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들어주는 아이』와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 다수의 대표작을 남긴 고정욱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동화 작가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과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동화에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Q. 작가님께서 동화를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2년도에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제 단편 소설이 당선됐습니다. 그 뒤로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평생 소설가가 되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셋 두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왜 동화는 안 써요?” 이때 우리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를 한 편 쓰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처음 고민한 작품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쓸 때 어떤 동화를 쓰면 좋을까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동화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다면 나만의 동화가 뭘까?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잘 아는 걸 써야겠다고 생각해 ‘장애’라는 소재를 처음 들고 온 거죠. 작품의 주인공은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흔히 뇌성마비라고 하죠. 그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져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렸어요. 차별과 편견도 있지만 그 안에 따듯함과 고마움도 더불어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제일 잘 아는 장애를 주제로 동화를 썼는데 그해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됐어요. 이후로 출판사에서 다음 작품도 써주세요, 다음 작품도 써주세요 하다 보니 어느새 동화 작가의 타이틀을 걸게 되었네요.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동화의 매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거겠죠. 동화는 교육과 연결을 많이 짓습니다. 문제는 교훈이나 가르침이 대개는 딱딱하죠.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하지 마라’ ‘친구를 때리지 마라’ 등등. 근데 동화는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잔소리에 껍데기를 씌웠어요. 동화도 따지고 보면 잔소리에요. 다만 스토리라는 껍데기를 씌워 아이들이 삼키기 좋게 만든 거죠. 우리 미래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 이것만큼은 꼭 전하고 싶은 교훈이 있을까요? 저로서는 그것이 바로 ‘장애’에 관한 거죠. ‘장애인은 나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은 나의 친구다’ ‘장애인은 차별하면 안 된다’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말자’ 이런 주제들을 그대로 접하면 딱딱하니까 그 안에 스토리를 만든 겁니다. 지금은 많아졌지만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 나오기 전까지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작품이 문학계나 출판계에 거의 없었습니다. 성인 작품에도 많지 않았어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셔서 장애라는 요소도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구나 처음으로 알린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Q. 작가님에게 가장 의미있는 책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꼽겠습니다. 많은 독자의 가슴을 울렸고 그래서 가장 많이 팔리기도 한 작품입니다(약 120만부).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요. 장애를 가진 친구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가방을 들어준다는 의미는 꼭 가방뿐만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해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 삶의 대표작이자 오늘날의 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작품입니다. Q. 장애인과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위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장애인을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 '장애인은 사회복지로 나라의 예산을 갉아먹는다'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장애인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면에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사회의 잉여가 아니라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일하는 직장을 보면 이직률이 낮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숙련공이 되는 경우가 많죠. 이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기고, 그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사회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Q.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을 쓰셨는데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이 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지금까지 약 360여 권의 책을 썼는데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은 대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신문방송학과의 '신문 문장론'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기자 출신 오소백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를 하셨는데 그분은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며 생각이나 정보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메모 수첩을 보여주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항상 메모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을 듣고 저는 스프링 달린 작은 수첩을 사서 그때부터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40년이 넘었고, 대학교 때 작성한 메모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수백 개의 메모 수첩에는 단상, 그림, 기억해야 할 것들, 그리고 작품 아이디어들이 가득합니다. 필요할 때 수첩을 뒤져보면 잊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죠. 이 메모들이 쌓여 제 삶의 기록이 되었고, 소재가 고갈될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둘째는 제가 계속 새로운 사실과 사건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쓰고 싶은 작품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웃음) Q. 최근 신간 『점퍼』를 출간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은 평소 쓰시는 소설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점퍼』는 제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타임 슬립 기법으로 역사 소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1928년 오산학교로 가게 되어 김소월, 백석, 이중섭 등 여러 인물과 만나 일제강점기를 헤쳐 나가는 작품입니다. 저는 리얼리즘 작가로서 판타지 요소를 이야기에 많이 넣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넷플릭스나 웹툰을 통해 타임 슬립이나 초능력 같은 판타지 소재에 익숙해져 있더군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여 제가 처음으로 타임 슬립을 다룬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동화의 본질은 결국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Q. 작품을 구상하실 때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궁금합니다.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재미, 교훈, 감동입니다. 재미는 아이들이 읽으려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교훈도 위에 언급한 내용입니다. 많은 동화 작가님들이 재미와 교훈을 결합해 작품을 그립니다. 마지막 요소가 감동인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가슴을 울리거나 설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저 자신도 감동을 받을 만큼 스토리, 작품성, 전개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죠. 이렇게 고민하며 글을 쓰지만 모든 작품이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책은 실패하고 또 어떤 책은 성공하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항상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Q. 아이들에게 동화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나요? 동화의 힘은 아이들이 아직 순수하고 맑은 어린 시절, 흰 도화지 같은 생각과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제 작품 속 주인공들이 힘든 일을 이겨내는 장면을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성장하면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했지" 하고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좋은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큰 자양분이 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힘들 때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고정욱 작가는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도 이와 비슷한 답을 주었다.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이 겪은 삶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이 나에게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해결했는데, 나도 그럼 이렇게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죠. 문학에서 스토리가 주는 힘입니다. 소설은 인생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죠. 우리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나 연극, 전시회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은 대학로 가까이에서 생활한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대학생은 동화를 읽기에 너무 늦었을까요? 아니요. 동화를 읽는 데에 늦은 때란 없어요. 대학생도 얼마든지 동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화는 동심을 담고 있는데, 동심은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죠. 동심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 삭막한 삶을 살게 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학생들이 동화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취업 준비로 힘든 시기에, 동화는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고, 어렵지 않아 리프레쉬 하고 힐링을 할 수 있어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그림책이 유행하기도 했죠. 글자는 몇 개 없지만, 그림책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동화를 읽는 데 나이는 상관없어요. 누구나 동화를 통해 동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동화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백남준 시인의 말씀을 빌리겠습니다. 첫째, ‘매일 쓰고 많이 써라’.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이 쓴 글이나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싸게 팔아라’. 혼자만 자기 글을 읽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으세요. 특히 칭찬보다 보완할 점이나 조언을 새겨들으세요. 마지막으로 ‘파티에 자주 가라’.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임을 알리세요. 자기 작품을 알리고 또 유명해질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세 번째가 많은 작가님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에요. 작가는 글로써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어디에 나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죠.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많이 쓰고, 싸게 팔고, 사람 만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 인터뷰도 이러한 동기 중 하나입니다. 작지만 우리 두 사람의 파티니까요. 작가로 성공하려면 이 세 가지를 실천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항상 젊을 때는 위축되기 쉽고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외의 것들로 평가받는 세상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간다면,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반드시 성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대학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학이 여러분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우리 대학 김성기 교수는 1992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방법을 인간에 적용한 최초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폴 로터버(Paul Lauterbur) 미국 피츠버그대 석좌교수직을 지냈으나 대한민국 뇌과학 발전을 위해 귀국해 2013년 IBS에 합류했다. 이번 국제자기공명의과학회에서는 인간과 동물 연구를 통해 fMRI 신호의 기본적인 생리학적 기초를 이해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골드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 단장이자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석좌교수 직을 맡고 있는 김성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fMRI 김성기 교수는 화학자로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학부에서는 화학(경북대 응용화학과 76학번)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에서는 물리화학을 연구했다. “대학에서는 응용화학을 공부했어요. 돌이켜보니 제 연구 분야와 접점이 없는 전공이었네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화학 분야에 관심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 생활도 화학과에서 했어요.” 핵자기공명기(NMR)를 이용해 기계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던 그가 어느 날 자기공명영상(MRI) 연구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포닥(Post-Doc) 생활 후에 잡(Job)을 구하면서 MRI 연구를 시작했어요. 포닥으로 일할 때 미네소타대학 방사선과 카밀 우거빌 교수로부터 ‘기능성 MRI (fMRI)’ 연구 합류 제안을 받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연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내디딘 거죠. MRI 연구는 처음이었지만 화학과에서 사용하던 NMR과 MRI의 작동 원리가 같아서 큰 부담 없이 우거빌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우거빌 교수의 좋은 장비를 가지고 연구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우거빌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김성기 교수는 미네소타대학 NMR 연구센터에서 fMRI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fMRI 연구 1년 만에 ‘fMRI의 아버지’ 오가와 박사와 이 분야에서 쓴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한다. 김성기 교수는 이를 ‘fMRI를 사람에게 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보인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MRI와 fMRI의 차이는 무엇일까? 김성기 교수가 정의하는 MRI와 fMRI의 차이점에 대해 들어봤다. “원리는 같지만 촬영법이 다르다. 뇌를 이해하려면 구조와 기능, 연결을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구조’는 MRI로 주로 찍는다. fMRI는 ‘기능’을 주로 연구한다. fMRI는 이름 앞에 ‘f’가 들어가 있는데 ‘f’는 ‘기능(functional)’이라는 영어 단어의 첫 글자다. 다시 말하면 MRI는 인체의 해부학적인 단면을 찍는다. 병원 의사들이 환자의 몸에 종양과 같은 질병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 MRI다. 반면 fMRI는 뇌 연구자의 도구다. 뇌세포가 활성화되면 늘어난 에너지 소모를 충당하기 위해 피의 흐름이 증가한다. 그러면 핏속의 산소량이 증가하게 되고, 그 산소량의 증감을 이용해 fMRI는 영상을 얻는다. MRI는 카메라와 같이 정지 영상을 얻으며, fMRI는 동영상 촬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fMRI는 머리를 스캔하면서 빨리 반복해서 여러 번 찍어서 변화를 계산한다.” | 피츠버그대학 ‘폴 라터버 석좌교수’ 김성기 교수는 미네소타대학에서 11년을 일하고 2002년 피츠버그대학으로 소속을 옮겼다. 카밀 우거빌 교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연구 중심지를 마련한 셈이다. 피츠버그대학에서 그의 보직명은 폴 라터버(Paul Lauterbur) 석좌교수. 폴 라터버는 MRI를 발명한 공로로 200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미국 화학자다. 라터버 교수는 피츠버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데 피츠버그대학은 그걸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석좌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김성기 교수가 그 자리를 맡은 것이다. 피츠버그대학은 그에게 멋진 뇌이미징센터 건물을 지어주었다. 김 단장은 “내가 건물 두 개를 지었다. 피츠버그에서 실험실과 사무실을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를 직접 구상하고 설계했다. 그리고 그 도면을 한국에 갖고 와서 두 번째 건물을 지었는데 그게 성균관대 N센터 건물이다”라고 말했다. | 성균관대학교 뇌과학이미징연구단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멋진 건물과 함께 일하는 조교수 네 명이 있는 실험실, 풍족한 연구비 등 부족할 게 없었다. 그런데 2011년 성균관대 서민아 교수가 그를 찾아왔다. 서 교수는 “한국에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생기고 곧 연구단장 모집공고가 나온다. 성균관대가 IBS연구단을 유치하려고 한다. 그 연구단의 단장으로 지원해 달라. 연구단장에 선임되면 연구단 설립에 필요한 시설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미국 피츠버그에서 달리 부러울 게 없는 연구생활이었으나, 한국의 뇌과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김성기 교수는 귀국하기로 했다. 그는 2013년 IBS의 3차 연구단장 모집 때 연구단장으로 선정됐다. 성균관대는 김성기 교수가 이끌 IBS연구단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N센터라는 새로운 8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약 100억가량의 7T MRI를 김 단장 연구를 위해 사줬다. 김성기 교수는 “학교에 시설투자를 많이 요구했는데 학교에서 다 들어주겠다고 해서 놀랐다. 고가의 MRI를 사들인 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의 IBS연구단에서 그는 동물과 사람을 같이 볼 수 있는 fMRI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는 fMRI를 갖고 미네소타대학에서는 사람을, 피츠버그대학에서는 동물인 고양이 실험을 주로 했으나, 한국에서는 생쥐 실험을 시작했다. 김성기 교수는 “사람과 동물을 같이 보는 플랫폼은 생각과 달리 같은 곳에 만들기 쉽지 않다.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시설을 갖추기가 어렵다. 우리 연구단처럼 한 건물에 동물과 사람을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고 이야기했다. N센터 지하에는 동물 실험 관련 특별한 공간이 있다. 동물과 사람을 같이 볼 수 있는 시설, 즉 종간(cross-species) 실험 시설인데 김성기 교수는 실험 시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성기 교수는 “동물 연구는 사람을 이해하는 게 큰 목적이다. 사람에서 이해가 안 되는 건 동물 실험으로 확인한다. 그걸 위해 MRI를 기본 플랫폼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은 MRI라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은 그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의 주제를 연구한다. 그의 연구단에는 그 자신이 직접 이끄는 fMRI그룹 말고도, 신경혈류그룹 신경회로그룹, 인지신경맵핑그룹, 계산신경과학그룹 등이 있다.
