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에 나타난 사랑이야기(1)

  • 499호
  • 기사입력 2022.09.15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2832

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시경』에는 인간의 절제된 감정을 통한 윤리적 선 실천과 관련된 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시도 있다. 이런 시를 특히 남녀 간의 애정에 맞추어 말할 때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고 말한다. 이런 시를 주희는 ‘음분시(淫奔詩)’라고 말하는데, 유학자들은 이런 음분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배척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른바 공자가 ‘바람직한 음악은 순임금의 공덕을 기린 ‘소(韶)’라는 음악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나라 소리는 내쳐야 한다. 정나라 소리는 음란하기 때문에 내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아악(雅樂)을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배척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경』에 나타난 이같은 두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시들을 거론해보자.


2. 「관저(關雎)」 : 어떤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인가?


『시경』의 맨 처음에 나오는 시는 관저」로서 흔히 주나라를 세운 문왕과 그 부인인 태사(太姒)의 사랑 이야기의 전모를 읊은 시라고 한다. ‘즐겁지만 그 즐거움이 지나쳐 바른 것을 잃지 않고, 슬프지만 그 슬픔이 조화로움을 해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이라 평가한다. 즉 절제된 감정을 통해 중화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시가 바로 관저다.


꾸안꾸안 사랑 표현을 하면서 노래하는 물수리 두마리가 황하 가 모래톱에 놀고 있네요.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군자가 일편단심 기다리는 이 몸의 배필이지요.

들쭉날쭉 돋아 있는 마름풀들은 이리저리 헤치면서 찾아가듯이 그윽하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자나 깨나 그리워하며 찾아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어 자나 깨나 애태우며 생각합니다. 요조숙녀만을 생각하며 잠 아니 오는 긴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지새웁니다.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다가 뜯어오듯이 이제야 요조숙녀님을 만나서 금과 슬을 뜯으면서 벗이 됩니다. 들쭉날쭉 돋아 있는 저 마름 풀을 이리저리 다듬어서 삶듯이 요조숙녀를 얻어 함께 하기에 즐거워서 종을 치고 북을 쳐 혼인을 맺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남녀간의 사랑과 관련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요조숙녀, 오매불망, 전전반측, 금슬 등과 같이 고사가 나온 시다. 이 시의 첫머리에 나오는 ‘저구’라는 새, 이른바 물수리는 강가에 둥지를 틀거나 혹은 모래톱에 둥지를 트는데 그것은 물고기를 잡기가 수월하고 새끼들은 양육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즉 독수리는 주로  숲 속에서 살지만 이처럼 물가에 사는 독수리도 있다는 것이고, 그 물가에 사는 독수리가 물수리다.


‘꾸안꾸안[關關]’은 암수가 서로 응하는 온화한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수컷이 암컷에게 경박하지 않은 예를 갖춘 몸가짐으로 점잖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꾸안[關]’”하면 암컷이 수줍어하면서 “저도 그렇습니다 ‘꾸안[關]’”하고 화답하는 것을 소리로 형용한 것이다. 이 두 마리의 사랑 표현은 어느 하나 음란한 것이 없다. 시인은 이런 물수리의 생태적 속성을 덕이 있는 군자와 요조한 숙녀의 사랑 이야기에 비유한다. 저구(雎鳩) 즉 물 근처에 사는 독수리인 물수리는 날 때부터 정해진 짝이 있어서 한번 인연을 맺으면 그 짝을 갈지 않고 항상 함께 놀면서도 서로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수리들은 감정 표현이나 행동거지에서 항상 절제됨과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암수 물수리에 이런 분별이 있고 서로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체득해 흥을 일으킨 시인은 군자와 요조한 숙녀의 만남에 비유하여 노래한다.


물가에 보면 여기저기 수면에 흩어져 있는 마름을 볼 수 있다. 이런 마름은 식용으로 사용된다.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식용으로 쓰일 가치가 있는 것이 마름인데, 모든 마름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식용에 적합한 마름을 골라야 한다. 따라서 마름을 캐는 사람은 물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마름 가운데 어떤 마름이 좋은지를 고르기 위해 이것저것 뒤척여 본다. 이런 정경을 본 시인은 흥을 일으켜 군자가 어떤 여인이 자신의 배필에 적합한지를 고르는 것으로 비유한다. 이리저리 물 위에서 떠다니는 마름들은 많은 숙녀들을 상징한다. 요조한 숙녀와 그냥 말하는 착한 여자[숙녀]와는 차이가 난다. 요조한 숙녀는 얼굴도 예쁘면서 몸가짐이 바르게 학식과 인품을 갖춘 매력적인 여자를 상징한다. 때론 키도 커야 한다. 이런 요조한 숙녀만이 군자의 짝이 될 수 있다. 즉 마름을 이리저리 헤치는 것은 군자가 요조숙녀를 선택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행동거지가 바르면서 의젓하고 아울러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사명감을 지닌 군자는 아무 여자나 자신의 배필로 삼지 않는다.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맞는 요조한 숙녀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군자가 선택한 여자는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는 부인이다. 더군다나 한나라의 군주가 될 문왕은 이런 점에서 누가 자신에 맞는 요조한 숙녀인지 더욱 고르고 고른다. 하지만 그런 요조한 숙녀는 아무 데나 있고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군자는 요조숙녀를 행여 얻지 못할까 자나 깨나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항상 그리워하면서 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요조한 숙녀를 자나 깨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그리워하나 그것이 지나쳐 몸을 상하거나 혹은 일상적 삶의 패턴이 깨지는 상황에까지 가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은 공자가 말한 ‘락이불음, 애이불상’에서 ‘애이불상’에 해당한다. 즉 요조숙녀를 구하고자 했지만 구하지 못한 상황은 슬픈 상황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군자는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몸과 마음을 상하는 상태에까지는 빠지지 않는다. 다만 전전반측하면서 그 슬픔을 절제하는 이런 상황이 ‘불상’에 해당한다.


