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을 수 없는 유전의 사다리: 영화 <가타카(1997)>

  • 466호
  • 기사입력 2021.04.27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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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는가? ‘개천에서 용 났음!’이라는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걷다 보면, 기대한 것과 달리 용은 커녕 다 무너져가는 ‘용문각’ 중국집이나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개천 용’이란 사이비 교리만큼이나 신빙성 없는 표현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아무리 ‘용’의 자질을 갖췄던들, 우린 능력과는 별개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어떤 선천적인 요소들에 의해 평가 당한다. 혹은 개인의 선천적인 배경이 개인의 능력 개발을 막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랜덤의 능력치를 가지고 잉태 당한 이상, 개인은 변화시킬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낱낱이 평가 당하고 기회를 제한당한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문화읽기에서는 넘을 수 없는 계층의 사다리를 유전자에 빗대어 표현한 영화 <가타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타카>는 외부에 의해 규정된 본인의 한계 너머에 도전하는 꿈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가타카>에서 ‘개천’의 역할을 하는 선천적 배경은 바로 유전자다. 개인의 궁극적인 뿌리인 유전자가 가진 형질들은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 살아갈 것인지, 그 엘리트 계층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닦는 청소부가 될 것인지를 결정한다.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지구의 현실에 회의를 느끼며 이런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우주로 가기를 꿈꾸지만, 그는 열성 인자이기 때문에 ‘가타카(우주항공회사)’에 입사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면접도 보기 전에 열성이라는 이유로 입사를 거절당한 그가 하는 독백이 인상적이다. “진짜 이력서는 내 핏속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타카>의 오프닝에는 우리 몸의 사소하고 작은 존재인 손톱과 머리카락, 그리고 각질 등이 크게 확대되어 바닥에 충돌음을 내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리카락은 밧줄처럼 굵게 보이도록 확대되어 밧줄과 같은 인상을 준다. 새로운 시각에서 일상의 사물을 다르게 본다고 함은,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평소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사소하고 작은 손톱과 머리카락이지만, 영화 속 세계관의 인물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들이다. 손톱과 머리카락에는 그들의 유전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 속 우주항공회사의 기업명이기도 한 ‘GATTACA(가타카)’역시 영화 속 세계관이 유전학적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음을 함의한다. 인간 DNA의 염기배열은 ‘A(아데닌)’, ‘C(시토신)’, ‘G(구아닌)’, ‘T(티민)’ 네 글자만을 이용해서 표기하고, 이 네 글자의 조합의 총합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이다. ‘GATTACA’는 인간 염기배열의 경우와 같이 알파벳 ‘A(아데닌)’, ‘C(시토신)’, ‘G(구아닌)’, ‘T(티민)’로만 이루어진 단어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기능을 한다. 또한,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름과 제작사의 이름(사진 참조)에서도 알파벳 ‘A’, ‘C’, ‘G’, ‘T’만을 볼드처리하여 영화 속의 유전자 중심적 세계관을 드러냈다.


이 밖에도 여러 미학적 미장센들을 토대로 유전자 중심적 세계관을 드러난다. 제롬과 빈센트가 함께 사는 집의 계단은 나선형으로, DNA의 뉴클레오타이드가 꼬여 만들어지는 구조를 닮아있다. 빈센트는 제롬의 유전적 신분을 빌려 ‘가타카’에 입사하게 되는데, 지하에 남겨진 제롬과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올라 회사로 출근하는 빈센트의 모습은 빈센트가 유전자의 탈을 쓴 계층의 사다리(나선형 계단)를 통해 사회에 진출했음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경우이다. 다시 말해, DNA를 닮은 나선형 계단은 일종의 계층적 통로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사용되었다.



또, 광활한 자연(혹은 대형 구조물)에 대비되는 작은 인간 존재의 모습을 비추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 존재가 아무리 유전자를 토대로 서로를 구분짓고 재단한들 드넓은 자연 앞에서는 동등하게 작은 존재임을 상징한다. <가타카>는 이런 연출을 통해 영화 속 유전자 중심적인 세계관의 무의미함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현실세계에서 영화 속 ‘유전자’의 역할을 하는 여러 기준들의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한다.


영화 오프닝에서는 성경 전도서의 7장 13절 “consider God’s handiwork; who can straighten what He hath made crooked?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을 언급하는데, 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우성형질의 인간을 재창조하며 인위적인 위계질서를 만드는 영화 속 인간 존재를 비판한다. 영화 속 ‘가타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주의 운행은 멈출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우주 원리를 거스른 인간 형질의 개조에 편승한 모순적인 존재이다. 빈센트와 제롬은 이러한 인류의 지배적인 논리를 거스르는 인물들이며, 세상의 인위적인 기준들이 개인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빈센트는 열성 형질의 한계를 딛고 마침내 우주선에 오르게 된다. 빈센트는 우주선에 올라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며 “우리 몸의 원소는 한 때 별의 일부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로 떠나는)우리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며 유전자로 평가 받는 세상을 떠나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출처로 돌아간다. 제롬은 빈센트가 떠난 후 자살한다. 제롬 역시 샤워부스에서 불타 죽음으로써 존재의 시발점인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두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가타카>는 유전자 중심적 세계관을 가진 단순한 공상과학영화가 아니다. 우린 영화 속의 ‘유전자’가 현실세계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성찰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선천적이고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와 같이 유전적 형질일 수도 있으며, 성별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으며, 개인이 가진 영재성일 수도 있다. <가타카>는 그 기준이 단지 유전자일 뿐, 그 선천성이 제한하는 한계에 초점을 놓고 본다면 오늘날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타카’ 속 체제에 편승한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는가? 자신이 개천에서 살고 있지 않다고 감히 확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