판결문에는 사건의 기록이 담긴다. 그 중 <양형 이유>는 판사의 재량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성란이다. 이곳에 피고인의 회한, 피해자의 눈물, 판사의 고민과 흔적을 쓰는 판사가 있다. 그의 판결문은 법정에 모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퍼하며 따듯이 안아준다. 사회가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선고를 내리는 박주영 판사를 만나보자. 박주영 판사는 법학과 졸업 후 7년간 변호사로 근무했고 판사로 재직하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을 지내고 있다. 형사재판과 소년재판 등 다양한 재판을 진행해 오며 그가 맡았던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내 『어떤 양형 이유』와 『법정의 얼굴들』을 집필했다. 2022년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했으며 책과 편지를 선물하는 판사로 유명하다. Q 판사님께서는 판결문 속 <양형 이유>에 피고와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쓰게 되셨나요? 처음으로 양형 이유를 파격적이고 강하게 쓴 사건은, 유퀴즈에서도 언급했고 책에도 있는 2014년 울산 현대중공업 산재 사건입니다. 이런 범죄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쉽고 강하게 각인되는 참신한 표현을 쓰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기사의 제목으로 쓸 수 있거나 짧게 인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강하게 각인될 문장을 구상했죠. 양형 이유 중 문학작품을 인용하거나 은유나 비유를 구사하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양형 이유의 대부분은 사건의 구체적 경위와 관련 범죄에 대한 통계 혹은 형사 정책 자료 등에 관한 것이죠. 제가 신경 써서 양형 이유를 써야겠다고 선별한 사건의 판결을 작성하는 데는 일반 판결보다 시간이 10배는 족히 더 걸립니다. 법원 내부는 물론 법무부와 검찰, 경찰, 형사정책연구원, 여성가족부 등 접근가능한 기관의 관련 자료는 가급적 찾아서 참고합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부분 작성을 마치고, 판결의 맨 마지막에 문학작품 등을 인용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감상적인 표현으로 썼죠. 그 이유는 딱딱한 사회적 원인 분석이나 법적 판단은 기자들이 관심을 잘 가지지 않고 일반 국민들에게 잘 가닿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 Q 양형 이유를 이렇게 쓰시는 것에 대한 내부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은 없었나요? 낯설고 불편해하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무시해 버렸습니다. 양형의 이유는, 법적 판단과는 다소 무관한 영역이고, 판결이 개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에 공개되고 일반의 규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기(公器)이기도 하며, 판사가 대중과 소통하는 공식적이고 유일한 수단이 판결이므로, 이 부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보면 문학작품을 인용하거나 문학적 표현이 담긴 판결이 실제 있고, 그런 판결들이 특히 많은 인사이트를 담고 있기도 한 점을 참고했습니다. ▲ 유퀴즈 출연 (디글 유튜브 썸네일) Q 판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법정의 얼굴들>에 실었던, 마약을 끊었다며 제게 편지를 보낸 피고인과, 자살을 막아보려고 책과 차비까지 쥐어 준 자살방조미수 사건 피고인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 피고인의 동생이 유튜브 댓글로 잘 지낸다는 안부와 감사 인사를 남겨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 마약 피고인의 편지 <어떤 양형 이유>에 실었던, 시골 할머니 취득시효 소송, 5만 원 즉결 심판의 치매 할머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친족 강간 사건에서 증인으로 나와 해맑게 웃던 둘째 딸, 소년재판을 할 때 소년원 대신 쉼터로 보내자 확 달라진 아이, 토지수용보상금 사건에서 변호사의 주장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벌떡 손을 들고 일어서서 ‘판사님 국가가 강돕니다’라고 한 사건도 기억납니다. 가장 인상적인 구두변론이었습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추행범이 있었는데(야간의 목격자 진술이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증거가 다소 부족하여 무죄를 할까 고민하다 유죄로 하긴 했는데, 선고 시 그 피고인의 표정을 보고 무죄로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법정의 얼굴들>에서 다룬 2013년 울산법원에서 공보관할 때 가까이서 보았던 ‘이서현 양 사건(울산계모사건)’과 제가 선고한 아동학대 사건은 잊히지 않습니다. 선고할 때 숨져 간 두 아이의 부검 사진과 현장 사진이 떠올라 목이 메어 정말 힘들었죠. 또 어머니를 43회 찔러 살해한 조현병을 앓던 젊은 피고인 사건도 잊을 수 없고요. 최근에는 눈썹 문신 시술을 무죄로 판단한 사건, 작년 연말 노숙인에게 책과 돈을 준 사건, 올 1월 전세사기 사건에서 최고형(15년)을 선고하고 피해 청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외에도 셀 수 없는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Q 법조인은 반복되는 힘든 사건을 보며 아프지만 조금씩 무뎌지는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법이 냉정하고 딱딱하게 규정되어 있고, 모든 사건의 결론이 실제 그렇게 선고되고 집행된다 하더라도, 판단하는 사람은 매번 아파하고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 서는 재판의 대상들이 매번 새롭게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태해지고 느슨해지는 것은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므로 항상 자신을 경계하고 정신 차리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만으로 스스로 환기하고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죠. 그건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힘든 사건을 처리하면서 매번 사건에 깊이 몰입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 몸에서 못 견디겠다고 신호를 보내죠. 저 또한 판사 생활 도중 몸에 큰 탈이 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몰입할 때는 몰입하고, 빠져나올 때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가 여기 있죠.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에 몰입할 수도 없어요.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에 치이며 살고 있지 않나요. 그렇지만 일에 매몰되어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비록 모든 사건에 전력을 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사건만큼은 그냥 흘려보내면 안되겠다라는 강한 확신이 들 때에는 저는 전력을 다해 몸을 던집니다. 이렇게 아낌없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은 사건들이 100건으로 치면 5건 정도밖에 안 돼요. 결국 나머지 95건은 관성적으로 처리되죠. 제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기도 합니다. 대신 제가 선별한 5건만큼은 저를 완전히 던져 넣습니다. 30분이면 쓸 판결을 30일을 쓰는 식이죠. 그렇게 처리했던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공감과 행동의 연대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세상의 부조리한 모든 일에 대해 항상 공감하고 아파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부서집니다. 100건의 사건 중 누군가 자신의 능력에 맞게 5건을 처리했다면, 나머지 95건은 다른 사람들이 서너 건씩 나누어 맡아 주는 것, 이게 바로 연대입니다. 연대는 우리가 같이 세상을 밀고 있는데 누가 힘들어서 잠시 쉴 때 다른 사람이 맡아 그 자리를 밀어주고, 세상이 후진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Q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책을 쓰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서 책을 집필하시는 편인가요? <어떤 양형 이유>는 법률신문 칼럼이 계기가 되어 쓰게 된 책입니다.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도 내고 싶었지만, 퇴직 이후 하려고 생각했기에 처음 출간 제안이 왔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물론 그전에 책을 쓴 판사들도 있었지만, 현직 판사가 외부에 재판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낸다는 것이 여전히 큰 부담이었죠. 책이 나왔을 때 외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무척 두려웠습니다. 만약 구설에 오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많은 분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위험부담을 안고 글을 쓰려고 한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형사재판 현장에 있으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부조리,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너무 잘 보여요. 그럼에도 법정 외부에서는 이런 점을 알기 어렵죠. 판사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맡을 뿐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이 무척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혹한 범죄의 실태와 원인, 사회적 관심과 법이나 제도 개선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 판결을 상세히 썼습니다. 그러나 판결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뉴스로 잘 다뤄주지 않을 뿐 아니라, 기껏 언급되어도 짧은 단신으로 금방 소비되어 버리더군요. 그래서 책을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집에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습니다. 집중도 되지 않고 주말 빼고는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아 대부분 사무실에서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서 씁니다. <어떤 양형 이유>는 재판을 하는 도중 틈틈이 썼기 때문에 주로 사무실에서 썼고, <법정의 얼굴들>은 절반 정도는 사무실에서 쓰고, 절반은 휴직 도중 아파트 독서실에서 썼습니다. Q 판사님 책의 곳곳에서 섬세한 문학적 표현에 눈물을 훔치는 독자가 많습니다. 판사님이 글을 쓸 때 가지는 자세가 있을까요? 글을 쓰고 나아가 책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소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일기든, 메모든 꼭 기록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동기 또한 중요합니다. 저는 공적인 목적 외에도 개인적으로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제 아이들을 아끼고 가족을 사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고,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았는지 같은, 제 삶의 모습을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이 동기가 더 강했습니다. 제가 책에서 쓴 독특한 은유나 비유 등은 평소 독서나 영화를 보면서 그때그때 메모해 둔 문구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사건에 맞게 지어내서 쓰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는 문장은 제가 너무 아내 말을 안 들었던 것을 반성하면서 오래전에 써 두었던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웃음) Q 법조인의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큰 소명감이나 사명감으로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자존심도 상하고 어떻게든 출세해 보려고 적성을 포기하고 법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사실 사법시험은 바로 될 줄 알았는데, 사법시험 1차에서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치기 어리지만, 전 그냥 제 능력만 보여주고 사법연수원에서 자퇴하려 했습니다. 자퇴 이후에 전업 작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글 쓰는 일을 하며 살려 했죠. 그러나 가족을 부양하고 결혼을 하면서 운명적으로 법조계에 남았습니다. 법대도 우연히 갔고, 사법고시도 남들이 한다고 해서 엉겁결에 따라 했습니다. 한 방에 인생 역전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고요. 그러나 계속 1차에서 떨어져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더 이상 미련 두지 않으려고 제일기획이나 LG애드 같은 광고회사 지원서를 대봉투에 넣어 둔 상태에서, 불합격만 확인하고 바로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1차에 1개도 안 남기고 커트라인으로 붙었습니다. 그때 떨어졌으면, 당시에는 그래도 취업이 쉬울 때라 십중팔구 광고회사를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하이트 맥주나 소나타 자동차, 소니 카메라 광고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객관식 문제 1개로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참 운명이란 게 있구나 싶습니다. 변호사 시절은 그야말로 호구지책이라 처음 법대를 가며 꿈꿨던 약자 보호나 정의 실현, 이런 거창한 가치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법원에 와서야 비로소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기 시작했죠. 저는 많은 사건을 통해 완성된 법률가로 숙련되어 가는 점과 더불어, 약자 보호나 정의 같은 가치를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이 판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변호사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처음부터 이 길이다 하고 오지는 않았지만, 법조계에 있으면서 뒤늦게 소명의식이나 직업의식이 생긴 편입니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나 사회적 약자에 시선이 많이 갔죠. Q 학창 시절 판사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뭐 특별히 튀지 않고 조용하고 평범했습니다. 내성적 성격이고 선친이 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삼국지 20권짜리를 초등학교 때 한 3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 전집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문예부 활동을 열심히 했죠. 백일장이나 공모전 등에서 상도 제법 받았습니다. 고2 겨울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대학 가기 힘들겠더군요. 그래서 우선 써클 활동을 깨끗이 접고 입시 준비만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장학금을 많이 주는 성대(4년 장학금에 숙소와 생활비 지원) 법학과로 지원했습니다. 대학 때도 문예반(행소문학회)에 들어갔는데 당시 상황상 문학보다 이념 교육이 많아 금방 탈퇴했죠.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1~2학년 때는 당시 제가 87학번이다 보니 시위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88년에는 학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무렵 당시 재단(봉명 그룹)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단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던 터라 장학금에 떨어졌고, 89년에 바로 군대를 갔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이후에는 지금도 있는 것으로 아는 양현관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많은 추억도 함께 쌓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다사다난한 대학 생활이었네요. Q ‘법정의 얼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대’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님에게 ‘환대’란 무엇인가요? 환대는, 같은 인간을 존엄하게 인정하는 행동 방식이며,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자 필수 조건입니다. 범죄와 전쟁, 학살 모두 적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판사의 입장에서 환대란, 타인을 비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년 6개월 정도 소년부 판사로 일했는데, 당시 소년범 아이들을 보며 세상이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따듯한 사람이 아니고 무조건 선처해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타인과 동등한 조건에 있어보지 못한 이들을, 타인과 동등한 잣대를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듯한 밥을 먹고 사랑을 받아본 경험, 주변의 배려를 받고 일상이 주는 안온함을 누려본 경험이 있음에도, 그 모든 호의를 배신했을 때, 비로소 그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이죠. 처음부터 보호받을 울타리 자체가 없었던 사람에게, 울타리를 넘고 부수었다고 비난하고 벌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이 아이들은 태어나서 살던 그대로 살아온 것뿐인데 말이죠. Q 앞으로 판사 혹은 작가로서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판사로서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선례로서의 가치 있는 판결이나 법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 이후 삶은 참 예측하기 어려운데, 후배를 가르치든, 변호사를 하든, 아니면 어떤 분(문유석 작가)처럼 글만 써서 먹고살든(정말 부러운데 아마 힘들 것 같고), 제가 하는 일 중 적어도 30퍼센트 이상은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 이익과 타인을 위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글을 계속 쓸 생각입니다. 첫 책인 <어떤 양형 이유>를 쓰고 사실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고,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더 책 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덧 세 권을 썼습니다. 밖에서도 글을 계속 쓰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저도 이제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겼고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경험과 지식을 살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저술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법정 소설은 꼭 써 보고 싶습니다. ▲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전경 Q 마지막으로 법조인의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좋은 루틴을 만들 것을 권합니다. 달리기든, 금연이든, 무언가 중장기적으로 이루어 내려면 루틴이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이게 없어서 일생이 고생입니다. 루틴을 못 만드는 게 루틴이 되었습니다. 이루는 것 없이 항상 제자리입니다. 그렇게 몇 번 되돌아오다 보니 인생이 금방 갔습니다. 저는 좋은 루틴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말 중에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법조인은 누구보다 이 말을 실감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하고 엉망인 세상과 사람을 만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은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균웹진 이준표 기자
