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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서계(西溪) 장민성 학우(정치외교 20)
우리는 안정적인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방황하곤 한다. 이 중에서는 소신껏 자기 확신을 따라가는 학우들도 있다.
학생회관 3층 벽면을 지나가다 보면 우리 학교의 슬로건이 붓글씨로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서예가로 일하고 있는 서계 장민성 학우(정외 20)가 학교를 위해 써준 글씨이다. 대부분이 선택하는 길 대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택한 장민성 학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학생회관 3층에 걸려 있는 장민성 학우의 슬로건 서예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정치외교학과 20학번으로 성균관대에 입학하여, 현재는 서예가이자 전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계(西溪) 장민성입니다. 저를 몰라도 제 글씨는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겁니다. 학생회관 3층에 들어가면 정면에 ‘예로부터 나라의 인재는 성균에 모여왔으니, 그대 머묾이 우연이겠는가’라는 슬로건이 쓰인 걸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사실 그 글씨가 총학생회에서 의뢰받아 제가 쓴 글씨입니다. 현재는 서예가로 활동하면서 작품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Q. 본인을 ‘서계’ 장민성으로 소개하셨습니다. 서계라는 호는 어떤 의미인지 소개해주세요.
‘서계’라는 명칭은 성균관대 중앙 서예 동아리인 성균서도회의 지도 선생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성균서도회는 오래 활동한 부원들의 호를 선생님께서 직접 지어주시는 전통이 있습니다.
제가 받은 ‘서계’에서 ‘서녘 서(西)’는 인의예지를 동서남북으로 표현했을 때 의로움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또한, ‘시내 계(溪)’는 저의 평소 성격이 반영된 한자입니다. 저는 평소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의지와 결단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치 계곡물이 빠르고 강하게 흐르며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결국 끝내 바다에 닿듯이, 성균서도회 담당 선생님도 제가 잔잔한 물보다는 굳센 시냇물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제1회 유희강 선생 추모 휘호대회에서 대상을 탄 후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장민성 학우
Q. 지난 3월 열린 ‘제1회 검여 유희강 선생 추모 휘호 대회’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대상을 받은 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이전에도 여러 대회에서 상을 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상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부 대회가 아닌 성인부 대회에서 대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상을 받고 나서는 놀랍고 기뻤습니다.
동시에 유명한 서예가이신 탄주 고범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작가의 책임에 관한 내용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대상이라는 것은 가장 모범이 되는 글씨인 만큼, 저의 실력을 앞으로도 계속 검증해 나가며 다른 후배들에게도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상이라는 자리에 오른 만큼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Q. 해당 대회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의 경우에는 대회에서 얼마나 공부했는지 검증받기 위해 평소에도 여러 서예 관련 대회를 나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우편으로 제출하는 일반 공모전과 달리, 휘호 대회는 대회 당일에 벼루와 명석까지 모두 업고 간 뒤 그 자리에서 작품을 완성해야 합니다. 실제로 2장에서 3장의 종이만 사용할 수 있고, 시간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채점을 받는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일반 대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긴장되는 만큼 공부도 더 많이 된다고 생각하여 휘호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장민성 학우의 수상작 사진
▲제1회 유희강 선생 추모 휘호대회에서 대상을 탄 장민성 학우
Q. 이번 대회에서 돋보이는 본인 작품의 특징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저는 우선 글자의 형태에 차별점을 두기 위해 더 노력했습니다. 사실 아무리 마음에 와닿는 용을 쓰려고 해도, 글자의 형태가 좋지 않으면 도저히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번 대회에서는 행초소라는 글씨체를 선택했습니다. 행초소는 아래나 가로 방향으로 길게 빼는 획이 많아 글씨의 호흡 조절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을 잘 고려하면서 글씨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파격적인 시도를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보통 본문을 다 쓴 뒤에는 쓴 내용과 연월일시, 어떤 장소에서 누가 썼는지를 알려주는 낙관을 쓰는데요. 저는 평소와 다르게 ‘희의산곡부산의(戱擬山谷傅山意)’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한자의 의미는 산곡 황정견과 부산이라는 서예가를 본받았다는 의미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의 글씨를 연구한 뒤 본받았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Q. 서예를 접하게 된 계기와, 그것을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성균서도회에서 서예를 접하면서 생각보다 저와 잘 맞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원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2021년 늦가을, 성균서도회에 들어가면서 저의 꿈이 바뀌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받다가, 얼마 후인 2022년 1월에 바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 전시회를 계기로 서예에 더 깊은 관심이 생겨서, 이후에는 수업도 빼먹으면서 학생회관이 닫힐 때까지 글씨만 쓰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5급 공채 시험을 한 학기 동안 준비했었지만, 서예를 생각하면 공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의 길은 서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글씨를 연습하면서 전시회도 따라다니며 서예가로서의 길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금잔디광장에 마련된 성균서도회 부스 앞에서 글씨를 쓰고 있는 장민성 학우
