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인사대부들의 정자문화

  • 498호
  • 기사입력 2022.09.01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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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秋史 金正喜가 당시 교분이 있었던 초의선사에게 보낸 「정게(靜揭)로 초의선사에게 주다[靜偈贈衣師]」라는 시에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공간에서의 삶이 달라짐을 읊은 적이 있다.


네 마음이 고요할 땐 저자라도 산이지만, 네 마음이 드설렐 땐, 산이라도 저자가 된다. 다만 하나의 마음에서 산과 저자가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저자는 시끄러운 것을 상징하고 인적이 드문 산은 조용한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흔히 ‘조용한 산에 가서 도를 닦는다’ 라는 식의 말을 한다. 그런데 김정희는 시끄럽고 조용한 것은 공간 그 자체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 상태를 먹느냐에 따라 시끄러운 저자가 조용한 절이 되고, 조용한 절이 시끄러운 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사유가 아니라 의식이 공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이 쓴 추사의 〈靜偈贈衣師〉.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 

유희강 서예 유물은 성대 박물관에 전부 기증됐다. 성대 박물관에서는 검여 선생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고 있다. 


2. 정자 문화에 나타난 공간과 의식의 관계


의식이 공간을 지배한다는 그 하나의 예로 명대 원중도(袁中道)가 지은 「상뢰정기(爽籟亭記)」를 보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기운이 안정되지 않고 마음이 들떠 있어[氣浮意囂] 귀에 샘물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나뭇가지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와 산골짜기 새소리는 들을수록 오히려 마음은 더욱 어지럽혔다. 저녁이 되어 휴식하는데, ‘보는 바를 거두어들이고 듣는 바를 돌이키니[收視返聽]’ 온갖 인연들이 모두 사라져 멍하니 짝을 잃은 듯 하였다[嗒焉喪偶]. 이후 샘물 소리만 천태만상으로 변하였다. 처음에는 마치 애처로운 소나무에 옥을 부수는 듯한 물소리가 부딪쳤는데 조금 지나자 우레같은 물소리가 산천을 뒤흔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조용할수록 샘은 더 요란하다. 샘물의 시끄러운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고 마음에 주입이 되자 소연하고 냉연하여 폐부를 깨끗하게 씻어내리고 진구(塵垢)를 확 씻어내려 마음이 쇄락(灑落)하니 신세(身世)를 잊고 생과 사를 한결같이 하는 경지가 되었다. 이제 샘물 소리가 요란할수록 내 마음은 더욱 차분해진다.


누가 산이 고요하다고 했는가? 사실 산은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할 것 없이 많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산은 매우 시끄럽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산에 있으면 그런 시끄러운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겨지지 않게 된다. 왜 그런지를 원중도는 마음상태 여부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비로소 샘에서 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과 합일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수시반정(收視返聽)’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상징하듯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보고 듣는 것이라 여긴다. 이에 ‘수시반청’하는 것을 유가와 도가 모두 권력·명예·재물 등과 같은 외물에 휩쓸리지 않고자 하는 수양 공부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다.


그동안 자신의 삶을 얽매였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 ‘탑언상우(嗒焉喪偶)’의 경지는 ‘참된 내가 편집적인 나를 잃어버렸다[吾喪我]’라는 것을 말한 바가 있는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고목사회(枯木死灰)’로 상징되는 남곽자기(南郭自綦)의 모습과 체도(體道) 경지에 해당한다. 이런 체도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남곽자기는 인간의 악기가 내는 인뢰(人籟)를 넘어선 대자연의 웅장한 음악소리[天籟]를 들을 수 있게 되는데, 원중도도 ‘탑언상우’의 경지가 되자 이제 비로서 샘물 소리가 갖는 모든 정황을 알 수 있게 된다.


샘물 소리가 자신의 마음 폐부를 깨끗하게 씻어내려 신세를 잊고 사생을 잊게 한다는 것은 샘물 소리가 주는 효용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도의 경지에서 샘물 소리와 하나가 되는 이런 경지에 가면 샘물 소리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마음은 고요해진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시끄러운 산에 갔을 때 종국에 조용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같은 샘물 소리를 듣고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중도가 「상뢰정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핵심이 있다.


또한 고금의 악은 팔음으로부터 온 것 뿐인데, 지금 이후에 팔음 이외에 따로 샘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가 있음을 알았다. (이런 샘물 소리는) 세상의 왕공대인은 들을 수도 없고 들을 겨를이 없고, 오로지 고인(高人)과 일사(逸士)에게 제공하여 성령을 도사(陶寫)하는 용도로써 제공할 뿐이다. 하여 비록 제왕의 성음(咸音)이나 소무(韶武)라도 오히려 이같이 차가운 세상 밖의 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데, 하물며 다른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어쩌다가 다행스럽게 이런 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


