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은 로맨스 영화일까?
연출 속에 숨은 브로맨스 찾기

  • 463호
  • 기사입력 2021.03.12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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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동인 (건축학과 20)



언젠가 넷플릭스의 ‘로맨스’ 카테고리에는 영화 <불한당>이 있었다카더라. 일부는 <불한당>이 절대 로맨스 영화로 분류될 수 없다고들 한다. 영화 전반에서 두 주연(한재호 역의 설경구, 조현수 역의 임시완)이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도 없었던 데다가, 서로의 인생을 망치기만 했는데 어떻게 로맨스일 수 있냐며 의아해한다. 

하지만 나는 <불한당>에 어떠한 에로스(Eros)적인 사랑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불한당>은 충분히 로맨스 영화로 분류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의 인터뷰만 봐도 그렇다. 변성현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불한당>을 들어 ‘누아르(Noir)의 외피를 한 멜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재호(설경구)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평생을 본인의 뒤통수만을 예의주시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자신을 낳은 어머니에게조차 배신을 당한 재호에게 누군가(조현수)를 신뢰한다는 것은 상당히 낯선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현수를 신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현수를 신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으니 그 혼란스러움은 더 컸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수 역시 경찰이라는 사회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경찰 동료들보다 재호에게 더 기대게 된 본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밖에 없다. 현수와 재호의 관계는 그들이 여태껏 경험해온 모든 관계의 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이 색다름에서 ‘불한당 로맨스 소설’은 출발한다.


재호와 현수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은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불한당>의 스크린에는 노란색 조명과 파란색 조명이 중점적으로 사용된다. 재호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폐건물 부지 일대의 거리는 온통 노란 빛이다. 재호의 성공과 죽음이 이 노란 빛의 거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노란색의 조명은 재호를 상징한다. 반대로 현수는 피 튀기는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과감한 파란색 수트를 갖춰 입고 가는 인물이다. 현수가 재호를 죽인 후 현수만이 남겨진 노란 빛의 거리에 푸른 새벽이 오는 것도 파란색은 현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장인물을 노란색과 파란색에 비유한 경우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서도 볼 수 있다. <해피투게더>에서는 등장인물 하보영(장국영)을 파란색으로, 장(장첸)을 노란색으로 빗대었다. 등장인물 여요휘(양조위)가 보영과 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마음을 깜빡이는 신호등의 노란불과 파란불로 연출한 것이 그 예시이다. 어쩌면 <불한당>이 <해피투게더>의 연출을 오마주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색상 연출을 토대로 현수와 재호가 동료 이상의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두 가지다. 


먼저 설경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단독 포스터를 살펴보면, 임시완의 단독 포스터와 다르게 타이포그래피가 초록색으로 적혀있다. 초록색은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였을 때 나오는 색으로, 온통 노란색뿐이던 재호의 삶에 현수(파랑)라는 인물이 뛰어들었음을 상징한다. 

두 번째로는 노란색의 재호와 파란색의 현수 사이에 끼어든 빨간 ‘욕망’의 존재이다. <불한당>에서는 욕망과 관련된 사물을 빨간색으로 표현한다. 재호의 스포츠카, 러시아 클럽의 붉은 조명, 재호가 베어문 붉은 사과는 모두 욕망의 상징물이다. 재호(노랑)와 현수(파랑)는 서로에게 각자의 기대(빨강)를 투영해 그들의 관계를 완전(삼원색)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물론 둘 사이에 아슬아슬한 기대감이 끼어든 만큼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엔 노란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온통 뒤섞여 검은색의 결말을 초래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서로가 그저 특별한 관계일 뿐 영화를 ‘로맨스’로 분류하기에는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것은 바로 영화 속 ‘반(反) 동성애적’ 코드다.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여자를 만나는 현수의 모습, “제가 그런 쪽(동성애) 취향은 아니라서요.”라고 말하는 현수의 대사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현수의 이러한 이성애적 태도는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며 현수의 진짜 마음을 의심하게끔 만든다. 


실제로 1996년 미국의 학술지 <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 에는 < Is Homophobia associated with homosexual arousal? (동성애 혐오증이 동성애적 흥분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제목의 연구가 실려있다. 

연구에 따르면, 강한 호모포비아적 성향을 띠는 표본은 그렇지 않은 표본에 비해 동성애 성적 자극물을 보고 더 큰 생리적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동성애 혐오적 성향을 겉으로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부인하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다. 해외의 <글리>와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와 같은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겉으로 동성애 혐오적 성향을 띠는 등장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해외에서는 클리셰로 굳어진 설정인 만큼 <불한당>의 재호와 현수가 보여주는 의도적인 이성애 코드는 그들의 관계의 형태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끔 한다.


물론 <불한당> 속 주연의 관계가 강한 동료의식을 기반으로 하는지, 애정을 기반으로 하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은 없다. 하지만 공식적인 해석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방증한다. 영화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 만큼, 영화의 본래 의도를 왜곡했다고 보기보단 ‘이런 해석도 있구나!’하며 읽어주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