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항상 다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말씀이나 주시는 배움의 기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쓰기 바랍니다.
영상학과 이우진 겸임교수
인생은 ‘나’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알아가는 여정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 대표이사이자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인 이우진 교수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를 꿈꿨다. 대학에 문을 두드릴 때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3년 후 운명처럼 개설된 영상학과에서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몸담고 싶은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는 2002년 학부 졸업 후 아이코닉스의 콘텐츠개발팀장으로 15년간 근무하며 애니메이션 <태극천자문>,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시리즈를 기획하고, <플라워링 하트>의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2020년에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를 창업하여 <꼬마버스 타요>의 새로운 시리즈와 함께 SNS 중심 캐릭터 콘텐츠 <똥깡아지 메주>와 여아용 애니메이션 <트윙클! 매직 루나펫>, 청소년 대상 판타지 소설 <요괴탐정 강하나> 등을 제작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이우진 교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 <똥깡아지 메주>, <요괴탐정 강하나>
애니메이션 회사 ‘비욘드에이’ 대표 이우진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성균관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영상학과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기획을 가르치고 있어요.
|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 졸업을 하셨어요. 산업 현장에 계시다가, 어떤 계기로 모교 영상학과 교수로 돌아오게 되셨나요?
지금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 반응이 한결같은데요. “말도 안 된다” 해요.
저는 30년 전인 1995년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일어 같은 어학과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해서 어문 계열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너무 어려운데, 배움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많은 고민과 방황이 따랐습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학교에 영상학과가 새로 생긴 거예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순간이었죠.
그렇게 2002년에 영상학과의 첫 졸업생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만 매진해 왔습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저를 가르쳐 주셨던 안상혁 교수님께서 기회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네요. 10년 동안 다양한 학생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는 동시에, 여전히 애니메이션 제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학교에서 가르친 친구들에게 방학을 이용해 현장실습 기회도 꾸준히 제공해 왔는데 그 친구들인 지금은 직원이 되어 함께 일하는 일도 생기고 있네요.
| 성균관대 영상학과 졸업생으로서, 처음 강단에 서셨을 때 감회가 어떠셨나요? 학생으로서 바라본 학교와, 교수로서 다시 바라본 학교는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굉장히 많이 다른데요. 학생이었을 때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20대니까, 모르는 것투성이고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확인하기도 어려워서 항상 불안했어요. 또 제가 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기획자’가 당시에는 흔하지 않고 시작하기 어려운 분야다 보니 가르침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상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비슷한 꿈과 취향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교수님들께 배우는 것도 물론 많았지만,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여러 작업을 함께하면서 ‘더 잘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갔어요.
교수로서 학교에 다시 왔을 때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외부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제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됐고, 그중에서 앞으로 어떤 것을 더 발전시켜야 할지도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가 방황했던 학생 시절에 알았다면, 하는 생각과 지금의 학생들이 저처럼 헤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는 교수로서보다는 선배로서, 그 시절 저도 똑같이 고민했던 것들을 얼른 해소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며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부전공으로 영상학을 택하시고 영상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셨습니다. 노어노문학과 영상학이라는 이색적인 전공 조합이 인상적인데, 교수님의 전공 여정을 들려주세요.
엄밀히 말하면 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사실 고등학생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이런 것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사회악처럼 그려졌고, 부모님께서도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저는 수능을 치른 뒤 진로 상담 자리에서 당시 한국 만화 정점에 계시던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가겠다고, 대학에 안 가겠다고 했다가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실제로 오셨어요.
어머니와 선생님이 제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실 때 저는 이분들을 결코 말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을 갈 테니 대신 이후의 선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당시 사촌 누나가 성균관대 공대를 다니고 있어서 제가 가본 유일한 대학이 성균관대였어요. 제 눈에는 성대가 제일 멋진 대학이었고 그만큼 좋아했죠. 어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침 그때가 러시아 문학이 개방되던 시기라 노어노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니 공부가 어렵고 흥미가 잘 생기지 않더라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했던 건 어학이 아니라 결국 그 언어를 통로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는 콘텐츠들이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복수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 제 학점은 0.3이었어요. 3학기를 다녔는데 학사경고를 2번 받고 이수 학점이 12학점에 불과할 정도로 수업에 오지 않는 열등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드라마틱하게도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집이 목동이었는데 그때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그 통학 시간도 아까워서 학교 앞에서 자취하며 수선관 4층 작업실과 도서관을 오갈 정도로 학업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학생들을 만날 때 꼭 얘기하는 게 스스로에 대해서 탐구하고 공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저도 잘 못했기 때문에 그 여정이 이렇게 길고 지난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만큼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더 열중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 2002년 학부 졸업 후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에 뛰어드셨습니다. 영상학 전공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길목에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제일 좋아했어요. 10대, 20대 때 누구나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저도 많이 즐기다 보니까 급기야 ‘언젠가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그런 방법들을 잘 몰랐을 때는 정말 막연했는데,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하고 같은 길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랑 교류하면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갈 수 있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했지만, 성대 영상학과에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기획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고,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제가 당시 그것들을 보고 느꼈던 감정적 변화를 제가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이 간절했던지 어느덧 20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애니메이션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에요. 우선 제가 어렸을 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워낙 센세이셔널했어요. 또 <H2>라는 청춘 학원물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설익은 청춘의 남녀들이 풋풋한 사랑도 하고 열혈 스포츠를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 중에는 영화 <E.T.>도 있어요. 어렸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던 영화였는데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저는 대중적이고 여러 사람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상업적인 작품을 좋아했고, 지금은 제가 그런 작품들에서 받은 즐거움이나 감동을 제가 만든 작품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khara, <H2>(1992) © Mitsuru Adachi / Shogakukan · TMS Entertainment,