예술가는 한 시대의 본질을 탐구하는 관찰자이자 창조자에 비유되곤 한다. 이들은 사회를 관찰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작업은 대중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는 데에서 나아가 때로는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동시대 사회 현실을 인식시키고 긍정적인 방향의 사회 변화를 이끄는 미술 작가 신제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신제현입니다. 현재 공공미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 학교 미술학과와 미술 대학원을 졸업했고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별마당 도서관 중심부에 공개된 그의 조형예술 작품 <렛미인(Let Me In> 신제현 작가의 작품 <렛미인>은 10개의 문 너머에 있는 새로운 만남과 행운에 대한 기대감을 전한다. 책을 펼치면 책 속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듯 10개의 문이 열리면서 장애 예술가 10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렛미인>은 다양한 세상과의 만남과 교류를 표현해 만남의 장이라는 별마당 도서관의 역할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을 얻었다. | 올해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이 개관 7주년을 맞아 개최한 ‘제6회 열린 아트 공모전’에서 <렛미인(Let Me In)>이 대상작으로 선정됐어요.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있어요. 장문원은 장애인 문화예술 정책을 개발하고 제안하는 정책기관이에요. 장문원에서 운영하는 사업 중에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라는 사업이 있는데요. 대학교와 협력해 예술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장애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장애 예술의 기반을 확대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작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수업이 잘 마무리되면서 올해는 학교에서 장애 예술가들의 다원예술캡스톤디자인 수업을 맡았어요. 수강생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결과물을 전시하기도 했고요. 이음 아카데미와 다원예술캡스톤디자인 수업에 참여한 장애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렛미인>이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 <렛미인>은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에서 배제된 집단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유독 장애 예술가에 대한 평가가 낮아요. 편견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작품성이 높은 것들이 많은데도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인식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스타필드라는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우리 장애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보면 감탄이 나오고 이들의 작품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거든요. 작품 자체는 동명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이 문 앞에서 ‘렛미인’을 외쳐야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장애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마치 ‘렛미인’이라는 허가가 없으면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 별마당 도서관에서 <렛미인>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끊임없이 문을 여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예술 작품으로 어떻게 구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장애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을 영상으로 만들었고 관객들이 문을 열면 이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런데 문이 40초마다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해요. 관객들이 문을 열고 차분하게 영상을 보려고 하면 문이 닫혀버리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쯤 문이 다시 열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문은 닫힙니다. 관객들이 이러한 불편함을 경험하게끔 만들어서 ‘렛미인’이라는 허가, 즉 문을 직접 여는 귀찮은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을 표현했어요. 신제현 작가의 작업은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문제 관련 활동에서 그의 작업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제현 작가는 2009년부터 다양한 퍼포먼스와 영상, 악기 제작 워크숍 등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예술적 논리로 저항해 왔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난 가게에서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퍼포먼스 <한남스타일>로 화제를 모았고 2016년에는 서울의 복합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과 프랑스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갤러리 이그렉에서 위치 센서를 이용해 두 공간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 활동은 예술 작가가 법적 문제에 절묘하게 개입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예술을 가교 삼아 동시대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행보는 사뭇 대단하게 느껴진다. | 그동안 선보인 작업의 주제를 살펴보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제현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드러납니다. 예술과 사회 운동을 병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예술이 사회 운동으로 넘어갈 때 종종 생기는 문제가 있어요. 미학적인 가치가 사회 운동의 효율성에 묻혀서 이게 사회 운동인지 예술 활동인지 구분이 안 되고 양쪽 다 흐지부지되는 거예요. 꽤 많은 액티비스트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에는 예술적 의미가 부족하고 사회 활동으로 보기에는 활동이 미비한 딜레마 상황을 겪어요.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사회 운동과 예술 활동을 분리하려고 해요. 사회 운동을 할 때는 사회 운동에 전념하고 예술을 할 때는 사회 운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나 느낌을 작품화하는 거죠. 사회 운동을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회 운동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철학적인 부분을 예술의 실마리로 활용하는 거예요. | 현대 예술과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둘의 성격을 분리하려고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예술과 사회 운동의 역할 구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과 사회 운동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사회적인 이슈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신선한 방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언론인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언론만의 영역이 있는 한편 예술은 일반 기자들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다뤄야 해요. 예술가의 목표는 대중에게 예술적 논리로 사회적인 이슈를 각인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는 거니까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대상화의 문제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죠. 어떤 경우라도 사회 운동을 하는 예술가가 사회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거나 사회적 약자의 안타까운 처지를 이용해서 개인의 이득을 취해서는 안 돼요. 그런 상황이 생기는 순간 예술가에게 선한 의지로서의 목적성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봐요. 저는 이러한 부분을 조심하려고 하는 편이고요. |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예술 작품을 기획할 때는 타자(他者)로서 문제 당사자의 일상에 얼마나 개입하는 게 적절할지 가늠하는 감각도 필요해 보입니다. 신제현 작가는 예술적 개입의 정도(程度)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궁금해요.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제 명예나 이득을 얻는 데 대상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요. 과거에 젠트리피케이션이나 환경 보호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도 사회 운동의 일부분을 작업에 직접적으로 끌어오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하는 활동을 SNS에 홍보하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는 일도 하지 않았죠. 작업물에 사회 문제의 당사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만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고민을 많이 해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면 불편함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하고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을 때는 해당 주제의 당사자를 출연시키는 게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높겠지만 저는 전문 배우를 쓰려고 해요.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욱 예술적인 형식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21, 40년 된 집에서 나온 나무들 Wood from an abandoned house, 7일간의 퍼포먼스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작가 신제현의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버림받아 사라져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2021년 11월 한강을 무대로 펼쳐진 다원 예술 퍼포먼스 <물의 모양>이 있다. 40년 된 주택을 작업실로 리모델링하던 신제현 작가는 버려지는 목재에 주목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나온 나무와 물건으로 배를 만들다가 새로운 프로젝트 <물의 모양>이 시작된 것이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만든 배를 타고 한강을 돌아다니며 강에 떠 있는 무대장치를 만난다. 피아노와 가야금, 드럼 등의 무대장치는 작가가 투자한 코인의 등락 폭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인다. 피아노가 뗏목 위에서 강을 떠다니며 자동으로 연주되는 광경은 관람객들에게 생경함을 선사한다. |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시간의 소리>, 10년 후면 사라지는 데이터를 자개 기법으로 표현한 <윤슬> 등 신제현 작가의 작품은 사라져가는 사물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사라져가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작품 세계의 공통 주제는 시간 철학이에요. 모든 작업이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려는 시도였어요. 그동안 예술계에서는 영원불멸한 진리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강했어요. 그림도 한 번 완성되면 그 상태로 유지되고 조각도 완성되면 거기에서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동시대 미술이라고 불리는 현대미술로 넘어오면서 모든 건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하고 바뀐다는 철학적 사고가 대세예요. 저도 자연스럽게 멈춰 있고 굳어진 무언가보다는 끊임없이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 개념적인 담론이 중시되는 동시대 미술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라져가는 존재’는 매력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제현 작가가 ‘사라져가는 존재’를 통해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속적인 프레임 안에서 영혼 불멸한 안정성 혹은 황금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사실 그런 생각들이 인간을 더 외롭고 우울하게 만들잖아요. 모든 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이걸 인식하는 순간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작품화하고 무언가 사라지는 것도 결국 변화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면서 소멸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제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들과 이러한 지점을 공유하고 싶어요. 신제현 작가는 실험적인 성격의 동시대 미술 작업을 기획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개념적 이해가 필요하고 작업의 구조 역시 복잡하다. 그의 대담한 기획 의도는 치열한 탐구 과정을 거쳐서야 우리에게 다가온다. 신제현 작가는 분명 쉽지 않은 작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는 미술 작가로서 미술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강의나 워크숍, 정부 기관 협력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전시 장소의 성격에 따라 관람객들이 작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기도 한다. 작품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흥미와 작품의 개념, 구조를 파악해야만 느낄 수 있는 흥미, 이 둘의 균형을 맞추려는 그의 세심함이 눈에 띈다. | 음악,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술은 유독 진입장벽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미술관 방문에 막연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미술 초보자라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부터 가는 게 좋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같은 곳이요. 국공립 미술관은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대중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요. 작품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제공하고요. 그런데 대안공간이나 상업 갤러리부터 방문하면 현대 미술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거긴 일반 대중이 아니라 미술 전문가를 위한 공간이거든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면 모두를 위한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 미술관 방문 경험을 쌓은 뒤 미술 공부에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면 어떤 경험을 하는 게 좋을까요? 미술에 흥미가 생겼다면 미술관에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미술을 경험해 보세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강좌도 듣고 현대 미술을 공부한 다음에 난도가 높은 대안 공간에 가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극한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예술 작품 감상을 통해 얻는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현대 미술은 표현에 제한이 없거든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깊이와 파격, 자유로움을 느껴보세요. 거기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무겁지 않은 전시부터 시작해서 취향을 맞춰간다면 미술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겁니다. _ “그냥 파도에 쓸려가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거예요. 파도가 높아지면 무서워하고 파도가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안정을 취하면서요. 여기에서 조금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말에 그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동시대 사회 현실을 관찰하고 관성화된 일상에서 예술 작업 형식의 개입을 골몰하는 ‘미술 작가 신제현’다운 답변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 주체성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간다. 신제현 작가의 말처럼, 견고하고 안정된,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극한의 쾌감을 선물하는 ‘미술’과 함께 말이다.
