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기준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

  • 555호
  • 기사입력 2025.01.09
  • 취재 유희수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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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가 가져온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인어가 잠든 집』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경계를 묻는 윤리적 딜레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특히 뇌사, 장기이식, 죽음의 기준이라는 복잡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풀어내어 독자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하게 한다. 이 작품은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문제들, 특히 뇌사와 장기이식 같은 논란 속에서 인류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까지 생명을 연장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각도의 관점을 보여준다.


| 삶과 죽음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인어가 잠든 집』은 이혼을 앞둔 부부와 이들의 딸 미즈호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즈호는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의사는 뇌사 판정 위원회가 미즈호의 상태를 뇌사로 판정할 것이라 예상하여 부부에게 딸의 장기이식 계획을 물어본다. 장기이식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머니 카오루코는 딸의 미세한 손가락 움직임을 느끼고 뇌사 판정을 거부, 딸을 집에서 돌보기로 결심한다. 


이후 미즈호는 인공호흡기가 아닌 몸 안에 설치하여 숨을 쉬게 해주는 기계, 뇌의 척수를 이용해 근육을 움직이는 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과 고통이 고조된다. 이 소설은 뇌사가 인간의 죽음으로 정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가족이 존엄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과연 어디까지가 삶이며, 죽음의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 죽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소설 속에서 카오루코는 경찰을 불러 딸 미즈호에게 칼을 겨누며 묻는다. “만약 제가 이 아이를 찌르면, 그게 살인인가요? 아니면 시체 훼손인가요?” 경찰은 미즈호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살인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카오루코는 딸이 이미 뇌사 상태임을 설명하며 다시 묻는다. 이에 경찰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 장면은 뇌사가 죽음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그 기준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뇌사는 종종 죽음의 한 기준으로 간주되지만, 그 정의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2000년 처음으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종교적·철학적 관점에서 뇌사를 죽음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뇌사가 진정한 죽음인가에 대한 논쟁은 생명 유지 기술의 발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뇌사 상태에서는 의식과 감정은 사라지지만, 신체는 여전히 따뜻하고 혈액순환도 지속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를 과연 죽음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의료계뿐만 아니라 철학, 윤리 등 여러 분야에서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다.



| 『인어가 잠든 집』이 보여주는 장기이식의 현실

『인어가 잠든 집』은 장기이식 문제 또한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작중에서 미즈호의 장기이식을 두고 부모가 고민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뇌사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장기이식이 아직 쉽지 않은 선택으로 남아 있다. 유교적 영향으로 인해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꺼리는 문화적 관습은 장기이식 기증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장기이식 공여를 기다리고 있지만, 실제 공여자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소아 장기이식의 경우 공여자가 거의 없어 대기 환자들의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어린 자녀를 떠나보내는 상황에서 장기이식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부모의 마음에서 파생된다. 부모가 아이의 장기이식을 승인하는 일은 또 다른 큰 고통이라 기증 결정률은 현저히 낮은 편이다. 이 작품은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여, 딸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기증할지 고민하는 부모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 뇌사 환자를 돌보는 행위, 사랑인가 미련인가?

카오루코는 뇌사 상태에 빠진 딸을 돌보며 그녀가 살아 돌아올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에게 드는 의문은, 이런 행위가 진정한 사랑인가 하는 것이다. 뇌사 상태의 아이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아이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미련에서 비롯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뇌사 상태의 아이를 계속 돌보는 카오루코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생명 연장의 기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고민을 던진다. 실제로 뇌사 환자를 장기간 돌보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심리적,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겪는 사례가 많으며, 이는 뇌사 환자의 가족들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소설 속 카오루코의 집착에 가까운 돌봄이 독자에게 주는 윤리적 질문은 '사랑'이란 감정이 어디까지 타인의 존엄을 유지해 줄 수 있느냐는 문제다. 카오루코는 아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큰 위안을 받지만, 뇌사 환자의 존엄을 위해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반추를 요구한다.



『인어가 잠든 집』은 죽음과 생명의 기준을 철학적, 윤리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는 작품이다. 뇌사가 죽음인지 아닌지, 장기이식이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현대인이 직면하는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에게 생명 연장, 장기이식, 존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제공한 지금, 뇌사 상태의 환자와 그 가족을 존중하며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