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에 ‘윤며들다’

  • 471호
  • 기사입력 2021.07.14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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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소연


지난 4월, 또 한 번 대한민국 영화계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미 미국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의 유명 해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유력 후보로 점쳐졌지만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 한국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았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66년 데뷔 이후 55년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배우 윤여정의 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


배우 윤여정은 1971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3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화녀’에서 시골에서 상경한 부잣집 가정부 명자 역을 맡아 당시 20대 여배우로서는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스크린 데뷔작으로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과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약 10년간의 미국 생활 이후 한국에 돌아와 ‘바람난 가족’, ‘돈의 맛’, ‘하녀’ 등에 출연하며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의 어머니, 할머니가 아닌 새롭고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 ‘계춘할망’에서는 잃어버린 손녀를 12년만에 찾은 할머니 계춘 역을 맡아 따뜻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으로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출연해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을 연기하며 우리 사회의 또다른 ‘할머니’의 모습을 표현했다.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는 주인집 할머니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현재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역할은 ‘미나리’의 순자 역이다. 영화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정이삭 감독의 작품이다. ‘미나리’에서 윤여정은 미국으로 이주한 딸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건너간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미나리에서의 윤여정에 대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미나리에 그런 얘기 나오잖아요. ‘할머니 같지 않다’라는 게 어떻게 보면 연기에 관한 얘기처럼 들리기도 해요.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가 할머니를 연기한다 싶으면 할머니의 어떤 자애로움을 연기하는 패턴이 있고 클리셰가 있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굉장히 벗어난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윤여정 씨는 그런 역을 할 때조차도 그 개인 자체로 들어가는 뛰어난 개성 있는 연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이 분이 갖고 있는 굉장히 귀감이 되는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전형적인 할머니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배우 윤여정의 매력이 아닐까?


◆ 화제가 되고 있는 ‘윤여정 어록’


‘윤여정 어록’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배우 윤여정은 센스와 재치를 갖춘, 동시에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어투로 주옥 같은 말들을 남긴다. 영국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는 ‘고상한 체’한다고 알려진 영국인들이 좋은 배우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고 영광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에 대한 소감과 인터뷰도 화제가 되었다. 


수상소감에서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마침내 만났네요. 내가 털사에서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시상식장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또한 글렌 클로즈 등의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언급하고 자신이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미국 뉴욕타임스는 윤여정의 수상소감을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뽑으며 딱딱한 시상식에서의 뜻밖의 선물이었다며 호평했다. 지금까지 각종 예능 프로그램, 인터뷰, 시상식 등 다양한 자리에서 들려준 ‘윤여정 어록’은 동료 배우들에게, 젊은이들에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 웃음, 용기를 준다. 그 중 몇 개를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되죠.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tvN ‘윤식당’


“60세가 돼도 인생은 몰라요.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야.” -tvN ‘꽃보다 누나’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 -SBS ‘집사부일체’


“최고라는 말이 참 싫다. 1등이고 최고가 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모두 다 최중이 되고 같이 동등하게 살면 안되는가.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기자 간담회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야. 근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극복했어.”-tvN ‘현장토크쇼 택시’




◆ 젊은 세대들의 공감


배우 윤여정은 2013년 tvN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시작으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의 뛰어난 영어 실력과 후배들을 향해 애정 담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따듯한 모습이 돋보였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에 메인 셰프로 등장했다. ‘윤식당’은 해외에서 작은 한식당을 차리고 가게를 운영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70대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새로운 메뉴, 레시피 개발에 열중했다. 특유의 위트 있고 ‘쿨’한 말투로 젊은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젊은 세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어진 ‘윤식당2’, ‘윤스테이’까지 출연하며 흥행을 이끌었다.



최근 10~20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 ‘지그재그’가 윤여정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며 화제가 되었다. 보통 쇼핑 플랫폼은 젊은 배우나 아이돌 등을 광고 모델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편견을 깨고 윤여정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광고 잘못 들어온 거 아니니?”라는 윤여정의 말을 담은 광고는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하는 맥주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윤여정의 ‘여정스러움’이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까지 사로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윤며든다’라는 말을 아는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윤여정에게 스며든다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배우로서 다양한 필모그래피, 센스 있고 위트 넘치는 입담,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윤여정의 모습에 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기존 윤여정 배우의 팬뿐만 아니라 MZ세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윤여정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응원을 보낸다. 앞으로 국내와 해외 무대에서 배우 윤여정이 보여줄 다양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그리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윤여정에 ‘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