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사대부들의 누정(樓亭) 문화

  • 497호
  • 기사입력 2022.08.16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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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뜨거운 여름날 과거 동양의 문인사대부들은 다양한 피서법을 찾았다. 그 중에 하나가 산수공간의 가장 전망좋은 곳에 자리 잡은 정자에 나가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이다. 정자에서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고 더위를 식히는 동안 그동안 쌓인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는 말끔히 해소되곤 하였다. 특히 전망이 확 트인 높은 곳에 있는 정자의 경우 높은 곳에 올라서 멀리 내다보며 즐기는 이른바 ‘등고망원(登高望遠)’의 심미적 경험을 누릴 수도 있다.


동진(東晉)의 왕희지가 날씨가 맑고 화창한 모춘(暮春)에 회계산(會稽山)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계사(稧事)할 때 그 즐거움에 대해 “우주의 무한함을 우러러보고 만물의 무성함을 굽어살핀다. 눈길 가는 대로 보면서 감회를 풀고 보고 듣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라고 읊은 것은 이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정자에서 밤에 음풍농월(吟風弄月)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동양의 문인사대부 문화에서 정자는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정(亭)’字는 ‘머무른다[停]’는 의미가 있다. 즉 정자는 ‘사람들이 머물러 모이는 곳[人所停集也]’이란 의미를 지닌다. 사람이 머물러 모인다는 것에는 다양한 정황이 담겨 있다. 정자는 중국전통건축의 하나로서 주대(周代)에서부터 존재하였다. 처음에는 길가에 설치하여 행인들이 비를 피하고 햇빛을 가려주는 휴식과 승량(乘涼) 용도 혹은 관경(觀景) 용도 등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시대가 흐름에 따라 원림(園林) 내의 지당(池塘), 산상(山上), 수방(水旁), 화간(花間), 교상(橋上)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게 된다. ‘원림치곤 정자가 없는 곳이 없다[無園不亭]”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림에는 반드시 정자가 있었다.


이런 정황은 주로 땅이 넓고 산이 적은 중국의 정자 설치 정황에 해당하는데, 중국에 비해 산이 많은 한국은 중국에 비해 가능하면 풍수 차원에서 배산임수(背山臨水) 공간에 세우고자 하였다. 간혹 김홍도(金弘道)나 정선(鄭敾)이 그린 관동지역의 망양정(望洋亭) 같이 바닷가 경승지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정자인 경우는 동양문화에서의 바다 이미지와 연계되어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 이밖에 용도에 따라 정자가 세워지는 공간은 달라지는데,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방이 확트인 정자 모식(模式)은 송대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정자의 이같은 변화에는 송대문인사대부들의 은일 지향의 삶이 담겨 있다.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망양정(望洋亭)〉 부분. 간송미술관, 32.3x57.8cm.]

동양문화에서 넓고 깊다고 이해된 바다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해납백천(海納百川)이 의미하듯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성과 그 포용성을 품고 있는 제왕상, 넓고 깊은 학문을 소유한 성인(聖人)의 이미지, 남상(濫觴)의 물이 바다에 도달하기까지의 하나하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통한 학문공부 방법론으로 이해하기, 궁극적으로는 도(道)의 이미지 등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이런 점에서 바다에 있는 정자는 단순히 바다 풍경을 감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같은 바다의 철학적 의미를 동시에 탐구하고자 하는 상징물로 여겨졌다.


정자는 때론 누각(樓閣) 형식이 가미될 경우 누정(樓亭)이라고 말해지는데, 이같은 누정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조선조 문인사대부들에게 누정은 학문과 예술을 싹트게 하는 창조적인 산실, 강학을 행하고 시상을 일깨우는 정신적 향유의 거점, 아름다운 자연을 완상하며 시가를 읊고 한담을 나누는 풍류의 공간, 관조와 사색을 유도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정신이 발휘되는 인격수련의 장에 해당한다. 때론 친족의 종회(宗會)나 마을 사람들의 동회(洞會) 또는 각종 계의 모임 장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정자는 단순 건물 차원에서 벗어나 문인사대부들이 지향한 세계관이 담긴 인문 건물이 된다.


2. ‘정(亭)’자가 ‘정(停)’자로 이해된 사유에 철학


송대 이전 정자에는 창과 담이 있었는데, 송대에 오면 지붕만 있고 사방이 확 트인 형태로 변하게 된다. 정자가 갖는 철학적 의미는 정자의 ‘사방이 확 트인 점’과 ‘정(亭)’字의 ‘정(停)’이란 의미와 연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장지아지(張家驥)는 중국의 정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총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같은 분석은 정자의 철학성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중국의 정자는 무한 공산 속의 유한공간이자 유한한 공간을 무한의 공간에 융화시키는 일종의 특수한 공간형식이다. 그것은 공간의 유와 무라는 모순의 통일이며 시공을 하나로 융합시킨 독특한 창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 고대의 ‘무왕불복, 천지제야(無往不復, 天地際也)’라는 공간개념에 가장 이상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었고 중국의 전통적 미학사상과 예술정신을 집중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먼저 사방으로 확 트인 정자의 공간이 갖는 의미를 보자. 정자의 묘처는 허(虛)와 공(空)에 있다. 소식(蘇軾)은 고요함[靜]과 빔[空]이 갖는 철학적 의미에 대해 “고요하기 때문에 뭇 움직임을 명료하게 알고,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작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풀이한 바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런 점을 「함허정(涵虛亭)」이란 시에서 “이 정자 안에 아무것도 없기에 만물의 모습을 원래 그대로 온전하게 볼 수 있다”라고 읊고 있다.


