로 서울대 야구부를 우리 캠퍼스로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시위가 많은 시기었어요. 서울대 사회과학대생 한 명이 시위 도중 투신 하는 일이 일어난거예요. 그래서 경기 도중 모든 선수들이 추모하는 마음으로 까만색 리본을 달고 경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네요. | 30년가량의 야구 인생이 양해영 동문님께 큰 의미일 것 같습니다. 양해영 동문님께 야구란 한마디로 무엇인가요? 업보죠(웃음). 야구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고,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도 않다 보니 야구가 제 업이 된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지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즐겁긴 해요. 남을 위해서 일한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KBSA에서 어린 학생들을 보고 있다 보면 즐거움과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 그리고 야구계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불광불급'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학교 때 동아리 후배들에게도 해줬던 말인데,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의 한자 성어입니다.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것에 빠져서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이룰 수 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니면서 야구에 미쳤다는 소리를 허다하게 들었거든요. 친구들이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야구라는 분야에 미쳤고 나름대로 원하는 자리에 와서 보람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만큼 이룰 수는 없지만,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서 돈을 많이 벌어라, 유명해지라 같은 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몰두해서 재미를 느끼고 만족할 수준까지 다가가면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성균웹진 이채은 기자

    • No. 42
    • 2023-10-10
    • 5131
  •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의 최전선에서

    행정학과 박형준 교수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의 최전선에서

    지난 6월, 우리대학은 다른 4개의 대학과 함께 인문사회 융합 인재 양성 주관대학으로 선정됐다. 교육부는 이전까지 이공계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춰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인문사회 분야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5가지 분야에 대한 인문사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사업단을 꾸리게 됐다.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인문사회 기반 창의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단에서 우리대학은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생활 세계의 대응이라는 주제의 주관을 맡게 됐다. 본 사업의 사업단장을 맡게 된 박형준 교수는 행정학과 국정전문대학원 소속이며 정책 디자인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본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사업단장인 그를 만났다. Q. 현재 진행하고 계신 연구가 궁금합니다. 크게 세 개 정도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입니다. 협력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이루어지고, 협력이 안되는 문제는 무엇인지? 어떻게 협력을 위한 관리가 필요한지 등입니다. 두 번째로는 정책 변동의 원인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어요. 원인을 알아야 치유나 해결책 제시가 가능하니까요. 마지막으로는 사회 전체의 최적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정책디자인, 제도설계와 품질 높은 규제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판단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행동을 하거든요. 그러한 판단들은 잘 만들어진 제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개인은 물론 사회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근거에 기반한 정책실험을 통해 어떤 방식의 규제를 비롯한 정책수단들이 제도라는 틀로서 조합되어 이루어질때 최적의 사회효용을 가져오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올해 9월부터는 새로 출범하는 지방시대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지방을 활성화할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가 변함에 따라 지방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거든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하고, 지방을 활력 있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인문사회 융합인재 양성 사업단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예전에는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 많았다면, 이제는 인문사회 인재 양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은 교육부와 한국 연구재단이 디지털 시대의 가치와 규범, 기후 위기, 위험사회와 국가전략,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생활세계와 대응, 글로벌 사회와 선도형 문화예술 창신 등 5개 분야의 미래 사회 변화 대응을 위한 인문사회 기반 창의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입니다. 그중 우리대학은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생활세계와 대응’ 분야 융합교육과정 개발운영, 교육환경 개선, 융합형 교육 플랫폼 구축 등을 가천대, 건양대, 충남대, 한동대와 컨소시을 구성해 추진하게 됐어요. Q. 인구구조 분야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주제는 한정된 분야라서 인문사회 전체 학과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응은 다양한 학과들이 융합되어 연구할 수 있는 분야였어요. 심리학과는 변화 과정 중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충격에 대한 대응 방법을, 사회복지학과와 행정학과는 어떻게 제도가 변화돼야 하는지 연구하게 됩니다. 문헌정보학과는 데이터 분석 방식, 그리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대해 분석하게 됐습니다. 우리대학은 기존에도 지역사회와 연계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오랜 기간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지역사회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지역사회의 대응 문제는 지방 뿐만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대비해야겠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주제이기도 하고, 여러 학과가 협력하기에도 좋기에 인구구조 분야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본 사업에서 우리대학만이 지니는 강점이 무엇인가요? 우리대학이 참여한 인구구조 분야의 경쟁률이 11대 1로 가장 높았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이 됐습니다. 우리대학은 학사 제도, 교과과정, 그리고 비교과 과정에 있어서 혁신을 주도하는 대학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대학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혁신적인 것들을 제안서에 많이 담았어요. 다섯개 대학이 함께 컨소시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수업이라든지 문제 해결형 수업 등이 많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대학이 기존에 이런 경험도 많기에 좋은 점수를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릿지 역량을 키우는 개발이라는 콘셉트를 잘 잡은 것도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6가지 역량, 균형(Balance), 회복력(Resilience), 포용성(Inclusion), 다양성(Diversity), 성장(Growth), 참여(Engagement) 브릿지 (bridge)라는 역량 개발을 만들었는데요, 이게 우리 대학의 강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Q. 인구 구조 분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저출산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현재 출산율은 0.7이나, 출산율이 계속해서 더 떨어진다면 고령화 사회로 변하게 되겠죠. 인구가 적어지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도권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지방 소멸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를 불러일으키고, 궁극적으로 해외의 인력들을 한국에 들여오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구 구조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충격들이 발생했어요. 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근 10년 동안 가장 초점을 맞춘 단어는 회복력 (resilience)입니다. 어떠한 충격을 받게 됐을 때 내부에 있는 지역사회의 네트워킹이 잘 되어있고, 다양한 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으면 원상 복귀가 잘 된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회복이 서서히 될 수도 있고, 원상 복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결국 다양한 충격을 받게 되겠지만, 빠르게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뀌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반영하는 것이 회복력이에요. 따라서 저출산, 고령화, 다문화, 지역 활성화, 사회 갈등 통합과 같은 분야를 해결할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주관대학으로 선정된 것이 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지 궁금합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이 전공을 넘어 자율적으로 진로를 탐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사업은 학문 단위별로 진행이 됩니다. 한 학생이 지방을 활성화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행정학과나 정치학과와 같이 한 학과에 국한되지 않고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로컬 브랜딩이라는 수업과 행정학과의 지역 개발이라는 수업을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각 학과가 구분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학과를 넘나들며 과목을 선택하고 마이크로 디그리 과정을 만들며 진로를 좇는 것입니다. 이를 넘어 융합 트랙도 만들 수 있습니다. 융합 트랙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지니고 있는 지역의 활성화와 연관된 직업이 있다면 융합해 트랙을 만드는 거예요. 졸업장에도 전공과 융합 트랙을 함께 기재해 실질적으로 직업을 가지게 될 때도 개인의 전문 분야가 연결될 수 있는 거죠. 컨소시움 사업으로 이루어지기에 타 대학과 연계해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대학은 서울, 가천대는 수도권의 기초자치단체, 충남대는 광역자치단체, 한동대는 기초자치단체에 자리 잡고 있죠. 각각의 지역마다 로컬크리에이터가 맡게 되는 일이 다를 수도 있기에 함께 교류하며 자신의 대학에는 없는 수업을 듣고 서로를 이해한다면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잘 제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사업을 주관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짧은 기간에 진행됐습니다. 약 한 달 만에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더군다나 다섯개 대학의 여러 학과끼리 함께하다 보니 40~50명이 동시에 참여하게 되더라고요. 방향성부터 시작해서 세부적인 역할 분담, 그리고 예산 배분까지 상당히 많은 협의와 조정의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연구하게 될 갈등과 협력을 미리 한번 겪어본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단기간 안에 진행한다는 게 힘들었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의 목적 아래에서 서로 양보하고 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한 덕에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사업이 혁신적인 제도다 보니까 학교 규정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어요. 제안서를 쓰더라도 학교의 다양한 부서와 연계가 되야했기에 조정하는 부분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올해는 앞으로 나아갈 역량을 키우는 마이크로디그리를 만들고 융합 트랙을 구체화해서 내년에 시작할 생각입니다. 또한 다섯개 분야에 대한 로드맵을 짤 계획이에요. 다양한 교과 비교과 과정을 진행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다양한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겨울학기 때 다섯개의 학교가 함께하는 공통 교과목을 계절학기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때 해당 계절학기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계절학기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으로 지급하려 해요. 비교과 과정은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려 합니다. 흔히 말해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문제 해결형 프로젝트를 성균 글로벌 펠로우십처럼 구성하려 합니다. 학생들이 제안서를 내면 제안서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요. 지역사회나 해외 우수 사례 탐방이 필요하다면 비용 지원도 할 생각입니다. 현장에 계신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강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성균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업은 사회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미래 핵심 인재 양성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많은 학생이 본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참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생들이 우리 사업단이 하는 역할에 대해 홍보해주거나 참여해주시면 학생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여러 지원도 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No. 41
    • 2023-09-26
    • 3613
  • SNS에서 타인의 성취가 미치는 영향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정성은

