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成功)의 정의(定義)에 대해서

  • 433호
  • 기사입력 2019.12.13
  • 편집 연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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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노공학과 및 SAINT 이진욱 교수



'건학 621주년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도전하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생성공’과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혁신하고 공유하는 대학이 되겠습니다.'


우리 학교는 최근 ‘학생성공’을 학교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제시하였다. 누구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한다. 20대, 누군가가 왜 공부를 하는지, 왜 학위를 하는지 물어보았을 때 종종 ‘좀 더 빨리, 좀 더 크게 성공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삶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필자는 최근 몇 년 간 평생 직업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나만의 ‘성공’에 대해서, 그것도 절반 정도를 정의하게 되었으니 적어도 34년은 더 걸린 것 같다.


우리나라는 1인당 GDP가 세계 28위이다. ‘성공’을 단순히 부의 축적으로 정의한다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평균적으로 세계 28위여야 한다. 지난해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57위다. 우리보다 1인당 GDP가 1/3배 가까이 적어 세계 64위인 말레이시아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35위다. 이렇듯 ‘성공’이라는 것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주관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개인마다 나름대로 이를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선배로 모교에 돌아와 이제는 교수로서, 후배들을 위해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고민해보다가 나름대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내 인생에서 ‘성공’을 정의해 온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필자는 박사학위가 끝나갈 때 즈음 직업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주 5일 하루 10시간 정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매일 8시간 정도 수면을 취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약 41.1%를 일터에서 보내는 셈이다. 아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 또 그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 고민할 테니 적어도 우리 인생의 성공에 대한 정의의 절반 정도는 직업과 관련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성공하는 것일까. 이것 또한 주관적인 질문이다. 어떤 이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또 어떤 사람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학부에서는 전자전기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사실 대학교 원서를 쓰면서 학과선택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전공을 좋아하는지 몰랐을 뿐더러 학과에 대한 정보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공계였던 나는 공학계열보다는 합격 커트라인이 조금 높고 대기업 취업이 잘 될 수 있는 (추측이었지만) 정보통신계열에 진학하였다. 대학을 오고 난 후에야 전자전기공학 전공공부가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회로이론 전자기학과 전자전기공학 전공 핵심과목에는 흥미가 없었고 수업 시간에 졸기 일쑤였으며 시험기간 때 나름 공부를 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렇게 4년을 꽤 고통스럽게 보내고 4학년이 되어서야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무엇을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나름 연봉이 높은 S전자 대기업에 합격하였지만 4년 동안 고통받던 전공과 관련된 일을 평생 동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운이 좋게도 학부 졸업논문을 쓰면서 학과 교수님 연구실에 참여하여 태양전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고 흥미를 가지게 되어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부 전공 배경이 없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가시적이고 직관적인 연구 활동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기초적인 것 하나하나를 배워가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박사학위가 끝나갈 때 즈음 이렇게 재밌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을 내 평생 직업으로 가지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모교에 교수로 임용되어 최고의 환경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회적인 명예가 높고 존경 받는‘ 교수라는 직업을 가져서라기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절반 정도의 인생은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는 운이 좋게도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깨닫게 되었지만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비교적 실패에 관대하고 시간 여유가 많은 학부시절에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진지한 고민없이 대세에 따라서 평생 직업을 선택한다면 아마도 그 선택이 ‘성공적일‘ 확률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미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적어도 ‘성공적인 인생’에 대한 절반의 정의는 끝낸 셈이니 그 직업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직업에 대한 고민이 일단락된 요즘 내 ‘성공적인 인생’에 대한 나머지 절반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다. 일터에서도 그리고 일터를 떠나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과 교감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교감의 과정에서 만족, 사랑, 보람, 슬픔, 분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직업이 우리 인생의 개인적인 만족도를 결정한다면 그 인생을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가 아마 나머지 절반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UCLA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3년 동안 재직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가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연구그룹은 내부 경쟁과 갈등이 심해 종종 새롭게 합류하는 동료에게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름대로의 노력 끝에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모두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좋아하는 연구를 하면서도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교수로 임용되어 성균관대로 돌아오면서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인생' 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물론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과 교감하게 되겠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적어도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항상 함께하지 않을까. 그것이 내 성공적인 인생에 대한 나머지 절반을 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구과제 제안서를 막 제출하고 마감일에 쫓겨 두서없이 써본 짧은 글이지만 후배들이 자신만의 '성공'에 대한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