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의 역사와 현재

  • 502호
  • 기사입력 2022.10.31
  • 취재 이재윤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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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단 두 번으로 그 해의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 패션 위크.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파리 패션위크일 것이다. 지난 9월 26일부터 열린 파리 패션위크는 수많은 셀럽들의 참석과 외신들의 뜨거운 관심을 샀다. 세계 4대 컬렉션 중 가장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파리 컬렉션. 게다가, ‘파리지엔’, ‘프렌치룩’ 이라는 단어까지 있을 정도로 패션에 있어서 파리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필자는 여기서 이런 의문점이 든다. 파리는 어떻게 해서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이번 킹고 스타일에서는 파리 패션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 패션쇼란?

패션위크는 1년에 2번 봄/여름(S/S), 가을/겨울(F/W) 각 시즌의 반년전에 개최되는 패션쇼다. 뉴욕에서 출발해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일정이 마무리되며, 수많은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시즌 컬렉션을 선보인다. 18세기 초, 패션쇼는 새로운 컬렉션의 제품을 구매할 예비 고객들을 위한 제한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19세기 초부터 오트 쿠튀르의 장인,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 Worth)가 패션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제품을 상류층 귀족에게 선보이게 되면서 현대적 형태의 패션쇼까지 역사를 이어오게 되었다.


패션쇼 중 특히 유명한 것은 파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이다.


먼저, ‘오트쿠튀르’ 프랑스의 전통적인 장인정신을 계승하는 패션쇼로, 계절에 앞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면 이것이 전세계 패션 유행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표가 된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오트 쿠튀르 자격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1910년부터 1950년까지 가브리엘 샤넬, 폴 푸아레, 크리스찬 디올, 피에르 가르뎅, 이브 생 로랑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귀족 상류층을 주 고객으로 하여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현재 매 시즌 열리는 오트쿠튀르는 직접적인 의상판매 보다는 트렌드를 결정지을 만한 디자인의 디테일과 소재활용, 브랜드의 정체성, 방향성을 보여주는 예술작품을 선보임으로써 패션을 예술로 승화하는 정신을 보여준다.



반면, ‘프레타포르테’ 는 영어로 ‘Ready-to-wear’ 이라는 뜻으로, 손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오트쿠튀르와는 달리 공장에서 정해진 규격사이즈로 만든 기성복을 선보인다. 오트쿠튀르보다 상업적인 특성이 강하고,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에 평상복의 특성을 더한 제품들이 주가 된다. 샤넬, 디올, 발렌시아가 등 오트쿠튀르 브랜드들뿐만 아니라 자크뮈스, 캘빈클라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톰포드, 미우치아 프라다 등이 있다. 한편, 오트쿠튀르, 프레타포르테 두 컬렉션을 모두 개최하는 곳은 파리가 유일하다.



◈ 파리는 어떻게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는가?

패션은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가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거 서구 유럽 패션 트렌드는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의 국가들이 선도하였으나, 17세기 후반 루이 14세 왕정의 막대한 영향력에 힘입어 프랑스가 그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이후, 스타일화가 그려진 *패션플레이트가 성행하면서 파리 패션은 유럽패션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프랑스 혁명 이후, 패션 흐름은 잠시 주춤했으나 나폴레옹 제정시대 파리 패션이 되살아났고,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영향으로 당시 왕실, 귀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는 대중에게도 큰 파급효과를 미쳤다.


*서양 옛날 패션잡지에 삽입된 옷과 트렌드의 전달매체


찰스 프레데릭 워스와 그의 맞춤제작드레스


프렌치 패션플레이트 컬렉션 중 일부(1882, 1875)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맞춤 제작 의상 중심이었던 과거 파리패션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공장에서의 대량생산 공정과정을 거친 대중적인 의상에 대한 수요로 인해, 오트쿠튀르의 기원지라고 할 수 있는 파리는 프레트포르테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런던, 뉴욕, 밀라노, 도쿄 패션과 경쟁하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은 파리를 생산체계의 개선과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에 주력하도록 변화시켰다. 파리는 패션의 국제화와 특정 브랜드의 막대한 영향력보다 개인의 스타일이 중시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오트쿠튀르의 중심으로서 여전히 세계적인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


◈ 2023 S/S 파리 패션위크

세계 4대 패션위크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파리 패션위크. 이번 2023 S/S 컬렉션에서도 창의성과 우아함을 선보인 브랜드 패션쇼와 많은 셀러브리티들의 참석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 디올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했던 디올 컬렉션은 모던함과 위트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쇼가 시작되고 동화를 연상케하는 세트에서는 네덜란드의 안무가 겸 댄스 듀오 남매(임레 반 옵스탈, 마른 반 옵스탈)가 퍼포먼스를 펼치는 가운데 쇼가 진행되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드레스, 코르셋, 후프 스커트, 장갑, 니삭스 등 고전풍 아이템과 블랙 레이스, 자수, 크로셰 등 디테일을 추가하여 우아함과 세련미를 더했다. 화려한 색상보다는 블랙과 화이트, 베이지 색상을 중심으로 과거 귀족들의 의상을 재현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파리의 지도가 프린트된 코트와 드레스는 과거 1950년대 디올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프랑스 패션 역사를 주도하는 디올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 발렌시아가


이번 발렌시아가 컬렉션의 키워드는 ‘진흙탕 쇼(The Mud Show)’ 였다. 눈으로 뒤덮힌 지난 2022 F/W 컬렉션의 연장선이 된 이번 컬렉션에서는 어두운 동굴을 연상케 하는 세트에 진흙을 사용하여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표현했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애정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멍과 진흙 투성이인 모델들의 런웨이를 통해 현대사회에 팽배한 불평등, 파시즘의 귀환, 핵전쟁의 위협, 자연재해 등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특히, 포테이토 칩 봉지를 그대로 따라 만든 레이 칩 가방, 손부터 어깨까지 넣는 장갑형태의 글러브 백 등 위트 넘치는 액세서리가 인상적이다.


▶ 코페르니


디자이너 듀오 세바스티앵 마이어와 아르노 베일런트의 브랜드 코페르니는 매 시즌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주제를 담은 컬렉션을 내놓기로 유명하다. 이번 2023 S/S 컬렉션에서도 패션과 테크놀로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피날레에서 모델 벨라 하디드가 누드 속옷만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고, 두 진행요원이 뿌리는 ’페브리칸’ 섬유 스프레이는 순식간에 화이트 슬립 드레스로 변신했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넓힌 이 시도는 패션계에 오랫동안 기억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