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에 사람 있다|사람이 만든 환경 변화가 불러온 감염병
- 보렐리아 부르그도페리(Borrelia burgdoferi),
윌리 버그도퍼

  • 587호
  • 기사입력 2026.05.15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194

글: 고관수 의학과 교수


새로운 감염병, 라임병과 저스틴 비버


미국에서 라임병(Lyme disease)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겼고, 여러 매체에서 주목했다. 발열, 두통, 인후통, 구역질, 피로감, 림프선 종대, 경부 경직, 근강직 등의 증상을 보이는 이 질병은 유행성 감기나 류머티즘 관절염 등으로 잘못 진단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잠복기를 가지면서 완화되었다가 다시 증상이 나타나 관절, 심장, 신경계 등을 공격하는 특징을 가졌다. 특히 교외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증상이 수년 동안 지속되기도 하고, 또 사람을 불구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의 부모들은 여름에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 놀도록 하는 대신 집 안에 가두어 놓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미국 팝가수 저스틴 비버가 라임병으로 투병하고 있으며 죽음의 문턱을 오갔다는 보도와 함께 외모가 아주 많이 변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동안 ‘제2의 에이즈’라고 할 정도로 두려워했던 질병이지만 지금은 질환 초기에 치료하는 경우 완치된다.


라임병이라는 질병의 이름은 미국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다. 1975년 미국 동부의 코네티컷주 올드라임(Old Lyme)에 사는 가족들이 반복되는 발열과 관절통으로 고생했는데, 처음에는 청소년형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진단받았다. 그런데 같은 길가에 사는 다른 집안의 여러 어린이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 질병이 류머티즘 관절염이 아닌 감염병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에서 이전에도 비슷한 질병이 돌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병원체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환자들의 몸에 반점이 돋고, 또 몇몇 환자가 반점이 돋은 부위가 진드기가 물린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그리고 또 어떤 환자는 자신을 문 진드기를 잡아서 보관하다가 연구진에게 건넸다. 그 진드기는 Ixodes scapularis라는 학명을 가진 사슴진드기(deer tick)였다.


이 진드기는 봄에 알에서 부화하여 애벌레 상태로 설치류에 붙어살다 여름이 끝날 무렵 진드기가 된다. 이때 사슴의 몸에서 피를 빨아먹으며 짝을 찾는데, 사슴이 없으면 소나 말, 개, 고양이에 붙어산다. 사람도 그 대상이 되며 라임병을 옮긴다. 물론 라임병은 1970년대에야 갑자기 증가하여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신종 전염병(emerging diseases) 중 하나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질병은 아니었다. 이 질병에 대해 알려지자,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질병이 있었다는 회고적 보고가 잇따랐고 1883년 독일, 1910년 스웨덴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1975년 이전에도 진단되지 않은 채, 혹은 오진되어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주거 지역을 교외로 넓히는 과정에서 숲이 파괴되면서 증가했다. 즉 환경의 변화가 야생동물에 사는 진드기와 사람이 접촉하는 기회를 늘렸고, 이것이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에 처음 진드기에서 보렐리아균이 분리됐다.


라임병을 일으키는 것은 사슴진드기에 사는 보렐리아 부르그도페리(Borrelia burgdoferi)라고 하는 세균이다. 하지만 라임병에 대해 처음 보고된 이후 7년이나 그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많은 의사들이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라임병의 진짜 원인이 세균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은 1981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몬태나주의 로키마운틴 연구실에서 일하던 윌리 버그도퍼(Willy Burgdorfer, 1925~2014)였다. 그는 롱아일랜드에서 보내온, 라임병 환자의 진드기를 해부하다 그 속에 있는 세균을 찾아내 배양했고, 보렐리아(Borrelia) 속에 속하는 세균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세균은 라임병 환자의 혈청과 반응했고, 토끼에게 주입했더니 토끼는 라임병의 증상을 보였다. 바로 이 세균의 이름이 Borrelia burgdoferi인 이유다.


▲ (왼쪽) 라임병을 옮기는 사슴진드기(wikimedia commons), 

(오른쪽) 버그도퍼가 발견한 보렐리아 부르그도페리를 암시야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wikimedia commons)



“진드기 외과의”


사슴진드기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았을 당시, 윌리 버그도퍼는 이미 수천 번 진드기를 해부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의뢰받은 진드기를 해부하고, 장을 염색한 후 짧은 막대 모양의 리케차 종류의 세균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길고, 코일 모양으로 꼬인 세균이었다. 30년 전 대학원생 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세균이었다. 그는 2001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단 내 눈이 긴 뱀 모양의 생명체에 꽂히자, 나는 내가 수백만 번 전에 보았던 것, 스피로헤타(spirochetes)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버그도퍼는 자신이 보고 있는 스피로헤타 종류의 세균이 라임병의 원인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즉시 스피로헤타를 잘 분리한 후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라임병 환자의 샘플로부터 혈청을 얻어달라고 요청했다. 환자의 혈청 샘플은 버그도퍼의 스피로헤타와 반응했다. 그의 의심이 확인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발견을 <Science>지에 논문으로 발표한 것은 1982년이었다(버그도퍼의 이름을 따서 Borrelia burgdoferi라고 명명된 것은 2년 후인 1984년). 이 발견으로 라임병 치료에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전까지는 경험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해서 치료해 왔으나, 어떤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지 알게 되면서 적절한 항생제를 찾을 수 있었고, 실험실 진단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스스로 ‘진드기 외과의(tick surgeon)’이라고 불렀던 버그도퍼는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나 바젤대학교에서 기생충학과 열대세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원생으로 진드기가 간헐적 발열 환자에게 어떻게 스피로헤타를 옮기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1951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로키마운틴 연구실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로키마운틴열을 일으키는 리케차 연구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진드기를 해부했다. 그런 엄청난 경험이 있었기에 “당신 머리에 진드기가 있다면 나에게 보내 봐요. 그러면 30분 이내에 그게 홍반열(spotted fever)을 일으킬지 아닐지 바로 알려줄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가 라임병의 원인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그만한 경험과 직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빌리 버그도퍼(wikimedia commons)


그런데 이 세균의 속명 보렐리아(Borrelia)도 사람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아메디 보렐(Amédée Marie Vincent Borrel, 1867-1936)이라는 프랑스의 의사이자 과학자다. 그는 오랫동안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했는데, 1892년부터 1895년까지는 메치니코프의 연구실에서, 1896년부터 1914년까지 미생물학 실험실의 책임자로 연구했다. 그는 보렐리아 속(물론 당시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지만)의 한 종인 Borrelia anserina가 매독의 원인균으로 유명한 Treponemma pallidum라는, 역시 스피로헤타 종류의 세균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보렐의 이름을 따서 Borrelia라는 속명을 발표한 것은 버그도퍼가 라임병의 원인균을 발견하기 70여 년 전, 1907년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네덜란드의 병리학자이자 기생충학자였던 스웰렌그레벨(Nicolaas Hendrik Swellengrebel, 1885~1970)에 의해서였다.




<참고문헌>

· 아노 카렌(권복규 역), 《전염병의 문화사》 (사이언스북스)

· 연합뉴스, “저스틴 비버 "라임병 진단받아…싸워 극복하겠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9일).

· Shapiro ED. Borrelia burgdorferi (Lyme Disease). Pediatrics in Review 35(12): 500-509.

· Snyder A. Willy Burgdofer. Lancet 2015; 385(10):110.

· Sternbach G, Dibble CL. Willy Burgdorfer: Lyme Disease. Medical Classics 1996; 14(5):63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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