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미래에 관한 단상
- AI 한의사 출현에 따른

  • 466호
  • 기사입력 2021.04.29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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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 최고 경지의 한의사 : ‘척 보면 압니다.’


장사를 오래 해본 분들은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의 표정과 행동거지를 보면 그 손님이 물건을 구매할 지의 여부를 ‘대강’ 안다고 말한다. 근거 없는 허황한 말 같지만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린 판단은 오랜 세월 장사를 하면서 체득한 ‘축적된 경험’을 근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인의 정황을 확대하여 말하면, 한의사들이 병자의 몸 상태를 판단하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뛰어난 한의사는 들어오는 병자의 표정과 행동거지를 보면 몸에 무슨 나쁜 증상이 있어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비교할 때 한의학이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인간 몸의 각 구성 요소를 부분으로 이해하지 않고 전체적이면서 유기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이른바 홀리즘[holism]으로 이해하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진료방법도 신체 내부 변화에 따른 기맥의 흐름과 기세의 차이점을 통해 몸 건강 상태의 유무와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진맥(診脈)’의 의료진단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최고의 한의사라고 일컬어지는 경우는 진맥과 관련된 ‘과학적’ 의료진단법과 다른 차원에서 말해진다.


병자의 몸에 나타난 이상 징후를 파악하는 경지와 관련하여 『황제팔십일난경(黃帝八十一難經)』「육십일난(六十一難)」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보자.


보아서 아는 것을 신묘하다고 하고, 듣고서 아는 것을 성스럽다 하고, 물어서 아는 것을 교묘하다고 하고, 진맥을 통해 아는 것을 기교가 뛰어나다고 한다.


한의사가 병자를 보고 판단하는 경지의 고하를 ‘신묘한 경지’, ‘성스런 경지’, ‘교묘한 경지’, ‘기교가 뛰어난 경지’ 등으로 구분하는데, 최고 경지의 한의사는 병자를 보는 순간 바로 몸의 이상 징후를 알 수 있음에 비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행하는 진맥을 통한 병자 몸 상태를 진단하는 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단순히 오랜 경험을 쌓는다고 ‘척 보면 압니다’ 라는 최고 경지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에 몸 전체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탁월한 심안(心眼)과 형안(炯眼)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어찌되었든 경험의 축적을 근거로 한 ‘보아서 아는 경지’에서 인간의 질병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을 만약 ‘과학’이란 잣대를 가지고 시비를 가린다면 당연히 문제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왜 한의학에서는 이런 비과학적이면서 신비적인, 때론 황당한 것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자. 아울러 이런 질문을 통해 미래 한의학은 어떠한 차원의 한의학이어야 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 ‘관색론(觀色論)’ : 얼굴은 몸 안의 상태를 반영한다.


‘척 보면 압니다’라는 신묘한 경지는 보이지 않은 인간 내면의 마음 상태 혹은 병적 징후를 겉으로 드러난 얼굴색이나 몸짓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유와 관련이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해 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기운이 쌓임이 있으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대학(大學)』 6장에서 말하는 ‘마음속에 성실한 기운이 쌓이게 되면[성어중(誠於中)] 그 쌓인 기운은 몸의 다양한 표정으로 나타난다[형어외(形於外)]라는 것이 그것이다.[준말로 성중형외(誠中形外)]’ 『관자(管子)』에서는 내와 외가 서로 부합하는 사고방식에 해당하는 ‘성중형외’ 사유를 “온전한 마음이 안에 있으면 숨길 수 없어 밖의 형용에 나타나니 안색(顔色)에서 알 수 있다” 『管子』「心術下」라고 말한다. 이상과 같은 발언을 이제 ‘내면에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가를 본다[시중(視中)]’는 것과 ‘외적으로 드러난 얼굴색을 보고 내면의 마음을 안다[관색(觀色)]’는 관점과 연계하여 보자.


물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도 있고 아울러 밖으로 드러난 얼굴색을 꾸며 얼마든지 타인을 속일 수가 있다. 하지만 명민한 관찰자는 그런 가식을 꿰뚫어 보고 심지어는 생각마저 엿볼 수 있었다. 그 하나의 예를 보자. 제나라 환공(桓公)이 재상 관중(管仲)과 거(莒)를 공격하고자 모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 계획을 공표하기 전에 원정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에 관중은 “나라에 ‘성인(聖人)’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직 성인만이 공표되지도 않은 계획을 미리 알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동곽아(東郭牙)를 의심한 관중은 그를 불러 물어보았다. 동곽아는 관중의 얼굴을 관찰함으로써 그 계획을 알 수 있었다고 대답한다. 동곽아는 평소 관중의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그 결과 관중이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계획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지실(知實)」에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순우곤(淳于髡)이 양혜왕(梁惠王)의 생각을 읽어냄으로써 그를 놀라게 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왕충은 이 사건에 대해 “의도는 가슴 속에 숨겨져 있었지만 곤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표정을 관찰하여[관색(觀色)]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규심(窺心)] 라고 결론 내린다. 이같은 ‘관색’ = ‘규심’이란 사유는 ‘성중형외’ 사유가 작동한 것이다.


『대대례기(大戴禮記)』「문왕관인(文王官人)」에서는 ‘마음속을 보는 것[시중(視中)]’과 ‘얼굴 색을 보는 것[관색]’과 관련된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 ‘시중’에 관한 것을 보자.


세 번째는 “성실함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은 밖으로 나타난다[성재기중(誠在其中), 차현어외(此見於外)]”는 것이다. 보이는 것으로 숨은 것을 헤아리고,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헤아리고, 소리로 기가 어떠한지를 정한다. 태초의 기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데, 생겨난 만물에는 소리가 있다. 소리에는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있고, 둔탁하고 맑은 것이 있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이 있으니, 모두 소리로 발한 것이다...소리를 듣고 기운에 처하여 하는 바를 생각하고, 말미암는 것을 보고 편안해하는 것을 살핀다. 앞에 있는 것으로 뒤를 헤아리고, 보이는 것으로 숨은 것을 헤아리고, 작은 것으로 큰 것을 헤아리는 것을 일러 “마음속을 본다[시중(視中)]”고 한다. 


이상 거론한 다양한 감정의 표출은 모두 자신이 속일 수 없는, 마음속에 담겨진 진실된 것을 드러낸 예에 속한다. 다음 ‘관색론(觀色論)’을 보자.


네 번째는 백성에게 다섯 가지 성품이 있으니, 기쁨[喜]과 성냄[怒]과 슬퍼함[哀]과 두려움[懼]과 근심[憂]이다. 기쁜 마음을 속에 쌓으면 그것을 숨기고자 하여도 기쁨이 밖으로 ‘반드시[必]’ 보인다. 성난 기운을 속에 쌓으면[내축(內畜)] 그것을 숨기고자 하여도[隱] 성냄이 밖으로 ‘반드시’ 보인다...다섯 가지 기운은 ‘마음에 성실하면 그 모양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백성의 감정이 숨겨지지 않아서이다...이것을 표정을 살피는 ‘관색’이라 한다.



희·노·애·구·우와 관련된 기운의 ‘내축(內畜)’에서 ‘축’은 ‘쌓임[적(積)]’과 동일한 의미다. 즉 내면에 어떤 기운이라도 가득 쌓이면 아무리 숨기고자 하여도 그것은 ‘반드시[必]’ 밖의 표정[色]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안에 ‘쌓임’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욕망도 모르는 사이에 표현되게 된다. 때론 ‘숨긴다’는 ‘은’자를 통해 내면에 쌓은 기운을 인위적으로 숨기고자 하지만, 이같은 인위적인 감춤도 결국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