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동사’의 꿈을 찾으세요

‘세계사 교과서에 있는 고대 유적지들을 모두 방문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역사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 마지막 동사의 꿈이에요.

사학과 90 최태성 동문

  • ‘동사’의 꿈을 찾으세요
Scroll Down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90학번 사학과 최태성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90학번 최태성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 학창시절 별명이 사문난적이었어요. 이건 흑역사인데, 저희 과 친구들이 저를 이렇게 불렀어요. 우리 사학과와는 색깔이 다른 이질적인 친구라는 뜻으로 이 별명이 붙었는데요. (웃음) 저는 대학생활 중 취업, 학업 관련 불안감이 커서 새벽부터 중앙도서관에서 토익이나 토플 같은 영어공부를 많이 하고, 학교 생활보다는 학점관리에 열중했었죠. 제가 성대를 다니던 시절은 80년 항쟁의 끝자락에 있어서 여전히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남아있을 시기였고, 제 동기들은 광장으로 나섰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고 도서관에 박혀 있어서 친구들이 ‘사문난적’이라고 별명을 붙여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마음의 빚이 있어요. 친구들과도 함께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고민하지 못하는 대학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과거 못했던 것들에 동참해야겠다고 다짐했었어요. 물론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긴 하지만, 그 생각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살다보면, 제가 그 무리와 함께 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양상이 크게 두 가지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자기합리화를 위해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리는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을 영원히 지지하는 모습으로 남는 거죠. 저는 그래도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속해요. 그 당시 저와 같이 대학을 다녔던 동기, 선후배분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그들의 시간을 내어주었던 것을 저는 아직 잊지 않고, 그들을 영원히 지지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별별한국사 연구소’를 통해서 많은 기부 및 선행을 실천해오고 계신데요, ‘별별한국사 연구소’를 소개해주세요. 

이름의 유래는 정말 간단한데요. 제가 큰 별쌤이니까. 중의적 의미로, 모든 별의별 역사를 다 공부하고. 큰 별과 별님들이 함께 하는 한국사. 이런 뜻으로 ‘별별한국사연구소’라고 이름지었어요. 요즘 한국사 능력검정 시험을 응시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께 공부할 수 있는 영상을 무료로 공유하는 일종의 공장이죠. 제가 공유교육에 관심이 있는지라, 누구나 다 같은 양질의 교육 컨텐츠를 공부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작가로서 책도 쓰고, 방송 출연도 하고, 강연도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한국사 컨텐츠 공장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Q. 성균관대학교 모교 기부, 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유튜브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금 기부 등 선행을 꾸준히 이어오시고 계신데요, 나만의 기부 철학이 있다면?

전 사실 가장 평범하고 계산적이고 어찌 보면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초, 중, 고, 대학생활을 너무 가난하게 살아오다 보니까 본능적으로 계산이 돼요. 저도 그게 싫은데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나한테 유리한건지 아닌지를 계산하게 되는 본능이 있어요. 어린시절부터 생존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에, ‘기부’가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 저에게는 결코 익숙한 것은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서 기부는 천성이 아닌 노력의 결실이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익숙하지는 않지만, 저는 이렇게라도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기부가 삶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게 잘 안돼요. 그래서 저는 ‘기부’라는 약속을 할 때 저를 내세우지 않고 저와 함께하는 수험생들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야 강제성이 생기기 때문이죠. 약속을 하면 그건 누군가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계산적인 저의 본성은 사라지게 되고 저를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혹시나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저도 언젠가는 기부가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진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고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왜 역사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본질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살면서 막연하고 불안할 때 흔들리지 않고 한발한발 전진할 힘이 무엇인지와도 관련이 있죠. 우리의 삶의 여정이 힘든 이유는 끊임없이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하는 과정때문이거든요. 우리는 ‘나는 왜 저걸 할 수 없을까’, ‘나는 왜 저곳에 갈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자꾸 줘요. 타인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부터 불행은 찾아오는 거거든요.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비교는 오로지 자신과 하는 거예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나아졌는지,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는지를 비교하는 거랍니다. 근데 우리는 이걸 잘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괴감마저 생기게 되어버려요. 그렇다면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법, 혹은 나를 보호하고 나를 아껴줄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과거 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거예요. 선조들의 고민과 선택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자신의 고민과 선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습하는 거죠. 따라서, 저는 역사를 배우는 본질적인 목적은 나만의 색깔을 찾고 뚜벅뚜벅 걸어 나갈 힘을 가짐으로써 행복해지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Q. 대립과 갈등이 만연한 현대사회, 역사가 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죠. 각 시대마다 그 시대가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어요. 개항기 시대 때는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일제강점기때는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현대사회에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제가 있어왔죠. 이에 이어서, 저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바로 증오, 혐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이대남, 이대녀 이런 수식어들이 붙으면서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됐어요. 원래 정치라고 하는 것은 갈등과 대립의 요소를 하나로 치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이것을 악용해서 표심만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을 통해서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기에 우리 시대의 과제는 바로 이 증오와 혐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역사는 이 과제에 어떤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까요?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300년 전의 예송논쟁 당시, 상복을 입는 기간에 대한 문제로 격하게 대립하고 심지어 정권교체까지 이뤄져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이 300년 전의 예송논쟁과 매우 비슷하죠. ‘굳이 이런 것 가지고 싸운다고?’ 이러잖아요. 그렇다면 300년 이후 우리의 미래 후손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요? 우리는 여기서 과거를 직시하게 돼요. 역사적 관점은 우리사회의 뜨거운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서,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안목과 시선을 갖게 해주고,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도 도움을 줘요. 이게 바로 역사의 쓸모죠.



