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나쓰메 소세키의 자기본위

  • 478호
  • 기사입력 2021.11.13
  • 취재 박기성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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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싼 것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으며 학교와 국가와 같은 집단일 수도 있다. 만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더 넓은 사회를 만나다 보면 외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정체성들이 우리 자신을 채워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체성들을 과연 우리만의 성격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 외적 대상이 존재해야만 성립하는 것들을 과연 자신의 고유함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온전히 개인적인 정체성의 존재 및 추구에 대한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제기된다. 이번 학술 섹션에서는 일본 근대문학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자기본위’ 개념과 그의 대표작 <마음>에서 형상화된 바를 확인하며 개인과 외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자기본위’ 개념이다. 이는 ‘나’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지만, 그에 대한 논의에 앞서 우리는 먼저 ‘관계’의 측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와 타인이 맺는 관계, 나와 사회가 맺는 관계 속에서 외부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다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소세키의 철학은 시작한다. 소세키 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남들과는 다른 그의 유년 시절로 파악할 수 있다. 긴노스케라는 본명으로 불리던 어린 시절의 소세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입양 보내졌다가 생모가 데려갔지만, 다시 입양됐던 가정으로 보내진다. 양부모의 이혼으로 또다시 가정이 파괴된 소세키는 양모와 양부를 오가다 생모 슬하에서 자라게 된다. 소세키는 긴노스케 시절의 자신의 삶을 매우 비극적으로 인식했고, 그의 작품 『미치쿠사』에서 ‘겐조’라는 인물로 유년 시절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소세키는 출생 직후부터 그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의 결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소세키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고뇌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소세키는 가정을 비롯한 외부와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그 속에서 ‘나’, 즉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사유한다.


소세키를 둘러싼 가장 큰 세계는 서구와 제국이었다. 소세키가 서구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그의 영국 유학이다. 2년간의 영국 유학에서 소세키가 느낀 감정은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에 더욱 가까웠다. 자신이 가지는 신체적인 결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며 서양인들의 외모를 동경함과 동시에 열등감을 느꼈고, 영국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와 교양에 감탄하며 질투했다. 이와 유사하게 소세키는 영국 학자들과의 수준 차이를 절감하면서도 서양문학에 대한 이질감을 느꼈다. 소세키가 영국, 그리고 서구에 대해 느낀 열등감과 이질감은 증오로 전이됐고, 그는 영문학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 그는 영문학 연구를 중단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학의 본질을 규정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자기 본위’ 개념이다. 자기 본위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로, 소세키가 제시한 자기 본위란 자신의 주관과 정체성을 지키며 상대방과의 대등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소세키는 서양의 문예를 서양인의 방식으로 비평하는 것은 서구 문학을 수용한 척하는 태도라고 말하며, 그러한 사고에서 벗어나 문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파악하고 정의하려 했다. 외부 세계로부터 느끼는 열등감과 이질감의 양가적인 감정에서 자신과의 차이를 느끼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외부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소세키의 ‘자기 본위’의 시작이다. 그러한 자의식에서 출발한 자기 본위는 자신을 위하는 ‘에고이즘’으로 완성된다.


소세키를 둘러싼 또 하나의 큰 외부 세계는 일본 제국이다. 소세키는 청년 시절에는 천황제 제국주의를 지지함과 동시에 제도적 질서로부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국 유학 이후에도 소세키는 제국주의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도 제국의 침략정책에는 동조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천황제 제국주의 침략의 성과를 확인한 후 친 제국적인 태도로 변모한다. 이러한 사유를 바라봤을 때, 우리는 과연 소세키가 생각한 ‘개인’의 모습이 외부와 독립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불안한 존재고 국가와의 관계 맺기로 온전해진다는 것이 ‘개인’의 문제에 대한 소세키의 사유일 것이다. 이를 통해 소세키의 자기 본위는 개개인의 미시적인 차원의 담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자기 본위란 개인이 아닌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른 나라와 문명과의 관계의 차원에서 등장한다.

