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을 것이다. 특히 연애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썸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동시에 헷갈리고, 골치 아프게 만든다.
철학과 이정규 교수
인간관계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을 것이다. 특히 연애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썸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동시에 헷갈리고, 골치 아프게 만든다. 어쩌면 모호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떨리는 상태가 썸의 가장 큰 매력이자 맹점일지 모른다. 우리 대학의 이정규 교수는 이러한 썸의 모호함을 철학적으로 정의 내린다. 순식간에 지나온 2025년의 상반기와 지나온 인연들을 회상하며 썸이라는 철학을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의 이정규입니다. 저는 언어철학과 존재론/형이상학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고, 특히 우리 언어가 세계의 다양한 대상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종류의 대상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분석철학사, 존재론/형이상학, 양상 논리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썸에 관해 쓰신 논문이 유명한데, 신조어 '썸'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저의 주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썸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썸이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이 용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중 문득 이 개념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올린 분석을 가볍게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그 글을 본 한 선배님이 "소셜미디어에서 재능 낭비하지 말고, 발전시켜서 투고해 보라"는 요지의 댓글을 남기셨어요. 박사과정 동안은 연구에 바빠 그 글을 잊고 지내다가, 몇 년이 지나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 아이디어를 다듬어 논문으로 발전시켜 투고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국내 분석철학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학술지인 『철학적 분석』에 해당 논문(「썸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조어 '썸타다'의 적용조건 분석 」)이 게재되었습니다.
| 논문을 바탕으로 썸의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철학에서 자주 쓰이는 한 가지 방법론이 개념 분석입니다. 개념 분석의 목표는 문제시되는 개념을 분석하여 그에 대한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의 목표는 <썸>의 개념 분석을 통해서 두 사람이 썸을 타는 상황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분석이 올바르다면, 두 사람은 그 조건을 만족하는 오직 그 경우에만 썸을 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조건이 상대방의 호감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에 근거한다고 제안합니다. 논문에서 나타나는 완결된 분석은 다소 복잡하기에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리지만, 그 핵심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고, 서로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증거가 호감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오직 그 경우 두 사람은 썸을 탄다. 더하여 호감을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이러한 불확실성이 상대방이 호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을 기반한다는 전제하에 위 조건을 충족하는 불확실성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썸으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 썸의 분석에 대한 반례 찾기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으실까요?
2018~2019년 <논리학> 강의에서, 필요충분조건과 반례 개념을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반례 찾기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반례는 제 분석이 어장 관리를 썸에서 제외하지 못한다는, 즉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반례입니다. 이러한 반례에 대해 논문에서 ‘썸이 아닌 어장 관리’와 ‘썸으로 볼 수 있는 어장 관리’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반박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논문에 등장하는 주요 비판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각주에 이름이 언급된 당시 수강 학생들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교수님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 본 경험이 있으실까요?
만약 썸과 관련한 제 개념 분석이 맞는다면,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모든 썸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이 됩니다. 저는 썸을 타본 경험이 있으므로, 이로부터 제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물론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 가능하다는 올바른 반례가 제시된다면, 제 분석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최성호 교수님의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오희철 교수님의 「'썸타다'에 대한 새로운 개념 분석: 믿음적 불확실성 관점」과 같은 논문을 읽어보시면, 그러한 시도를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수님의 주전공에 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단어나 문장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견 그것이 지시하거나 나타내는 대상 혹은 사태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스파이더맨은 영웅이다'와 같은 문장이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에 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스파이더맨'과 같은 허구적 이름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또한 허구적 대상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이는 현재 분석 철학계에서 매우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로, 저는 관련된 연구 결과물들을 꾸준히 해외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한국 분석 철학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모하분석철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의 이름을 통해 우리가 정확히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주제로서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물질적 구성의 문제나 철학적 방법론이 과학적 방법론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분석철학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치밀한 논리를 통해 분석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재학생 여러분들이 관련 수업을 들어 보신다면 논리적 사고력을 한층 더 키우실 수 있고, 이는 철학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또한 근 몇 년 동안에는 철학과 관련된 주제들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트롤리 문제(윤리학), 통속의 뇌(인식론), 테세우스의 배(형이상학) 등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주제가 되었습니다. 5억 년을 무의 세계에서 사는 대신 천만 원 받기와 그냥 살기 중 선택하는 문제 역시 한때 밸런스 게임처럼 유행했었는데, 이 또한 철학에서 다루는 인격 동일성 논의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입니다. 철학은 이처럼 대중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도 진지하고 심도 있게 다룹니다. 물론 대부분, 철학이 관련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을 배우면 왜 그러한 철학적 문제들에 답을 제시하기가 논리적으로 간단한 일이 아닌지, 각 입장에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또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본인이 지금까지 간과했거나 무지했던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 철학의 매력에 빠지셔서 깊은 논의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은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삶과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철학의 특징일 것이다.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모호함을 탐색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썸과 같이 정답 없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호한 삶의 궤도를 걸어갈 때 자신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