Q. “꿈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한다. 그리고 그 롤모델을 역사에서 찾으십시오.” 본인의 저서에서 이런 문구를 쓰셨어요. 최태성 동문의 역사 속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제가 항상 롤모델로 꼽는 분이 있는데, 우당 이회영 선생이에요. 당시 한말,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땅값이 제일 비쌌던 명동은 이회영 형제의 소유였어요.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엄청난 값의 명동 땅을 모두 다 팔아서 만주로 넘어가 3년만에 독립운동기지를 세웁니다. 3년 뒤 그들이 남긴 일기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옆집의 옥수수를 뜯어가는 장면이 등장해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그리고 질문을 하게 됐어요. ‘그냥 시대에 조금만 타협하고 불의를 눈감았다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분들은 이런 인생을 사셨을까?’ 라고 말이죠. 그 답은 이회영 선생이 60년 평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있었어요.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요. 우리는 인생이 한순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들을 인지하고 사는 삶과 그냥 사는 삶은 그 마지막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우당 이회영 선생은 항상 선택의 순간에 스스로 자신에게 항상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생’으로 답하신 분이에요. 제가 감히 그분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저도 그 질문을 심장에 가지고 살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있을 때 매일 다짐해요.  저 역시 이회영 선생의 따라쟁이라도 되고 싶으니까요. (웃음) 그래서 의사, 검사, 교사라는 ‘명사’의 꿈보다, 그 직업을 가지고 우리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동사’의 꿈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Q. 최태성 동문이 소망하는 ‘동사’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에서 15년 정도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동사’는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저는 살아갈 삶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쪽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고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계사 학회에서 강연 할 때, 제일 안타까웠던 점이 학생들에게 사료로서 보여줄 영상이 별로 없다는 거였어요. 물론 지금은 역사를 다루는 유튜브나 여러 방송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학생들의 교과과정에 맞는 영상은 아니더라고요. 그렇다고 직접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모든 학생들이 세계 곳곳의 유적지를 갈 수 있는 형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을 위한 역사 유적지의 생생함을 담은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동사의 꿈이 생기게 되었어요. 바로 ‘세계사 교과서에 있는 고대 유적지들을 모두 방문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역사를 공유하는 것’. 이것이 제 마지막 동사의 꿈이에요. 덕분에 저도 세계 여행도 하고 그 결과물을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공과 사가 합치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해요. 저는 이 동사의 꿈이 저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

성대에서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은 저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어요. 성대에 오고나서 비로소 저는 제 자신에게 “너는 누구야?”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동기, 선후배들과 술도 마시고 과방에서 이야기하면서, 세미나를 하면서, 그들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통해 제가 갖고 있던 껍질을 깨고 비로소 세상밖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생각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성균관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저의 가치관과 신념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에게 성대는 어떤 존재인지, 여러분들이 성대를 다니는 이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시간이 지났을 때, 여러분이 한 번씩 성균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균관의 역사는 조선의 성균관부터 시작됐죠. 조선 성균관 유생들과 성대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그들은 항상 사회가 정의롭지 않을 때 그에 대해 ‘아니야’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사회에 따듯한 시선을 가지고 본인들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그 성균관 600년의 역사를 지금의 여러분도 공유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그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에 여러분들이 지금 다니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 600년의 역사를 이어서 쓰고 있는 자랑스러운 인재들이란 말이죠. 여러분들도 앞으로 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속해서 써 나갔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COPYRIGHT ⓒ 2017 SUNGKYUNKWAN UNIVERSITY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