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위한 비결, ‘別’

  • 491호
  • 기사입력 2022.05.1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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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재석 유학대학·학부대학 교수



‘百年偕老’ 부부 사이의 관계윤리


결혼식에 가면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 까지’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부부의 연을 맺어 한평생 함께 하며 화합을 이루라는 축원의 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전 세대 어른들은 성격이 맞지 않거나 감정이 무뎌지더라도 이런 통념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은 다소 변화된 듯하다. 결혼이 자유를 박탈하고 서로를 구속하는 새장과 같은 제도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새장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정작 안에 있는 새들은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과 같이,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실제 최근 미국에서는 웨딩 사진작가들이 이혼 사진작가로 전업하고 있다고 한다. 이혼율이 급증하자 이혼 사진을 찍으려는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이혼율이 상위권에 해당한다고 한다. 고전의 지혜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간접경험을 통해 마주하게 될 일상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혜안을 줄 수 있다. 부부관계 비결을 숙지하면 만복의 근원인 가정 화합을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가 남녀관계이기도 하므로, 남녀 사이의 관계 유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전 『맹자』는 부부간에 지켜야 할 관계 윤리로 ‘夫婦有別’을 강조했다.  ‘有別’의 ‘有’는 ‘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있어야 한다’는 당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別’은 ‘구별·차별·분별’의 의미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름에 대한 존중으로의 ‘別’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사유에 반감을 가져서인지, 다산은 ‘별’을 서로의 배필을 침범하지 않는 ‘분별’의 의미로 해석했다. 사람마다 모두 결혼하여 정해진 배필이 있는데, 남의 배우자를 탐하여 관계를 어지럽히면 가정이 무너지게 되므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연애와 달리 현실이라 보고, 연애 할 때는 있는 그대로 좋은 사람과 사랑하지만, 결혼 할 때는 사람 자체 보다 외모, 학벌, 직업, 경제력 등이 우선하곤 한다. 그러니 결혼 이후 다름을 보면 거슬린다.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 모습대로 살아야 편안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관계가 조화로울 수 있다.


‘別’의 방향, 다름과의 조화


물론 다름을 존중한다고 각자의 다름을 무한정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는 매일 마주보며 생활하는 관계이므로 나의 다름은 반드시 상대의 다름과 만나게 되어 있고, 때론 충돌한다. 다름에 대한 존중은 다름이 갈등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식적인 노력, ‘別’의 실현


서로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인륜이 시작인 부부관계는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 결혼 초기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지만, 점차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면 사랑을 의심한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되, 배우자에 대한 눈높이와 기대치는 낮추어야 한다. 배우자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것이 크고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실망도 커져 관계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상대방이 수준 높은 인격을 갖춘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되어가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이해와 관용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만일 상대방이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절망하고 감정마저 차가워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그대로 갚아준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선을 긋고 법적인 부부로만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거나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자신을 헤치고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어떻든 스스로는 바르게 행동하여 자신의 자존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배우자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감화하여 삶의 태도 변화를 보일 것이다. 물론 배우자의 변화 여부는 상대방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다. 객관적 한계가 존재할 수도 있다.


금슬 좋은 부부의 상징, 원앙


선현들은 원앙을 금슬 좋은 부부로 비유하였다. 원앙은 오리과의 물새로, 암컷과 수컷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 마리를 잡아가면 남은 한 마리가 제 짝을 그리다 죽고 만다고 해서, 원앙을 ‘배필새[匹鳥]’라 부르기도 한다. 전통사회에서 원앙을 정절의 표상으로 상징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본래 의미는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고픈 지극한 사랑을 비유한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기대와 바램을 낮추고, 자신의 존엄을 세우며, 다름을 존중하고 다름과 조화를 이루는 ‘別’을 실천하는 것이 금슬 좋은 부부 사이를 이루는 비결임을 『맹자』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