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미래에 관한 단상
- AI 한의사 출현에 따른(Ⅱ)

  • 467호
  • 기사입력 2021.05.13
  • 편집 이수경 기자

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지난 466호에 이어지는 2번째 글입니다. 클릭하면 지난호를 볼수 있습니다]


-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한 몸 이해


지난 호 자료에서 ‘반드시[必]’라고 표현한 것에는 ‘경험의 축적’에 대한 100% 확신이 담겨 있고 아울러 ‘모든 인간은 선할 수밖에 없다’는 낙관적 성선설(性善說)이 깔려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시중’과 ‘관색’ 이론에서 보이는 경험 축적을 통한 판단의 확실성을 의미하는 ‘필’ 자에는 유학에서 말하는 진리 인식과 관련된 이른바 ‘격물치지’ 이후에 ‘활연관통(豁然貫通)’에 이른다는 사유가 작동하고 있다. 불교 차원에 대비하여 말하면, ‘격물치지’는 점수(漸修) 과정이고 활연관통의 경지는 돈오(頓悟)에 해당한다.


한의학 차원에서 격물치지 사유를 인간 몸에 적용하여 이해하면, ‘격물’은 개개 인간 몸의 각 부분에 내재된 생리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이해하는 과정이고, ‘치지’는 이같은 격물을 통해 체득한 신체의 온 정황을 유기적으로 파악하여 ‘아! 이런 원리에 의해 몸이 작동되는구나’ 하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런 격물과 치지의 과정을 거쳐 몸의 각 부분에 대한 개별 지식의 축적 과정을 거치면 어느 날인가 몸에 내재된 전체적인 원리를 알게 되는, 이른바 활연하게 관통하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이런 활연관통의 경지에 오르면 한의학 차원에서는 ‘척 보면 압니다’ 라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이런 경지는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吾道, 一以貫之]’고 말한 공자와 같은 성인이라야 가능하겠지만, 이런 경험의 축적에 의한 인식 과정을 거쳐 체득한 활연관통의 경지를 단순히 신비적인 것으로 격하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관색’과 관련된 사유는 서양에도 있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다음 구절을 보자.


사람의 마음은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안색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즐거운 마음은 생기있는 안색을 만든다. 생기 있는 안색은 마음이 풍요롭다는 증거다.[전도서 8: 25~26]


『성경』이 갖는 진리 차원의 무오류성을 인정한다면 『성경』의 ‘안색에 마음이 나타난다’는 이 발언과 함께 『대학』에서 말한 ‘성중형외’ 사유도 진리에 해당한다. 『성경』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관상학적 차원에서 안색뿐만 아니라 외모로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외모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옷차림, 지나친 웃음과 걸음걸이가 그를 말해 준다.[전도서 19:29~30]


외모를 통해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특별한 형안과 심안을 갖지 않은 경우 이상과 같은 발언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몸이 모든 경험의 핵심이고 아울러 습관, 의식의 흐름, 정서 등이 총체적으로 ‘안색’에 반영된다고 하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의학에서 ‘척보면 압니다’ 라는 발언도 설득력이 있게 된다.


문제는 진맥 과정에 오류가 없고, 병리적 차원에서 인간의 신체 리듬에 대한 전반적인 데이터 및 ‘관색’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내장한 AI한의사가 출현한다면 ‘척 보면 압니다’라는 차원의 최고 한의사는 AI한의사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한의학 차원의 ‘심의(心醫)’에 대한 재인식


최근 여러 분야에서 AI가 인간의 판단과 예측보다 더 뛰어난 면을 보이고 있다. 이제 AI는 인간의 고유영역이면서 인간 창의성의 최종 보루라는 예술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구글의 ‘딥 드림(Deep Dream)’,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 등에서 보듯, 이제 ‘AI 화가’는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 않다. 이런 현상은 ‘예술 창작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인가?’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질문을 한의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제 한의학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인가? 인간 한의사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진맥할 수 있는 AI 한의사와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인간 몸이 하나로 획일화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 한의사의 경우 ‘척 보면 압니다’라는 판단에는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AI한의사는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최근 AI가 인간의사보다 오진율이 적었다는 기사는 이런 점을 입증해준다. 제한적이지만 ‘인공수술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 이야기일 수 있지만, AI 한의사가 넘나볼 수 없는 한의학의 영역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따뜻한 감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휴먼터치’를 강조하는 것을 떠올리자. 인공지능이 무한히 발전하더라도 ‘사람의 따뜻함과 관련된 인간의 공감 능력’만은 모방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동양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른 것 중 하나로 흔히 심리치료라는 점을 거론하곤 한다. 한자로 ‘약[藥’]자는 ‘풀 초[艸]’와 ‘즐거울 락[樂]’자가 결합된 글자인데, 이 ‘약’자에는 풀이란 식물이 갖는 약효 차원의 치료 가능성과 심리적 즐거움이 갖는 치료 가능성 측면을 동시에 담고 있다. 병자의 몸 상태를 인간보다 과학적으로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오른 AI한의사라고 해도 의사와 병자 사이의 교감을 통한 심리치료 부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일 것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병자의 마음과 몸 안의 기운을 편안하게 하는 심의(心醫)는 AI 한의사가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속한다는 인식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보다 폭넒은 차원의 한의 인문학도 요구된다.


▲ [출처: 명견만리 블로그] AI와 3D 프린터로 탄생한 넥스트 렘브란트 <이미지:The Next Rembrandt>


▲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의 세가지 예다. [출처: 명견만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