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하고 엉망인 세상과 사람을 만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은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법학과 87, 박주영 판사
판결문에는 사건의 기록이 담긴다. 그 중 <양형 이유>는 판사의 재량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성란이다. 이곳에 피고인의 회한, 피해자의 눈물, 판사의 고민과 흔적을 쓰는 판사가 있다. 그의 판결문은 법정에 모인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퍼하며 따듯이 안아준다. 사회가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선고를 내리는 박주영 판사를 만나보자.
박주영 판사는 법학과 졸업 후 7년간 변호사로 근무했고 판사로 재직하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을 지내고 있다. 형사재판과 소년재판 등 다양한 재판을 진행해 오며 그가 맡았던 사건을 이야기로 풀어내 『어떤 양형 이유』와 『법정의 얼굴들』을 집필했다. 2022년 <유퀴즈 온더 블록>에 출연했으며 책과 편지를 선물하는 판사로 유명하다.
Q 판사님께서는 판결문 속 <양형 이유>에 피고와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쓰게 되셨나요?
처음으로 양형 이유를 파격적이고 강하게 쓴 사건은, 유퀴즈에서도 언급했고 책에도 있는 2014년 울산 현대중공업 산재 사건입니다. 이런 범죄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쉽고 강하게 각인되는 참신한 표현을 쓰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기사의 제목으로 쓸 수 있거나 짧게 인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강하게 각인될 문장을 구상했죠.
양형 이유 중 문학작품을 인용하거나 은유나 비유를 구사하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양형 이유의 대부분은 사건의 구체적 경위와 관련 범죄에 대한 통계 혹은 형사 정책 자료 등에 관한 것이죠. 제가 신경 써서 양형 이유를 써야겠다고 선별한 사건의 판결을 작성하는 데는 일반 판결보다 시간이 10배는 족히 더 걸립니다. 법원 내부는 물론 법무부와 검찰, 경찰, 형사정책연구원, 여성가족부 등 접근가능한 기관의 관련 자료는 가급적 찾아서 참고합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부분 작성을 마치고, 판결의 맨 마지막에 문학작품 등을 인용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감상적인 표현으로 썼죠. 그 이유는 딱딱한 사회적 원인 분석이나 법적 판단은 기자들이 관심을 잘 가지지 않고 일반 국민들에게 잘 가닿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
Q 양형 이유를 이렇게 쓰시는 것에 대한 내부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은 없었나요?
낯설고 불편해하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무시해 버렸습니다. 양형의 이유는, 법적 판단과는 다소 무관한 영역이고, 판결이 개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에 공개되고 일반의 규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기(公器)이기도 하며, 판사가 대중과 소통하는 공식적이고 유일한 수단이 판결이므로, 이 부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를 보면 문학작품을 인용하거나 문학적 표현이 담긴 판결이 실제 있고, 그런 판결들이 특히 많은 인사이트를 담고 있기도 한 점을 참고했습니다.
▲ 유퀴즈 출연 (디글 유튜브 썸네일)
Q 판사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법정의 얼굴들>에 실었던, 마약을 끊었다며 제게 편지를 보낸 피고인과, 자살을 막아보려고 책과 차비까지 쥐어 준 자살방조미수 사건 피고인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 피고인의 동생이 유튜브 댓글로 잘 지낸다는 안부와 감사 인사를 남겨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 마약 피고인의 편지
<어떤 양형 이유>에 실었던, 시골 할머니 취득시효 소송, 5만 원 즉결 심판의 치매 할머니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친족 강간 사건에서 증인으로 나와 해맑게 웃던 둘째 딸, 소년재판을 할 때 소년원 대신 쉼터로 보내자 확 달라진 아이, 토지수용보상금 사건에서 변호사의 주장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할아버지가 벌떡 손을 들고 일어서서 ‘판사님 국가가 강돕니다’라고 한 사건도 기억납니다. 가장 인상적인 구두변론이었습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추행범이 있었는데(야간의 목격자 진술이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증거가 다소 부족하여 무죄를 할까 고민하다 유죄로 하긴 했는데, 선고 시 그 피고인의 표정을 보고 무죄로 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법정의 얼굴들>에서 다룬 2013년 울산법원에서 공보관할 때 가까이서 보았던 ‘이서현 양 사건(울산계모사건)’과 제가 선고한 아동학대 사건은 잊히지 않습니다. 선고할 때 숨져 간 두 아이의 부검 사진과 현장 사진이 떠올라 목이 메어 정말 힘들었죠. 또 어머니를 43회 찔러 살해한 조현병을 앓던 젊은 피고인 사건도 잊을 수 없고요. 최근에는 눈썹 문신 시술을 무죄로 판단한 사건, 작년 연말 노숙인에게 책과 돈을 준 사건, 올 1월 전세사기 사건에서 최고형(15년)을 선고하고 피해 청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외에도 셀 수 없는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Q 법조인은 반복되는 힘든 사건을 보며 아프지만 조금씩 무뎌지는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법이 냉정하고 딱딱하게 규정되어 있고, 모든 사건의 결론이 실제 그렇게 선고되고 집행된다 하더라도, 판단하는 사람은 매번 아파하고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앞에 서는 재판의 대상들이 매번 새롭게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태해지고 느슨해지는 것은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속성이므로 항상 자신을 경계하고 정신 차리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만으로 스스로 환기하고 긴장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죠. 그건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힘든 사건을 처리하면서 매번 사건에 깊이 몰입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면 몸에서 못 견디겠다고 신호를 보내죠. 