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융합의과학과에 부임한 김항래 교수를 만나
면역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길 위에서 마주한 의미 있는 우연들에 대해 알아본다.
삼성융합의과학원 김항래 교수
면역은 우리 몸이 세계와 형성하는 경계를 지키는 가장 섬세한 감각이다. 지난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융합의과학과에 부임한 김항래 교수는 이 경계를 더욱 정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를 통해 현대 면역학이 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김항래 교수가 축적해 온 깊은 탐구, 그리고 면역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길 위에서 마주한 의미 있는 우연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융합의과학과 및 삼성서울병원 유전자종합연구소에 소속된 교수 김항래입니다. 저의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memory CD8+ T 세포의 표현형 및 기능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기전을 연구하여 기능을 회복시키거나 강화하는 요인을 탐색하는 것이며, 환자 치료 중심의 면역치료 연구를 확장하고자 2025년 9월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김항래 교수
| 학부 때는 수의학과에 재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의학 대신 의학을 연구하시기로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네,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학과와는 달리 수의학과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고등학교처럼 강의와 실습을 진행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별도로 연구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학부 1학년생이던 1991년, 패치 클램프(patch clamp)* 기술 개발로 에르빈 네어와 베르트 자크만 두 분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생리학을 접하기 전이었지만 전기생리학의 원리에 매력을 느껴 앞으로 이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치 클램프(patch clamp): 세포에 미세한 전극을 붙여 이온 채널의 전류 흐름을 측정하는 실험 기법
그러다 면역학을 배우고 나서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에 더욱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3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천연두 바이러스 잔여 재고를 파괴할 것인지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담은 두 편의 논문이 제 연구 방향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논쟁의 계기가 된 천연두는 인류가 감염병에 대응하여 드물게 얻어낸 승리의 기록이자 '행복한 고민'이라 불릴 만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의 기원 역시 천연두 바이러스 백신주(vaccinia viru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면역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접했던 이 논문이 면역학을 공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어 추후 대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고민하던 중 의과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The Remaining Stocks of Smallpox Virus Should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Why the Smallpox Virus Stocks Should Not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인 면역학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면역학을 연구 방법론이나 질문을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 따라 세포면역학과 분자면역학으로 나눈다면, 제 연구 분야는 세포면역학에 가깝습니다. 연구의 주요 대상 세포는 세포독성 T 세포로 알려진 CD8+ T 세포입니다.
저는 암,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 상태에 따라 이 CD8+ T 세포의 기능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분석하고, 그 기능을 개선할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방어 능력에 핵심적인 기억 T 세포(memory T cell)로의 분화와 관련된 요인들을 탐색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사람의 T 세포를 대상으로 시작했으며, 현재는 기전 연구 및 치료를 목적으로 쥐를 이용한 동물 모델에서의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에서는 면역치료를 이해하는 데에 T 세포를 중심으로 연구의 축이 세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면역세포 치료제에는 T 세포 외에도 NK 세포, 대식세포 등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T 세포는 면역세포 치료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되어 면역치료의 기초 생물학과 임상적인 시도가 많이 축적된 세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원 인식, 신호 전달, 면역학적 시냅스 형성까지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해석이 가능한 유일한 면역세포입니다. 이렇게 견고하게 축적된 지식은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을 검증하는 데 있어 가장 견고한 기준점을 제공하며, 연구 결과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예측력을 높여줍니다.