Q. 혹시 5급 공채 시험을 포기하고 서예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어려운 과정은 물론 많았습니다. 처음 제가 성균서도회의 선생님께 서예가가 되겠다고 말하자, 힘든 길인 만큼 부모님의 허락부터 받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힘든 길이라고 생각하여 반대하기도 하셨고, 저 또한 경제적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서예를 포기했을 때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 서예를 병행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직장을 다니다가도 결국 다시 서예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서예에 대한 저의 마음이 어려움을 이기고, 원하는 일을 빨리 선택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서예와 관련된 동양철학을 배우기 위해 유학동양학과까지 복수전공할 정도로 공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서예 활동에 있어 존경하는 인물이나 롤모델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저를 가르쳐주신 두 분의 스승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스승님은 초헌(初軒) 박주열 선생님으로, 성균서도회에 들어와서 저에게 엄정한 법도와 기초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다음으로는 현재 인사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효산(曉山) 손창락 선생님입니다. 손창락 선생님은 성균서도회의 선배님이시고, 형편과 무관하게 어려운 후배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십니다. 결국 글씨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품과 함께 평가받는 것인데, 선생님은 서예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이 두 분의 인품을 닮고, 글씨는 본받되 닮지 않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스승의 은혜에 대한 최선의 보은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약 4년 만에 대상을 받을 정도로 많이 연습하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서예를 꾸준히 하면서 본인에게 서예란 어떤 존재였는지 한 단어로 설명해 주세요.
저는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서예를 시작한 뒤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서예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도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아 시간이 되면 모범적 글씨를 모아놓은 책인 법첩을 계속 보면서 공부하고 글씨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글씨를 쓰거나, 글씨에 관한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떠올렸을 때, '삶'이라는 것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군복무 중 고산황기로전국학생서예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장민성 학우
Q. 최근에는 서예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는 종로 서촌에서 ‘청한서루’라는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개인적으로 거주하면서, 작품활동과 수업을 함께 진행합니다. 개인 작업의 경우에는 글씨를 연습하는 것과 더불어, 서예의 마무리 단계에 필요한 도장을 파기도 합니다. 그리고 수업의 경우에는 작품활동을 위한 저의 에너지를 모두 뺏기지 않으면서도 수강생에게 저의 가르침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1대1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인사동에서 전각 재료를 판매하는 문방사우에서 일주일에 3번 정도 근무하면서, 매주 수요일마다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성균서도회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 참여하신 ‘검여 유희강 선생 추모 휘호대회’에서 검여 유희강 선생님도 성균관대 전신인 명륜전문학교 출신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서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검여 유희강 선생의 작품을 학교 박물관에서 인상적으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모르는 학우분들도 많겠지만, 600주년기념관 지하 1층에는 학교 박물관이 있는데요. 그곳에서 ‘관서악부’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의 문장만이 아닌 우리만의 문장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문장을 쓴 작품입니다. 유희강 선생의 작품을 본 뒤 저는 한국의 문장을 넘어 내가 스스로 나만의 문장을 지어서 글씨를 써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각하는 모습
Q. 서예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개인전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공부한 내용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대상 작가에게는 자기가 얼마큼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일종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할 계획도 있습니다. 대학원은 우리 학교에서 동양철학 분야를 전공하고, 박사는 중국이나 미국에서 공부할 생각이 있습니다. 유학을 가게 된다면 서예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트랙을 선택하거나, 미국으로 간다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해서 연구하는 쪽으로도 진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의 서예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전 세계가 K-컬처에 주목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서예는 주목의 대상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도 미술관에 가듯이, 서예를 안 하는 사람들도 누구나 서예를 감상하고 향유하는 시대가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학우님처럼 다른 사람들이 흔히 걷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성균인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아마 다들 안정적인 삶과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서예를 일종의 놀이이자 유희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점이 제가 서예를 계속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하지 못하면 너무나 후회될 것 같아 결국 서예가의 길을 선택했어요.
여러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하지 못했을 때 너무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스로 든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기 확신을 가지고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면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회 검여 유희강 선생 추모 휘호대회에서 상장을 받는 장민성 학우
장민성 학우의 수상작:
<본문> 清宵對洒意如何 청소대주의여하
맑은 밤에 술을 마주하니 뜻이 어떠한가
興到無妨醉且歌 흥도무방취차가
흥이 올라 취하고 노래 불러도 무방하리
半壁青燈塵累遠 반벽청등진루원
반벽에 푸른 등불이 비추니 세상사 멀어지고
一庭綠樹雨聲多 일정록수우성다
정원의 푸른 나무에는 빗물 소리가 시끄럽네
<낙관> 戲擬山谷傅山意 희의산곡부산의
황정견과 부산의 필의를 유희하듯 본받다.
丙午春張民星 병오춘장민성
병오년 봄 장민성
취재: <성균웹진> 고권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최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