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균_아시네토박터
(Acinetobacter baumannii) (2)

  • 555호
  • 기사입력 2025.01.13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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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관수 의학과 교수


- 무섭지 않지만 진짜 무서운...



감염환자 연 9천명·사회적 비용 5천억…대책 시급

- <보건뉴스> 2019년 4월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이 공개한 질병관리본부의 ‘국내 항생제 내성균 감염에 대한 질병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9000여명의 슈퍼박테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3900여명이 조기사망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우리나라 전체 사회적 비용은 연간 5500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중략) 연구결과에 따르면, 매년 사회적 비용이 가장 높은 질병은 MDRA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폐렴으로 1360억원의 비용이 추정되며, MRSA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알균) 균혈증은 1128억원, MDRA (다제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균) 균혈증은 1026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연구되었다.



지난 호에 이야기했던 아시네토박터라는 세균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아시네토박터는 다음에 이야기할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과 함께 포도당을 발효하지 못하는(이런 세균들을 non-fermenter라고 한다) 그람음성균이다. 토양이나 물 등 자연 상태에도 흔하게 존재하는 세균이면서 건조한 상태에서도 며칠 동안 생존할 수 있다. 객담이나 대소변 등에서 쉽게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병원 내 환자나 의료인의 피부에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다. 또한 기관 절개술을 받은 환자의 절개 부위라든가 호흡기 검체에서 흔하게 분리되며, 건강한 사람에도 25퍼센트 정도가 검출된다.


아시네토박터 속의 세균 중에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아시네토박터 칼코아세티쿠스(A. calcoaceticus), 아시네토박터 피티(A. pittii), 아시네토박터 노소코미알리스(A. nosocomialis) 등 유연관계가 가까운 종과 함께 Acb (A. calcoaceticus-baumannii) complex에 포함된다. 과거에 쉽게 종 동정이 안 되던 것들을 하나로 묶어 불렀던 흔적이다. 이중 A. calcoaceticus를 제외한 다른 종들이 사람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세균들인데, 그중에서도 임상에서 가장 흔하며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다.1)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의 병독성에 대한 논문을 보면 공통적으로 외막에 존재하는 포린(porin), 인지질분해효소, 다당류로 이루어진 캡슐, 지질다당류(LPS), 단백질분해효소, 시드로포어(siderophore, 철결합체), 단백질 분비 시스템 등을 언급한다.2) 그런데 이런 것들은 사실 다른 세균들에도 거의 있는 것으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앞서 얘기한 대로 그만큼 병독성에 있어서는 두드러지지 않은 세균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세균은 공중 보건에서 심각한 위협이 되었을까? 그것은 생물적 또는 비생물적 표면에 생물막(바이오필름, biofilm)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병원 환경 등에서 살아남아 지속적으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항생제 내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편모(flagella)가 없어 운동성이 없다. 속명 Acinetobacter라는 이름 자체가 ’akineto’, 즉 ‘움직임이 없는’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그러나 선모(pili)는 가지고 있다. 선모는 세균 표면에 짧은 털 같은 구조인데, 정작은 촉수 같은 역할을 해서 어딘가에 달라붙을 수 있다. 그렇게 달라붙으면서 아주 조금씩 이동할 수 있는데, 이를 트위칭(twitching)이라고 한다. ‘twitch’가 ‘씰룩거리다, 경련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니 짐작이 갈 만하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가진 선모는 제4형 선모(type IV pili)에 해당한다. 이 제4형 선모 덕분에 세균은 잘 달라붙는 성질을 갖는다. 특별한 독소도 만들어내지 않고, 협막(capsule)을 두껍게 만들어 면역 체계를 회피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이 세균이 병원균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인체 조직으로 침투하기 위해서 선결 조건이 일단은 달라붙는 것이기 때문에, 제4형 선모는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서 병독성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생물막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 편모와 선모의 차이




▲ 생물막의 형성 단계(Wikipedia, CC BY 2.5)



생물막이란 고체의 표면에 다당류, 지질, 단백질, 핵산 등과 같은 세포외 고분자 물질 매트릭스(extracellular matrix)에 세균이 엉겨져 있는 얇은 막이다. 종종 “미생물 도시(microbe city)”라고도 불리는 생물막에 둘러싸인 세포는 대사 활동이 제한되고, 세포 밖에 만들어진 매트릭스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항생제의 공격이나 숙주의 선천 면역 작용에 견딜 수 있게 된다. 생물막 형성에 특기를 가진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이 때문에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이나 카테터 관련 감염을 자주 유발할 수 있으며, 치료도 힘들게 된다.3) 


또 하나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를 무섭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항생제 내성이다. 이 세균은 그 자체가 원래부터 적지 않은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다. 페니실린을 비롯한 많은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들, 1세대 세팔로스포린 계열의 항생제들, 테트라사이클린 등에 선천적으로 내성이다. 그런데 더욱 문제는 이 녀석들이 새로운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는 능력마저 뛰어나다는 것이다.


앞서 폐렴간균에 대한 글에서 카바페넴 내성의 심각성에 대해서 잔뜩 이야기했지만,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서는 이미 카바페넴은 거의 효과를 잃어가고 있었다. 폐렴간균을 비롯한 장내세균에서 카바페넴 내성을 일으키는 카바페넴 분해효소로 NDM이라든가, KPC 등을 언급했는데,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서는 oxacillinase (OXA), 그중에서도 OXA-23이 주로 카바페넴 내성에 관여한다. 그런데 이 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는 AbaR, 또는 AbGRI라고도 불리는 유전자 무리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유전체 섬(genomic island, GI)라고 하여 트랜스포존에 의해 다른 세균으로부터 전달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 우리 실험실의 김대훈 박사는 국내 카바페넴 내성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 중 80퍼센트 이상이 이런 OXA-23 유전자를 포함하는 유전체 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힌 바가 있다.4)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임상 의사들이 가장 골치 썩히는 세균들 중에서도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엄밀하게는 항생제 내성 자체가 병독성은 아니지만, 치료되지 않는 세균은 ‘쎈’ 세균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강력한 세균이다.




<참고문헌>


1) Peleg AY et al. Acinetobacter baumannii: Emergence of a successful pathogen. Clin. Microbiol. Rev. 2008;21(3):538-582.

2) Howard A et al. Acinetobacter baumannii-An emerging opportunistic pathogen. Virulence 2012;3(3):243-250.

3) Gedefie A et al. Acinetobacter baumannii biofilm formation and its role in disease pathogenesis: a review. Infect. Drug Resist. 2021;14:3711-3719.

4) Kim DH et al. Occurrence of diverse AbGRI1-type genomic islands in Acinetobacter baumannii global clone 2 isolates from South Korea. Antimicrob. Agents Chemother. 2017;61(2):e0197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