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는 위축되기 쉽고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외의 것들로 평가받는 세상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간다면,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반드시 성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국어국문학과 80, 고정욱 작가
『가방 들어주는 아이』와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 다수의 대표작을 남긴 고정욱 작가는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동화 작가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과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동화에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Q. 작가님께서 동화를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2년도에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제 단편 소설이 당선됐습니다. 그 뒤로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평생 소설가가 되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셋 두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는 왜 동화는 안 써요?” 이때 우리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를 한 편 쓰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처음 고민한 작품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쓸 때 어떤 동화를 쓰면 좋을까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동화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렇다면 나만의 동화가 뭘까?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잘 아는 걸 써야겠다고 생각해 ‘장애’라는 소재를 처음 들고 온 거죠. 작품의 주인공은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흔히 뇌성마비라고 하죠. 그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져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그렸어요. 차별과 편견도 있지만 그 안에 따듯함과 고마움도 더불어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제일 잘 아는 장애를 주제로 동화를 썼는데 그해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됐어요. 이후로 출판사에서 다음 작품도 써주세요, 다음 작품도 써주세요 하다 보니 어느새 동화 작가의 타이틀을 걸게 되었네요.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동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동화의 매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이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거겠죠. 동화는 교육과 연결을 많이 짓습니다. 문제는 교훈이나 가르침이 대개는 딱딱하죠.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하지 마라’ ‘친구를 때리지 마라’ 등등. 근데 동화는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잔소리에 껍데기를 씌웠어요. 동화도 따지고 보면 잔소리에요. 다만 스토리라는 껍데기를 씌워 아이들이 삼키기 좋게 만든 거죠. 우리 미래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방식으로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작가님께서 이것만큼은 꼭 전하고 싶은 교훈이 있을까요?
저로서는 그것이 바로 ‘장애’에 관한 거죠. ‘장애인은 나와 다르지 않다’ ‘장애인은 나의 친구다’ ‘장애인은 차별하면 안 된다’ ‘편견을 가지고 대하지 말자’ 이런 주제들을 그대로 접하면 딱딱하니까 그 안에 스토리를 만든 겁니다. 지금은 많아졌지만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 나오기 전까지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작품이 문학계나 출판계에 거의 없었습니다. 성인 작품에도 많지 않았어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셔서 장애라는 요소도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구나 처음으로 알린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Q. 작가님에게 가장 의미있는 책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가방 들어주는 아이』를 꼽겠습니다. 많은 독자의 가슴을 울렸고 그래서 가장 많이 팔리기도 한 작품입니다(약 120만부).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요. 장애를 가진 친구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가방을 들어준다는 의미는 꼭 가방뿐만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이해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 삶의 대표작이자 오늘날의 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작품입니다.
Q. 장애인과 함께 나아가는 사회를 위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바뀌려면 장애인을 다양한 개성과 능력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한다', '장애인은 사회복지로 나라의 예산을 갉아먹는다'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장애인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다른 면에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장애인은 사회의 잉여가 아니라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일하는 직장을 보면 이직률이 낮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숙련공이 되는 경우가 많죠. 이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맡기고, 그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사회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Q.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작품을 쓰셨는데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이 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지금까지 약 360여 권의 책을 썼는데 소재 고갈에 대한 걱정은 대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사라졌습니다. 그때 신문방송학과의 '신문 문장론'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기자 출신 오소백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를 하셨는데 그분은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며 생각이나 정보를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신의 메모 수첩을 보여주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항상 메모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을 듣고 저는 스프링 달린 작은 수첩을 사서 그때부터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40년이 넘었고, 대학교 때 작성한 메모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수백 개의 메모 수첩에는 단상, 그림, 기억해야 할 것들, 그리고 작품 아이디어들이 가득합니다. 필요할 때 수첩을 뒤져보면 잊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죠. 이 메모들이 쌓여 제 삶의 기록이 되었고, 소재가 고갈될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둘째는 제가 계속 새로운 사실과 사건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쓰고 싶은 작품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웃음)
Q. 최근 신간 『점퍼』를 출간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은 평소 쓰시는 소설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세요.
『점퍼』는 제가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타임 슬립 기법으로 역사 소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1928년 오산학교로 가게 되어 김소월, 백석, 이중섭 등 여러 인물과 만나 일제강점기를 헤쳐 나가는 작품입니다. 저는 리얼리즘 작가로서 판타지 요소를 이야기에 많이 넣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넷플릭스나 웹툰을 통해 타임 슬립이나 초능력 같은 판타지 소재에 익숙해져 있더군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여 제가 처음으로 타임 슬립을 다룬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동화의 본질은 결국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Q. 작품을 구상하실 때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궁금합니다.
세 가지를 꼽겠습니다. 재미, 교훈, 감동입니다. 재미는 아이들이 읽으려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교훈도 위에 언급한 내용입니다. 많은 동화 작가님들이 재미와 교훈을 결합해 작품을 그립니다. 마지막 요소가 감동인데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가슴을 울리거나 설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저 자신도 감동을 받을 만큼 스토리, 작품성, 전개 등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죠. 이렇게 고민하며 글을 쓰지만 모든 작품이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책은 실패하고 또 어떤 책은 성공하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항상 성적이 좋은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Q. 아이들에게 동화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나요?
동화의 힘은 아이들이 아직 순수하고 맑은 어린 시절, 흰 도화지 같은 생각과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제 작품 속 주인공들이 힘든 일을 이겨내는 장면을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성장하면서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했지" 하고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좋은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큰 자양분이 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힘들 때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고정욱 작가는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도 이와 비슷한 답을 주었다.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이 겪은 삶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이 나에게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해결했는데, 나도 그럼 이렇게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죠. 문학에서 스토리가 주는 힘입니다. 소설은 인생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죠. 우리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나 연극, 전시회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은 대학로 가까이에서 생활한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대학생은 동화를 읽기에 너무 늦었을까요?
아니요. 동화를 읽는 데에 늦은 때란 없어요. 대학생도 얼마든지 동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화는 동심을 담고 있는데, 동심은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죠. 동심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 삭막한 삶을 살게 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학생들이 동화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취업 준비로 힘든 시기에, 동화는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고, 어렵지 않아 리프레쉬 하고 힐링을 할 수 있어요.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그림책이 유행하기도 했죠. 글자는 몇 개 없지만, 그림책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동화를 읽는 데 나이는 상관없어요. 누구나 동화를 통해 동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동화 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백남준 시인의 말씀을 빌리겠습니다. 첫째, ‘매일 쓰고 많이 써라’.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둘째, ‘자신이 쓴 글이나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싸게 팔아라’. 혼자만 자기 글을 읽으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으세요. 특히 칭찬보다 보완할 점이나 조언을 새겨들으세요. 마지막으로 ‘파티에 자주 가라’.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임을 알리세요. 자기 작품을 알리고 또 유명해질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세 번째가 많은 작가님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에요. 작가는 글로써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어디에 나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죠.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저 역시 많이 쓰고, 싸게 팔고, 사람 만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 인터뷰도 이러한 동기 중 하나입니다. 작지만 우리 두 사람의 파티니까요. 작가로 성공하려면 이 세 가지를 실천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항상 젊을 때는 위축되기 쉽고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 외의 것들로 평가받는 세상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간다면,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반드시 성공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대학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학이 여러분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