아동∙청소년 건강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요인이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야 한다. 아동·청소년학과 이태경 교수는 한국 청소년들의 약물 사용 패턴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규명하여 미국 국립보건원 (NIH) 산하 국립 약물남용 연구소 (NIDA)가 수여하는 ‘International Poster Session Travel Award’를 수상했다. 사회적, 그리고 가정적 환경이 어떻게 청소년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 아동∙청소년 심리 및 발달 전공 조교수 이태경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발달 심리와 인간 발달로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 마이애미 의과 대학 공중보건학과 (Public Health Sciences, University of Miami Miller School of Medicine)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습니다. 2022년에 성균관대학교로 부임해 “청소년 심리 및 건강 발달과 관련 방법론” 관련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Q. NIDA ‘International Poster Session Travel Award'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하신 연구 주제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수상한 연구는 한국 아동 청소년 패널 자료를 사용해 한국 청소년들의 약물 사용 (음주 및 흡연)의 종단적 변화 패턴을 살펴보고, 이러한 약물 사용 패턴과 관련된 위험 요인 및 예방할 수 있는 요인들을 규명한 연구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약물 사용 변화 패턴은 지역사회 위험성에 영향을 받게 되는 점을 규명했습니다. 즉,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가 위험하다고 응답한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약물 사용을 더욱 일찍 시작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약물 사용 패턴은 부모의 양육 행동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규명했습니다. 아동기에 부모의 방임 및 학대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약물 사용을 더욱 일찍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오랜 시간 동안 약물 사용 경험을 보고했습니다. 흥미로운 결과는, 지역사회가 위험하다고 응답한 청소년 중 일부는 부모로부터 긍정적인 양육 경험을 보고했는데, 이들은 비록 약물 사용을 일찍 시작했지만, 이후 약물 사용을 중단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보다 더욱 높았다는 점입니다. 본 연구의 결과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위험을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가족 기능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가족 중재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약물 사용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계신 미국 마이애미 대학 교수님들,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지도 대학원생과 함께 한국 청소년들의 약물 사용에 관한 국제 공동 연구가 수상까지 연결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아동청소년 심리 발달’ 및 ‘청소년 정신건강’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연구 분야는 무엇인가요? 저는 사회적 취약계층(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아동 및 청소년들의 정신 및 신체 건강 문제 발달 기제를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 수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을 규명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 경험들 (예, 경제적 어려움, 부모의 학대 및 방임, 혹은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의 문화 적응 문제)이 아동∙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및 관련 문제 행동들 (비만 관련 행동, 약물 사용, 외현화 문제행동)에 미치는 단기적∙장기적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과정 규명을 확장하여, 스트레스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보호 요인들을 규명하고 나아가 중재 프로그램 적용 및 효과성을 검증하는 연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아동학, 가족학, 교육학, 그리고 의학 영역의 국내외 연구자들과 함께 다양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발달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석 방법을 적용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어 방법론에 관한 연구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Q. 지금까지 진행하셨던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가 있으신가요? 제가 참여한 모든 연구가 각자 에피소드가 있어 모두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 박사 과정 때 주도한 청소년 일반 정신병리(General Psychopathology)의 종단적 변화에 관한 연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 당시 수강했던 사회 역학 (Social Epidemiology) 수업을 통해 다양한 정신 건강 문제들은 서로 관련성이 있으며, 이는 정신 병리 구조로 규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우울증에 대한 연구를 막 시작했던 터라 개인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수업 시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정신 병리 구조라는 주제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지도 교수님 (Dr. Wickrama, K.A.S. University of Georgia)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로 진행해 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교수님께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격려와 함께 진행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몇 차례 추가 미팅을 통해 아이디어 수정을 거쳐, 청소년의 정신 병리 구조 규명에 관한 종단적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 시기의 우울증세, 불안, 적개심은 일반정신병리 (General Psychopathology)라는 고차원 구조 (Higher-order structure)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일반 정신 병리는 청소년들이 속해 있는 맥락에 따라 다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정리하여 국제 정서 장애 학회 공식 저널인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에 발표했습니다. 이후 일반 병리 구조의 타당성을 규명하기 위해 중년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도 진행했으며, 연구 결과는 미국 심리학회 건강 심리 분과 공식 학술지인 Health Psychology에 게재되었습니다. 일반정신병리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방법론적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보완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교수님께서 대부분 알려주시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오래된 원서도 찾아보고, 필요한 책들은 별도로 구입해 공부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 방법론에 대한 지식이 가장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수확은 이러한 노력들을 좋게 봐주셔서 의도치 않게 또 다른 공동 연구 기회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Iowa State university) 심리 통계 전공 교수님이신 Dr. Frederick Lorenz, 그리고 조지아 대학교 (University of Georgia) 인간발달학과 Dr. Catherine Walker O’Neal 교수님과 공동 작업을 통해 통계적 방법들이 실제 데이터에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에 대해 많은 통찰과 배움이 있었습니다. 이는 이후 방법론 책을 공동 집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연구는 무엇보다 본인이 재미있어야 하고, 협력도 아주 중요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때 형성된 소중한 학문적 네트워크들은 현재까지 이어져 여전히 그분들과 함께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연구자로서 교수님의 연구 분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동 청소년 심리 및 건강 발달 분야로 꾸준히 연구하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선,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를 몸소 실천함으로서 연구의 중요성을 알려주신 국내외 지도 교수님들 덕분입니다. 이분들을 통해 아동.청소년 심리 및 건강 발달에 대한 연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세심한 지도 덕분에 청소년들의 건강 행동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학문이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또한 국내외 동료 교수님들, 그리고 연구자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합니다. 연구가 막힐 때마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와 함께 격려도 잊지 않으십니다. 이분들의 협업이 없었다면 현재 스트레스 및 중재 관련 연구들은 결코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도 학생들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성실성을 볼 때마다 항상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연구 주제로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아낌없는 지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부모님과 가족에게도 감사함을 표합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만큼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연구자로서 교수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연구자로서는 제 전공인 청소년기 건강 발달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해보고 싶습니다. 제 연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생애과정 관점 (Life course perspective)에 따르면, 한 개인의 역동적 발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long-view) 관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건강 발달에 관련된 전 생애 연구를 진행해 보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교수자의 목표는 연구자로 이룬 성과를 통해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세계 수준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성균관대학교 학생들도 한국의 건강 격차 문제 해소를 넘어서 글로벌 건강 문제 해결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국내외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들과 함께 건강 발달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후학 양성을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 개개인이 유일무이한 유니크한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남들이 정해 놓은 목표를 무작정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때론 그 목표가 남들이 보기엔 무모할 수도 있고, 실현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한다면, 남들 눈을 의식하지 말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도전해 나가는 성균관대 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성균웹진 이준표 기자
데이터는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데이터를 조직화하여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데이터는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서 가치가 생긴다. 데이터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식품・외식 데이터 솔루션 기업 ‘포스페이스랩 (forSPACElab)’ 창업자 최지호(시스템경영공학 01), 승영욱(경영 05)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지호 안녕하세요. 포스페이스랩 CPO 최지호입니다. 승영욱 안녕하세요. 포스페이스랩 대표이사 승영욱입니다. | 창업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최지호 저는 대학교에서 시스템경영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산업공학 연구를 이어갔어요. 제가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LG가 애플의 아이폰에 대항하기 위해서 ‘UX 연구소’라는 연구 조직을 만들었어요. 마침 제 전공이 ‘HCI’라고 UX랑 연결되는 분야였거든요. LG전자 UX 연구소에 입사해서 4~5년 뒤에 출시할 제품 컨셉을 잡고 사용자 반응을 수집하는 일을 했죠. UX 연구소를 5년 정도 다녔고 LG전자 사내벤처기업에서도 2년 가까이 일을 해보니까 조금 더 민첩한 조직에서 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은 프로세스가 느리거든요. 그래서 네이버로 이직해서 웨일 브라우저를 만들었어요. 기획부터 브랜딩, 브라우저 출시, 2.0 버전 업데이트까지 4년 정도 리뷰를 하니까 제품이 거의 완성되더라고요. 업무가 약간 지루해지던 차에 우연히 승영욱 님을 만났어요. [승영욱 대표이사(사진왼쪽) 최지호 CPO] 승영욱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롯데그룹 유통사업본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사업총괄팀에서 보고서를 만들고 편의점 채널 데이터 분석하는 일을 6년 정도 하다가 ‘바로고’라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어요. 바로고에서는 자금 유치, 전략 총괄 등의 CSO(Chief Strategy Officer) 업무를 맡았어요. 당시에 20명 남짓이었던 회사 직원이 150명 규모가 될 때까지 회사를 키워보는 경험을 했죠. 그러다가 회사를 나와서 최지호 님과 창업했어요. * HCI (Human Computer Interaction) : 인간과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 | 포스페이스랩 공동 창업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최지호 사실 저는 승영욱 님을 만나기 전까지 외식업계나 배달 산업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내가 주문한 음식이 우리 집 앞에 오기까지 그 중간에 무언가 기업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승영욱 님을 통해 배달 산업을 처음 접했고 승영욱 님이 바로고에서 함께 일하던 분들과 창업을 논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식업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게 됐어요. 승영욱 시대가 변하면서 외식업계에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일어났어요. 특히 배달 주문 접수 쪽은 배달의 민족이 IT화를 시켰어요. 주문이 매장으로 넘어가서 배달 회사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전달하기까지 뒷부분의 과정이 되게 복잡하지만 여기도 바로고 같은 회사들을 통해 IT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개별 사업자와 프랜차이즈 본사 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아직 IT화가 진행되지 않았어요. ‘이 지점에서 뭐라도 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 회사 동료들 그리고 최지호 님과 창업을 진행했죠.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igital Transformation) : 기업이 디지털 역량을 활용해 외부 환경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프로세스 |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나요? 최지호 저희가 창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우리나라에 스타트업 붐이 불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창업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그런데 실제로 창업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저희 팀이 창업할 수 있었던 건 승영욱 대표님이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법인을 세웠기 때문이에요.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일을 추진해야 창업을 할 수 있어요. 다들 몸을 사리면 일이 진행되지 않거든요. 승영욱 님이 구심점 역할을 해주셔서 팀원들도 일을 저지를 수 있었어요. 승영욱 사업을 오래 하려면 개인의 능력보다는 그룹의 힘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룹으로서 잘해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이 회사에서 제 역할은 좋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하는 거예요. 더 좋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앞으로의 미션이 될 것 같아요.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좋은 투자자를 데려오는 일이 좋은 멤버들을 구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 회사 2대 주주이기도 한 웹케시 그룹 석창규 회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회장님께서 저희 회사를 좋게 봐주시고 투자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덕분에 회사 성장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 포스페이스랩은 어떤 회사인가요? 최지호 저희는 외식업 본사들이 사용하는 데이터 솔루션을 만들고 있어요. 옛날에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전국에 500개가 있다고 치면 500개의 매장이 같은 포스를 썼어요. 본사가 각 매장의 데이터를 다 받아서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주문이 들어가는 채널이 다양해졌어요. 배달 업체도 한두 개가 아니에요. 데이터가 파편화되었는데 문제는 본사에서 이 데이터들을 합쳐서 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러면 기업 경영이 어려워져요. 그래서 저희가 중간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아서 본사가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 기업의 방향성을 ‘식품・외식 데이터 솔루션’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지호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해요. 