더불어 T 세포는 CAR, TCR,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 등의 공학적인 개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 온 플랫폼입니다. 따라서 면역 반응의 원리를 밝히는 동시에 이를 치료 전략으로 확장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결론적으로 T 세포를 중심으로 한 접근은 특정 세포에 국한된 선택이 아니라, 면역치료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검증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연구 중 FRET 센서를 이용해서 최적화된 CAR 세포를 선별해 내는 연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CAR-T 세포의 성능을 평가할 때 암 항원에 얼마나 강하게 결합하는지보다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실시간으로 증명한 연구입니다. 이를 위해 성지혜 교수(KIST,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형광 센서 기술, 이창한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항체 개발 연구, 그리고 장미희 박사(KIST)의 CAR-NK 연구가 결합한 공동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FRET(형광 공명 에너지 전달) 센서를 활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결합한 직후 내부 신호가 얼마나 잘 조작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강하게 결합하는 CAR보다 중간 수준의 결합력을 가진 CAR이 항원과 더 안정적인 결합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실제 면역세포 기능도 더 우수함을 규명했습니다. 이는 CAR-T 설계의 기준을 단순히 결합력 중심에서 기능적인 면역학적 시냅스 구조 형성과 신호 전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함을 제시한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 면역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시점, 면역치료 연구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해질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면역치료 연구의 동향은 “더 강한 면역반응”보다는 “더 정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면역조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명확하게 바뀌고 있으며, 이는 저희 연구를 포함한 최근 기초 및 임상 연구 결과들에 따라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하나의 면역세포에 국한된 분석을 넘어 면역세포 간 상호작용과 공간적 조직이 치료 반응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면역 반응이 어디에서 어떤 구조로 일어나는가’가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최근 면역치료 연구 전반에서 공통으로 강조되는 흐름입니다.
임상적으로는 단일 면역치료 전략의 한계도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에게서는 단일 면역치료가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다수의 환자에게서는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면역치료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표적 치료 등의 다른 전략과 병용하는 전략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치료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면역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는 접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면역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과 같은 핵심 과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 면역치료 연구자들은 면역을 ‘더 세게 켜는’ 기술에서 벗어나 면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율하는’ 시스템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기초 면역학 발견과 임상 사례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판단합니다.
|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있었던 뜻깊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연구하면서 가장 뜻깊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완벽하게 계획된 실험이 아닌 예상과 어긋난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질문이 시작될 때입니다. 연구의 진정한 매력은 내가 얻은 데이터에서 출발한 작은 ‘발견’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지식의 공백을 채워 나가며 때로는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던 신념이나 논리에 도전할 수 있을 때 느껴집니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한 연구 역시 실험 과정에서 처음에는 ‘잘못된 결과’라고 여겼던 데이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를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실을 근거로 재해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면역세포가 염증 조직이나 종양에 침투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기전과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연구에서 우연(serendipity)과 집요한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연구에 관한 결과는 추후에 여러분과 논문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 대학 융합의과학원에서의 김항래 교수님의 모습 또한 궁금합니다. 2025년 9월, 교수로 부임하시면서 진행하신 연구나 수업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융합의과학원에는 그동안 뵙지 못했던 전공 분야의 교수님들이 계셔서 저의 연구를 확장할 좋은 기회가 많습니다. 현재는 이곳으로 옮겨와 면역치료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수업의 경우에는 올해 유전자종합연구소에서 면역학 개론에 해당하는 강의를 진행했으며, 대학원에서는 2026년 1학기에 ‘면역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이 수업은 교과서 중심으로 진행하여 면역학 전공 대학원생이나 관심 있는 학생들이 핵심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필요한 수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앞으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어떤 교육자, 어떤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있으며, 이 질문에 답한 후에도 제 생각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천연두 백신의 성공 역사에서 시작된 면역학 공부를 통해 연구자가 되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우연히 교육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자보다는 멘토 또는 선배 연구자라는 호칭이 저에게는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에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Serendipity'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는 과학에서의 발견을 두고, 우연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을 발견으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사고와 집요한 탐구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세렌디피티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충분히 고민하고 질문해 온 사람에게만 의미를 갖는 우연이라는 뜻입니다.
▲ upyourimpact.com, by Chuck Frey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구 과정에서 당장의 성과나 정답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기본을 성실히 쌓으며, 스스로 던진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과정에서 우연은 반드시 의미 있는 발견으로 바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동료가 되고 동료를 찾기를 바랍니다. 긴 연구의 여정 동안 좋은 동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탐구가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길을 열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