청대 화가 대희(戴熙)는 뭇 산과 뭇 수풀이 울창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정자의 토납운기(吐納運氣)를 강조하고 있다. ‘토납운기’하는 정자의 빈 공간은 허와 실이 동시에 담긴 공간에 해당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자의 빈 곳은 단순히 빈 곳이 아닌 우주자연의 기운이 활발하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숨쉬는 생명의 공간이 된다. 이같이 안이 비어 있음과 동시에 사방으로 확 트여 있다는 것은 도가의 “허(虛)와 무(無)”가 상징하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특히 공정(空亭)일 때 그 의미가 두드러진다.


원대 화가 예찬(倪瓚)은 산수를 그릴 때 공정을 많이 그렸는데, 장선(張宣)은 예찬의 〈계정산색도(溪亭山色圖)〉에 대해 “강산에 무한한 경지가 있지만 모두 이 정자 가운데에 모여있다[江山無限景, 都聚一亭中]”라 읊고 있다. 예찬은 강호의 일민(逸民)이 그윽한 정자[幽亭]에서 청조(淸眺)하기에 족하다고 읊어 유정에서의 탈속적이면서 은일적 청조를 강조하고 있다. 공정은 결과적으로 작가의 탈속적이면서 은일적인 심경을 표현하는 상징에 해당한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철학 각도에서 보면 누정은 동양의 文人사대부들의 친자연적 삶 및 산수에 기정(寄情)하는 매개물에 해당한다.


[倪瓚, 〈江亭山色圖〉, 臺北 國立古宮博物院, 94.7x43.7cm.]

예찬은 자신의 화풍에 대해 “자유롭게 붓놀림을 대강대강면서 형태가 닮을 것을 구하지 않고 애오라지 스스로 즐길 뿐이다[逸筆草草,不求形似,聊以自娛耳]”라고 말하는데,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핵심은 바로 인간의 흔적이 없는 무인지정(無人之亭) 즉 공정(空亭)이다.


다음 ‘無往不復, 天地際也’ 사유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보자.

머물러 쉰다는 ‘정(停)’자가 갖는 의미를 철학 차원에서 해석하면,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운동 변화성 가운데 일음에 해당한다. 일음일양의 운동변화를 통해 자연의 항상성은 유지될 수 있다. 일상적 바쁜 삶이 동적 차원의 양(陽)을 의미하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정자는 정적 차원의 음(陰)을 의미한다. ‘無往不復, 天地際也.’라는 것은 『주역』 「태괘(泰卦)」 구삼효(九三爻)의 상(象)의 말이다. 먼저 『주역』 「(地天)泰卦」 九三 효사(爻辭)를 보자.


평평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고,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어려울 때일수록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 근심만 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면 먹는 데 복이 있을 것이다.


‘무왕불복’에 대해 ‘象’에서는 ‘천지가 사귀는 것이다[天地際]’ 라고 풀이한다. ‘천지가 사귄다’는 것은 바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맞닿아 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생명을 탄생하고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주희(朱熹)는 『대학장구서문(大學章句序文)』에서 “하늘의 운수는 돌고 도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天運循環, 無往不復)”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왕불복은 자연의 끊임없는 운행의 이치로서, 생명의 항상성은 바로 무왕불복에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활발한 자연에는 무왕불복의 이치가 담겨 있다.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이 정자를 세워 잠시 머무르는 것[停]도 이런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연에는 그 어떤 존재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은 없듯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일음일양의 원리를 따라 잠시라도 쉼이 있을 때 한 개체의 온전한 생명의 항상성이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정(亭)’자를 머무른다는 ‘정(停)’자로 해석했을 때 그것이 갖는 형이상학적 의미이고, 왜 문인사대부들이 정자를 세웠는가 하는 문화철학적 의미다.


전남 곡성의 〔함허정(涵虛亭)〕

소식이 읊은 ‘涵虛亭’은 한국에서는 김해, 곡성, 함양 등에 있다. 김일손(金馹孫)의 「함허정기(涵虛亭記)」[대체 사람의 한 마음을 쓰면 움직임이 무궁하고 가라앉으면 고요히 허한 것이다. 허하므로 오덕(五德)을 갖추고 만물이 포함되어 저 천지와 일월이 모두 나의 마음속의 물건이 되는 것이다.]와 조식(曺植)의 「涵虛亭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