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에 존경을 담다 : 오마주

  • 463호
  • 기사입력 2021.03.07
  • 취재 박기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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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명한 드라마, 영화에서 한 번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이 다른 작품들에서 비슷하게 나오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 중 일부는 이전의 작품을 베꼈다는 오명을 쓰게 되지만, 일부는 반대로 극찬을 받으며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전자를 ‘표절’이라 하고, 후자를 ‘오마주’라고 한다. 프랑스어의 ‘Homage’라는 단어로 ‘존경’을 의미하는 오마주는 주로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며, 존경하는 작가와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와 비슷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다. 오마주와 같이 언급되는 창작 방식인 패러디는, 오마주와 마찬가지로 기존 작품의 특징적인 부분을 모방하는 것이다. 패러디는 주로 웃음을 주는 장치로 사용되어 관객이 패러디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반면, 오마주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표절과 식별이 쉽지 않은, 상대적으로 모호한 개념이다. 이번 학술에서는  오마주란 무엇인지 대표적인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오마주의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

1994년 <펄프 픽션>으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할리우드에서도 이름난 영화광으로 영화사에 대한 조예가 깊고 과거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그는 영화적 지식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며 과거 작품들을 오마주 했고, 특히 동양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저수지의 개들(1992)>, 과 <킬 빌>시리즈(2003, 2004)를 들 수 있다. 킬빌은 그의 데뷔 작품인 <저수지의 개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경찰이 조직 내에 잠입해 수사를 하는 작품의 기본적인 콘셉트와 작품의 명장면 창고 장면과 마지막의 세 명이 동시에 서로를 겨누는 장면은 언더커버 영화의 원조 격인 <용호풍운(1987)>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인터뷰에서 ‘거의 베낀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항상 언급되는 킬 빌 시리즈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오마주만으로 구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우마 서먼이 입은 노란색 트레이닝 복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1978)>에서 이소룡이 입은 노란색 아식스 트레이닝 복과 유사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배틀로얄(2000)>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킬 빌> 1부에서 등장하는 ‘고고 유바리’라는 캐릭터는 배틀로얄의 ‘치쿠사 타카코’를 연기한 쿠리야마 치아키가 연기했으며, 이는 배틀로얄의 캐릭터에 대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의도적인 오마주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외에도 <킬 빌>의 대표적인 격투 장면들은 <레이디 스노우 블러드(1973)>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차용한 것이다. 서사보다는 시각적인 연출을 중시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연출 스타일에 비추어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에서 재해석하며 그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은은한 오마주, 라라랜드

2017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모두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라라랜드(2016)>는 데이먼 샤젤 감독의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20세기 초반에 전성기를 맞았던 여러 뮤지컬 영화들을 오마주 하며 그들에 대한 존경을 드러낸다.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도입부 시퀀스에서 배우들의 군무는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57)>를 떠올리게 한다. 세바스찬이 미아와 함께 걷다가 가로등 기둥을 잡는 장면은 <싱잉 인 더 레인(1952)>의 명장면을 은근히 떠오르게 하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두 주인공이 탭 댄스를 추는 장면은 <탑햇(1935)>에서 남녀가 탭 댄스를 추는 장면을, 미아가 한적한 밤거리를 거니는 장면은 <쉘부르의 우산(1964)>과 겹친다. 실제로 라라랜드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탑햇>, <싱잉 인 더 레인>과 같은 작품들을 관람했다고 한다. 이렇게 뮤지컬 영화에 대한 은근한 오마주뿐만 아니라, 라라랜드는 고전 영화에 대한 오마주도 보여준다. 데이먼 샤젤 감독은 제임스 딘이 출연한 작품인 <이유 없는 반항(1955)>의 한 장면을 등장시켰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유 없는 반항을 보다가 이유 없는 반항 속 장소인 그리피스 천문대로 향한다. 데이먼 샤젤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에 비해 직접적으로 장면을 오마주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과거 작품들에 대한 은은한 오마주를 통해 효과적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틀즈에 대한 강렬한 오마주, 오아시스

‘거지도 Wonderwall은 부를 줄 안다.’ 영국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제2의 국가로도 불리는 밴드 오아시스의 대표곡 ‘Wonderwall’에 대한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브릿 팝’ 열풍을 몰고 온 오아시스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비틀즈’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비틀즈와 오아시스는 각각 리버풀과 맨체스터 지역의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점에서 음악적 성향을 같이한다. 이러한 그들의 음악적 색채는 동시대 영국의 밴드 ‘블러’와 대척점에 서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이들의 관계는 1960년대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라이벌 관계를 떠올리게 하며 오아시스를 제2의 비틀즈로 인식되게 했다. 1994년 발매된 그들의 데뷔 앨범의 ‘Supersonic’의 기타 솔로 부분은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와 유사하다. Supersonic 외에도 그들의 대표 곡 ‘Don’t Look Back In Anger’의 전주는 역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Imagine’의 피아노 전주를 차용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Wonderwall’의 곡명은 조지 해리슨의 앨범 ‘Wonderwall Music’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들은 청각적 요소 외에도 뮤직비디오라는 시각적 요소로 비틀즈를 오마주 했다. Supersonic의 뮤직비디오는 비틀즈의 애플사 옥상 공연을 오마주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Wonderwall의 뮤직비디오에도 비틀즈의 3집 앨범 ‘A Hard Day’s Night’의 표지를 오마주한 흔적이 있고, Stand By Me의 뮤직비디오에도 비틀즈의 포스터가 등장한다. 이렇게 청각적인 요소와 시각적인 요소에서 모두 비틀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비틀즈를 모방하고 그들에게 받은 영향을 모두 인정했다. 음악과 콘셉트에서 비틀즈를 모방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오아시스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틀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그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오마주와 표절, 그 모호한 경계에 대하여

이렇듯 우리는 예술에 오마주라는 요소가 얼마나 잘 활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마주라는 요소에도 비판점은 존재한다. 오마주를 잘 활용한다고 해도 그 본질은 결국 모방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창작자가 오마주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표절과 다름이 없게 되며 창작에 윤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오마주임을 밝힌다 해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재해석해 자신만의 색채를 입힐 때 비로소 오마주임을 인정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마주와 표절은 구분하기 모호한 개념이다. 오마주라는 이름에 숨어 예술과 창작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오마주와 표절을 잘 분간할 수 있는지를 작품의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대표 이미지: https://extmovie.com/movietalk/22803267

우마 서먼: https://www.indiewire.com/2018/02/kill-bill-feminist-quentin-tarantino-uma-thurman-1201925103/

이소룡: https://cilius.tistory.com/235

라라랜드: https://www.businessinsider.com/la-la-land-musical-references-2017-2

오아시스:https://www.nme.com/news/music/noel-gallagher-on-oasis-whats-the-story-morning-glory-nothing-was-ever-the-same-all-fucking-hell-broke-loose-2767021

비틀즈: https://www.udiscovermusic.com/stories/beatles-abbey-road-streets-ahead-time/


기사 출처

Kill Bill References Guide/Japanese Cinema - The Quentin Tarantino Archives

쿠엔틴 타란티노-예술미와 현실미의 혼합,  -  제럴드 피어리 엮음

'라라랜드'에 대해 당신이 알면 좋을 몇가지 (hankookilbo.com)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1211186404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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