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줌 인(zoom – in)하다
한상우(사학 99) 아주대 사학과 교수

  • 471호
  • 기사입력 2021.07.12
  • 취재 박효진 기자
  • 편집 김민서 기자
  • 조회수 6712

우리가 교과서 속 접하는 왕들의 업적, 국가의 중차대한 사건들은 대개 ‘중요한 역사’로 인정받으며 오랜 시간 동안 인류 역사연구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살펴볼 때, 숲이 아닌 나무를 조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일상생활 속 평범한 개인 혹은 집단은 그 중차대한 역사를 이끌어낸 엄연한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시사를 줌 인(zoom -in:이미지를 당겨 확대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영화 기법)의 역사학이라고 부른다.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 만나 볼 한상우 박사는 학사, 석사, 박사 이상의 시간을 거치며 오랜 시간 조선 사회사를 연구해왔다. 특히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개인의 삶을 조명하여 사회구조를 바라보고 이 커다란 흐름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반문한다. 그들의 삶을 Zoom in 한다.


Q. 자기소개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주대학교 사학과에 교수로 있는 한상우라고 합니다. 저는 1999년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고, 2006년 동아시아학과 대학원, 이후 2015년에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박사가 된 이후에도 2018년까지 성대에서 연구원과 초빙교수로 있었으니, 20년을 명륜동 캠퍼스에서 보낸 샘이네요. 이후 학교의 지원으로 네덜란드에서 1년의 포닥(박사후 과정) 기간을 보내고, 이후 다시 스페인에서 1년 반의 포닥 생활을 마친 뒤 올해 초에 아주대로 임용되어 돌아왔습니다.


Q. 한국 근세사, 조선 후기 사회사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특히 조선시대 가족과 친족에 관한 연구를 주로 다루시는 것 같아요. 이 분야만의 매력이 있다면?

박사 논문은 “조선 후기 양반층의 친족 네트워크”라는 제목으로 작성했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조선시대 양반층의 가족, 친족에 대한 연구입니다. 지금도 조선 후기 사회와 가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공 분야를 선택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어요. 전역 후 알바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과에서 연구보조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알바가 바로 조선시대 호적대장의 연구보조원 자리였죠. 그때부터 조선시대 자료, 특히 호적이나 족보 같은 자료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이 자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는 오늘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지만, 그 이질적인 면모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하며 재구성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그 이전 시대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풍부한 사료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자료들이 학자의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거죠.


Q. 동아시아학과만의 특징이나 장점도 있을까요?

동아시아학과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제 전공인 사학뿐 아니라, 국문학, 한문학, 철학, 정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점,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한다는 점이 제가 겪은 동아시아학과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다양성 속에서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풍부한 경험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Q. 지금까지 진행하신 연구들 중 인상 깊었던 작업, 혹은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무엇인가요?

가장 최근에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 것이 좋겠네요.  저는 조선시대 가족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선시대 가족 구성원 중 어떤 사람이 과거시험에 더 잘 합격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높은 관직을 가지는 것이 후손들이 성공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보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답을 찾기 위해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명부나 호적, 족보 등의 자료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Q. 조선시대 연구에서 ‘임진왜란’이라는 큰 역사적 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진행 중인 연구도 있나요?

네. 조선시대 자료들 속에서 임진왜란의 흔적을 찾는 것 역시 제 주된 관심 분야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끌려갔다가 도망쳐 돌아온 사람들, 의병으로 공을 세운 사람들, 조선에 투항한 일본군들, 전쟁이 끝난 뒤 한반도에 남은 명나라 장수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미시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7월에 발표되는 논문에는 왜란 이후 한반도에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의 후손들 가운데 특정 지역에 정착한 자들을 추적하여 이들이 누구와 혼인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예상과 달리 이들은 언어와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같은 민족끼리 혼인하지 않고, 열심히 조선인 배우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더군요. 아마도 혼인을 통해 조선의 상층 문화를 받아들이고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으로 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17세기 호적대장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왜란과 호란의 인구학적 충격을 살피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인구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과 관련 되어 있어 이 연구를 통해 조선 시대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하나 더 얻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Q. 성균관대학교에서의 학사, 석사, 박사 나아가 연구원의 시간은 어땠나요? 

연구보조원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이미 말씀드렸죠. 그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게 된 곳이 바로 동아시아 학술원이었고, 그 결과 동아시아학 연계전공을 복수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해당 학사 학위를 취득한 유일한 졸업생일 겁니다. 이후 자연스럽게 대학원도 동아시아학과로 진학했지요. 제가 동아시아학과를 선택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계적인 교수님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었습니다. BK21, HK 등을 운용하시던 학과와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지원들을 받을 수 있어서 학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일례로 저는 한국사를 전공하면서도, 학위 과정 중에 여러 차례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국제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한국사 연구자들이 많아지는 추세지만, 10년 전까지도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님들의 국제적 업적은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지원으로 2018년 여름부터 1년간 해외에서 박사후 연수를 했습니다. 이런 특수한 경험은 이후 연구자로서 성장하고, 해외에서의 포닥 생활에 도전하는 데 커다란 자산이 되었습니다.

Q. 해외에서 포닥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일 것 같아요. 해외 연수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네 도전이었죠. 한국사, 특히 전근대를 전공하는 연구자들 중에는 해외에서의 연구를 경험한 경우가 많지 않고, 굳이 해외에서 연구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수년간 조선시대 호적대장의 전산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이 자료의 가치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서구의 방법론을 통해 이를 검증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해외로 이끌었습니다.


Q. 한국사 분야 해외 포닥의 개척자이시네요. 그만큼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셨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의 연구활동은 어땠나요?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네덜란드에서 1년의 포닥이 끝나 갈 무렵, 우연한 기회로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한국사 연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2019년에는 다시 스페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가족들을 다 이끌고 연고도 없이 말도 한 마디 못하면서 스페인으로 이주하겠다고 내린 결정은 지금 돌아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네요. 사실 말이 안 통해 고생도 좀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의 생활과 연구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제가 속했던 팀은 임진왜란의 영향을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팀이었지만, 한국사 연구자는 저뿐이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어로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방법들을 전문적으로 익히게 되었죠.  그 결과 드디어 제 이름으로 쓴 영어 논문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수년간의 연구 방향을 계획할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있었던 학교뿐 아니라 그 지역에 한국사 전문가가 한 명도 없어서 몇 차례의 강연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최근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매우 뜨겁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한국학과 한국사 연구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서 재발견하기도 했습니다.

Q. 최근 아주대학교 조교수로 부임하셨어요. 교육자로서 새롭게 느낀 바가 있다면?

지난 3월부터 아주대 사학과에 부임하여 첫 학기를 무사히 마무리했습니다. 아쉽게도 코로나 팬데믹 상황 때문에 아직 학생들과 함께 할 기회 많지 않았어요. 입학한 뒤에 학교에서 한 번도 강의를 듣지 못한 20학번,  영상으로만 만난 신입생 21학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더구나 요즘 대학생들의 상황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네요. 부디 학생들에게 위로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선배 교수님께서 안정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하시던 말씀이 크게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주어진 자리만큼 학교에서나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서 미뤄왔던 연구들, 긴 호흡을 가지고 시도해야 하는 연구들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역사 자료를 데이터로 만들고 다듬는 데 상당한 노력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이면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연구들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