    SNS에서 타인의 성취가 미치는 영향

    하루에도 몇 번씩 접속하는 SNS, 우리는 SNS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해외여행을 간 친구의 게시물, 좋은 곳에 취업한 동기의 사진, 또는 유명 호텔 식사를 하는, 모르는 이의 게시물.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기와 질투를 느끼리라 예측한다. 정성은 교수는 이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SNS를 통해 접한 타인의 성취가 동기부여와 목표 달성에 대한 노력 고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미디어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우리 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정성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정성은입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서 연구했으며, 현재까지 다양한 논문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Q.평소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설득 커뮤니케이션 분야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국제 커뮤니케이션학과 커뮤니케이션(ICA)의 정보시스템 분과로부터 최우수 논문상, 과학과 생물 분과로부터 커뮤니케이션 과학 우수 공헌상, 한국 언론학회에서 올해의 논문상을 받는 등 다양한 상을 설득 커뮤니케이션 논문과 관련해 수상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 최우수 국제 저널에 논문을 여러 개 게재했습니다. 특히나 ICA라는 국제 학회에 2002년 석사 시절부터 매년 참여해, 지속적으로 발표를 진행했다는 점을 크게 꼽고 싶어요. 다양한 상을 받기도 했고요. 또 한국언론학회에서 부회장을 역임하고, 한국 언론학회 영문 학술지 Asian Communication Research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2010년 성균관대에 부임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로는, 지도학생들을 훌륭한 학자로 만드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매년 한두 명의 학생들을 국제대학 박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인재로 만들어 배출하기도 했어요. 덴버 대학, 펜실베니아주립대학 등 다양한 국제 대학에 지도학생들이 조교수로 임용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도학생들이 국제 학회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가 되기를 소명하고 있습니다. Q. 이번에 진행하신 'SNS에서의 타인의 성취에 대한 반응 연구' 소개 부탁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실험을 시작했어요. 페이스북 프로필 페이지에 출신 대학, 진행했던 학생 활동 등 다양한 업적을 개재하고 구글 본사 입사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자랑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이 페이지를 본 다른 사람들이 목표 성취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방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페이지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동기부여가 되는지 혹은 질투나 시기의 감정이 유발되는지에 집중해서 연구한 거죠. 자신의 목표성취가능성을 높게 보는 학생들에게는 이 페이지가 동기 부여의 요인으로 작용하더라고요. ‘와 나도 한 번 열심히 해보고 싶다’ 등의 감정이 유발되는 형태로요. 그런데 자신의 목표성취가능성을 낮게 보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페이지의 주인을 부러워하면서 그 감정이 자신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어지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 연구에서 타인의 성취에 대한 일반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동기 부여의 요인으로 작용해야 할 타인의 성취가 일반적으로 자기 능력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 거죠. 사회 비교 이론의 관점에서 이것을 설명해 보자면, 이것은 SNS에서 흔히 일어나는 상향 비교에 해당합니다. 자신보다 더 나은 성취를 이룬 삶을 보면 은근한 비교를 하면서 질시/목표와 동기 부여라는 양가적인 감정이 촉발되는 것이죠. 사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반응을 필요로 하고 자신의 성취를 SNS 등 사회적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공간에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단지 자신의 소비 등 노력과는 무관한 자기 자랑은 타인에게 부정적 감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기에 존경의 요소가 없는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성취한 일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으로 하여금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낙관주의적’ 성향을 보인 사람들은 더 크게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내 인생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SNS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접한 타인의 성취를 통해 동기 부여를 받기도 합니다. Q.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낙관주의적인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낙관주의적인 사람들이 긍정적 동기부여를 받고 목표를 설정해서 더 많이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돼요. 그러나 낙관주의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도전하면서 외려 더 많은 좌절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낙관주의가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도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인생에서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거요. 자신이 정한 목표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고 몰입하다 보면,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다른 도전의 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진로 고민을 할 때 양자택일의 순간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래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목표를 설정하던, 목표 설정과 성패보다 선택한 목표에 대해 전력을 다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낙관주의자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낙관주의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목표가 현실과 맞닿아 있다면 현실에 대한 노력이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Q. 현재 개인 유튜브를 운영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튜브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다른 이유는 아니고, 사람들이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용도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구독자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한두 명씩 늘고 있어요.(웃음) 사회과학 통계와 관련된 그리고 설득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강의를 주로 올리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제 의견, 그리고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들, 마지막으로 논문을 읽어주는 콘텐츠를 업로드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해서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Q.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으신지, 교수님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현재 제가 속한 국제 커뮤니케이션학회(ICA)에서 석좌 회원의 자격을 얻고 싶습니다. 현재 석좌 회원의 자격을 얻은 저명한 국내외 학자들 200여 명이 있는데, 그 자격을 얻고 싶네요. 제게는 논문을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 지속적으로 논문을 발간하는 것도 당연한 목표입니다. 저희 지도 교수님은 연세가 팔순에 다다랐는데도 불구하고 현재도 다양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지도교수님을 존경하다보니 당연히 논문을 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연구를 모아서 책으로 발간하는 목표도 있습니다. 앞으로 2~3년 이내에 지금까지 써온 논문들을 묶어서 발간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가 제 단기적인 목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Q. 마지막으로 미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청년들과,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도 학부생 시절 많이 좌절했고, 친구들에게 시기 질투를 느꼈던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학부생 시절을 학생 운동으로 보내면서 학부 성적도 낮았어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시기이다 보니, 많이 후회하고 열등감을 느꼈어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때 새롭게 느꼈던 감정도 있습니다. 학점과 내 능력치가 어떻게 되었든 평가하지 말고, 그 모든 것들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능력치에 대해서 평가하기보다 또 새로운 목표를 찾아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거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좌절하는 청년들도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성은 교수의 연구 'SNS에서 타인의 성취에 대한 반응 연구를 하며 내가 배운 것'은 성균웹진 519호 지식채널S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성균웹진 이채은 기자

    • No. 40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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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끔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도 괜찮아요

