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소유가 아닌 기술이다 -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 565호
  • 기사입력 2025.06.12
  • 취재 윤정민 기자
  • 편집 임진서 기자
  • 조회수 1005

누구나 사랑을 원하지만, 정작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은 드물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잘 다룰 줄 아는 것은 아니다. 프롬은 이 책에서 사랑 또한 하나의 기술이라 규정하며, 현대인이 겪는 사랑으로 인한 혼란을 철학적으로 고찰해 짚어낸다. 자본주의, 소비사회, 불안한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은 점점 더 얕고 불안정한 감정으로 전락한다. 『사랑의 기술』은 우리가 진짜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훈련해야 하는지 권고해 주는 사랑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로, 인간 내면과 사회 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사회심리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사회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개인 심리 사이의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인간 행동과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자 했다. 프롬은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진단하고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모색하였다. 프롬은 인간의 내면적 성숙과 더불어 공동체적 연대가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사회, 즉 인본주의적 공동체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고,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를 집필하였다.


| 사랑은 기술인가?

현대인은 사랑을 갈망하며, 사랑을 주제로 한 수많은 서사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태도가 몇 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먼저, 사람들은 대개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받는 능력’의 문제로 착각한다. 그래서 타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사회적 지위를 높이거나 외모를 가꾸는 데 집중한다. 둘째,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감정이며, 진짜 어려운 것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셋째, 많은 이들이 사랑의 시작 단계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과, 그 사랑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능력을 혼동한다. 프롬은 이러한 오해 탓에 사랑의 실패가 반복된다고 본다. 그는 사랑을 하나의 ‘기술(技術)’로 보며 이론적 이해와 실제적 실천을 통해 꾸준히 배워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궁극적인 관심사를 ‘사랑’ 그 자체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랑을 배우려는 태도에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사랑의 이론

1) 사랑, 인간의 존재 문제에 대한 해답

프롬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본능적 적응의 여부에서 찾는다. 동물의 애착은 본능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인간은 더 이상 본능만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존재다. 자연과의 원초적 합일 상태에서 분리된 인간은 고독과 불안을 겪게 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도취적 합일, 집단과의 일체, 창조적 활동 등을 추구한다. 그러나 프롬은 이러한 방식들을 사이비 합일이라 비판한다. 그는 성숙한 사랑만이 인간이 고독과 분리감을 극복하면서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합일의 방식이라고 본다. 이는 자신의 개성을 유지한 채 타인과 깊이 결합하는 것으로, 고독과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며,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을 주는 것’이란 물질을 나누는 개념이 아니라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슬픔 등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을 나누는 것이다. 프롬은 성숙한 사랑을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이 내포된 능동적 실천으로 규정한다. 이는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고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2)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프롬은 부모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특성과 그 영향을 설명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아이는 존재만으로 사랑받는다. 갓난아이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생명을 지키고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이 사랑에 머물러 성숙하지 못하면, 아이는 독립심 없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태도를 지닌 인간으로 자라게 된다. 프롬은 이를 어머니 중심적 태도라 부르며, 히스테리, 알코올 중독, 현실 회피 등 신경증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적이며 복종을 요구한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규범과 질서를 가르치며 사회 속에서 책임을 지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끈다. 아이는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면서 성장을 이룬다. 하지만 아버지 중심적 가치에만 편향될 경우, 권위에 순응하고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왜곡된 성인이 될 수 있다. 프롬은 성숙한 인간이란 부모에게서 독립해, 내면에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을 통합한 존재라고 말한다.


3) 사랑의 대상

사랑은 본래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만 사랑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확대된 이기주의이거나 공서적 애착일 뿐이다. 내가 어느 한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나의 주변 세계와 삶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 사랑은 영혼의 활동이자 능력이다. 사랑도 사랑을 받는 대상에 따라 차이점이 생겨난다. 프롬은 사랑의 대상과 관련해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을 구분해 각각 설명한다.


“그는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기쁨이다.”


|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에리히 프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랑을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는 메시지에 사로잡혀 있고, 이는 사랑마저도 상품처럼 교환되고 평가되는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어느새 사랑은 조건과 효율의 문제가 되어 ‘거래’로 취급받고, 사람들은 진정한 만남보다 사랑받기 위한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한다. 이처럼 왜곡된 사회 구조 속에서 현대인은 사랑을 통해 고독과 불안을 해소하려 하지만, 오히려 더 큰 분리감과 공허함을 경험한다. 프롬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미숙한 사랑과 사이비 사랑이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빠지기 쉬운 사이비 사랑을 소개한다. 우상 숭배적 사랑은 상대를 이상화하며 자신을 투사하지만, 결국 실망을 반복하는 구조다. 감상적 사랑은 영화나 노래 같은 환상적 매체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사랑이다. 투사적 사랑은 자신의 문제를 외면한 채 타인에게 의미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투영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갈등 없는 사랑은 충돌을 피하고 조화만을 추구하지만, 깊이 없는 피상적 관계에 머문다. 프롬은 이러한 사이비 사랑이 우리를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사랑은 자기 존재 중심에서 출발해,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능동적 실천이다. 현대인이 다시 진정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사랑을 ‘배워야 하는 기술’로 인식하고 삶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 사랑의 실천

에리히 프롬은 진정한 사랑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훈련, 정신 집중, 인내, 그리고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고통과 수고를 수반하는 기술이며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이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정신 집중을 익히기 위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혼자 있는 연습’이다. 타인 없이도 내면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귀중한 전제 조건이 된다. 또한 프롬은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능력, 즉 현재에 집중하는 태도가 사랑을 위한 기본 역량임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는 자아도취를 극복해야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본다. 자아도취란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태도이며 이는 객관성과는 반대되는 방향이다. 사랑은 객관적인 시선, 즉 타인의 존재와 가능성을 그대로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며 이는 곧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신념을 통해 가능해진다.

프롬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신앙’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신앙은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말한다. 합리적 신앙은 자신의 경험과 사고, 감정에 기반을 둔 확신이며, 타인의 가능성과 성장에 대한 믿음을 포함한다. 반면 비합리적 신앙은 전지전능한 외부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비롯되며, 이는 자율적 사랑의 기반이 될 수 없다. 합리적 신앙은 관찰과 사고를 통해 형성되며, 타인의 잠재력을 믿고 그 존엄성을 인정하는 태도다. 이러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즉 사랑이 반드시 보답받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사랑은 타인을 믿고 자신을 열어 보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에,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

따라서 지금 무엇인가 하고 있으면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이 능력이고 기술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배우고 연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롬이 말하는 진짜 사랑은 감정의 충동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진정한 자신과 마주할 때 비롯되는 것이다. 고독과 불안이 일상화된 시대에서 사랑은 다시 배워야 할 가장 인간적인 기술이다. 사랑에 서툰 모든 이에게 이 한 권의 책 『사랑의 기술』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