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청춘, 산이라는 거대한 거울 앞에 서다:
『엘프와드: 고도 3954』

  • 588호
  • 기사입력 2026.05.28
  • 취재 김한결 기자
  • 편집 최한빈 기자
  • 조회수 319

삶,

산,

그리고 사람을 담아 그린 책 『엘프와드』



| 장마르크 로셰트

『엘프와드』의 저자 장 마르크 로셰트는 비극과 유머,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만화 작가다. 본래 청소년기부터 고산 가이드를 꿈꾸며 거친 암벽을 올랐으나, 1976년에 겪은 등반 사고 이후 등반가의 삶을 내려놓고 펜을 쥔 그는 1979년 첫 작품 『돼지 에드몽』을 발표하고,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설국열차』 시리즈의 작화를 맡으며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이처럼 예술적 커리어를 확장해 오던 그는 마침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공간 ‘산’으로 돌아와 『엘프와드』를 그렸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한 산악 만화가 아니다. 작가 본인의 젊음과 공포, 욕망과 상처를 돌아보는 일종의 자전적 기록이다.



| 벽 앞에 선 청춘들, 실존적 불안을 상승의 열망으로 변화시키다

산은 왜 사람을 끌어당길까. 왜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위태로운 절벽 앞에 서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배낭을 메고 떠나는가. 장 마르크 로셰트의 그래픽노블 『엘프와드』는 이 오래된 질문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해발 3,954m의 고산 암벽을 오르는 치열한 여정을 담고 있지만, 이 책이 끝내 도달하는 곳은 산의 정상이 아닌 인간의 가장 깊숙한 내면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등반에 빠져드는 시기가 대개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청년기’와 자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실존적 불안과 사회적 공포, 기존의 것에 대한 도전이 가장 격렬하게 표출되는 시기, 청춘들은 속세의 소음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보다 높은 곳을 꿈꾼다. 그것은 물리적인 오름인 동시에 정신적인 상승이며, 단단한 틀에 갇힌 세계를 깨부수고 각자의 자아를 구축하려는 날 것 그대로의 몸부림이다.


| 모순과 환각의 알피니즘, "자기 자신의 벽"에 곧게 서는 일

"자기 자신의 벽에 곧게" 올라서는 것, 등반가 스테파니 보데는 산에 오르는 행위를 이렇게 표현했다. 알피니즘은 시련과 표현할 길 없는 기쁨, 극도의 고통과 압도적인 감복의 순간이 쉼 없이 교차하는 ‘이율배반의 결정체’다. 새벽의 한기와 산소 부족, 낙석과 추락의 공포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우리는 왜 오르려고 하는가. 단순히 스포츠로서의 가치를 넘어, 공간과 자유를 향한 우리의 근본적인 꿈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표출되는 자립심과 책임감,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다시 채워지는 듯한 생생한 감각은 때로 심리적 환각에 가까운 충족감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일개 무모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 속 두려움을 극복하며 삶의 자기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다.



| 산은 적이 아니다, 또 다른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

많은 이들이 자연, 특히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지만, 『엘프와드』가 보여주는 산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산은 결코 인간의 적이 아니다. 그저 숨어있던 결점들이 드러나며 동요된, 또 다른 내 모습을 가감 없이 비춰주는 투명한 ‘거울’일 뿐이다. 절벽 위에서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바위가 아니라, 공포 앞에 흔들리고 연대 앞에 눈물 흘리는 우리 자신이다. 산이 보여주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냉혹한 자연 속에서 생존하고, 그 의미를 찾는 길이다. 가장 위대한 등반가로 꼽히는 라인홀트 메스너는 자신이 이룬 최고의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 한 마디로 답했다. 바로 “살아남은 것!”이다. 프랑스 등산학교의 전설적인 조언 역시 "살아남으십시오"로 귀결되듯, 산이 가르쳐주는 궁극의 지혜는 결국 삶을 향한 겸손과 생존 그 자체에 있다.



| 그림으로 표현되는 고도감과 침묵의 언어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더욱 깊은 전율을 주는 이유는 텍스트 중심의 소설을 벗어난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의 시각적 압도에 있다. 작가 로셰트는 새벽의 거대한 설산과 칼날 같은 암벽 사이에 매달린 작은 인간의 실루엣을 경이롭게 포착해 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텍스트 너머의 서늘한 고도감과 칠흑 같은 얼음 속의 침묵, 심장 소리마저 멎게 하는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저 아래 세상에선 어른들이 맨날 이래라저래라 하는데, 여기선 산이 정한다. 누가 뭐라든”이라며 소리치는 소년 로셰트의 대사는, 문명과 차단된 장엄한 규모의 배경 속에서 비로소 묵직한 해방감으로 다가온다. 산 앞에서 복잡한 사회규범과 권위, 인위적인 언어는 얼마나 작은가를 단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 각자의 벽을 오르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로프

『엘프와드』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답답함을 느끼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다. 우리는 종종 너무 많은 기준과 정제된 언어 속에서 자신을 소모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높은 산, 가파른 벽 앞에서 인간은 모든 거품을 걷어낸 채 서 있다. 신뢰하는 동료와 함께 생존을 위해 호흡하고, 손을 뻗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온몸을 불태워 도달한 곳에서 존재에 대한 강렬한 감각을 체험한다.

지금, 이 순간,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거대한 벽 앞에 서서 불안해하고 있을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엘프와드』는 생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산을 바라보고 꿈을 좇는 이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역시 각자의 삶이라는 험준한 산을 묵묵히 오르고 있는 등반가, 그리고 함께 가는 동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