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이단(異端)인가?
- 이기론을 통해 본 조선조 유학자들의 이단관 편린

  • 513호
  • 기사입력 2023.04.14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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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이단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율곡은 문묘에 배향된 인물로서,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조를 대표하는 유학자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율곡은 이단인가?’ 하는 질문은 매우 황당한 질문에 해당한다. 율곡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답이지만 율곡이 이단이라고 하는 것도 정답에 속한다.


조선조 유학사를 통관하면, 율곡을 이단이라 여긴 것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영남학파에 속하는 유직(柳稷, 1602~1662)을 비롯한 900여 명의 영남 유학자들이 이기론(理氣論) 측면에서 이단시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이 이단시한 것의 핵심은 이기론 입장에서 ‘기가 리가 된다고 여기는 것[認氣爲理]’을 통해 율곡 철학을 평한 것이다.


본 글은 유직 등이 올린 상소문의 율곡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하여 율곡이 이단인지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기론 측면에서 유직의 율곡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인기위리’라는 용어다. 조선조 철학사에서 ‘인기위리’라는 용어가 유학자들이 노자, 불가, 양명학 등을 이단시하면서 비판할 때의 핵심 용어임을 감안하면 유직 등이 보기에는 율곡 철학은 이단에 속한다는 것이다.


2. 유학자들의 이단관 개략


먼저 유학자들의 이단관의 개략을 알아보자. 주희(朱熹)는 『중용장구(中庸章句)』「서(序)」에서 ‘이치에 더욱 가깝지만 크게 참됨을 어지럽힌다[彌近理而大亂眞]’라는 사유를 통해 이단관의 핵심을 규명한 바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리(理)를 기준으로 하여 이단이냐 아니냐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즉 리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밝히면 정학(正學)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학(異學) 혹은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이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집체(執滯)를 다한 것, 장주(莊周)를 광탕(曠蕩)을 다한 것, 노씨(老氏=老子]는 현허(玄虛)를 다한 것, 불씨(佛氏=석가)는 노자·장자·양주·묵적 등에 비해 더욱 현허(虛幻)가 심해 의거할 하락처(下落處)가 전무하다고 평가하면서 이런 점을 ‘미근리이대란진’과 관련하면서 이단 의식을 보다 자세히 규명한 것은 참조가 된다.


조선조에서 이기론을 통해 유가, 도가, 불가를 규명한 것은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심과 리 및 기에 관한 삼편[心難氣, 氣難心, 理諭心氣]’이다. 정도전은 노자는 기(氣), 불가는 심(心)을 통해 자신들의 학설을 주장한다고 하면서 노자는 기는 리에 근본한 것인데 기를 도로 삼고, 불가는 리는 심에 구비되어 있는데 심으로 종지를 삼는다고 하는 이단관을 전개한다.



▲ 정도전(鄭道傳) <초상화>

정도전은 무능하고 변변치 못한 임금이 나오더라도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재상만 있다면 민본과 왕도의 이상을 이루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란 점에서 재상정치를 주장한다. 즉 유교 국가가 이상으로 삼은 ‘민본과 왕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임금의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자신과 같은 지식 엘리트 집단에서 나온 재상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도전은 이런 사유를 철학 측면에서는 「心難氣」, 「氣難心」, 「理諭心氣」 등의 글을 통해 유학을 정학(正學)으로 보면서 노자와 불가의 학설을 비판한다.


밀암(密菴) 이재(李栽, 1657~1730)는 노장은 기를 도로 삼아 성(性)이 없고, 석씨는 기를 성으로 삼아 리가 없고, 유자는 리를 성으로 삼아 도(道)와 기(器)가 분변된다는 점에서 유·불·도 삼교의 차이점을 밝힌 적이 있다. 우주론 차원에서는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은 노자가 도는 태극에 앞서 있다고 여긴 것은 ‘리가 기가 된다고 여기는 것[認理爲氣]’에 해당하고 불씨가 곧바로 음양을 가리켜 도라고 한 것은 ‘기가 리가 된다고 여기는 것[認氣爲理]’이라고 진단하여 유·불·도 삼교 도론의 차이점을 밝힌다.


주목할 것은 ‘인리위기’ 혹은 ‘인기위리’는 주로 유가에서 이단시 되는 사유를 비판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조 유학사를 보면 ‘인리위기’ 혹은 ‘인기위리’라는 용어는 도가와 불가를 비판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퇴계와 율곡 이후 조선조 유학자들이 ‘인리위기’ 혹은 ‘인기위리’라는 용어를 도가와 불가를 비판하는 것에 적용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유학자에게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예가 바로 유직 등이 율곡 철학을 ‘인기위리’라고 비판한 것이다.