    영어영문학과 07, 권보람 동문

    가끔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도 괜찮아요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곤 하는 영역을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기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과 목표를 향한 도약을 위해서는 각자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전을 위해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해외로 발걸음을 내디딘 이가 있다. 권보람 동문은 우리대학 영어영문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보내고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 Madison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동부지역에서 강사로 재직했다. 그 후 올해 University of South Florida (USF)에 임용되며 미국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Q. USF에 임용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언어학 박사고 세부 전공은 음운론(phonology)과 제2 언어습득(second language acquisition)입니다. 학위 논문은 음운론 이론을 이용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 화자들이 어떻게 한국어 소리를 인지하는지, 모국어(영어)가 소리 인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어요. 간단한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왜 미국 사람들은 ‘김’을 들으면 ‘Gim’이 아닌 ‘Kim’으로 인식하는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연구예요. 모두 한 번쯤 궁금해하지 않으셨나요? 학위 과정 중에는 언어학, ESL, 작문, 한국어와 같은 여러 수업을 가르쳤어요. 이렇게 다양한 수업을 조교 또는 강사로서 가르칠 수 있다는 게 미국 대학의 큰 장점인데,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해 보니 저는 연구보다 가르치는 일에서 더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쯤 모두가 아는 역병이 터졌어요. 미국 역시 코로나로 취업 시장이 엉망이 되고 안 그래도 인문학은 가뭄에 콩 나듯이 일자리가 나기에 더더욱 상황이 어려워졌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가 연이 닿아 보스턴에 있는 Northeastern University (NU) 영어과 소속 Writing Program의 Postdoctoral Teaching Associate(티칭 포닥)에 합격했어요. 포닥이라고 하면 보통 연구하는 포지션이 주인데 NU는 티칭 교수 양성 차원에서 티칭 포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나중에 후일담으로 들은 얘기인데 티칭 포닥 5명 자리에 170명 가까이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절박했던 인문학 박사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숫자죠. 그렇게 저는 NU에서 First Year Writing과 Advanced Writing in the Technical Professions라는 과목을 맡아서 가르쳤습니다. 보스턴이란 도시와 NU는 정말 좋았는데 두 번째 학기를 마칠 때쯤 코넬 대학교 한국어과 강사자리로 이직을 결정했어요. 당시 코넬에서 포닥을 하고 있던 남편과 롱디(장거리 연예)를 하고 있었거든요. 마침 강사자리가 난 것도 박사과정 여름방학 동안 쌓았던 한국어 강사 경력이 있었던 것도 잘 맞물려서 일이 풀렸던 것 같아요. 제 모국어를 미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엄청난 보람이 있더라고요. 제 연구 분야(소리와 언어습득)와도 가까운 필드라서 더더욱 매력을 느꼈어요. 영어과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과 한국어과에서 일할 때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체험하게 되니 어느 분야로 제 커리어를 밀고 가야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의 컴포트 존은 아니지만 제가 성장할 기회가 더 많은 영어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작년 하반기부터 취업시장에 도전한 결과 올해 가을학기부터 USF영어과 Assistant Professor of Instruction (API)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기분이랄까요? Q.연구 중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나요? 흔한 얘기지만, 저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가령 저를 오롯이 믿고 스스로 꾸준한 동기 부여를 주는 것이 어려웠어요. 박사 연차수가 늘어가면서 자꾸만 남과 비교하게 되는데 저는 또 이론 연구를 하다 보니 중간에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어요. 박사과정 연구란 스프린트가 아닌 마라톤이 되어야 하는데 이 장기전에서 시기적절하게 연료를 채우고 꾸준히 연구에 매진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타입이라 글이 안 써지는 날엔 과감히 포기하고 대학원 친구들과 운동도 하며 웃고 떠들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Q.어떤 점이 USF임용에 도움이 된 것 같으신가요? 추측해 보자면 저의 언어적, 문화적, 그리고 교육적 배경이 USF에 호감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플로리다는 지리적 특성상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어요. 요즘 학계가 다중언어(multilingual) 구사자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수업과 효과적 교수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저는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 언어학자이면서 다양한 실무 경험이 있는 후보자여서 제가 학교와 학과에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티칭 외에 했던 학과 일들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요. NU에 있었을 때 교수진의 전문성 개발 모임(First-Year Writing Working Group, Inclusive Communities of Practice for Multilingual Writing Instructors)에 들어서 활동했어요. 다중언어 교수들을 위한 멘토링 클럽이 생겼는데 학과에서 추천 받아 멘토로도 활동했고요. 코넬에서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학원생들을 위한 스피킹 그룹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이런 활동들이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보니, 제가 USF에 임용이 된다면 어떠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Q. 어떤 과목과 어떤 분야를 가르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USF에서는 작문 수업 위주로 가르치게 될 것 같아요. First-Year Composition, Professional and Technical Communication, Expository Writing과 같은 수업을 맡아서 가르치며 후에 영역을 좀 넓혀서 Introduction to English linguistics, Rhetorical Grammar for Writing, History of the English Language와 같이 제 언어학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과목들을 가르칠 예정입니다. 인터뷰를 볼 때 Department of World Language 학과장님과도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한국어를 가르친 이력이 있으니 반가워하시더라고요. 현재 USF에는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언젠가 USF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강의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웃음) Q. 교수로서의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합니다. 당장의 목표는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을 빨리, 잘하자”예요. 조금 더 길게 봤을 때는 미국 사회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교육자가 되면 좋겠어요. 제 전공 지식과 티칭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단일/다중언어 사용자들이 본인의 모국어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자신감 있게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고, 다중언어 구사와 관련된 오해도 풀어 주고 싶어요. 저를 만나는 모든 학생에게 언어학은 아주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어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Q. 성대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제 사촌 동생은 제가 음대를 다니는 줄 알았대요. 성대에는 음대도 없는데 말이죠. 저는 1학년 때부터 성대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는 학생이었어요. 바이올린 파트였고 2학년 때는 악장이라는 직책도 맡아서 했답니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뒤에는 “크레디아”라는 클래식 공연 기획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 클래식에 푹 빠져 있어서 예술경영 쪽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미국 유학을 나온 뒤부터는 바이올린 케이스에 먼지만 소복이 쌓였네요. Q. 해외에서 일을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티칭 트랙의 교수직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 직군은 미국이 조금 더 대우와 환경이 좋은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들이 더 적극적으로 티칭 교수의 자기 계발을 지원해 주어서 미국에 남아있기로 결심했어요. USF는 티칭 교수도 원하면 소정의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안식년도 보장해 줘요. 티칭을 주업으로 삼 되 연구도 완전히 손 떼고 싶지 않았던 저에겐 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었지요. Q. USF에 임용되기까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USF에 면접을 보기 며칠 전에 제가 포닥으로 일했던 NU에서도 티칭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 이메일을 받았어요. 제가 정말 만족하면서 다녔던 직장이라 지원할까 고민하다가 USF 면접 준비에 바빠서 지원을 포기하고 있었어요. 지원 마감일이 면접 다음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USF 면접을 보고 난 뒤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해 왔어요. 지원한다고 해서 붙는 건 아니지만, 지원조차 하지 않으면 확률은 0이 되니까요. 호텔 방에 돌아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자소서를 쓰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온라인 제출을 했어요. 이후 감사하게도 인터뷰 제안은 받았지만 (USF 합격 이후라 고사) 다시 생각해 봐도 보통 며칠 걸리는 서류 준비를 몇 시간 만에 해 내야 했던 상황은 아직도 아찔하네요. 박사 졸업해도 발등에 불 떨어져야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 건 변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Q. 성대 후배들을 위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구절이 있어요. “A comfort zone is a beautiful place, but nothing ever grows there.”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 위해선 가끔 컴포트 존을 벗어나야 해요. 내가 익숙한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나도 괜찮더라고요. 더 가끔 컴포트 존 완전 밖으로 날아가도요. 제게 유학이 그런 도전이었어요. 오늘도 자신의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모든 후배들을 응원하겠습니다.

