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시사와 예능을 넘나드는 연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TV 동물농장'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한 유혜승 PD는
우리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SBS에 입사 후 현재까지 시사교양 PD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사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점에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SBS ‘TV 동물농장’, ‘꼬꼬무’ 유혜승 PD(신문방송학과 09)

  • 시사와 예능을 넘나드는 연출가
Scroll Down

개인주의가 퍼지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어려워진 오늘날, 방송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타인과 사회의 이야기를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그러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 연출자를 소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TV 동물농장>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한 유혜승 PD는 우리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SBS에 입사 후 현재까지 시사교양 PD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사교양과 예능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점에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09학번 유혜승입니다.

14년 동안 SBS 시사교양 PD로 활동하고 있어요.



| PD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등 미디어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지만, 사실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기상 정보를 전달하는 기상 캐스터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미디어 분야 전반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고, 그러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PD라는 꿈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수많은 장르 중 ‘시사교양’을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 비해, 저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PD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시기부터 이 분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 시사교양 PD가 맡는 역할을 제작 전반의 과정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최근 들어 PD라는 직업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고 느낍니다. 과거에는 방송사에 소속된 PD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유튜브 PD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과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어요. PD는 말 그대로 ‘생산자’라는 의미로서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방송사의 PD를 기준으로 보면, A to Z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고민하는 기획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만 드라마나 예능이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작업이라면,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소규모 인원으로 제작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나가면 운전 기사님과 담당 PD, 조연출까지 세 명이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사교양 PD는 기획안을 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촬영, 편집, 자막 작업까지 제작 전반의 일을 두루두루 맡아서 합니다.


▲ 실제 촬영 현장


| PD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시사교양 PD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사교양 PD는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책임져야 하므로 하나하나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그와 함께 저는 시사교양 PD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잘 듣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D를 준비하시는 많은 분이 방송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데 집중합니다. 실제 면접 볼 때도 “세상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죠. 그런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시사교양 PD는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그것을 잘 포착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느낍니다. 물론, PD가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연출해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매우 많아요. 인터뷰하기로 하신 분이 당일에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는 상황에 따라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순발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계획적이기보단 즉흥적인 편이지만, 오히려 그런 성향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그때그때 순발력을 키워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연출하고 계신 <TV 동물농장>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만큼 현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던 경험과 극복 과정이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동물은 사람처럼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서 연출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TV 동물농장>은 스토리텔링 기반의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만큼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크지만, 결국 그 어려움을 이야기로써 극복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며칠에 걸쳐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과정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계획은 구조에 성공하고 치료를 거쳐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결말이었죠. 그런데 촬영 도중에 고양이가 사라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고 탐정까지 고용했는데도 끝내 고양이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원래 의도했던 연출이 틀어져 버린 예상치 못한 상황인 거죠. 이때, 전단을 제작해 고양이를 찾는다는 내용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고양이를 목격한 제보자를 기다리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비록 원래 의도했던 결말과는 달랐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거죠. 이처럼 현장에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새로운 이야기를 짜고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판단하게 됩니다.

동시에 시청자에게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방식은 무엇인지도 고민하는 것 같아요. 말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동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느낍니다. 연출의 영역에서는 언제나 연출과 조작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결국 이러한 판단을 어떻게 내릴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PD의 역할이자 의무인 것 같습니다.


|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다소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이 끝까지 방송을 보게 만들어내는 PD님만의 기획력이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무겁고, 진지하며, 때로는 어렵고 무섭기까지 한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정관념과는 반대로 ‘재미있는’ 시사교양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기획, 연출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이런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나온 기획이었어요. 재미를 느끼려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큼 쉬운 내용으로 풀어야 했고, 그래서 전문가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출연자들을 섭외했습니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아닌 내 주변 사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콘셉트가 그렇게 나오게 되었어요. 기존 시사교양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른 이러한 시도가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갔고 결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재미’보다 ‘의미’를 중시했다면, 오늘날엔 ‘재미’를 더 중시해야 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순수 웃음일 수도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이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 기획의 포인트입니다. 사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안 보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의미’는 전하려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도 거창한 결론 대신 “그날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이라는 질문으로 방송을 마무리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시청자 피드백 중에 가족과 함께 방송을 보며 각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되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이 방송을 통해 누군가는 어머니의 관점에서, 또 누군가는 자식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며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출연진들과 유혜승 PD


| 많은 노고 끝에 방송이 완성되었을 때, “이 일을 하길 잘했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기억에 남는 시청자의 반응이나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연출 당시 YH 무역 사건을 다뤘습니다. 가발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들이 일방적으로 해고되고 탄압받았던 이야기로 사건 발생 후 40여 년이 지나서야 다시 조명된 일이었어요. 방송이 나가고 사무실로 한 여공분이 펑펑 우시면서 전화하셨어요. 이때까지 자신의 과거를 남편, 자식한테도 숨기고 살아왔는데 방송을 보면서 다 털어놓아 평생의 한이 풀렸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한 건 그분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담아서 하나의 이야기로 대중들에게 보여준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제 방송이 누군가의 삶에 남아있던 한을 털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경험은 PD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해당 방송분 요약본 보러가기


| PD님께서 방송을 만들며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이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거창한 신념은 아니지만, 제 연출적 욕심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늘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조금만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 방송이 더 잘 완성될 것 같다는 유혹에 빠지곤 하거든요. 예를 들어 폭력적인 상황을 다룰 때, 시청자들이 같이 공분할 만한 지점을 더 강조하는 것처럼요. 그런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인터뷰이의 진심이 가려지진 않는지 혹은 과도하게 부풀려져서 본래의 맥락이 왜곡되진 않는지 조심스럽습니다. 결국 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되, 동시에 타인을 향한 배려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방송을 만들고 있습니다.


| 앞으로 PD로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콘텐츠나 주제가 있으신가요?

사실 <TV 동물농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물에 대해 잘 몰랐고 관심도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인간은 이 세상에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어졌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 혹은 동물과 동물의 소통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안 들리는 영역이요. 이 분야는 무엇보다도 세심한 관찰을 요구하는 작업이기에 저는 앞으로도 듣고, 관찰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 대학 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PD가 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그때 이건 꼭 해볼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 경험도 있으신가요?

저는 대학 시절에 하고 싶은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후회는 해본 적 없습니다. 이 직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비즈니스 동아리에서의 경험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다. 당시 동아리에서 한국에 거주 중인 이주 여성들을 위한 산후조리 지원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비록 전문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성격적으로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요.

관심이 생기면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교환학생도 제가 궁금했던 나라인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도 돌이켜 보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종종 PD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경험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정해진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이야기해 드리고 싶어요.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으니,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 마지막으로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찰과 애정은 결국 사회를 향한 관심으로 확장된다고 생각합니다. PD를 준비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타인과 사회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먼저 돌아봤으면 합니다. 만약 그 답이 ‘그렇다’라면, 이 일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재미있는 직업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COPYRIGHT ⓒ 2017 SUNGKYUNKWAN UNIVERSITY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