그리고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프랜차이즈에 가맹하죠. 프랜차이즈 본사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연구하고 IP 개발에 주력해야 해요. 그런데 포스사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프랜차이즈 본사는 데이터를 모으는 일에 인력을 낭비하게 됐어요. 문제는 기업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 브랜드가 죽으면 피해는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받는다는 거예요. 승영욱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전에는 배달의 민족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매장 직원이 직접 포스기로 주소지를 입력하고 라이더를 호출해야 했어요. 제가 바로고에서 일할 때 포스사들과의 API 연동을 통해서 이 번거로움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포스사와 컨택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포스기에 들어있는 데이터가 고객사 소유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외식업계의 데이터가 끊겨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죠. 실제로 데이터를 관리해야 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에 데이터 소유권이 없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이걸 해결한다면 시장 전체의 문제도 풀리고 우리가 만든 프로덕트도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두 분이 회사에서 맡은 일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최지호 저는 프로덕트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보통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메모장이나 메신저 같은 틀을 갖추고 있어요. 그런데 저희한테는 데이터 자체가 상품이거든요. 틀을 갖춘 데이터 퓨어라는 상품도 있지만 이건 껍데기고 실제 고객들이 사용하는 상품은 이 안에 있는 데이터예요. 저는 껍데기와 데이터를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어요. 승영욱 저는 대표직을 맡고 있어요. 대표이사로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아요. 그리고 저희가 직원 대부분이 엔지니어 그룹으로 구성된 개발 회사이다 보니 사내에 문과 출신 직원이 4명뿐이에요. 4명의 직원이 영업부터 전략, 재무, 회계, PR, IR, 인사 등의 업무를 다 해야 하므로 이러한 업무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 IR (Investor Relations) : 기업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홍보 활동 | 두 분이 생각하는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최지호 제가 생각하는 승영욱 님의 장점은 만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거예요. 제 주변 사람들의 인맥 스펙트럼과는 차원이 달라요. 나이나 분야를 초월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서 회사를 운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돼요. 승영욱 님의 포용력이 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승영욱 최지호 님은 신뢰도가 높은 스타일이죠. 사내 디자이너 그룹, 개발 그룹 등 파트를 가리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이 좋은 편이에요. 뛰어난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고 소통 능력도 받쳐주기 때문에 많은 직원들이 최지호 님을 신뢰하고 있다고 느껴요. | 포스페이스랩은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궁금합니다. 최지호 저희가 기대하는 만큼의 전문성이 있는지가 제일 중요해요. 개인의 경력이나 자체적인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리고 유연하게 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해요. 저희가 디렉션을 주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맡은 파트에서 직접 디테일을 찾아가면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완벽한 프로덕트라는 게 없는 산업이에요. 프로덕트의 정의는 우리끼리 만들어 가야 해요. 그래서 내부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해요. 승영욱 ‘너는 이것만 해라’ 식의 틀이 싫은 분들, 팀워크를 통해 조화롭게 퍼포먼스를 내보고 싶은 분들이 우리 회사랑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 직원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능력은 어떻게 확인하시나요? 최지호 저희같이 작은 회사에서는 대기업만큼 디테일하게 HR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요. 지원자들에게 인턴 기회를 주거나 직접 업무를 시켜보는 경우가 많아요. 지원자들과 대화도 많이 하죠. 면접 시간에만 이야기를 나누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지원자들과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그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요. 승영욱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는 그 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랑 이야기해 볼 기회도 주면서 같이 일할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들어보는 편이에요. * HR (Human Resources) : 인적 자원 관리 | 회사를 경영하는 리더로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최지호 회사가 망하지 않고 모두가 성공의 경험을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지금 여기에 있는 직원들이 이 회사를 평생 다니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회사가 거쳐 가는 곳이라면 여기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들이 그다음 단계에 도움이 되어야 하잖아요. 이 팀에서 만든 프로덕트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업계에서 듣고 평생의 레퍼런스로 가져갈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게 모두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승영욱 어떻게 조직 전체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저희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없다고 잘 안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관계를 이렇게 저렇게 엮어서 시너지를 만드는 게 핵심이에요. | 하나의 그룹을 이끄는 리더에게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최지호 리더에게 중요한 건 구성원들에게 욕 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인 것 같아요. 리더가 어떤 결정을 하면 그 선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구성원도 있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구성원도 있겠죠. 리더가 아닌 일반 구성원은 다른 구성원들에게 욕 먹지 않기 위한 결정을 할 수도 있는데 리더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흔들리지 않고 필요한 결정을 해나가야 해요.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그것들을 모두 해명할 수 없어요. 그냥 지나가는 거죠. 리더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승영욱 리더는 강한 확신이 있어야 해요. 생각해 보면 지금 하려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커요. 왜냐하면 저희는 남들이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걸 만들고 있거든요. 누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확신하겠어요? 애초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영역인 거예요. ‘이거 이렇게 해서 안 될 수가 없다’는 강한 자기 확신이 없으면 99%의 안 될 가능성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아요. | 창업을 꿈꾸는 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최지호 제가 창업의 길에 들어서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사회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금융권 기업들의 채용 과정에서 발생한 성차별 사건이 이슈가 됐어요. 기업이 그런 일을 하면 사회 전체가 악영향을 받아요. 사업체의 의사결정이 가지는 무게감이 느껴지죠.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들이 계속 생겨요. 그때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상당히 중요해요. 회사에 도움이 되면서 이 사회에도 기여하는 방향의 의사결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영욱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는 무게감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창업해야 해요. 개인 장사를 할 사람과 기업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고민의 깊이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창업을 하게 되면 책임져야 할 구성원들이 생기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해 보고 결정하셨으면 좋겠어요. 창업을 결심하셨다면 최대한 다양한 학교 선배들, 창업가들을 만나보고 피드백을 들어보면서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 마지막으로 성균웹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최지호 이렇게 변화가 많은 세상에서 중심이 되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답은 여전히 독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학부생 때 도서관에서 살았거든요. 그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고 느꼈던 것들이 제가 지금 하는 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대학생 때 다양한 책을 읽어둔 덕분에 제가 사회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어요. 사고의 유연성을 만들어주는 건 독서밖에 없는 것 같아요. 승영욱 우리 학교 김경환 교수님과의 일화가 생각나요.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비즈니스 광고 사업에 관심이 있었어요. 골프와 관련된 광고 상품을 하나 만들었는데 특허를 낼 수 있는지가 궁금해졌어요. 당시에 전공 교과목을 가르쳐주시던 김경환 교수님을 찾아갔죠. 김경환 교수님이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그 자리에서 학교 변리사를 불러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제가 특허 출원도 하고 대학생 발명 공모전에 나가서 1등도 했어요. 내가 무언가 만들 수 있고 그게 세상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이 경험이 제가 창업을 결심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줬어요. 그 이후로 위닝 멘탈리티가 생겼거든요. 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대기업에 취업하고 나서도 항상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어요. 여러분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조그마한 거라도 자기가 직접 만들어보고 타인의 피드백을 듣고 무언가를 완성하는 경험은 소중해요. 나의 재능을 찾는 경험을 최대한 많이 시도하면서 다양한 기회에 대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기술고시는 5급 공개채용선발시험 과학기술직을 부르는 호칭으로 행정부 소속 5급 공무원을 선발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과학기술 직군은 전산직, 공업직, 방송통신직 등 일반적으로 이공계열 학생들이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시험을 치르며 선발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합격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김지욱 국장은 정보공학과(현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기술고시 합격 후 조달청에서 물품 및 서비스 구매, 전자조달 및 조달품질관리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친 조달정책 전문가다. 공직 생활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은 그를 모셨다. Q. 공무원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신 계기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처음부터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다짐한건 아니었습니다. 복학 후 정보공학과에서 공부하면서 프로그램 개발보다는 다른 쪽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코딩이 저랑 맞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군 제대 직전 같은 학과 선배님들로부터 기술고시에 대해 듣게 되었고, 공대를 나와 정부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공부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술직의 경우 일반행정직보다 인원을 적게 뽑아서 불확실성이 컸어요.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1차 객관식으로 영어와 한국사 그리고 전공과목 두 개를 봤었고 2차는 전공 4과목으로 주관식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 첫 도전에 1, 2차를 합격하여 수험 공부를 빨리 끝마칠 수 있겠다는 기대와 달리 3차에서 떨어지면서 쓰디쓴 아픔을 맛봤습니다. 이후 4년 차에 학교 졸업과 동시에 최종 합격하며 고시원 생활을 마칠 수 있었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 도전에 바로 합격했다면 많이 자만하며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실패가 이후 공직 생활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기술고시에 합격하면 어떤 업무나 프로젝트를 맡게 되나요? 기술직이든 일반행정직이든 들어오게 되면 업무에서 뚜렷하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본인 직렬을 살려서 관련된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특허청, 병무청, 산림청, 행정안전부 등 모든 정부부처는 기본적으로 전산직이 필요해서 인원을 뽑지만, 이들이 항상 정보화 부서에만 있을 수 없어요. 그런 부처도 있다고 들었지만 대체로 다양한 부서를 돌아야지만 국민이 원하는 행정서비스를 알고 지원할 수 있습니다. 본인 업무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어서 한 곳에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전산직으로 들어오면 조달청은 전자조달기획과나 전자조달관리과 등 정보화 부서에 조금 더 머무르기는 하지만 결국 관리직 공무원의 소양은 다양한 부서의 일을 파악하는 것이라 다른 부서도 가게 됩니다. 정보화 부서에서는 정보시스템 운영과 기획, 정보화사업 수행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Q. 공직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공유하고 싶은 경험이 있을까요? 사무관 시절에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 시스템 구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라장터는 사용자가 입찰공고, 업체등록, 계약 체결, 대금 지급 등 모든 조달 과정을 온라인에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할 때 여러 가지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작업들이 많습니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기관과 협업하고 연계하면서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업무가 수행되어야 하는지 파악하고 기획 관리했습니다. 새벽 3~4시까지 회의도 하고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한국의 전자정부를 대표하는 사이트를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어서 보람차고 뿌듯했습니다. 이 나라장터를 팀원들과 함께 구축하였던 것이 뜻깊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 밖에도 주시카고총영사관에 주재관으로 나갔을 때 외교부 소속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의 국빈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일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항상 똑같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은 다른 부처로 발령받아 다양한 업무를 맡아서 하기도 합니다. Q. 공직 시작했을 때와 현재 하시는 업무 고시를 보고 처음 공직에 들어서면 5급 사무관으로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안을 완성하는 작업을 맡습니다. 실무자로서 여러 업무를 수행해내죠. 과장을 달고 나서는 과의 업무를 총괄합니다. 회의를 주재하고, 각 과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조율하는 것, 과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국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휘하고 기획하는 역할이 과에서 국으로 늘어난 것뿐이죠. 각 과에서 올라오는 안건을 보고받고 회의를 진행하며 다른 사업국 혹은 다른 청이나 부처와 협의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래서 출장도 많이 다녀야 하지요. 국장으로서 필요한 소양은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고 큰 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직원들이 바라는 관리자의 모습입니다. 실무자로서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힘들 때도 있습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래에서 잘 해결하지만 위로 올라오는 문서는 대부분 쟁점 사안이나 고민해 봐야 할 안건을 가지고 옵니다. 같이 머리를 싸매고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리더여야만 아래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대전정부청사 전경 (출처: 정부청사관리본부) Q. 공직 생활을 오래 하신 국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공무원 생활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공무원의 장점으로 워라벨은 흔히들 꼽고 단점으로 반복적인 업무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어떤 공직에서 근무하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사실이 아니라고 전합니다. 연차 초반에는 일이 물밀듯이 들어와서 워라벨을 지키며 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여유가 생기고 월급이 오르는 것이죠. 안정적인 것과 편안하다는 다릅니다. 공무원이 되려면 멘탈도 강해야 해요. 감내해야 하는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해서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면 말리고 싶네요. 단점으로 꼽은 매일 반복되는 업무도 사실이 아닙니다. 공무원이 항상 똑같은 업무를 본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여러 부서를 돌며 여러 업무를 배우고 생소한 부서에도 몸담아보고 연차가 쌓인 후에는 일을 기획하고 관리하면서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 냅니다. 