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에 사람 있다|
성매개질환의 원인균을 발견했지만 노벨상은 받지 못하다
- 임균(Neisseria gonorrhoeae), 알베르트 나이서
- 579호
- 기사입력 2026.01.15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367
글: 고관수 의학과 교수
나이세리아(Neisseria)라는 세균 속이 있다. 알베르트 나이서(Albert Ludwig Sigesmund Neisser, 1855–1916)의 이름을 기려 지은 것인데, 현재 27개의 종 이상이 이 속에 속한다. 이 중 유명한 세균은 두 개 정도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수막염균(Neisseria meningitidis)이고, 또 하나는 임균(Neisseria gonorrhoeae)이다. 수막염균은 이름 그대로 세균성 수막염의 가장 흔한 원인균 중 하나이자 혈액으로 들어가면 균혈증을 일으키는 세균이면서 임상적으로 중요한 병원균으로, 세균 발견의 황금 시기인 1884년 에토르 마르키아파바(Ettore Marchiafava, 1847-1935)와 안젤로 첼리(Angelo Celli, 1857-1914)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파급력으로 봤을 때 수막염균은 매독과 함께 대표적인 성매개질환(STD, sexually transmitted disease)인 임질(gonorrhea)의 원인균인 임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임질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377)가 기술했을 만큼 오래전부터 알려진 질병이다. Gonorrhea라는 병명은 2세기경에 살았던 로마의 의사로서 근대 시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갈레노스(Galen)가 그리스어로 씨앗, 종자, 또는 정액을 뜻하는 ‘gonos’와 흐름을 뜻하는 ‘rhoe’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정의한 gonorrhea, 즉 임질은 남성이 감염되었을 때 볼 수 있는 정액으로 추정되는 백색의 음경 분비물을 뜻하는 것이었다.
임질을 한자로 痳疾로 쓰기도 하지만, 주로는 淋疾로 쓴다. ‘질(疾)’이야 병을 뜻하는 것이라 별로 의문 사항이 없는데, ‘임(淋이나 痳)’이 모두 ‘임질 임’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어 어디서 온 글자인지 확실하지 않다. 특히 ‘淋’은 뜻을 나타내는 水(물 수)와 음을 나타내는 林(수풀 림)이 합쳐져 있는데 그게 임질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수풀 림이 집단 성행위와 관련이 있지 않나 하지만 과한 해석인 것 같다. 이 ‘淋’자가 유린기(油淋鷄)라는 음식, 임파선(淋巴腺)이라는 인체 구조 등에도 쓰인 걸 보면 처음부터 질병 이름에 쓰이지 않았고, 원래는 질병을 뜻하는 ‘疒’가 들어 있는 ‘痳’에서 ‘淋’으로 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소한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알려진 질병이지만 그 원인은 알 수 없었던 이 질병의 원인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이 세균의 속명에 이름이 남아 있는 알베르트 나이서다.
나이서는 독일 브레슬라우 근처의 시비드니차(Schweidnitz, 지금은 폴란드 영토)에서 당시에 유명한 의사인 모리츠 나이서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이서는 브레슬라우의 성 마리아 막달레나 문법학교(St. Maria Magdalena Grammar School)를 다녔는데, 그때 같은 학급에 면역학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고 최초의 매독 치료제인 살바르산을 개발한 파울 에를리히가 있었다. 성병의 양대 산맥인 매독과 임질에 관한 가장 혁혁한 업적을 세운 두 과학자가 중등학교 한 학급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서는 브레슬라우에서 의과대학을 다녔는데, 별로 뛰어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학 시험 같은 것은 여러 차례 시험을 본 후에야 통과했지만 그래도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원래는 내과 의사를 지망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고 결국은 피부과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오스카 시몬이라는 의사 밑에서 조수로 2년간 일했는데, 바로 그 2년 동안에 임질의 원인균을 발견했다.