    • No. 39
    •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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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는 끝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장르

    신문방송 13 신정은 동문

    뉴스는 끝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장르

    세상이 어떤 형태로 변하든, 뉴스는 살아남는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다양한 숏폼 형태의 미디어가 우후죽순 등장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뉴스는 숨 쉬고 있다. 틱톡이라는 새로운 뉴스 전달 매체를 구축하고 '뉴스테이너'로 활동하며 뉴스에 숨을 불어넣고 있는 SBS 기자, 신정은 동문(신문방송 13)을 만나보았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7년 차 SBS 기자, 신정은입니다.” |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신정은 기자님은 재학 중 어떤 학생이었나요?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 공부에 뜻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학업보다 다른 활동들에 우선 순위를 맞췄습니다. 사회과학대 학생회 활동, 다양한 학회나 동아리 활동들을 대학 생활의 중점에 뒀습니다. 저는 덜 공부하는 대신, 틀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활동들을 항상 찾으려 했던 것 같아요. 학생회 활동을 할 땐 각박한 일상 속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자는 취지로 오페라 가수 폴 포츠를 초청해 공연 기획한 적도 있습니다. 폴 포츠 내한 당시, 직접 편지를 써서 공항에서 전달하며 초대의 뜻을 전했죠. 수개 월 동안 물밑작업을 벌인 끝에 그가 다시 한국을 찾아 새천년홀에서 무료 공연을 펼쳐주었어요. 아무도 실현될 거라고 믿지 않았지만, 오히려 학생 신분이라 해낼 수 있었어요. 이 외에도 방송연구반, 하이클럽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대학시절을 채워나갔습니다. |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나요? 사실 거의 1년 반 정도는 목발을 짚으며 통학을 했었어요. 무려 수선관까지요.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성균관대 축제는 서강대, 서울대 등 다른 S 대학과 함께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죠. 그런데 저희 세대부터 축제 분위기가 바뀌어서 지금처럼 다양한 아티스트들로 풍성하게 꾸며졌습니다. 축제 때 일일호프를 열고 바쁘게 돌아다니다 그만 다리를 삐끗했는데, 쉬기는 커녕 다음날 '다이나믹 듀오' 공연을 즐기다 더 크게 다쳤어요. 그만큼 재미있게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 언제부터 기자라는 진로를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학창시절부터 시작된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막연하게 미디어나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광고 회사나 다양한 사기업 인턴으로 지원하기도 했었죠. 그러다 SBS 신입 공채 전형에 지원했습니다. SBS에선 기자로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역할이 다양할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죠. 평소 관심을 가졌던 디지털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실제로 7년 여 동안 정말 다채로웠어요. 사건사고나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하거나 관심 이슈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쓰는 것도 무척 뜻 깊은 일이었고요. 디지털 부서에선 콘텐츠 유통과 전략을 구상했었고, 틱톡 등 새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기도 했었어요. 선거방송이나 남북미정상회담 등 대형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도 했었죠. 요즘은 주중엔 시사토론 프로그램 연출을 하며 주말엔 앵커로서 아침 뉴스를 진행하고 있죠. 대학시절 여러 활동을 하며 저만의 경험을 쌓았던 것처럼, 지금도 신정은 기자만의 특별한 경험을 쌓으려 하고 있어요. ▲틱톡 ’정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은 기자 “제 모토는 쉽고 친절하고 유익한 뉴스입니다.” | 신정은 기자님이라고 하면 사실 '뉴스테이너'로서의 모습을 빼놓을 수 없죠. 틱톡에서 ‘정은 기자’라는 부캐로 활동하시면서 다양한 뉴스를 새로운 형태로 전달하고 계십니다. 뉴스라는 전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로 틱톡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틱톡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한 플랫폼이며 앞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예정입니다. 이용자 수, 이용 시간, 다운로드 수 등의 정량적 수치로 봐도 틱톡은 압도적이죠.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이 한편으로는 막막할 수 있는데, 오히려 기자가 설 수 있는 무대가 하나 더 마련됐다고 볼 수도 있죠. 가수가 노래할 무대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듯이, 기자도 마찬가지거든요. 취재한 기사를 전달하며 독자와 소통할 플랫폼이 등장했다면 이를 마다하거나 피할 이유는 없죠. | 틱톡이라는 매체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죠.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틱톡에선 ‘청소년’들을 마주한다는 게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기성 언론사들이 주로 소통하거나 겨냥하는 독자층과 완전히 달랐던 거죠. 두 번째로 형식적인 도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뉴스 영상은 왜 가로 형태일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TV 때문이죠. 그동안 TV 를 통해 뉴스를 보는 게 만연했던 터라 모든 제작 방식이 이에 맞춰졌던 거죠. 하지만 스마트폰 위주의 콘텐츠 소비 습관 변화로 틱톡 등 세로 형식을 취급하는 플랫폼이 급부상했고요. 처음 틱톡에 뉴스를 공급할 땐 콘텐츠를 재가공하며 일을 두 번 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죠. 그럼에도 틱톡에 뉴스 채널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이 급격하게 변할 때였죠. SNS를 통해 가짜 뉴스가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특히 교육 공백 상태에 놓였던 청소년들을 혼란스럽게 했고요. 누군가 나서서 팩트체크를 하는 게 필요했어요. 틱톡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데에 여러 도전을 극복해야 했지만, 플랫폼의 급성장과 코로나-19 관련 정보 수요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 틱톡의 독자는 청소년 중에서도 초등학생이죠. 아무래도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뉴스를 내보내면서 주의해야 할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지상파 방송 뉴스나 신문 등 기성 언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죠. 언론 매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적은 탓에 기대도, 편견도 없었어요. 저도 매체명을 앞세우기 보다 '쉽고 친절하고 유익한 뉴스'를 좌우명으로 삼았어요. 뉴스에서 으레 사용하는 용어들을 최대한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 뉴스 자체에 대한 호감을 높이기 위해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했습니다. 너무 자극적이거나 소모적인 아이템에 편승하지 않고 초등학생들이 관심 있으면서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익한 아이템을 선정했어요. | 틱톡으로 뉴스를 전달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북상했을 때였어요. 경남 지역을 빠르게 관통하며 많은 피해를 냈었죠. 당시 현장에서 태풍의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특보 방송을 생중계로 전했는데, 틈이 날 때마다 숏폼 영상을 제작해 틱톡에 공급했어요. 태풍이 한반도를 지난 후엔 지역별 피해 상황을 취재하며 1~2시간 간격으로 영상을 올렸고요. 촬영도 거칠고 편집도 최소한이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호응했죠. 하루 꼬박 취재한 내용을 독자와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저녁엔 방송을 통해 르포 기사로 전달하니 독자와 제대로 호흡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19 청소년 백신 접종이 화두로 떠올랐을 때 저도 당시 청소년을 대상으로 Q&A 라이브 방송을 틱톡에서 진행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백신 접종과 관련해 최대한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춰보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죠. 실시간 댓글로 받은 첫 질문은 '백신을 맞으려면 얼마를 내야 하요?' 였던 거죠. 백신 종류나 신청 방법을 쉽게 설명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질문을 받고 꽤나 충격을 받았어요. 공급자적 시각에서 뉴스와 실제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뉴스는 출발점부터 달랐던 거죠. 갈 길이 한참 멀었다며 반성을 했어요. | 현재는 틱톡 활동을 잠시 쉬고 계시는데요. 다시 틱톡 '정은 기자'로 컴백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말을 하면 지켜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하네요. 시즌 2를 고민하고 있긴 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을 위한 디지털 안전 관련 이슈를 틱톡으로 전달하고 싶어요. 청소년들이 노는 곳은 이제 바깥의 놀이터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죠. 동네 작은 놀이터만해도 수많은 안전 기준을 지키도록 하는데 소셜미디어는 과연 안전하게 관리, 유지되고 있는가 점검이 필요해요. 왜곡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하는 가운데 아이들도 위험에 버젓이 노출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뉴스를 틱톡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면 때로는 틱톡을 뉴스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새 플랫폼들의 부상 속 기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어요. “뉴스는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 이제 기자님이 생각하는 뉴스에 대해 질문해 볼게요. 최근 유튜브나 각종 SNS에서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주로 소비하면서 자연히 ‘뉴스는 딱딱하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아무래도 딱딱한 아이템이다 보니 영상 접근성도 떨어질 것 같습니다. 신정은 기자님이 생각하는 뉴스의 ‘딱딱함‘을 극복할 방법이 있나요? 플랫폼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가 다르다는 이야기부터 하고 싶어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여행을 가더라도 인스타그램의 게시물로 올릴 사진과 스토리로 올리는 사진은 각각 다르죠. 카카오톡 프로필이나 배경 사진은 훨씬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선별하고요. 쉽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각 플랫폼과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이용자들의 행태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뉴스 콘텐츠도 플랫폼별 맞춤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틱톡이나 쇼츠, 릴스 등 플랫폼에선 짧지만 핵심을 짚어주는 콘텐츠와 달리 유튜브에서는 충분한 맥락을 담은 긴 콘텐츠가 소구력을 지니 듯이요. 뉴스가 딱딱하다는 편견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기 보다 딱딱한 내용의 뉴스라도 통할 수 있는 플랫폼과 스토리텔링 방식을 찾는 거죠. 보도 내용의 성격이나 내용, 관심 독자층에 따라 다양한 플랫폼에 공급하며 활용하는 게 필요해요. | 외려 제가 뉴스를 딱딱하게 생각했네요. 그런데도 뉴스를 제대로 접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운 사실인데요, 앞으로 뉴스가 살아남을 길이 있을까요. 있어요. 사람들이 TV를 틀고 앉아 뉴스를 시청하는 게 아닐 뿐이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뉴스는 숨 쉬듯 뿜어져 나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는 외교 현안이자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면서도 어업 종사자들에겐 일촉즉발의 생계 문제이자 일반 시민들에겐 저녁 메뉴로 회가 괜찮을 지 토론하는 일상 속 대화 소재이기도 하죠. 채은 기자님이 말한 것만큼 뉴스의 미래가 막 어둡지는 않아요. 뉴스는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콘텐츠입니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과 플랫폼 전략, 보도 내용이 어우러질 때 뉴스가 살아남을 수 있고요. | 누구보다 뉴스에 진심인 신정은 기자님은 무엇으로 움직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신정은 기자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가만히 못 있는 게 제 체질인 것 같긴 해요. 무엇이든 단순하게 생각하는 습관도 오히려 절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냐”는 질문도 여러 번 받았는데 그때 마다 “그냥요. 그냥 생각 없이 해요.”라고 답을 해요. 복잡한 계산 없이 묵묵히 이것저것 하는 게 나름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기자를 꿈꾸는 성균관대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론계에 먼저 뛰어든 선배로서 같이 일할 동료와 후배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업계 사정이 예전과 다르다며 기자직을 비추천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절대 동의하지 않아요. 업계가 천지개벽하듯 변화하고 있는 덕분에 오히려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아졌고 다양한 일들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게 됐죠. 오랫동안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한 점만 부각돼 방황할 수 있어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기자 일을 하고 있어요. 대학도, 전공도, MBTI도 다양합니다. 기자라는 업의 특성상 자신만의 경험과 개성은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균웹진 이채은 기자