샘물 소리가 시끄러울수록 더욱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지에 오르면 이에 팔음으로 한정된 인위적 음악[人籟]이 아닌 자연의 기인한 소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왕공과 대인들은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없고 고인과 일사 같은 은일적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위적 음악의 최고 경지에 해당하는 ‘함양의 음(咸陽之音)’과 순(舜)임금과 무(武)임금의 음악인 ‘소무지악(韶武之樂)’이라도 이같은 세속적인 티끌을 씻어내리는 ‘세외(世外)의 음’인 샘물 소리와 비교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샘물 소리를 음악으로 비유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악기에 의한 음악만이 음악이란 사유에 벗어난 음악철학이다. 장자식으로 말하면 천뢰에 해당하는 이같은 자연의 소리를 하늘이 원중도 자신에게 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단순 선택적 차원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런 자연의 소리는 쉽사리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의 샘물소리인 천뢰를 들을 수 있는 핵심은 기운이 세속적인 것을 지향하는 마음의 들썩거림을 제거하고 수시반청한 상태에서 ‘탑언상우’의 체도 경지에 이르는 것에 있다. 이같은 체도 경지는 인간과 자연의 합일된 경지라는 의미가 있다. 그 경지는 실질적인 삶에서는 은일적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원굉도는 결과적으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는 경우나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경우나 모두 중요한 것은 마음 상태 여부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


3. 정자 건립과 유배 정황에서의 한가로운 삶


어느 곳에 정자를 설치할 때 가장 운치있는 정자가 될까? 이런 점에 대한 개략적인 것은 흔히 당대 백거이(白居易)가 항주자사(杭州刺史) 기간에 지은 「냉천정기(冷泉亭記)」에서 정자를 짓는 위치에 대해 “정자를 지을 때는 공간적으로 기이함을 자랑하는 요령이 있으니, 땅의 위치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면서 전경이 확 트여 눈앞에 있는 사물이 모두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을 골라라”라는 것을 들곤 한다. 중국의 경우 흔히 장강(長江) 유역이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정자를 세우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점을 특히 동양 문인사대부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유배문화와 관련하여 규명해보자. 동양 역사에 남는 인물일 경우 유배 가지 않은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동양 문인사대부 문화에서 유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배 기간은 도리어 학문에 연찬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주는 역설이 있다. 즉 한중 역사를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물에 따라 유배를 간 정황에서 학술적 성과를 이루거나 잠시나마 정치권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리면서 한가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유종원(柳宗元)은 「계거(溪居)」에서 관직에 얽매여 있다가 ‘다행스럽게’ 남쪽 땅에 유배당한 덕분에 은자처럼 사는 호사를 누린다고 읊기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언제 해배될지 모르는 정황에서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한가로운 시간을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면 유배 기간 동안 사상적, 문학적으로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소득을 얻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철(蘇轍)은 「황주 쾌재정에 대한 기문[黃州快哉亭記]」에서 장몽득(張夢得=張偓佺]이 유배 당한 정황에서 장강에 ‘쾌재정’이란 정자를 짓고 한가로운 삶을 지내는 정황을 통해 이런 점을 읊고 있다.


장강은 서릉협을 나와서야 비로소 평지를 얻어 그 수세가 빠르고 아주 넓고 커지는데 남쪽으로 상수 완수를 합치고 북으로 한면을 합쳐 그 세가 더욱 커지며 적벽(赤壁)에 이르면 각처의 물이 흘러들어 마치 바다와 같다. 청하 사람 장몽득이 제안으로 귀양와 그의 집 서남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였다. 나의 형 자첨(子瞻=蘇軾]께서 그 정자의 이름을 ‘쾌재’라고 했다...선비가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지 못한다면 어디 간들 마음이 상하지 않겠으며, 마음을 평온하게 하여 물욕의 유혹이 천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면 어느 곳을 가든 통쾌하지 않겠는가? 지금 장몽득이 귀양살이를 근심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마음을 산수 간에 기탁하고 사니,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마땅히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蘇轍, 「黃州快哉亭記」에서 말하는 “장강은 서릉협을 나와서야 비로소 평지를 얻어 그 수세가 빠르고 아주 넓고 커지는데 남쪽으로 상수 완수를 합치고 북으로 한면을 합쳐 그 세가 더욱 커지며 적벽(赤壁)에 이르면 각처의 물이 흘러들어 마치 바다와 같다”는 곳의 정경.  



마음먹기에 따라 유배당한 불행한 정황이라도 역으로 그 기간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여기고 풍광 좋은 곳에서 정자를 짓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산다면 ‘쾌재’를 부를 수 있는 멋진 인생살이가 될 수 있다. ‘쾌재’라는 한마디에 정자에서 누리는 쾌락함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다만 심리적 고통이 강한 유배 생활에서 정자를 짓고 이같은 한가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철이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바와 같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경우에 한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이런 정황은 일반적으로 관료의 삶을 무난히 마치고 난 다음의 정자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과 다른 차원에 해당하는 유배상황과 관련된 정자 문화가 주는 독특한 면인데, 조선조 유학자들의 정자문화에도 이같은 정황을 발견할 수 있다.


4. 나오는 말


대부분 산수 공간에 자리잡은 동양에서의 정자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 독특한 건물이다. 이상 본 중국 문인사대부 정자 문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는 경우나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경우나 모두 중요한 것은 마음 상태 여부를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마음 상태 여부에 따라 의식이 공간을 지배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된 인물에 한한다는 점도 동시에 알 수 있다.


〈快哉亭〉, 상주군 이안면 가장리에 있는 정자.

중종반정공신으로 인천군(仁川君)에 책봉되었던 나재(懶齋) 채수(蔡壽, 1449~1515)가 중종반정 이후 이조참판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최초의 한글소설 「설공찬전」이 이곳에서 지어졌다는 역사성을 인정하여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