이제 먹을 수 있는 마름을 뜯으러 간 인물은 자신이 어떤 마름이 좋은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여러 마름 가운데 헤치면서 따온다. 그리고 신중하게 선택한 그 마름을 삶아서 먹는다. 이런 상황을 보고 시인은 흥을 일으켜 군자가 자신에 맞는 배필 즉 요조숙녀를 구하다가 드디어 자신에 맞는 배필을 구한 다음, 그 이후에 그 배필과 친구처럼 화합하면서 지내다가 최종적으로 결혼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으로 비유한다. 이 상황은 공자가 말한 ‘락이불음, 애이불상’에서 ‘락이불음’에 해당한다. 금과 슬을 켜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이미 결혼한 상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후대에 부부간에 사이가 좋고 화목한 것을 흔히 ‘금슬이 좋다’고 한다.


군자와 숙녀가 즐거움을 함께 하는 도구는 금과 슬이다. 주로 실내에서 사용하는 악기다. 상대적으로 비유하여 말하면 금은 5현 혹은 7현으로 조금 묵직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남성적인 악기고, 슬은 25현으로 상대적으로 금에 비해 맑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여성적인 악기에 해당한다. 즉 군자와 요조숙녀 간의 우애한 사랑을 금과 슬의 연주에 비유한다. 군자가 먼저 금의 ‘둥’하는 묵직한 음에 담아 애정을 표현하면, 요조숙녀는 그 금 소리에 맞춰 ‘띵’ 하는 경쾌한 음을 내어 화답하면서 자신도 군자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조용히 표현한다. 두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룬다. 어느 소리 하나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것 없이 잘 조화를 이룬다.


이제 마름을 뜯은 사람이 마름을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마름을 캔 사람과 그 마름이 하나가 됨을 상징한다. 이제 친구처럼 지내는 군자와 숙녀는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된다. 종(鐘)은 금속 악기에 속하고 고(鼓)는 가죽으로 만든 타악기로 두 가지 모두 악기 중에서는 큰 것인데, 종과 북을 울리면서 즐겁게 지낸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금슬우지’처럼 군자가 큰 종을 ‘뎅’하면서 쳐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때 요조숙녀가 큰 북을 ‘두둥’하면서 쳐서 조화를 이루면서 즐겁게 화답하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큰 종과 큰 북은 금슬 같은 실내 악기보다는 야외에서 결혼식 등과 특별한 큰 행사 혹은 의례를 진행할 때 주로 사용하는 악기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는 큰 종과 큰 북의 연주가 매우 화합하는 소리를 연출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어느 상황이든지 모두 큰 종과 큰 북의 연주가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이 없이 화음을 이룬다. 이 상황은 ‘락이불음’의 ‘불음’에 해당한다.


3. 나오는 말


이처럼 군자와 요조숙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이 없이 절제된 상황에서 아름답게 화합을 이루고 있다. 중화 미학이 완벽하게 실현된 모습이다. 공자는 관저의 이런 감정의 절제를 높이 평가하여 ‘락이불음, 애이불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관저에 나타난 군자와 요조숙녀와의 사랑 이야기는 이후 유가가 지향한 중화 미학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물가에 자리잡은 물수리 한쌍.]

물수리는 육식 동물 중 단독 사냥 성공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강, 호수, 바다 등지에서 서식한다. 잉어, 송어, 연어, 누치, 가물치, 붕어, 가자미 등 중대형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물수리는 짝을 맺으면 금슬이 매우 좋다고 한다.



[정선(鄭敾),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 絹本 채색, 29.2×23.0cm, 간송미술관.]

행호는 고양사람들은 한강물이 행주산성의 덕양산 앞에 이르러 강폭이 넓어져 강이 마치 호수와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에 있는 모래톱 주변에는 물고기가 많이 모이기 때문에 배들이 진을 쳐 늦봄에는 황복어[河腹] 초여름에는 웅어[葦魚]를 잡았다고 한다.

이병연(李秉淵)의 제시 : 늦봄이니 복어국이요, 초여름이니 웅어회라. 복사꽃 가득 떠내려 오면, 행주 앞강에는 그물 치기 바쁘네.(春晩河腹羹, 夏初葦魚膾, 桃花作漲來, 網逸杏湖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