나이서는 화농성 요도염을 앓는 남성 환자 35명과 여성 환자 9명, 급성 안과 질환을 앓은 두 명의 환자로부터 얻은 샘플을 도말하고 염색했다. 그리고 그는 현미경으로 세균을 발견한다. 임질의 원인균이었다. 그는 자신이 임질 환자로부터 발견한 세균을 단순하게 ‘micrococcus’라고 불렀다. 임균, 즉 gonococcus라고 부른 것은 바로 그의 어릴 적 친구 파울 에를리히였다. 나이서는 성병에 관한 병인학(etiology)의 문을 연 논문을 1879년에 발표했는데, 그의 나이 겨우 24살이었다.
사실 나이서의 임균 발견에 딴지를 걸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세균을 배지에 배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동물에 접종했을 때 임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코흐의 4원칙을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년 후 막스 보크하트(Max Bockhart)가 남성의 요도에 세균을 접종하여 3일 만에 전형적인 임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여 논란은 사라졌다.
▲ 알베르트 나이서
(wikimedia commons – public)
임균을 발견한 그해에 나이서는 노르웨이로 향한다. 노르웨이의 병리학자인 게르하르트 한센(Gerhard Armauer Hansen, 1841-1912)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였다. 한센은 나병(leprosy)을 연구하고 있었다. 지금은 한센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Hansen’s diseases)으로 불리는 나병은 나균(Mycobacterium leprae)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병하며, 주로 피부와 말초신경을 손상시키고 종종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야기해서 사람들이 꺼리는 질환이었다.
한센은 1873년 나병 환자의 혈액과 피부 결절에서 막대 모양의 세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듬해 노르웨이의 저널에 발표했지만, 그의 발견은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웃음을 샀다. 그렇지만 나이서만큼은 한센의 발견을 다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 한센을 찾아간 것이었다.
나이서는 한센이 만든 인체 조직에다 코흐의 기술을 적용해 보려고 했지만, 처음엔 실패했다. 그래서 한센의 조직 일부를 독일로 가져가 새로운 기법으로 염색을 시도했고, 결국 막대 모양의 세균을 발견해 낸다. 그는 이 세균이 나병의 원인이 되는 새로운 균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한 그의 스승인 콘과 코흐도 동의했다. 그렇게 한센의 발견은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논란이 생겼다. 나이서가 자신이 나병의 원인균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낸 것이다. 그래서 나이서가 한센의 발견을 훔치려고 했다는 의심을 샀으며, 지금까지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센이 노르웨이어뿐만 아니라, 독일어, 영어로도 논문을 발표하여 한센의 업적이 인정되고 있다. 나이서는 한센이 자신이 발견한 세균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지 못했으며, 자신의 발견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균의 발견보다 나균에 대한 연구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말년까지도 자신의 나균 연구에 대해 마땅히 인정받지 못하는 데 대해 분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한센이야말로 나병이 감염 질환이라는 것을 주장하였고, 또 원인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은 거의 이견이 없다. 그리고 나이서 역시 나병 원인균의 공동 발견자로 인정받고 있다.
나이서는 이러한 임균과 나균의 발견에 대해 큰 공헌을 했지만, 이후 연구 윤리의 측면에서 큰 논란을 남겼다. 1880년대 초 나이서는 또 다른 성 매개 질환인 매독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는 항혈청(antisera)을 이용하여 디프테리아와 파상풍을 예방하는 데 성공한 에밀 폰 베링의 방식으로 매독을 예방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매독 환자의 혈청을 매춘부 4명에 주입하게 되는데, 그들은 실험에 관해서 어떤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고, 그들로부터 동의서도 받지 않았다. 네 명 모두 매독에 걸렸을 때, 나이서는 이들이 항혈청 때문이 아니라 성적 접촉 때문에 발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엔 1898년 프로이센의 왕립징계법원(Royal Disciplinary Court)의 조사가 이뤄져 나이서가 정보에 입각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실험을 수행한 데 대해 과실이 있다고 판결이 났다. 이 사건 이후로 프로이센 정부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받는 데 대한 지침을 발표하였다.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연구 윤리에 관한 지침이 없었던 시대였지만, 그의 연구는 분명 연구 윤리에 어긋난 것이었다.
나병, 임질, 매독 등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 나이서는 1906년부터 1916년, 그가 죽는 해까지 매년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그의 친구였던 에를리히가 추천한 것도 다섯 차례나 됐다. 하지만 화려한 연구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 이유는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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