대국민서비스가 향상되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낀다면 공직 생활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물론 법으로 제한되는 것도 많고 보고해야 하는 것도 있어 완전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을 하는 데에는 힘들지만 제도의 틀 내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추가로 공무원이 되어서도 유학을 갈 수 있고 공관이나 국제기구에서도 일해보며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런 부분도 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조달청에 들어왔을 때 외교부 주재관으로 근무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요. (웃음) Q.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직도 조달행정 업무에서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조달청에 몸 담고 있는 시간까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조달 행정이 더욱 나아질 수 있도록 일하고 싶습니다. 어떤 업무든 상관없이, 어디를 가든, 어느 부서를 가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길은 다양합니다. 앞으로 장래에 뭘 할지 깊이 고민해 보십시요. 고시라는 게 합격하면 좋지만 되기까지의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거 너무나 잘 압니다. 열매는 달지만 합격의 길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앞으로 장래에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아닌지 충분히 고민해 보고 들어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공무원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일한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에 무슨 사명감과 책임감이냐 하실 수 있지만 그런 친구들이 공직에서 국민을 위해 일하고 힘써야 한다고 믿어요. 수년을 공부해 공무원이 됐는데 적은 월급을 보고 실망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월급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워라벨도 장담하기 힘들죠. 고생해서 들어왔는데 환상과 다를 수 있어요. 공공 업무에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초반의 고생을 이겨내고 관리직 공무원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20대의 3~4년을 쏟을 가치가 있는지, 내가 공무원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바꾸어 나가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한 후 시험 준비를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입니다. 성균웹진 이준표 기자
이지형 교수는 대학원 선택의 기로에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믿고 인공지능 연구실을 선택하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순간부터 인공지능 분야의 우수한 인재 양성에 힘써온 그는, 2019년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 대학원의 설립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교수는 인공지능 인재 양성의 방향성에 대해 "진정한 프로가 되어라"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책임감과 미지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한다. 또한, 정보 및 지능 시스템 연구실의 연구가 자연어 처리 분야의 저명한 국제 학술대회 LREC-COLING에 게재 승인된 성과를 통해 성균관대학교의 연구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지형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인공지능 연구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원 진학 시 실험실 선택을 고민했습니다. 컴퓨터 공학의 꽃은 인공지능이라 생각하고, 인공지능 연구실을 선택했습니다. 성대에 부임한 것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전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했는데 성대에서의 새로운 도전에 설레며 기쁘게 시작했습니다. 2019년 인공지능대학원이 처음 나왔을 때 인공지능 대학원 선정에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성대의 역량을 믿고, 제안서를 열심히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 인재 양성과 연구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대학원과 학부의 인재 양성은 다릅니다. 인공지능 대학원 사업은 연구보다 전문가 양성이 목표입니다. 인재 양성은 학생들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고 성공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졸업하지 못한 학생, 시험 통과 실패, 휴학 등 개별 학생의 문제에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우수 학술대회에서 구두 발표나 챌린지에서 1등하는 등 성과를 낼 때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저는 모든 학생들의 개별 성과와 과정이 소중하고 기억에 남습니다. | 인공지능 인재 양성의 방향성 저는 학생들에게 프로가 되라고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 자체보다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이름에 명예를 걸고 일을 완수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우리 나라 관점에서 보면 다양한 인재 양성을 하길 바랍니다. 인공지능 핵심 알고리즘 개발자, 기술 전파 및 적용 전문가 등 다양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필요는 없지만,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국의 기술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I 반도체와 같은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죠. | 정보 및 지능 시스템 연구실의 논문 2편이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저명한 국제 학술대회 LREC-COLING에 게재 승인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연구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나는 프로그램 코드 버그를 탐지하는 것입니다. 거대 언어 모델을 이용해 프로그램 코드에서 로지컬한 에러를 찾아내는 연구입니다. 두번째는 적은 트레이닝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데이터 오그멘테이션을 통해 적은 데이터로도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모든 연구가 각기 기억에 남습니다. 연구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워 훌륭한 연구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고, 반대로 기대에 못 미치는 연구가 인정받을 때도 있습니다. 연구는 기발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인정받도록 개선하는 과정도 포함됩니다. 논문이 여러 번 거절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수정하여 최종적으로 억셉트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 연구실을 이끄는 목표나 장점 운영 철학 학생들의 성장을 중심으로 합니다. 논문 작성과 연구 활동은 교육의 도구로 활용되며, 연구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와 학생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협력 관계로, 함께 논의하고 즐겁게 연구를 진행합니다. 인공지능 학과장으로서 어려운 점은 학생들과 공동 목표에 동의를 얻고 협력하는 과정입니다. 어려움은 피할 수 없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요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 도전해 보고 싶으신게 있나요? 현재는 사회적, 가정적으로 주어진 일들을 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항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배우고자 합니다. 도전은 큰일을 성취하는 것뿐 아니라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도전은 능력이 부족해 어려운 일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도전을 통해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역량을 얻게 되므로 가치가 있습니다. 인공지능 연구의 가치는 공학의 일종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기술을 개발하는 학문입니다. 인공지능은 도구로서 인간의 사용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자동화 및 인간을 돕는 도구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연구와 학생들을 만나는 직업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역할이고 도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직업으로서 매력이 있습니다. | 어떤 연구자 혹은 교육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조금 염세적인 생각인데 특별히 기억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길 바라지만, 특별한 욕심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삶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 은혜를 동일하게 갚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받은 도움을 같은 사람에게 돌려주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더하기 빼기 식의 계산 없이 받은 만큼 베풀며 살고자 합니다. 교육자로서의 소망 있다면 제가 받은 은혜를 학생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실험실의 학생들도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며 살기를 바랍니다. | 성균관대 학생들한테 한마디 오늘 이야기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는 도전과 은혜의 흘려보내기입니다. 첫째, 도전하는 사람 되기. 도전이란 자신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고 도전을 통해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 은혜의 흘려보내기. 받은 은혜를 내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직접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돌려주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자로서든 개인으로서든,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실험실의 학생들도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조영주의 작업은 사회 구조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그 구조에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은 주체의 행위자성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다문화 이주 여성, 장애인, 돌봄 노동자 등 조명되지 않았던 주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고한다. 소외되었던 주체들의 퍼포먼스 작업 참여는 협주곡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서 잠시 벗어나 연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마련된 독주 부분을 의미하는 '카덴짜 피오리투라'와 호응한다. 항상 타자화되었던 이들이 작가의 작업물에서는 비로소 카덴짜의 독주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수자의 신체 이미지를 활용해 우리 사회의 미묘한 불합리함을 일깨우는 미술 작가이자 우리 대학 겸임교수인 조영주(미술교육 97)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카덴짜(Cadenza): 연주자의 기교를 발휘시키기 위한 화려하고 즉흥적인 프레이즈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조영주입니다.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 혜택으로 개인전 <카덴짜>를 송은에서 선보일 수 있었어요. 송은미술대상은 제 작품 생활에 전환점을 마련해주어서 더욱 뜻깊어요. 이번 개인전 역시 저에게 중요한 경험의 한 꼭지가 될 것 같습니다. * 송은미술대상은 전도유망한 국내 미술 작가를 지원하고자 2001년 송은문화재단에서 제정하여 매년 공정한 공모와 심사를 통해 운영하는 미술상이다. 2011년도에 리뉴얼된 이래 매년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향후 서울 청담동 송은에서 개인전 개최가 지원된다. 지난 4월 송은에서는 2020년 진행된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수상자 조영주 작가의 개인전 <카덴짜>를 선보였다. | 송은미술대상을 받고 개인전 <카덴짜>를 개최하기까지 약 4년이 흘렀어요. 그동안 작가 조영주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송은미술대상은 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육아나 돌봄의 문제를 예술가가 직접 이야기하고 나서지 않았어요. 굉장한 소외감과 고독감으로 힘겹게 작업을 이어왔는데 송은미술대상 수상 이후 많은 사람이 제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예술가는 그런 힘을 먹고 살잖아요. 그래서 신이 나서 작업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 이번 전시 <카덴짜>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떠오르는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젠더나 남녀노소 상관없이, 본인이 겪어온 다양한 관계에 주목해 보는 관람이 되길 바라요. | <카덴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작업 특성상 많은 사람과 협업했어요. 촬영감독, 안무가, 퍼포머, 사운드 아티스트 등 함께한 모든 분에게 감사하죠. 전시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기도 했어요. 그럴 때 큐레이터분들은 물론, 주변 모든 분이 힘을 모아서 하나씩 일을 해결해 나가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전시와 좋은 작품은 작가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구나’라고요. 모든 분의 열정과 혼신이 모아졌던 순간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산 신체 해후_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들> 이원생중계 라이브퍼포먼스, 30분, 2024 | '아줌마'의 자기표현을 주제로 삼은 작품 <꽃가라 로맨스>(2014), 양육자와 피양육자 간에 발생하는 힘의 역학을 다룬 작품 <입술 위의 깃털>(2020)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 <이산 신체 해후>(2024)까지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시각적 언어로 가시화한 작업들이 눈에 띄어요. 여성의 신체성을 둘러싼 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본래 '작업을 한다'는 건 나 자신과 주변인,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가가 그렇게 작업을 할 거예요. 제가 여성 이미지와 사회에 내재된 권력관계에 집중하게 된 건 우리 학교 재학 시절 '성균 극회' 활동이 큰 몫을 했어요. 그때 '성균 극회' 활동을 전공 공부보다 더 열심히 했거든요.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공연 예술의 형태가 재미있어 보여서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제가 젠더적인 불평등을 느끼고 그 부조리함으로 억울해했던 경험들이 모여서 관련된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아요. |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작업을 통해서 무언가 시위를 하거나, 그렇게 해서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을 계몽할 생각은 없어요. 제 작업을 찬찬히 보시면 불평등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지도 않아요. 잘잘못을 따져 그 앞에 사람들을 세워서 나무라는 건 사회운동가들이 많이 하니까요. 대신 저는 많은 사람들이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지점을 어떻게 같이 바라볼 수 있게 만들지를 연구해요. <휴먼가르텐> 폴리우레탄, 스폰지, 가변 설치, 2021-2024 <살핌 운동> 비디오 설치, 2 채널 영상, 컬러, 다채널 사운드, 18 분 30 초, 2023 | '대학생 조영주'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이야기도 해주시겠어요? 저는 미술교육과 서양화를 전공했는데요. 제가 미술교육과 마지막 학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미술학과 시스템에 교육학 수업을 더 해서 많은 학점을 이수해야 했었죠. 학과에서 만나 뵈었던 여러 작가 선생님의 가르침이 미술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나네요. 연극 동아리 '성균 극회'에서 4년 내내 활동한 경험이나 관악부에서 2년간 플룻을 연주했던 시간들도 생각나요. 이외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랑 미팅, 소개팅도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어요. 에너지가 무척 많았던 때였습니다. | 대학생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미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유학을 떠나고, 파리에서 학부를 다시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미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원 시절 담당 교수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고 그 교수로부터 당시에 제가 하던 작업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많은 무시를 받았죠. 지금은 대학원 시절이 짧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학생의 입장에서는 담당 교수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어렵게 시작한 유학이니 졸업장이라도 따고 (미술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졸업까지 버텼어요. 다행히 졸업 시험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받아 명예롭게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의 국립미술학교는 (졸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지정한 심사위원단이 생전 처음 보는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게 되어 있거든요. 저를 차별했던 담당 교수는 제 졸업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죠. 그렇게 영광스러운 졸업을 한 뒤에는 '당분간 미술을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재밌고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미술을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아직 미술이 재밌어서 하고 있나 봐요. (왼쪽) 솔리스트들 | 라이브 퍼포먼스,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5 분 23 초, 2024 (오른쪽) 다문화 여성들로 구성된 행복메아리 합창단원들(<솔리스트들> 참여자)과의 기념 촬영 | 미술 작가로서의 시작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장래 희망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했는데 파리의 길거리에서 베레모를 쓰고 이젤에 화판을 둔 제 모습을 그렸어요. 그 시절에는 ‘미술’ 하면 파리의 화가가 떠오르던 때였어요. 저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생때 우리 학교로 강의를 나오시던 홍순명 선생님이 계셨는데, 당시 막 파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셨어요. 그 영향도 많이 받았고 학부 졸업 후 미술을 더 공부하고 싶어 저도 무작정 파리로 떠났습니다. | 오랜 기간 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슬럼프도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힘든 시기는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아이를 출산하고 몇 년간은 고립감에 아주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매일 명상을 했고, 정해진 시간에 작업실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그 힘든 시기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주제일지 궁금해요. 유럽에서 10년간 저의 20대와 30대를 보냈습니다. 젊은 한국 유학생, 젊은 한국 여자 작가로서 지냈던 시간이 현재 이주 여성들과의 작업과 무관하지 않죠.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이주 형태 그리고 이들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갈등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구축했는지에 대해 더 연구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경험은 언젠가 나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힘겹고 고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느냐는 각자의 몫일 거예요. 나를 돌보고, 나아가 내 주변인들과 사회와 환경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너무 멋지지 않을까요?! 성균웹진 이다윤 기자