3. 이기론을 통한 오도(吾道[=유학])와 이단 구분


조선조 유학자들의 오도(吾道[=유학])와 이단을 구분하는 핵심 중의 하나는 이와 기를 통한 구분인데, 특히 ‘인기위리의 사유를 통해 구분한다.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불교의 ‘작용하는 것이 성이다[作用是性]’라는 것을 ‘인기위리로 보면서, 그것은 ‘심으로 성을 논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는 양명학(陽明學)을 ‘인기위리로 규정한다. 이밖에 이재(李縡, 1680~1746)는 고자(告子)의 사유도 ‘인기위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학파에 초점을 맞추면, 주로 퇴계를 존숭하는 인물들은 ‘인기위리 사유를 통해 이단관을 전개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하나의 예로 퇴계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문인인 유직(柳稷) 등이 율곡과 성혼(成渾, 1535~1598)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율곡 이이의 철학에 대해 ‘인기위리’라는 차원에서 비판한 것을 들 수 있다.



▲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율곡 이이의 <초상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는 조선조 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두 인물의 이와 기에 대한 견해는 이후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이기불상잡의 입장에서 이와 기를 판연하게 나누면서 리의 극존무대(極尊無對)와 순수부잡(純粹不雜_함을 주장한 퇴계학을 추존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기지묘와 이통기국을 말한 율곡의 사유는 때론 이학(異學) 혹은 이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는 무엇이 진리인가 하는 진리 인식에 관한 각 학파의 입장이 담겨 있다.



이기론 입장에서 이단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이와 기를 불상잡(不相雜)’의 입장에서 이해하느냐 ‘이와 기를 불상리(不相離)’의 입장에서 이해하느냐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기론 차원에서의 이단관은 한 인물의 철학을 ‘인리위기’ 혹은 ‘인기위리’라고 규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은 이기는 애당초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일물(一物)도 아니기 때문에 만약 이기 사이에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인기위리’, ‘인리위기’의 병통을 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기불상리(理氣不相離)’ 입장에서 이와 기의 관계를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이와 기는 판연하게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이기불상잡(理氣不相雜)’의 입장에서 보면 만약 이와 기를 일물로 여긴다면 그것은 바로 ‘인기위리’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비판한다는 것이다.


이황(李滉)을 사숙해 「사칠설(四七說)」을 지어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이며 기는 기질의 성이라고 주장한 권상일은 앞서 본바와 같이 노씨와 불씨의 우주론을 비판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오도(吾道[=유학])와 이단의 구분은 이와 기에 대해 투철하게 보는 것에 있다고 하며, 이같은 근본에 대해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면 ‘인기위리’ 혹은 ‘인리위기’의 잘못을 범하게 된다고 한다는 발언은 이런 점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영남학파인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6대손인 정종로(鄭宗魯, 1738~1816)는 ‘인기위리’의 걱정을 없애려면 이와 기는 분별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답: 논의한 것이 매우 합당하다. 이(理)와 기(氣) 두 물건은 요컨대 모름지기 분별하기를 이와 같이 한 연후에 바야흐로 이(理)를 기(氣)로 인식하고 기(氣)를 이(理)로 인식하는 걱정이 없게 되어, 식견이 밝고 투명하여 가로로 말하고 세로로 말해도 전혀 막히는 장애가 없게 될 수 있다.


이기론에서 이기불상잡은 퇴계가 주장하는 종지에 해당하면서 아울러 퇴계를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가 주장하는 정학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이기불상리를 말하고 이기지묘(理氣之妙) 및 이통기국(理通氣局)을 말한 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 이와 기는 일물이라고 이해될 수 있는 율곡 철학은 퇴계를 추종하는 유학자들에게 이학(異學) 혹은 이단이라는 혐의를 받게 된다.


4. 나오는 말


율곡을 이단이라고 여기는 것은 율곡 철학을 ‘인기위리’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럼 ‘율곡은 이단인가?’라는 질문에 이단이라고 하는 답과 관련해 유직 및 경상도 진사 9백여 명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종사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율곡 이이의 철학에 대해 ‘인기위리’라는 차원에서 비판한 구체적인 내용을 보기로 한다. 더불어 유직 등이 논지를 비판하면서 율곡 철학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조목조목 밝힌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변석(辯析)글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