    • No. 38
    • 2023-08-02
    • 9012
  • 국제하계학기(ISS)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연다

    국제처장 이한정 교수

    국제하계학기(ISS)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연다

    우리대학은 매년 국제하계학기 (International Summer Semester: ISS)를 운영하고 있다. ISS는 올해로 15번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우리대학의 대표적인 국제 교육 프로그램이다. 해외학생들과 본교생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며, 수업을 듣고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생동감 넘치는 교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42개국 86개 대학, 680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약 한 달간 (6.23일 – 7.21일) 경영/경제/한국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총 43개의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해외 학생들이 한국문화를 체험할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준비되어 있다. 이한정 국제처장은 ISS 국제하계학기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우리 대학 국제하계학기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Q. 작년의 ISS와 올해의 ISS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작년보다는 해외학생들과 본교생들의 참여가 더 활발해지고, 코로나 전의 분위기가 많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올해는 본교가 지속가능 에너지 분야 유네스코 석좌 기관 (UNESCO Chair)에 선정 됨에 따라 ‘Global Sustainability’ 분야의 수업들을 특별히 개설했습니다. ‘Global Sustainability’ 분야에는 “Introduction to ESG Management” , “Global Leadership and Sustainability”, “Technology, Society and Sustainability”, “Climate Change: Science, Technology and Policy” 등의 교과목들이 개설되어 기업 경영, 리더십, 과학 기술 발전과 사용 및 관련 정책 이슈들을 지속가능 발전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수업계획서에 UN에서 발표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들(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을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Q. ISS 학기를 준비하고, 구성하는 데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현재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화두가 무엇인가, 본교 학생들과 한국을 찾는 외국인 학생들이 듣고 싶어하는 수업이 어떤 것 일지를 고려하여 교육과정을 준비합니다. 국제하계학기 교과목을 수강하면서 본교 학생들이 얻어가는 것이 많고, 해외 학생들도 한국 특히 성대에서만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합니다. Q. ISS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본교 ISS는 15년 전에 재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해당 분야의 세계적 명성과 강의 및 연구능력을 갖춘 해외 교수진이 국제 사회가 당면한 이슈들을 다루는 시의성 높은 교과목들을 해외 학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Q. ISS를 진행하시며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2023 ISS를 시작하기 전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었습니다. 바로 2018년도 ISS에 참가했던 ‘커플’ 이었는데요, ISS에서 만나 연인으로 이어진 커플이 신혼여행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특별한 인연을 맺어준 성균관대에 꼭 다시 와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Q. ISS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국인 학생들의 관심을 반영하고, 해외학생들의 눈높이와 요구에도 부응하는 프로그램을 만족스럽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늘 양쪽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는 국제적 수준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서 국제처 직원 선생님들과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ISS를 듣는 학생들을 위한 팁이 있으실까요? 최대한 외국 학생들에게 많이 대화를 걸어보고 나누어 보고 수업 밖에서도 어울려 보세요. 외국 학생들은 늘 한국 친구들을 만들고 싶어하는데, 한국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캠퍼스 주변의 맛집을 알려주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경험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오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ISS 계획이 궁금합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종로의 풍부한 문화 자산과 K-culture의 힘을 적극 활용하여 앞으로 ISS를 더 많은 학생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풍성한 글로벌 학습 체험과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올해 영국과 미국 학생들이 많이 참가했는데, 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며 성장하는 글로벌 학습 체험 기회를 마련하도록 주력하겠습니다. Q. 처장님께서 생각하시는 ISS만의 장점이 궁금합니다. 성균관대의 ISS는 한국 학생들과 해외 학생들의 비율이 거의 1대1입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 외국인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기도 하죠. ISS 수업을 듣고 파견교환학생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받게 된다면, 교환학생으로 해외 대학에 갈 준비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Q. ISS 참여 내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의 비율이 비슷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본교생들에게는 외국에 가지 않아도 해외 대학 소속 교수들의 수업을 수강하고 협정대학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교과목이라 해도 학생들이 본교에서 수강할 수 있는 과목과 해외 대학 교수들이 담당하는 교과목은 접근 방법과 관점, 수업 진행, 학생들의 활동 등 여러 면에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ISS 교과목 수강이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한국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하는 교과목을 개설하고 있어 본교생과 외국인 학생의 비율이 균형있게 유지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본교생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한국문화 위주의 수업이 아닌 수요도 높은 전공 중심의 과목 개설을 하고 있어서 본교생들의 꾸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ISS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도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들이지만, 우리는 편안한 상태를 벗어나 스스로의 한계를 넓히려 노력하고 편협함을 극복하면서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ISS에 참여해보지 않았다면 내년에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해보기를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성균웹진 윤지민 기자

    • No. 37
    • 2023-07-18
    • 15202
  •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 한문학