저 또한 판사 생활 도중 몸에 큰 탈이 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몰입할 때는 몰입하고, 빠져나올 때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가 여기 있죠.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에 몰입할 수도 없어요.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에 치이며 살고 있지 않나요. 그렇지만 일에 매몰되어 기계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비록 모든 사건에 전력을 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 사건만큼은 그냥 흘려보내면 안되겠다라는 강한 확신이 들 때에는 저는 전력을 다해 몸을 던집니다. 이렇게 아낌없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은 사건들이 100건으로 치면 5건 정도밖에 안 돼요. 결국 나머지 95건은 관성적으로 처리되죠. 제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기도 합니다. 대신 제가 선별한 5건만큼은 저를 완전히 던져 넣습니다. 30분이면 쓸 판결을 30일을 쓰는 식이죠. 그렇게 처리했던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공감과 행동의 연대에 대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세상의 부조리한 모든 일에 대해 항상 공감하고 아파할 수는 없어요.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부서집니다. 100건의 사건 중 누군가 자신의 능력에 맞게 5건을 처리했다면, 나머지 95건은 다른 사람들이 서너 건씩 나누어 맡아 주는 것, 이게 바로 연대입니다. 연대는 우리가 같이 세상을 밀고 있는데 누가 힘들어서 잠시 쉴 때 다른 사람이 맡아 그 자리를 밀어주고, 세상이 후진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Q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책을 쓰는 것이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서 책을 집필하시는 편인가요?
<어떤 양형 이유>는 법률신문 칼럼이 계기가 되어 쓰게 된 책입니다. 평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책도 내고 싶었지만, 퇴직 이후 하려고 생각했기에 처음 출간 제안이 왔을 때 많이 망설였습니다. 물론 그전에 책을 쓴 판사들도 있었지만, 현직 판사가 외부에 재판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낸다는 것이 여전히 큰 부담이었죠. 책이 나왔을 때 외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무척 두려웠습니다. 만약 구설에 오르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많은 분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무척 감사한 마음입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위험부담을 안고 글을 쓰려고 한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형사재판 현장에 있으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나 부조리,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너무 잘 보여요. 그럼에도 법정 외부에서는 이런 점을 알기 어렵죠. 판사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맡을 뿐 상황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점이 무척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혹한 범죄의 실태와 원인, 사회적 관심과 법이나 제도 개선이 얼마나 절실한지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어 판결을 상세히 썼습니다. 그러나 판결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뉴스로 잘 다뤄주지 않을 뿐 아니라, 기껏 언급되어도 짧은 단신으로 금방 소비되어 버리더군요. 그래서 책을 쓰기로 다짐했습니다.
집에서는 거의 글을 쓰지 않습니다. 집중도 되지 않고 주말 빼고는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아 대부분 사무실에서 업무 외 시간을 이용해서 씁니다. <어떤 양형 이유>는 재판을 하는 도중 틈틈이 썼기 때문에 주로 사무실에서 썼고, <법정의 얼굴들>은 절반 정도는 사무실에서 쓰고, 절반은 휴직 도중 아파트 독서실에서 썼습니다.
Q 판사님 책의 곳곳에서 섬세한 문학적 표현에 눈물을 훔치는 독자가 많습니다. 판사님이 글을 쓸 때 가지는 자세가 있을까요?
글을 쓰고 나아가 책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소 관찰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일기든, 메모든 꼭 기록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동기 또한 중요합니다. 저는 공적인 목적 외에도 개인적으로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제 아이들을 아끼고 가족을 사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재판에 임했고,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았는지 같은, 제 삶의 모습을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남겨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이 동기가 더 강했습니다. 제가 책에서 쓴 독특한 은유나 비유 등은 평소 독서나 영화를 보면서 그때그때 메모해 둔 문구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사건에 맞게 지어내서 쓰기도 합니다. 예컨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는 문장은 제가 너무 아내 말을 안 들었던 것을 반성하면서 오래전에 써 두었던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웃음)
Q 법조인의 길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큰 소명감이나 사명감으로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자존심도 상하고 어떻게든 출세해 보려고 적성을 포기하고 법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사실 사법시험은 바로 될 줄 알았는데, 사법시험 1차에서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치기 어리지만, 전 그냥 제 능력만 보여주고 사법연수원에서 자퇴하려 했습니다. 자퇴 이후에 전업 작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글 쓰는 일을 하며 살려 했죠. 그러나 가족을 부양하고 결혼을 하면서 운명적으로 법조계에 남았습니다.