“어떤 메시지를 딱 마주할 때 느끼는 한마디가 엄청난 용기와 힘이 되어줄 때가 있어요” 일기는 하루를 마치고 쓰는 기록이다. 그날의 있었던 이야기와 감정을 담는다. 기억하고 싶은 하루를 기록해 저장할 수 있다. 때로는 일기 쓰는 일이 힘들고 번거롭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배준호 대표는 그런 이들에게 하루 세 줄만이라도 매일 써보기를 권한다. 기록이 지닌 힘이 무엇인지, ‘세 줄 일기’ 배준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 줄의 글과 한 장의 사진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이를 책으로 만들고 공유하는 플랫폼 ‘세 줄 일기’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윌리엄 대표 배준호입니다. Q. 세줄 일기를 개발하게 되신 동기를 영상으로 봤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던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회사를 관두고 세계 여행을 떠났을 때 매일 일기 쓰는게 힘들다고 와이프에게 토로했습니다. 그러자 '하루 세 줄만 써보는게 어떻겠냐'고 얘기한 데서 세 줄 일기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페이스북에서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운 거예요. 공유와 공감도 많이 받아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달라는 출판사 연락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누구든지 세 줄로 본인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이 아이디어는 책보다는 콘텐츠 쪽으로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많은 분들처럼 예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했고 개발자 친구와 함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들었을 땐 형편없었죠. 그럼에도 2만 명씩이나 되는 분들이 다운을 받아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투자도 받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Q. 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획과 개발을 모두 하신 건가요? 기획과 개발은 아주 다른 영역입니다. 기획자가 말하는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와 고차원적 이야기를 개발자는 단순하고 명료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서로 충돌합니다. 기획자와 개발자는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프로토타입이 중요합니다. 프로토타입은 이들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색감, 폰트, 글자 크기 등등을 정확히 제시할 수 있어요. 프로토타입을 잘 만들어 개발자와 소통해야 합니다. 저는 컴퓨터공학을 나왔지만 개발 직군으로 가지 않아 개발자의 역량을 갖추고 있진 않습니다. 다만 앱 설계와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큰 그림을 알 수 있어 개발자의 고충이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었어요. 개발자가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개발자가 저한테 이건 만들 수 없다고 거짓말할 수 없었죠. (웃음) Q. 성대 재학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저는 00학번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로 입학했고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 했습니다.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도 재밌었는데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학부로 들어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굉장히 논리적인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습니다. 저는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공과대학 특성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질문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여기서 아쉬움과 갈증이 생겼던 것 같아요. 한 번 명륜 캠퍼스에 가 박현순 교수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PR의 이해’라는 강의였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수업을 들으면서 자유롭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인상깊었고 정말 감명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문과 복수전공을 하고 싶으면 경영학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고민 하고 있을 때 박현순 교수님이 ‘네가 재밌고 끌리는 걸 해봐’라고 말씀하셔서 신문방송학 복수전공을 결심했습니다. 율전과 명륜을 왔다 갔다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앱을 개발할 때 아이디어를 실제 실행에 옮기는 작업은 공대 지식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신문방송학을 나와 일했던 홍보팀 이력과 영상 만드는 기술, 글쓰기를 좋아하는 체질은 세줄 일기의 단단한 줄기가 되어주었죠. 인문학과 공학은 함께할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Q. 사실 매일 일기를 빠트리지 않고 작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일기 쓰기를 습관화하기 위한 대표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기록은 왜 할까요? 기록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기록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자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해요. 이런 시간은 우리에게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거울은 바로 글이에요. 유일하게 내가 내 몸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오브제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거창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하루 세 줄 쓰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Q. 세줄 일기가 여타 플랫폼과 다른 차별되는 특징이 있을까요? SNS는 SNS이고, 블로그는 블로그입니다. 세 줄 일기는 ‘일기’입니다. ‘세 줄 일기’는 일기를 담으라고 한 그릇이라 당연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알리기 위함보다는 내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 세 줄 일기입니다. SNS는 자신의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지만 일기는 그 사람의 일상, 속마음을 담는 점이 차별화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일기에는 힘들거나 안 좋은 일도 쓰니까요. 한 예시로 암 환자 분들도 세 줄 일기를 많이 이용하십니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공감대를 마련하고, 많은 이들이 아픔에 공감하고 같이 울어줄 수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Q. 향후 세줄 일기에 개선하거나 추가하고 싶은 기능이 있을까요? AI를 활용한 ‘일기 속 나와의 대화’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아직까지 유일하게 IT화, 디지털화 되지 않은 것은 ‘thinking’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 생각, 느낀 점, 추억을 가공해 소중했던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일기를 먹고 자란 AI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죠. 바쁜 하루 속에 예전 일기를 다 정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수익성 문제도 짧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보면 아시다시피 사실 수익성이 거의 없는 사업입니다. 광고주 투자 말고는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뭐로 돈을 벌어야 하나? 해답으로 최근엔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세 줄 일기로 쓰는 키오스크’ 등 행사나 축제 현장에서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간단하게 세 줄만 기록하면 내가 여기에 왔다는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Q. 본인의 아이디어를 갖고 새로이 앱을 개발하려는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고민하고 생각하는 기간도 필요하지만 실행을 해야 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행에 착수하세요. 나이키 슬로건 ‘Just do it’처럼요. 그리고 필요한 인재를 영입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본이 필요합니다. 돈을 어떻게 끌어올지 고민하십시오. 중소벤처기업부, 여러 곳의 창업지원금 등을 잘 찾아서 투자받아 시작하세요. 아이디어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일단 해봐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20대,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가장 그럴 나이이죠. 내가 뭘 할 줄 알고 뭘 아는 사람인지 고민해 보는 세 줄의 시간이라도 매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1년이 됐든 5년이 됐든 천천히 본인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너 그거 할 때가 아닌데’ 같은 주변의 메시지를 극복하고 도전하세요. 여러분이 ‘나다운 삶’을 그릴 수 있도록 우리 선배가 그런 걸 기다려주는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갈게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 다 너무 똑똑합니다. 여기에 자신감만 조금 불어넣어 주고 싶어요. “쫄지 마, 일단 해봐!” 성균웹진 이준표 기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 물건과 관계를 맺는다. 음식을 사 먹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릴 때, 혹은 자취방을 구할 때 등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며 어울린다. 이러한 관계에서 생기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민법에서 규정한다.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는 민법에 대해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자. 오수현 동문은 글로벌경제학과(11)를 졸업하고 현재 법률사무소 재율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동시에 민법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법학 서적 속 수험서와 실용서 사이 인문 교양서 역할을 하는 민법책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이러한 소망을 갖고 3년간의 작업 끝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쓴 민법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Q.『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쓴 민법책』 이 브런치북 대상을 받으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민법에 관한 책을 쓰시기로 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학부를 마치고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7기로 처음 들어갔을 때 전 방황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수험 공부로써의 법학에 적응하기 어려워했어요. 자발적으로 유급을 선택했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방황하고 헤매면서 왜 수험 법학에 실패했을까? 에 대한 물음을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 시간 동안 두꺼운 교과서를 찬찬히 음미할 여유가 생겼고, 법학의 큰 틀을 잡으면서 민법의 기초와 이해를 탄탄히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방황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법학에 흥미와 인사이트를 주면 더 많은 후배가 법학에 잘 적응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험 법학의 경우 모든 수험이 그러하듯이 예외적인 사례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런 사례가 시험에 합격하는 데에는 물론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많은 학생들이 법학의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쓴 민법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Q. 집필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책을 집필할 때 가장 방점에 두었던 것은 ‘쉽게 풀어쓰자’ 였습니다. 사실 굉장히 중요하고 실생활에 중요한 판례임에도 다 넣을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땐 줄이는 게 가장 어렵다고 흔히 말하잖아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내용을 줄이고 줄여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첫 초안은 8개월 만에 마무리했는데 거의 800페이지에 달했어요. 분량을 줄인 대신 정말 얘기하고 싶은 얘기는 미주에 적었습니다. 저는 전공 교과서를 쓰는 입장이 아니므로 쉽고 재밌는 민법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Q. 사실 법이라는 학문 특성상 공부할 때 단어 혹은 개념을 혼동하기 쉬운데요, 변호사님만의 해법이 있을까요? 딱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1. 한자어 풀이에 익숙해져라. 법학을 공부하다 보면 정말 많은 한자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자어가 많을 때 한자어 풀이를 정의와 일대일대응을 시켜서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자어를 알면 법학 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2. 두 번째는 정의 규정이나 문장을 멋대로 끊어서 밑줄 치지 마라 입니다. 법학의 분량이 아주 많다 보니 수험생들은 계속 이를 요약하고 분량을 줄이려 합니다. 사실 다른 부분들도 중요한 개념인 경우가 있는데 수험생 입장에서 이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렵습니다. 밑줄과 요약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량 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고 필요한 작업이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밑줄을 긋지 않은 부분이더라도 꼭 정독하라는 겁니다. 친구들이 특히 앞에 전제(~~한 경우, ~~한 때에)가 되는 부분을 종종 잊어버려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처음엔 연필로 책을 전부 다 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지우면서 정말 중요한 부분만 펜으로 밑줄을 남겼어요. 네 맞아요, 결국엔 다 읽으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 같네요.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계속 보지 말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Q. 여타 법과 민법의 가장 차별되는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책에 썼듯이 민법은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 인물 관계의 키워드를 잘 붙잡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합니다. 동그라미 하나, 직선 하나, 네모 하나 관계도를 명확히 그리면서 공부해 보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제 책에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웃음) Q. 변호사 활동도 함께 하면서 책 집필은 언제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통 달리기를 하고 돌아올 때 영감을 얻습니다. 돌아올 힘을 생각 안 하고 다 뛰고 난 다음 천천히 걸어오면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핸드폰에 하나씩 적어 놓아요. 집에 돌아와 리마인드 하며 적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달리기든 다른 무엇이든 저는 운동을 적극 추천합니다. 운동을 하면 머리가 상쾌해지고 정신이 명료해져요. 특히 섬세하고 잡생각이 많은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글 쓰는 것을 취미로 생각하거나 업으로 삼고 싶은 친구들은 리프레쉬 할 수 있는 수단을 하나 만들어 놓으시길 추천해 드려요. Q.성대 재학 시절 변호사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부끄럽지만 자타공인 아카데미학을 추구하는 학생이었어요. 인문학 공부를 좋아하고 도서관에 앉아 여러 분야를 탐독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성균관대 글로벌 경제학과에 입학해 1학년 때 기초학문을 많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경제학 박사들끼리 스터디를 만들어 공부할 정도로 탐구심이 높았습니다. 2학년까지 성균관대학교에서 학교를 다녔고 나머지 2년은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복수학위를 수료했습니다. 학점과 상관없이 학문을 탐구하고 학구열이 높았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학생들이 요즘 외부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 해외에 갔다 오시는 것을 강력히 추천해 드려요. 