▲ 메이지 시대

작품 중반부까지의 『마음』의 내용은 선생님 부부에 대한 ‘나’의 관찰과 ‘나’의 집안 이야기다. 어느새 중심이 아닌 구석 한편에 자리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편지로, 그것도 ‘나’가 가장 알고 싶어 했던 그의 과거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선생님을 『마음』의 또 다른 중심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음』에서 소세키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인물은 선생님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행동 중 가장 큰 영향을 남긴 것은 그의 자살이다. 그의 자살은 친구 ‘K’가 사모하던 여인과 결혼했고 그것이 불러온 ‘K’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K’의 죽음 이후 짊어져 온 죄의식에서 탈피하게 된다. 에고이즘이 불러온 죄책감에서 비롯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죄의식을 내려놓게 된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의 자살은 에고이즘, 혹은 자기 본위 추구의 극단적인 형태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 소세키의 자기 본위가 형상화된 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속 선생님은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 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가 인식한 ‘현대’, 지금의 기준에서는 ‘근대’라는 것은 ‘나’라는 개념이 중심이다. 어느 존재에도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 즉 ‘에고’라는 것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 소세키가 바라본 근대의 ‘개인’은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로, 국가와 제국이라는 보다 큰 존재들과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마음』 속 선생님의 자살은 윤리와 관련한 문제다. 공동체의 윤리관에 어긋나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불러온 자살을 실행에 옮김으로써 그는 마지막 순간에서나마 윤리를 추구하려고 한다. 그의 자살은 메이지 시대와 제국을 지향하는 복고적이면서도 전체주의적인 소세키의 사조를 드러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파악하려는 소세키의 자기 본위를 확인할 수 있다.


소세키의 자기 본위는 각각 서구와 제국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다르게 나타난다. 서구와 관련된 인식에서 소세키의 자기 본위가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스스로만의 특성을 파악하고 나아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하는 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제국과 관련해서는 개인보다는 개인이 속한 국가와 공동체, 그리고 그들의 정신과 윤리를 지향하면서 그들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소세키의 자기 본위다. 이렇듯 소세키의 자기 본위 사상은 그 안에서도 모순을 가지는 존재다. 이는 ‘메이지 시대’라는 범주에 종속된 소세키의 상상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구와의 관계에서 소세키가 느낀 열등감과 이질성은 서구로부터 탈피해 일본만의 것, 나아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외부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을 강조하지만, 결국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는 제국과의 관계에 종속된 것이다.


그렇다면 소세키의 자기 본위가 가진 모순점으로 인해 소세키의 철학과 작품에 대한 논의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본 글을 작성하며 든 생각은 그 반대에 가깝다. 서구와 제국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싸거나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한 상황 속 우리는 보다 큰 존재에 종속된 자신과 그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동등한 지위로 존재하는 스스로라는 양 극단의 사이에서 개인으로서 ‘나’를 파악해야 한다. 소세키가 말한 바와 같이 현대란 자유와 자아가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세키의 『마음』은 자기 본위에 대한 논의를 종결짓는 장이 아니라 논의의 시작점이다. 소세키의 『마음』과 그 속에 담긴 자기 본위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는지에 대해 답을 내리지 않고 답을 찾게 한다는 것에서 의미를 가진다.


내용 출처:

유상희, 『나쓰메 소세키 연구』, 보고사, 2001

나츠메 소세키, 『문명론』, 소명출판, 2004

이화형, 『夏目漱石의 『마음(こころ)』 論 죽음의 배경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동북아문화연구, 2015

사진 출처:

대표 사진 - https://brunch.co.kr/@rhkrwndgml/130

사진 - https://ko.wikipedia.org/wiki/%EB%A9%94%EC%9D%B4%EC%A7%80_%EC%9C%A0%EC%8B%A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