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모든 문

  • 591호
  • 기사입력 2026.07.16
  • 편집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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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자전기공학부 김세정 교수



언젠가부터 ‘평행우주’는 SF 마니아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키워드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평행우주 이야기에 열광할까?

아마도 누구나 가슴 한켠에 품고 사는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 유학길에 올랐더라면,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하고 되뇌는 순간들 말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다. 미래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선택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길만을 살아가다가 죽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평행우주론은 그 다른 선택을 이어 나간 내가 어느 우주엔가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른 평행우주에서 나는 과학자가 아닐 수도, 더 부자일 수도, 한국에 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공상과학 소설 같은 평행우주는 사실 물리학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뱀파이어나 좀비 영화처럼 순수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보다 물리적으로 훨씬 그럴듯하니, 평행우주론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하다.

필자는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하기 전 멜버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동료 교수들과의 커피챗에서는 볼만한 TV 시리즈 정보를 자주 주고받았는데, 믿을 만한 동료의 추천으로 <다크 매터>(애플TV+ 상영)1를 예고편도 보지 않고 곧장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앉은자리에서 시리즈를 몰아보고 말았다.

주인공 제이슨 데센은 시카고의 평범한 물리학자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크게 인정받는 학자는 아니다. 집으로 걸어가던 어느 날 밤, 그는 낯선 남자에게 납치되어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는 저명한 과학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내도 아이도 없는,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이었다. 자신을 납치한 사람은 놀랍게도 또 다른 우주의 자기 자신이었다. 데센은 진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를 헤매기 시작한다.


▲ Dark Matter (2024) 대표 이미지/© 2024 Apple TV (출처: IMDB)


상자 안에 들어간 데센: 슈뢰딩거의 고양이

데센이 평행세계를 넘나드는 수단은 거대한 정육면체 장치다. 특수한 약물을 주입하면 그는 ‘중첩 상태’에 들어가고, 끝없이 늘어선 복도와 수많은 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 문을 열면 여러 평행우주 중 하나의 세상과 만난다. 어떤 문 뒤에는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카고가, 어떤 문 뒤에는 눈으로 뒤덮여 버린 시카고가, 또 어떤 문 뒤에는 불에 타버린 시카고가 있다. 수많은 가능성으로 달라져 버린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상자는 물리학자에게 익숙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고양이 실험에 앞서 먼저 ‘중첩’이라는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첩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만 통과할 수 있지만, 미시세계에서 전자는 두 개의 문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다. 즉 전자는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저기에도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전자의 위치는 확률로만 주어진다. 여기에 있을 확률이 50%, 저기에 있을 확률이 50%, 이런 식이다. 이렇게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여러 가능성이 겹쳐 있는 상태를 물리학에서는 중첩이라 부른다.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는 실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사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과학자들이 중첩 현상을 설명하려고 만든 예가 아니라 오히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비꼬려 만든 것이었다. 미시세계의 전자에서 나타나는 중첩을 거시세계로 확대 해석하면,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고양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중첩에 의한 현상을 마주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중첩을 보지 못할까? 중첩의 본질은 ‘간섭할 수 있음’에 있다. 이 간섭 능력은 입자의 결맞음(coherence)과 관련되는데, 입자는 보통 특정 시간 동안만 결맞음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 결맞음 시간(coherence time)은 입자가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점점 짧아지고, 그만큼 간섭 능력도 잃는다. 그래서 수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거시적 물체는 결맞음 시간이 매우 짧아, 양자 현상이 관측될 확률이 사실상 0에 수렴한다2.


마무리

과학자들은 전자 한 개를 넘어 점점 더 큰 물체를 중첩 상태에 올려놓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미 수천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에서도 중첩이 확인되었고, 그 한계는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3 언젠가는 <다크 매터>의 주인공처럼 인간에게도 중첩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끝내 선택하지 않았던 문 너머의 삶과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참고문헌

1. Blake Crouch, Dark Matter (Crown, 2016); 드라마 <다크 매터>, Apple TV+ (2024).

2. W. H. Zurek, “Decoherence, einselection, and the quantum origins of the classical,” Reviews of Modern Physics 75, 715–775 (2003).

3. Y. Y. Fein et al., “Quantum superposition of molecules beyond 25 kDa,” Nature Physics 15, 1242–1245 (2019). 최초의 거대분자 간섭 관측은 M. Arndt et al., “Wave–particle duality of C60 molecules,” Nature 401, 680–682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