저의 학부 시절 키워드는 앞서 말한 아카데믹과 해외 경험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회 혹은 동아리보다는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데에 충실했고 이것이 결실을 맺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며 환경을 확 바꿔보는 도전도 했고, 궁금한 논문은 찾아 읽어보고, 좋아하는 작품 혹은 작가 책도 읽으면서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Q. 변호사님은 탐독과 다독의 고민 기로에 섰을 때 무엇을 더 우선하나요? 저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요. 저 같은 경우 다독보다 탐독을 중요시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독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서 어떻게 하면 한정된 시간 내에 다독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해 봤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오디오북을 활용하자’ 였습니다. 6년 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방법인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오디오북으로 평소 자신이 잘 읽지 않는 책을 듣는 것입니다. 듣는 독서가 실제로 효과적이라는 뇌과학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만일 자신이 읽는 속도가 느리거나 다독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한번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Q. 처음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플랫폼을 잘 활용하라는 말씀을 드릴게요. 요즘은 작가 및 출판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잘 구축된 플랫폼이 많이 있습니다. 브런치스토리, 창작의 날씨처럼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 구독자를 알릴 수 있는 곳들이 있어요. 이러한 플랫폼에서 글을 쓰면 좋은 점은 자기 글의 현실적 경쟁력을 따져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양질의 글도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지 않으면 출판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봐주는 구독자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출판사에서 연락도 오고 섭외 요청이 들어옵니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어렸을 적부터 작가라는 꿈을 놓지 않았는데 군복무 시절 도전해 보자 해서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했고 어느새 첫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Q.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교는 본인이 노력하는 만큼 얻어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잘해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합니다.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십분 누렸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적극적으로 성균관대학교를 활용하려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고 그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 이용하길 바랍니다. 교수님이나 행정실 방을 계속 두드리다 보면 뭐라도 나올 거예요, 열심히 우는 아기한테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듯이요. 여러분들의 찬란한 미래를 기대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보건이란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우리는 건강한 식습관 유지하기, 혹은 운동하기와 같은 여러 보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개인이 노력한다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율리 교수는 이에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 지속적인 건강 증진과 사회 전반의 건강 형평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동체 차원의 문제 의식과 해결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보건 메시지’란 무엇인지, 보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그녀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보건 커뮤니케이션 (Health communication) 연구자 김율리입니다.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리더학부 (구 자유전공학부) 10학번이었고, 학석연계과정을 통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University of Denver에서 3년 차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해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석사과정에 진학할 때만 해도 ‘연구자’나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학부과정 동안 자유전공학부 소속으로 여러 전공을 넘나들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지만,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제가 선택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해서 아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정성은 교수님을 만났던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개념에 관련된 논문들이라면 수없이 밑줄을 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으시는 모습이나, 연구실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책 중 특정 논의에 필요한 책의 필요한 부분을 콕 집어내서 참고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연구자의 모습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워갔거든요. 그렇게 석사과정 동안 연구자라는 직업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껴 자연스럽게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어요. 물론 지도 교수님이셨던 정성은 교수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권유도 해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고요. ■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동안 여러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로서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저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자칫하면 외롭고 힘들 수 있는 박사 과정 동안,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친구들을 만나 꽤 즐겁게 지냈거든요. 그래도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박사 첫 학기부터 강의를 하게 되어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경험인 것 같아요.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데 대학원 세미나 수업을 준비하랴, 제가 수업해야 할 과목을 준비하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숨 쉴 틈을 따로 찾아야 할 만큼 바빴던 기억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역시 ‘업무 강도’보다는 ‘업무 내용’, ‘함께하는 사람’과 ‘직업 환경’과 같은 요소들이 중요한가 봐요. ■ 교수님이 진행하셨던 연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사실 대학 시절 내내 개발 협력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보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하나도 communication specialist가 되어 개발 협력 프로젝트의 효과성을 향상하고, 감염병이나 자연재해 등 비상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연구 중 하나는 말라리아 퇴치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입니다. 여전히 한 해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특히 전 세계 말라리아 발생의 95%가 아프리카 대륙에 집중해 있어요. 최근에는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백신이 보편화되기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리기에, 여전히 많은 과학자가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질병 중에 하나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지원으로 저는 Eave tubes가 시범적으로 설치되고 있던 아프리카 대륙 코트디부아르의 부아커(Bouake)라는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Eave Tubes는 모기 생태학에 기반해 발명된 장치였어요. 대부분 진흙이나 벽돌로 지어진 집의 외벽에 구멍을 뚫고 설치해서 모기가 거주 공간 내로 진입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장치였지요. 현지에서 유일한 “사회과학자”였던 저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민이 이 장치를 설치하는 데 동의하도록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연구팀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회/문화적 규범이 있는지에서부터 주민들이 이 새로운 장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을 사람들 간에는 현재 어떤 대화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주민 인터뷰 과정에서 음성언어만 존재하는 지역 언어(Baoulé)를 프랑스어로,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했던 것은 물론, 이후에도 위치기반 데이터와 인터뷰 데이터를 연계해서 분석하는 데에 품이 많이 들었던 연구였어요. 이 밖에도 출발 이전부터 한 달 내내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해야 했고, 현지에서는 모기장을 설치하고 자는데도 여지없이 밤마다 모기들에 시달렸지만, 그만큼 잊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했지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학술지에 출간된 논문들 또한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 현재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효과적인 보건 메시지를 통해 개인들이 건강 증진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보건 문제가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사회학이나 보건학 관련 연구들에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좋은 이론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메시지를 제작하더라도, 환경적 요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예를 들어 건강한 식습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읽고 모두가 당장 내일부터 건강식을 시작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그 이유를 메시지 효과성이나 개인의 의지에서 찾기보다, 건강식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손쉽게 건강한 재료나 음식을 구할 수 있는지, 이를 준비하거나 구매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있는지, 주위 사람들과는 건강한 식습관에 관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고, 그 대화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등 사회적 요소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해요. 메시지를 개발할 때도 건강 문제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주목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최근에는 지역 병원의 의대 교수님들과 기후 변화로부터 비롯된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연구하는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관련 연구 제안서를 작성했어요. 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산불, 가뭄, 이상 고온과 같은 등의 자연재해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모든 사람이 동등한 정도의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특히 대기의 질이 좋지 않을 때 대개의 보건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실내에 머무를 것을 권고하는데, 주거 환경에 따라서는 실내 대기질이 더 나쁠 수도 있거든요. 메시지의 효과에만 주목하는 보건 캠페인이 놓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실내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 정부가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인덕션과 환기 시설을 설치하는 등 주택을 개보수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어요. 정부, 병원, 대학이 협력하여 해당 사업이 실제 호흡기 질환 환자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하고 얼마나 광범위하게 보급될 수 있을지를 시작으로 한 여러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에요. 저소득 가정의 주거 환경이 변화한다면 이에 따라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보건 메시지에도 변화가 필요하겠죠. 주민들과 협력하여 효과적인 메시지를 개발하는 연구도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으로 포함될 예정입니다. 커뮤니케이션학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학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학문 분야들과 협업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날 수 있는 학문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공공 보건을 향상할 수 있는지, 나아가 건강 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지, 커뮤니케이션 학자의 관점으로 계속 고민해 보고 싶어요. ■ 현재 University of Denver에서 어떤 수업을 강의하고 계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University of Denver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Theorizing communication, Introduction to health communication, Communication for social change 등등의 과목을 강의해 왔어요. 특히 지난 학기에 개설한 Communication for social change는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인 Metro Caring과 함께한 지역사회 연계 수업으로,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어요.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직접 모금 캠페인 대상 그룹을 분석하고,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근거한 메시지를 제작하고, 나아가 그 효과성을 평가해 보는 과정을 거쳤어요. 수업의 일환으로 단체의 활동가가 초청 강연을 오거나 학생들이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자로 참여하는 등 의미 있는 경험들이 포함되기도 했죠. 학생들이 제작하여 학기 말에 비영리 단체와 최종적으로 공유한 모금 캠페인 메시지들은 제가 보기에도 독창적이고 훌륭했어요. 이번 여름에는 사진학과 교수님과 협력해 덴버 대학교의 학부생 친구들과 한국을 방문하는 여름학기 수업을 계획 중이에요. Intercultural communication과 Introduction to photography 과목을 통합한 수업인데, 한국의 여러 곳을 학생들과 함께 방문할 생각에 벌써 기대가 되네요. ■ 성대 재학 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굉장히 바쁜 대학생이었어요. 월화수목금, 때로는 주말에도 서로 다른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들을 보냈거든요. 학생회부터 교내 밴드부와 미술부, 인권 동아리, 독서 모임 등등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일단 발을 들여놓고 보는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이에 더해, 성대의 국제 프로그램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했고, 개발 협력의 이해라는 수업을 통해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하고요. 다른 학부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연구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 샌프란시스코에 UX/UI 관련 기관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단순히 재미있는 일들을 좇아서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이었던것 같아요. 개인이 처한 환경과 상황이 모두 다르겠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열심히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대학 생활이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생들, 해외에서 교수직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시기와 주관이 다르기에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얼마 전에 유명 연예인이 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 마음 가는 대로 사십시오. 지금까지 제가 한 말 귀담아듣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해서 큰 호응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 말에 매우 공감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지면을 빌려 한 마디만 전하자면, 저는 ‘무엇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방향성을 가지고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저 역시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순간순간 제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에 집중해 왔거든요. 주위를 보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일치하는 운이 좋은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잘하는 일부터 하고 보자는 사람이나 그 반대의 사람도, 아니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처음부터 일치한다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20대, 그리고 그 이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저마다의 포부를 가지고 성균관대 졸업 후 해외에서 학업이나 취직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 아주 다른 환경을 마주하게 되실 거예요. 아마 그만큼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폭도 넓어지겠죠.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의 방식,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질 수 있길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