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
조르바를 통해 자유와 행복을 말하다.

  • 477호
  • 기사입력 2021.10.10
  • 취재 박기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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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오래되고 높은 가치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마찰과 충돌의 대부분은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유가 부재한 상황을 경계하고, 때로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개인들이 연대하기도 한다.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들 속 우리는 행복함을 느끼고 삶에서 언제나 자유를 만끽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켜야 하는 대상 이상으로 자유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이번 학술 섹션에서는 자유, 행복,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지를 제시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앞선 물음에 대한 하나의 시각을 읽어보려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무엇인가?

그리스인 작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작품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존 인물로 카잔차키스와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그와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운영한 갈탄 광산에서 고용된 일꾼과 고용주로 만났다. 카잔차키스는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조르바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와 조르바가 같이 지내면서 생긴 일화들을 다룬 작품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속 이야기

-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야기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가진 ‘나’와 ‘조르바’가 채워 나간다. ‘나’는 독서광이자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 사유하고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나’는 세상의 목적에 대해, 육체와 영혼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영원에 대한 염원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 반면 ‘조르바’에 대한 ‘나’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조르바는 욕망을 금기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즐기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택했다. 작품 속에서 조르바는 버찌에 집착하게 된 순간 버찌를 한 소쿠리 사서 구역질이 날 정도로 먹고 나서야 비로소 버찌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게 됐다. 조르바는 ‘나’와 같은 지식인은 아니다. 조르바는 육체와 정신의 요구대로 행동하는, 순간에 대응하는 삶을 살아가고 이는 ‘나’에게 매혹적인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조르바의 삶은 ‘나’로 하여금 보편적이고 틀에 박힌 삶에 회의를 느끼고 벗어나게 한다. 현대의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진보했지만, 그 속에서 커진 욕망들은 스스로를 압박하고 지속적으로 욕망의 굴레 속에 갇히게 한다. 조르바는 ‘나’에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라고 말한다. ‘줄’은 삶을 얽매이게 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의미한다. 줄에 묶이지 않고 현실의 욕망을 초월한 상태, ‘세상을 훨씬 앞질러 가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가 설명하는 조르바의 삶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삶이고, 이것이 카잔차키스가 생각한 자유로운 삶이다.


- 행복

니체 철학에서 인간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삶은 자아실현의 과정이며 자기완성으로 종결되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카잔차키스는 어떤 삶을 행복한 삶으로 봤을까? 작품 속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철학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행복에 도달하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간의 역사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적인 욕망과 자유와 도전을 갈망하는 역동적 욕망이 충돌하고 타협하는 과정이다. 두 욕망 중 하나만을 추구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고, 적절히 조화를 이뤄 삶의 균형이 맞춰질 때 인간은 행복을 느낀다. 작품 속에서 ‘나’는 성탄절 축제를 즐긴 후 해변을 거닐며 느끼는 감정을 행복으로 표현했다. 도덕과 윤리적 기준, 인간의 본성 그 사이의 균형을 찾은 ‘나’는 비로소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카잔차키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을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선택된 만족할 만한 삶을 강조한다. 작품 속 ‘나’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정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다. ‘나’와 달리 양 극단에서 스스로 발견한 균형점을 좇는 조르바의 삶이 카잔차키스가 제시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삶은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조르바의 삶이 곧 완벽한 삶인가? 작품 속 ‘나’가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던가. 지당한 말씀!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카잔차키스가 제시한 자유, 행복,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삶은 카잔차키스의 키와 맞는 행복일 뿐, 우리와는 다른 행복일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자유와 행복을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그저 조르바와 ‘나’의 이야기를 통해 판단을 내릴 뿐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삶 속에서 어떻게 그들을 좇으며 살아갈 것인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내용 출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타난 인간의 자유와 삶의 의미 – 안남연, 건국대학교 스토리앤이미지텔링연구소

사진 출처:

토끼 피처럼 붉은 크레타 포도주, 그건 달콤한 자유 영혼 – 중앙 선데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06141#home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神들의 섬 크레타에서 자유를 외치다 – 모바일 한경

http://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8071522191&category=travel&sn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