법대도 우연히 갔고, 사법고시도 남들이 한다고 해서 엉겁결에 따라 했습니다. 한 방에 인생 역전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고요. 그러나 계속 1차에서 떨어져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더 이상 미련 두지 않으려고 제일기획이나 LG애드 같은 광고회사 지원서를 대봉투에 넣어 둔 상태에서, 불합격만 확인하고 바로 우체통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1차에 1개도 안 남기고 커트라인으로 붙었습니다. 그때 떨어졌으면, 당시에는 그래도 취업이 쉬울 때라 십중팔구 광고회사를 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아마 하이트 맥주나 소나타 자동차, 소니 카메라 광고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객관식 문제 1개로 제 인생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면, 참 운명이란 게 있구나 싶습니다.
변호사 시절은 그야말로 호구지책이라 처음 법대를 가며 꿈꿨던 약자 보호나 정의 실현, 이런 거창한 가치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법원에 와서야 비로소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기 시작했죠. 저는 많은 사건을 통해 완성된 법률가로 숙련되어 가는 점과 더불어, 약자 보호나 정의 같은 가치를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이 판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변호사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처음부터 이 길이다 하고 오지는 않았지만, 법조계에 있으면서 뒤늦게 소명의식이나 직업의식이 생긴 편입니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나 사회적 약자에 시선이 많이 갔죠.
Q 학창 시절 판사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뭐 특별히 튀지 않고 조용하고 평범했습니다. 내성적 성격이고 선친이 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삼국지 20권짜리를 초등학교 때 한 3번은 읽은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 전집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문예부 활동을 열심히 했죠. 백일장이나 공모전 등에서 상도 제법 받았습니다.
고2 겨울 무렵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대학 가기 힘들겠더군요. 그래서 우선 써클 활동을 깨끗이 접고 입시 준비만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장학금을 많이 주는 성대(4년 장학금에 숙소와 생활비 지원) 법학과로 지원했습니다. 대학 때도 문예반(행소문학회)에 들어갔는데 당시 상황상 문학보다 이념 교육이 많아 금방 탈퇴했죠.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1~2학년 때는 당시 제가 87학번이다 보니 시위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88년에는 학내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그 무렵 당시 재단(봉명 그룹)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단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들어갔던 터라 장학금에 떨어졌고, 89년에 바로 군대를 갔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이후에는 지금도 있는 것으로 아는 양현관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많은 추억도 함께 쌓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다사다난한 대학 생활이었네요.
Q ‘법정의 얼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환대’라고 생각합니다. 판사님에게 ‘환대’란 무엇인가요?
환대는, 같은 인간을 존엄하게 인정하는 행동 방식이며,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자 필수 조건입니다. 범죄와 전쟁, 학살 모두 적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판사의 입장에서 환대란, 타인을 비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년 6개월 정도 소년부 판사로 일했는데, 당시 소년범 아이들을 보며 세상이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따듯한 사람이 아니고 무조건 선처해 주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타인과 동등한 조건에 있어보지 못한 이들을, 타인과 동등한 잣대를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듯한 밥을 먹고 사랑을 받아본 경험, 주변의 배려를 받고 일상이 주는 안온함을 누려본 경험이 있음에도, 그 모든 호의를 배신했을 때, 비로소 그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이죠. 처음부터 보호받을 울타리 자체가 없었던 사람에게, 울타리를 넘고 부수었다고 비난하고 벌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이 아이들은 태어나서 살던 그대로 살아온 것뿐인데 말이죠.
Q 앞으로 판사 혹은 작가로서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판사로서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직에 있는 동안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선례로서의 가치 있는 판결이나 법리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 이후 삶은 참 예측하기 어려운데, 후배를 가르치든, 변호사를 하든, 아니면 어떤 분(문유석 작가)처럼 글만 써서 먹고살든(정말 부러운데 아마 힘들 것 같고), 제가 하는 일 중 적어도 30퍼센트 이상은 개인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 이익과 타인을 위한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글을 계속 쓸 생각입니다. 첫 책인 <어떤 양형 이유>를 쓰고 사실 할 말은 다 했다고 생각했고,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더 책 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덧 세 권을 썼습니다. 밖에서도 글을 계속 쓰는 사람으로 인정해 주더군요. 저도 이제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겼고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경험과 지식을 살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저술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법정 소설은 꼭 써 보고 싶습니다.
▲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전경
Q 마지막으로 법조인의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좋은 루틴을 만들 것을 권합니다. 달리기든, 금연이든, 무언가 중장기적으로 이루어 내려면 루틴이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이게 없어서 일생이 고생입니다. 루틴을 못 만드는 게 루틴이 되었습니다. 이루는 것 없이 항상 제자리입니다. 그렇게 몇 번 되돌아오다 보니 인생이 금방 갔습니다. 저는 좋은 루틴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말 중에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법조인은 누구보다 이 말을 실감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하고 엉망인 세상과 사람을 만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만큼은 잘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균웹진 이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