    한문교육과 96, 최원경 동문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 한문학

    한문학 등의 고전 학문은 대학에서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혹자는 이를 고리타분한 고전 학문이라고 칭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처럼, 고전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삶의 통찰력, 현재에 대한 이해는 모두 과거와의 접목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학자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한문학에서 찾았다. 우리 대학 한문교육과를 거쳐 한문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임용된 최원경 교수다. 최원경 교수는 한문학에서 '세상을 읽어낼 중요한 키를 획득할 것만 같은 기대감을 맛본다'고 말한다. 한문학 연구를 지속해 나가면서,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나가는 최원경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학사, 석박사를 모두 성균관대에서 보내셨는데, 교수님은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졸업한 지 꽤 오래되어서 명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부 때는 동기들과 원만하게 지내기도 했고, 동시에 조금은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네요. 동아리 서도회에 속해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밤늦게까지 선배, 동기들과 함께 전시회 준비도 하고, 동아리방에서 군대 휴가 나온 선배의 환영회에서 삼계탕을 끓여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학사 때부터 전공 공부에 흥미가 많아서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로 빨리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 석사 때부터는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조교로 근무하면서 관련 서적을 많이 접했어요. 당시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풍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석사를 시작했을 때가 대동문화연구원을 모체로 한 동아시아학술원이 출범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연구 과정에서 한국 한문학을 동아시아학과 더불어 보며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Q. 학부생 재학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좀 진지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뭔가 씁쓸하게 재미있고, 제 기억 속에 중요하게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80년대 후반 저는 돈암동에 위치한 성신초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성신여대, 성균관대, 국민대 등지에서 날아오는 듯한 매캐한 최루가스로 지독히도 힘들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불편한 기억보다는 대학생들이 속한 공간은 저런 곳이구나 막연하게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대학시절은 시대정신이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개인의 삶을 위한 투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자신을 위한 투쟁은 등록금 투쟁이었는데, 그것도 끝물이었지요. 금잔디에 모여 있던 학생들이 함께해 달라고 큰 소리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붙잡던 모습을, 저는 마치 외부인처럼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었는데, 대학/대학생의 여러 역할 중에서 기성 사회에 대한 관찰자이자 비판자의 역할은 이제 사라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를 흥미로운 마음과 어두운 마음이 묘하게 뒤섞였던 강렬한 기억입니다. Q. 교수님의 연구 분야가 궁금합니다. 한문학과 박사학위 취득 이후 어떤 분야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계신가요? 저는 주로 19세기 한국문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19세기~ 20세기 초는 전 지구적으로 사회, 정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모더니즘의 기폭기로 알려져 있지요. 특히 조선의 18세기 말~19세기 초부터는 큰 변화를 겪을 듯한 알 수 없는 조선의 향방이 지식인들에게 감지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제 지도교수이신 진재교 교수님께서는 18세기가 문화적, 학술적 신기운이 고양되었던 시기라면, 19세기는 그 신기운을 전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의 좌절이 공존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역사 속 모든 시기의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변화의 시간을 겪으며 인식의 확장을 경험해 왔을 겁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큰 변혁의 시기가 존재합니다. 특히 19세기와 21세기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합니다. 서로 연결되어 연상되는 지점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21세기 현재를 사는 저는 19세기 지식인들의 실존적 고민과 삶, 시각, 인식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한문학, 한문 교육학은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연구 분야입니다. 한문학의 어떤 매력이 교수님을 연구의 길로 이끄셨는지 궁금합니다. 한문학과 한문교육학은 한국의 과거를 공부하고 한국의 과거를 후속 세대에게 교육하기 위한 공부를 하는 학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과, 지속성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학문이지요. 안타깝게도 대학에서 고전전공은 주류가 아니며, 한문학을 전공하는 것은 많은 학생에게 더 이상 매력적인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언어/문자/외교/정체성 등의 여러 문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성사, 대중사를 모두 알아야 하고, 그것은 한문학과 정통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실존, 정체성,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인식, 타인과의 소통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에 관한 공부를 실생활에 접목하면서 사는 삶을 목표로 했고, 한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고립감과 함께 세상을 읽어 낼 중요한 키를 획득할 것만 같은 놀라운 기대감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마이너와 메이저 감성의 조합이라 할 수 있지요. Q.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동안 연구의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퇴임하신 우리 학과 임형택 교수님께서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하던 공부를 너희들이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겠지만, 한문학은 정말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연구를 하면서, 외부적 잣대와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저는 모든 면에서 조금씩 평균보다 느린 사람입니다. 제가 지나온 과정들이 모두 그러했고요. 제 속도에 심리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제 자존과 즐거움, 균형감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Q. 2월에 라이덴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교수님의 어떤 점이 라이덴대학에 어필된 것 같으신가요? 라이덴 대학교는 깊은 한국학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50년대부터 한국학 연구의 기반이 마련되어 왔으며, 한국학에 대해 지속적이고 깊은 고민을 해오고 있습니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 고전문학 전공으로 교수를 임용한 사례가 현재까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라이덴에서 한국의 고전문학과 원문 자료를 잘 가르칠 사람을 찾는다는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저는 임용 평가 당시에 라이덴 대학 측에서 제시한 이규보의 자료를 가지고 공개수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연구 발표 시에는 ‘19세기 과도기의 조선 지식인‘, ’중국 문학과 문화와는 구별되는 한국 고전이 세계 문학의 한 부분으로서 가지는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어필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성균관대에서 오래 공부하며 얻은 한국고전문학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강의 경력 등이 라이덴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Q. 앞으로 연구자, 혹은 교수로서 라이덴대학교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목표나 포부를 구체적으로 가지는 편은 아닙니다. 그저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온 많은 학생 중에서, 제가 “재미있는 거 한번 볼래?” 하면서 손을 내밀면, 눈을 반짝이며 저와 함께 한국 고전을 공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 그리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에 매몰되거나 몰두하게 되는 일은 연구자의 삶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기꺼워하지 않는 방식과 방향으로 자신을 소모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외부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주체적인 질서를 잘 찾아 나가고 있을 모든 성균관대 학생을 응원합니다. 성균웹진 이채은 기자