<E.T. the Extra-Terrestrial> (1982) © Universal City Studios LLC & Amblin Entertainment, Inc
|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에서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플라워링 하트>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셨어요. 현재는 <똥깡아지 메주>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계신데, ‘메주’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먼저 그사이에 일어난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소수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는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누구나 만들어서 어디든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작은 취향들을 나누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과는 기획 자체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어떤 과녁을 맞추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흐름을 발 빠르게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 <똥깡아지 메주>(2025), 공식 인스타그램: @mejoo_ddgg
*<똥깡아지 메주>는 숭늉처럼 밍숭하게 생긴 얼굴과 두툼하고 복실한 주둥이를 가진, 오래 보아야 귀여운 아가 똥깡아지 메주를 중심으로 시골에서 일어나는 우엉리 깻잎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그래서 <똥깡아지 메주>*는 예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메주’는 소수의 사람이 되게 작게 기획해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요. 그래서 커다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때그때 보여주려고 해요. <꼬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는 크게 기획한 하나의 영역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 <똥깡아지 메주>는 그런 영역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고요. 그냥 정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서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 SNS에서 유행하는 밈을 소화하는 메주
▲ 11월 9일까지 광장시장에서 열린 메주 팝업스토어 <메주네 집앞 농장>
| 타 인터뷰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작품 내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장면을 내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오신 만큼, 이처럼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아동 애니메이션 제작 철학이 궁금합니다.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걸출한 작품이 회사에서 이제 막 성공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아이들도 다 똑같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재미없으면, 아이들도 재미없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우습게 보고 착각을 해요. ‘애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이 정도면 애들 웃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수업할 때 아동 타겟을 이해하는 세 가지 원칙을 얘기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을 그들도 똑같이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봤을 때도 재미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우리보다는 아직은 매사에 좀 서툴러요. 그래서 우리는 친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상 장면이면, 뭉게뭉게 구름 같은 회상 효과를 정확하게 표시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시간 순서로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이해를 잘 못해요. 그래서 플롯을 너무 복잡하게 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보고 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재미보다 앞서지는 않아요. 대단하게 근의 공식이나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고 ‘친구와 싸웠을 때는 이렇게 화해하면 되겠구나’처럼 작은 삶의 지혜를 배우는 정도입니다. 이 세 가지 정도만 지켜진다고 하면, 제가 만든 작품들보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겸임교수로서 수업 설계에서 현업성을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저는 다른 교수님들처럼 애니메이션을 학문으로써 연구해 온 사람은 아니기에, 어쭙잖게 제가 학생들한테 학술적 영역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좀 실효성이 있는 수업이 되도록 제가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캐릭터애니메이션’ 수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실제 신입 PD로 뽑혔을 때 처음 맡게 되는 일과 만약 그 일을 잘했을 때 기회를 얻어 맡게 되는 일, 이렇게 단계별로 구성해요. 수업 초반에는 ‘타요’라는 프로젝트의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고, 이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는지를 배웁니다. 실제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경험을 중간 과제로 진행하기도 하고요.
기말 과제로는 신입 PD가 기본 업무를 잘 수행했을 때, 정말 희소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어요. 한번 본인이 만들어보고 싶었던 대중적인 작품을 한번 기획해 보는 거예요. 기획서를 쓰고 발표까지 해보는 과정을 기말 과제로 제시하는데,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의 과제물들에 대해 현업 PD들에게 하듯 제가 전부 리뷰를 합니다. 이 과정이 다 실제 현업에서 PD들이 겪게 되는 일인데요. 그래서 현장과 가장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2002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쭉 같은 일을 해 왔으니, 올해로 제가 애니메이션 기획을 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더라고요. 앞서 일하신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인생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쏟아 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감사하게도 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작품으로 큰 사랑도 받아보고, 그렇게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기회도 누렸으니까요.
제가 지금 ‘비욘드에이’를 설립한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내년, 내후년 속속 나오기 시작할 건데, 이 작업들은 제가 예전처럼 혼자 기획하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 심지어는 한때 제자였지만 지금은 동료인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은 기간 제 목표라고 한다면,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보다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꼭 바람대로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회사도 좋은 성과를 얻게 되어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친구들이 많이 합류해 함께 일할 수 있겠죠. 그렇게 성공한 친구들은 또 새로운 후배들에게 저보다 더 큰 베풂이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비욘드에이’가 뛰어난 기획자들이 각자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거예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생 시절부터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학교에 늘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빚을 꼭 갚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겸임교수로서 사실 회사 일만 해도 벅차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나서 하나라도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살고 있는데요. 작지만 제게는 그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오히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교수인 제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면 지금 시대의 학생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배운 것들은 <똥깡아지 메주> 같은 20대를 대상으로 한 작품 제작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또 빚을 지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우리 학생들이 더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데요. 아직은 작은 회사이지만 저도 회사를 열심히 성장시켜, 앞으로는 학생들과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필드에서도 함께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지금 여러분들이 영상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서 한 가지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지금 만난 친구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도 지금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항상 다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말씀이나 주시는 배움의 기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곳에 있더라도 분명히 자기만의 색을 갖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될 거예요.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