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하얀거짓말

  • 464호
  • 기사입력 2021.03.28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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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최치원



지난 2016년 북한 여행 중, 선전물을 훔치려다 억류 끝에 숨진 미국대학생 웜비어씨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북한이 웜비어씨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고 펜치로 치아 위치를 바꾸는(뽑거나 부러뜨리는) 고문을 가했다는 의견서가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마라톤맨’이라는 영화에서 나치가 고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취를 하지 않고 핸드피스로 치아를 갈아내버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한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 탄압에 맞서다 치아 전체를 뽑히거나 부러뜨리는 가혹한 형벌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순교한 성녀 아폴로니아. ‘성녀 아폴로니아’는 현대 치과의사의 수호상징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치아를 극심한 고통을 유발시키는 극형의 고문수단으로 치과의사가 개입한 적이 없지만, 치과의사를 고문기술자 못지 않게 바라보는 환자들을 향해 치과의사들 간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치과의사들이 하는 거짓말 세 가지

첫째는 하나도 안 아파요!

둘째는 거의 다 끝났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셋째는 안 비싸요!


환자가 되어보지 않은 치과의사가 환자의 고통정도를 언어화 혹은 수치화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정말 용감한 환자분들은 치과의사의 거짓말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선생님도 치료 받아보세요! 참을 수 있나!’ 필자의 치통 경험은 이십여년 전 인도네시아로 가족여행 갔을 때다. 기존 충치치료를 해 놓았던 어금니에 이차 충치가 발생했는지 치아가 묵직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펄쩍펄쩍 뛸 정도의 격한 통증이 와서 이틀을 꼬박 고생했다. 진통제를 구해 먹어봐도 효과는 30분.. 진통제를 젤리 먹듯 수시로 먹어댔지만 매한가지였다. 치과를 가자니 인도네시아 치과의 수준이나 감염관리 등을 믿을 수가 없어 한국에 돌아가서 치료를 받을 요량으로 얼음생수를 이틀 동안 물고 다니다가, 결국 쇼핑센터 내 치과를 찾아내 치료를 받고자 하였으나 마취가 왜 이렇게 안되는지, 나도 모르게 그 치과의사 손을 부여잡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치료를 중단하고 거의 초주검 되어 나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러한 통증의 원인은 치아 중심부에 ‘신경방’이라고 해서 혈관과 신경이 빼곡히 차 있는 곳에 충치균이 침범하면서 삼출액을 쏟아내니 신경방에 엄청난 압력이 발생한 것으로 진단명은 ‘급성치수염’이라고 한다. 이 압력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장 으뜸은 치과에서 마취한 후 드릴로 구멍을 뻥 뚫어만 주어도 금새 통증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 반드시 치과를 방문해서 신경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필자처럼 여의치 않을 경우 응급처치 방법으로 아주 차가운 얼음물을 입안에 물어 주는 것이 진통제보다는 효과가 조금 속하지만 체온에 냉기가 맞춰지면서 또다시 통증이 시작되니 수시로 차가운 얼음물로 ‘신경방’의 압력을 줄여주어야 한다. 잇몸 속 고름도 마찬가지이다. 뼈와 뼈에 붙어 있는 골막사이의 미세한 공간에 고름이 찬다는 것은 골막을 뼈에서 분리시키는 상당한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극심한 통증은 물론이고 오한과 붓기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진단명으로는 ‘급성치주염 혹은 급성골막염’이 그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경우는 치과에서 수술용메스로 골막을 절개하여 배농을 하게 되는데, 이처럼 골막하 압력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통증은 금새 많이 줄어들면서 환자분의 표정이 편안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급성치수염이나 급성치주염 등 압력으로 인해 발생한 급성통증의 경우, 마취가 잘 되지 않는 특성이 있어 치과의사들의 하얀거짓말이 약간은 몸에 뱄을 수도 있겠다.


이처럼 우리 몸에 발생하는 병성 통증들의 많은 부분은 압력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비슷한 논법으로 첨언하자면, 뼛속에 암세포가 자리잡아 몸집을 불리게 되어 뼛속에서 자란다면 단단한 뼈에 전해지는 압력과 그로 인한 통증은 마약성 진통제로 역부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술, 방사선치료, 화학요법을 사용하여 압력을 줄여 통증을 잡게되는 것이다.


모두(冒頭)에서처럼 치아에 상해를 가하여 인류를 괴롭혔던 고문이 당장 사라져야 마땅하지만, 치아에 발생한 압력을 덜어냄으로서 인류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도록 역할을 하고자 하얀거짓말을 하고 있는 치과의사들을 고문관 보듯 무서워하지 마시라 당부드리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