    • No. 36
    • 2023-07-06
    • 6891
  • 사이타마 센세라 불러주세요

    학부대학 이주강 교수

    사이타마 센세라 불러주세요

    학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유쾌한 교수님’이라 부르는 이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펀맨>의 주인공인 사이타마와 닮아 ‘사이타마 센세’라 자처한다는 그는, 그렇게 불러주는 학생이 드물어 아쉽다며 그만의 선한 웃음을 전했다. 학부대학 성균인성교육센터 소속 연구원인 이주강 박사는 현재 <성균논어>, <유교자본주의의 이해>, <동양 고전 속의 경영학>을 맡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성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비교과 과정 등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기도 하다. 그는 SK텔레콤과 한국산업은행 등 다수의 직장에서 공부하다 동양철학에 매력을 느껴 우리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한다. 이주강 교수는 ‘꽃가루가 날리는 봄을 지나 폭죽을 더 크게 터뜨리고픈 축제의 계절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퇴계 이황 선생님의 철학을 이어받아 우리대학에 자리 잡게 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만의 솔직함으로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자 한다는 이주강 교수를 만나보자. Q. 수업을 진행할 때 교수님만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첫째, 강의실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학생들이 더 기쁘기를 바랍니다. 둘째, 제가 옳다고 믿지 않는 것을 학생들에게 옳다고 강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째, 저와 학생들의 현실 속 문제 해결을 즐기고자 합니다. Q.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자신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제가 인기가 많다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외모나 언변은 원인이 아닌 듯하여, 제 나름대로 머리를 싸매고 비결을 찾아보았는데,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수업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 다시 말해 모든 ‘현재’에서 항상 기쁨과 즐거움에 머물기를 바라는데, 그런 vibe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저는 학생들에게 솔직하고자 합니다. 저는 단순한 사람이어서,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다가는 금세 탄로가 납니다. 요즘 학우들은 꾸미지 않은 ‘날 것,’ ‘민낯’을 선호하는데, 적어도 그런 기준에는 제가 다소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Q. 우리 대학에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는 2008년 소녀시대와 2019년 레드벨벳이 성균관대학교 축제에 와서 공연했던 것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전자의 경우 리더인 태연이 <태연의 친한 친구> 라디오 방송을 하느라 오지 않아서, 저는 분노에 찬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레드벨벳 공연을 전후해 학생회관 근처에서 화재가 났었죠. 제가 가장 아끼는 ‘성선설의 화신’ 슬기가 무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원하신 것은 아닐 듯합니다. 저는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감정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We are enough.”라는 원칙을 제 수업의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저의 숱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는데, 학생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해가 가면 갈수록 학생들이 이 원칙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점을 매우 인상 깊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업이 끝난 뒤 제 수업 내용으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알려올 때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Q. 학생들을 대할 때 어려운 점이 있으신가요? 저는 MBTI가 IIII인 사람입니다. 매우 내성적(introvert)인 타입이지요. 학생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많이 부대끼는 것 자체가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을 대할 때 어려움이 있다면,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제 기질 이슈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 철학의 모토를 곱씹는 수밖에 없습니다. 배움도 놀이, 강의도 놀이, 가정사도 놀이, 상담도 놀이입니다. 물론 놀이의 모든 순간이 짜릿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놀기 전보다 놀고 난 뒤가 더욱 기쁘고 만족스러우면 그 놀이는 성공입니다. 학생들에게 선생은 항상 어려운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선생이 먼저 놀이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학생들도 선생과 놀고자 합니다. 그 정도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Q. 어떤 교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교수(敎授)는 가르치고(敎) 준다(授)는 의미이므로 전문 학자의 영역이 아닌 스승과 제자의 영역에 한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선 질문에서 이미 밝혔는데 저는 학생들에게 즐거운 선생님 그리고 솔직한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즐겁고 솔직한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Q. 교수님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아이 같은 학생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며, 그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가령 달리기를 통해 최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체의 작동 방식 및 다양한 주법(走法), 적절한 신발과 마음가짐까지 공부할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인 1997년에는 유럽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에는 <서양 미술사> 등의 교양 강의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아는 만큼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것만 쫓다 보니, 제 학부 전공인 경영학 수업은 좀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도 경영학 자체는 죄가 없고, 먹고 살기 위해 기질에 맞지 않는 전공을 선택한 제가 잘못이었지요. Q. 교수가 되어야겠다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조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저는 교수가 되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습니다. 철학 공부가 저를 기쁘게 했고, 이 기쁜 학문을 이제 타인들과 공유하는 편이 더욱 기쁘겠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대학 강의뿐만이 아니라 대중강연도 해보았고 초중고등학교 강의도 해보았는데,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제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한데 아직 지적 편견이 심하지 않은 시기가 바로 학부생 시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학부 대학에 속한 저는 현재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 중인데, 학우들의 열띤 토론과 적극적 반응, 심지어 부정적 반응이라도 저를 매우 행복하게 합니다. Q.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제 내적인 본성과 기질, 그리고 그에 따른 욕구(감정)입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것은 본성이며, 배가 고프면 구체적으로 햄버거를 먹고 싶은 것은 기질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본성과 기질에 따른 욕구를 가장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방법으로 최종결정하는 정서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있지요. 예컨대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해서 굶주린 아이들 앞에서 혼자 우걱우걱 먹다가는, 제 감정이 본성상 편안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제 본성상 좋다고 느끼는 것(feel good)을 하고자 하며, 제 기질에 만족스러운 것을 하고자 합니다. Q. 슬럼프가 있으셨나요?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저도 많은 슬럼프에 빠져 살았습니다. 심지어 앞으로도 적지 않은 슬럼프에 빠지겠지요. 인간은 악(惡)한 존재가 아닌 약(弱)한 존재이니까요. 흔히 슬럼프는 남과 나를 비교해서 내가 남보다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슬럼프가 가장 위험합니다. 이런 종류의 슬럼프는 남들의 위안이나 우월한 성취에도 극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다시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에게 충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슬럼프 극복 방법이었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지금 이 순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 또한 죄를 키워가는 일이니까요.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고 즐겁게 살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 Radical Acceptance>라는 책이 이 점을 잘 설명했는데,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합니다. Q.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라는 유령이. 완벽주의는 여러분의 현재 존재가 충분하지 않으니, 좀 더 완벽해질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맹자와 스피노자, 그리고 퇴계 이황 등의 스승은 여러분이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가르칩니다(You are enough). 여러분은 오류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존재하는 자연물이며, 여러분의 존재 자체에는 그 어떤 오류나 부족함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과 남의 내외적 조건(condition)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이나 남을 비하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완벽(perfection)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나 완벽주의 그리고 그런 오류들의 기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teleology)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내 존재가 충분하고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미취학 아동들은 완벽해지고자 노력하지 않지만, 온종일 바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벽해지려 하는 대신 자신의 본성과 기질을 매 순간 즐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떠들썩한 완벽주의자나 꼰대들의 ‘가르침’을 귓등으로 흘리시고 여러분의 참된 본성(true nature)과 참된 욕망(true needs)에 따라 즐겁고 또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타인과 함께 즐거워야 진실로 큰 즐거움임을 잊지 않고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與民同樂). 인생은 짧고 시간은 목숨입니다. 성균웹진 윤지민 기자

    • No. 35
    • 2023-06-21
    • 4817
  • SKK GSB Executive MBA

    SKK GSB 11기 김찬중 동문

    SKK GSB Executive MBA

    Q.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재직중인 회사 및 업무, 직위 포함) 안녕하세요.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 11기 졸업생 김찬중입니다. (2021년 졸업) 저는 PwC 컨설팅 오퍼레이션 본부에서 매니저로 재직 중입니다. MBA 입학 전에는 DL그룹 (이전 대림그룹) 상사 부문, 화학사업 부문 그리고 지주회사에서 11년 이상 근무했습니다. PwC 컨설팅에서는 EPC/화학사에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주로 화학/에너지/EPC기업들의 End to End 프로세스 개선, 디지털 혁신, 신사업 개발과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여러 과정 중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 과정을 선택했던 이유와 계기는 무엇인가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 + 1 MBA 복수학위인 점, 8년차 경력에서 지원 가능한 유일한 EMBA 과정, 그리고 100% 영어 과정인 점입니다. 한가지 MBA 과정을 통해 인디애나대학교 켈리 스쿨과 성균관대학교 SKK GSB 양쪽에서MBA 졸업장을 모두 받는 것은 큰 매력이었습니다. 인디애나대학교 켈리 스쿨과 성균관대학교 SKK GSB 가 공동 운영하고 복수학위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과정인 것이 좋았습니다. 두 비즈니스 스쿨이 공동으로 교수진을 구성해 통합 시너지를 냈다는 점, 졸업 후 SKK GSB 동문회뿐만 아니라 인디애나대학교 동문회에도 초대받는 점 등 1+1이 Buy one, Get one이 아닌 Buy one, Get Three or more의 가치를 줄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MBA 과정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그래서 여러 종류의 MBA 과정들 중에서 EMBA 과정을 우선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EMBA과정들은 대부분 임원급이거나 최소 10~15년 이상의 업무경력을 요구해 진입 장벽이 높았습니다. 반면, SKK GSB의 EMBA 과정은 8년차부터 지원 가능해서 마침 딱 8년차였던 저는 특별히 고민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Chat GPT에 물어보니 사람들이 MBA 과정에 진학하는 이유가 첫째 경력전환, 둘째 네트워킹, 마지막으로 지식 함양이라고 합니다. 저 역시 MBA 과정을 통해 경영 지식과 능력을 최대한 높이고 싶었습니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면 배움에 열정적이고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들과 동고동락하며 수업을 듣게 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학업에 매우 열정적인 유능한 동기들과 1년 반의 EMBA 생활을 보냈던 점은 매우 영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이 실제로 업무에 도움이 되었나요? 제가 전략기획팀에서 재무/IR 파트로 업무가 바뀌었는데 경쟁사 분석이나 PEER 그룹에 대한 Stock Valuation 업무를 맡아야 했습니다. 전략 기획 업무만 경험했다면 정말 막막했을 텐데, 마침 EMBA 과정 중 Corporate Finance 수업에 Stock Valuation 방법론과 각종 재무 지표들을 토대로 목표로 설정한 회사들의 재무 건전성을 비교 분석하는 팀 과제가 있었습니다. 이때 작성했던 분석 도구들을 활용해서 경영진 보고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Effective Negotiation 수업 중 진행한 ‘Recruiter Role’이라는 구직자와 구인자 간의 협상 시뮬레이션 과제는 제가 이직할 때의 연봉 협상에서 아주 유용했습니다. 수업 때는 동기와 재미로 시뮬레이션 해보고 넘어갔던 것인데 실제 저 자신의 연봉 협상 상황에서는 수업에서 받았던 Role Play Sheet를 매우 진지하게 활용했습니다. 덕분에 내게 중요하진 않지만 회사가 제공하기 어려운 것들은 회사의 입장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대신 그 결과로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얻는 방향으로 협상할 수 있었습니다. 지면으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Q. MBA 졸업이 본인의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되었나요?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했나요? Indiana Kelley – SKK GSB Executive MBA 과정 졸업 후 두 번의 이직을 했고, 지금의 PwC 컨설팅으로 옮기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보통 경력직 인터뷰 시에는 업무 경력 중심으로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저는 MBA 경험에 대한 질문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많은 면접관들에게 다른 경력자들보다 눈에 띄었고 MBA 타이틀뿐만 아니라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MBA 과정을 마쳤던 열정을 높이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Q. MBA 과정을 하면서 가장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기들끼리 서로의 지식과 전문성을 잘 활용하도록 과목별 멘토링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Finance 나 Accounting 수업은 CFA 자격증을 보유한 동기가, Communication 수업은 PR Agency에 재직하는 동기가, Digital 수업은 Microsoft 사에서 근무하는 다른 동기가… 이런 식으로 다른 동기들이 어려워하는 내용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궁금한 점들을 따로 시간 내어 답변해주는 구조였습니다. 덕분에 낯선 분야의 과목들을 이해하고 Deep-Dive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과목에 대한 이해도 역시 훨씬 높아졌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상호 경쟁이 아닌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11기 전체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조직 모델을 경험했던 기간이었습니다. Q. MBA 과정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결/극복하였나요? 대부분 비슷할 텐데 가정과 직장, 학업 3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재학 당시 3살된 아이가 있었고, 회사에서는 막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종일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 외에도 Case Study Review와 각종 과제, 퀴즈, 시험 준비가 있었습니다. 회사일과 육아에 MBA 과정까지 병행하자니 처음에는 어떤 것도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학업 문제는 초반 적응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동기들 간의 멘토링 시스템 덕에 가장 빠르게 해결되었습니다. 육아 역시 의외로 MBA 동기들 덕분에 고민이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딸과 또래인 아이를 둔 동기 5명과 같이 일요일, 공휴일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키즈 카페, 각종 아트, 농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등에 갔습니다. 일명 “아빠 어디가” 모임이었습니다. 이 모임은 아이에게는 또래들 과의 추억을, 아내에게는 휴식 시간을 줄 수 있었고, 가족들이 MBA 과정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같은 처지의 동기들과 한층 더 돈독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전략기획팀 소속으로 업무 중이었는데 부서 특성상 경영진 지시를 받아 진행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생소한 산업이나 분야에 대한 리서치부터 시작하는 일이 많았는데, 다양한 업종에서 10~ 20년 이상 종사해 온 EMBA 동기들 덕을 크게 봤습니다. 현업 전문가들에게 업계 트렌드나 산업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조사를 진행했고, 덕분에 소요시간이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Q. 본인이 재학하는 MBA과정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당신의 현재는 과거 당신의 무수히 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입니다. 제가 과거에 그러했듯이 당신도 지금 MBA 과정을 해야만 하는 무수히 많은 이유들과 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많은 이유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고민조차 하지 않은 분들에 비해 많이 내디딘 것이지요. 본인이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 그리고 아쉬움의 크기 중 어느 것이 더 클지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현명한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 No. 34
    • 2023-06-07
    • 6359
  • 실패는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이다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박호석

    실패는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이다

    우리 대학 총동창회는 2019년을 기점으로 13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뛰어난 연구 실적을 인정받고, 노벨상 수준의 잠재력을 지닌 교수들에게 성균노벨상을 수상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활발한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성과를 창출해 우리 대학의 위상을 더욱 제고해 달라”는 윤용택 총동창회장의 말과 함께 2023년 성균노벨상의 기쁨은 박호석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우리 대학 화학공학 / 고분자공학부에 재직 중이며 에쓰오일과학문화재단 차세대과학자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고 SKKU-Fellowship 교수 13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Q. 성균노벨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신 성균관대학교, 학교 법인, 특히 기금을 마련해주신 학교 동창회 분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열정을 다해 좋은 연구 성과를 내준 연구실 제자들과 연구원들 그리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성균관대학교와 학부 교수님들, 동료 연구자들에게도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특히, 연구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준 아내와 아들, 딸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수상의 기쁨만큼이나 연구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한편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빠르지는 않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초심을 잊지 않고 묵묵히 정진하겠습니다. Q. 현재 진행하고 계신 연구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에너지 저장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2차원 반도체로 그래핀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로 주목 받는 포스포린(phosphorene)의 나노 구조화 및 화학적 표면 제어를 통해 기존의 포스포린으로 달성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에너지 저장 메커니즘을 규명했어요. 이를 통해서 포스포린의 새로운 물성 구현과 기존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포스포린은 2600mAh/g 정도로 상용 흑연 대비 7배 정도의 고용량을 가지고 있고, 흑연에서 그래핀으로 박리하는 것과 같이 층상 구조에서 2차원 포스포린을 나노구조로 제조하면 특이한 물리적 성질을 보여주어 신소재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고용량 소재들과 유사하게 300% 이상의 큰 부피팽창과 낮은 전기전도로 인해서 충전·방전 안정성과 율속 특성이 저하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2차원 포스포린의 표면 구조를 원자 레벨로 정밀하게 제어해 기존의 alloying/dealloying 배터리 가동이 아닌 빠르고 가역적인 분자 레벨 표면 레독스 에너지 저장 거동을 보여주는 것을 실시간 고도 분석 기술과 이론적 계산을 통해서 규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효율·고출력·고안정성의 포스포린 기반 에너지 저장 신소재를 개발했어요. Q. 성균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이 상을 받기까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를 포함한 모든 연구자는 동일한 루틴을 반복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 인지 정의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해결 방안을 찾는 거죠. 좋은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 정의에 대한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한 아이디어가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를 고려하기보다는 남들과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지 항상 고민하곤 해요. Excellence, 우수성보다는 Originality, 독창성에 우선순위를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Q.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영광스러운 상을 받았지만, 학창 시절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요즘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과학자가 장래희망 선호도 중 순위가 아주 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한창 꿈을 키워나갈 친구들과 같은 나이었을 때, 또래들 사이에서 장래희망으로 과학자가 제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항상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쓰기도 했고요.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 과학자라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무언가 제 적성과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하고 잘 맞는 분야를 찾게 된 것은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Q. 연구를 진행하며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포스포린 연구 결과는 그전에 발표한 그래핀에 인(phosphorus) 원자를 도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처음 아이디어와 달리 인 원자가 그래핀 표면에서 쉽게 산화가 되었기에 연구 초기엔 이번 실험이 실패했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실패했다고 생각하던 중, 산화된 인 원자가 오히려 그래핀의 에너지 저장용량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실패한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고, 왜 그런지에 대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얻게 된 우연한 결과이지요. 연구자에게 실패라는 것은 새로운 발견을 위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더욱 저의 신념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서 Originality, 독창성을 지향한다고 말씀드렸지만, 냉정하게 현재까지 저의 연구 결과를 돌아보면 Excellence, 우수성을 독창성보다 추구하는 결과를 주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에게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독창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웃음) Q. 연구하면서 힘든 점이 있으신가요? 저만 느끼는 힘든 점이라기 보다 많은 교수분이 느끼고 계실 연구 과정 중의 어려움이 살짝 있긴 합니다. 연구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연구비를 수주하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연구원을 모집해서 지도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기도 하고요. 이 일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는 것이 모든 연구책임자가 느끼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중단하지 않는 한, 이러한 굴레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가능하면 연구와 일, 개인적인 시간을 분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저만의 방법을 천천히 찾아나갔기에 어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이겨내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과학인이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가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제 경험과 느낀 바에 대해서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균관대 학생들은 충분한 역량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작은 것들을 하나씩 꾸준하게 이루다 보면 자신감이라는 게 어느 날 생기게 될 거예요. 그렇게 실력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인가 미래에 대한 비전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것도 결국 자기 실력이에요. 이러한 실력은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안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목표를 놓지 않는다면 분명 원하던 바를 달성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파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성균웹진 윤지민 기자

    • No. 33
    • 2023-05-23
    • 7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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