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과거는 아름다운 현재를 만든다
– 윤희정 아나운서(영문 96)

  • 497호
  • 기사입력 2022.08.14
  • 취재 이재윤 기자
  • 편집 김윤하 기자
  • 조회수 6265

“아나운서는 백조예요.”

 

윤희정 아나운서는 말한다. 신뢰감 있는 차분한 목소리, 깔끔한 외모, 뿜어져 나오는 우아함. 윤희정 아나운서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 속에는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흔적들이 가득했다. 우아한 품위를 갖추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는 백조처럼. 이번 인물 포커스에서는 윤희정 동문(영문 96)과 그가 말하는 아나운서의 삶을 다뤄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96학번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윤희정입니다. 현재 23년차 아나운서예요. 저희 회사 직원들이 연차 말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웃음) 현재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하지만 방송국을 나와 소속이 없는 상태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나운서라기보다는 방송인이죠. 또, (주)YA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Q. 아나운서의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보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한 게 저를 아나운서의 길로 이끈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에 대한 애착이 없었어요. 그러던 와중, 학교에서 홍보대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학교에 대한 애착을 가져보자며 학교의 홍보대사인 ‘알리미’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알리미로 활동하던 도중, 학교 홍보 모델에 지원해 좋은 기회를 얻어서 방송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어요. 홍보 모델로서 버스 광고에도 붙고 여기저기에 얼굴이 보이니까 CF 감독에게 연락이 오더라구요. 그 때부터 광고,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서 여러 방송 출연을 경험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꿈은 없었지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인이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3학년 때는 리포터를 하게 됐는데, 당시 친하던 선배가 졸업 후 아나운서가 되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제 성격이 엄청 적극적이고 일단 도전해보는 성격이에요. 바로 주변 친척 중에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신 당숙아저씨께 연락드려 도움을 청했죠. 당숙아저씨께서 KBS로 오라고 하셔서 방송국 구경도 하고 회의하고 수다떠는 것도 보고 옆에서 일하시는 모습도 봤어요. 밥을 먹고 7시 뉴스를 하러 들어가시는데 저한테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황정민, 김진수 앵커가 진행하는 7시 뉴스 현장 분위기를 느껴보라고. 당시에는 너무 떨렸었죠.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방송국을 나오고 나서 저는 바로 “그래, 이 직업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결국엔 학교에 애착을 갖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좋은 계기로 작용해서 제 현재를 만들었네요.


Q. ‘행사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아나운서를 넘어 MC 로도 활약하고 계신데요. 23년차 아나운서로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제가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누구나 아나운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이예요. 저도 처음부터 아나운서의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학원을 다녔죠. 하지만, 저는 학원을 다닐 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느낌보다는 아나운서처럼 말하고, 아나운서처럼 행동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어떻게 좋은 목소리를 내는지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어요. 머리로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하는 게 더 중요하죠. 나는 이미 아나운서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일상에서도 늘 아나운서의 언행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해요. 


당시 이렇게 연습한 이유는 허수경 MC라고 당시 유명한 선배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늘 버스에서도 지나치는 간판들의 문구를 아나운서처럼 읽고, 길을 걸으면서 현장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말하기 연습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아나운서의 모습을 체득한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저도 이를 따라하게 되었어요. 저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발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학생이었어요. 교수님이 발표를 시키셨는데 발표하기 싫어서 덩치 큰 애 뒤에서 숨고 그랬으니까요. (웃음) 그렇게 소심하고 부끄럼 많이 타는 애가 아나운서로 변신하기 위해서 평상시에도 아나운서처럼 행동하는 것을 많이 연습하고 노력했죠. 

 

Q. 20년이 넘는 아나운서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 행사가 있다면? 

뉴스 진행을 한 지 10년이 넘던 어느 날,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어요. 항상 보도하는 내용은 정치분쟁, 살인사건, 갈등, 경제 불황 등 부정적이고 심각한 소식들이었고, 이에 저 스스로도 지치고 나태해졌어요. 그런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게 바로 행사 진행이었어요. 행사진행은 뉴스보도와 다르게 사람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즐거운 소식을 전해주니 저도 즐겁더라고요. 그렇게 꾸준히 행사진행을 하다 보니 좋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일례로,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윤석열 현 대통령까지 대통령 초청행사를 도맡아 진행하고 있어요. 국가원수를 모시고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저에게는 많은 자신감을 주고, 책임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많은 행사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아보자면 6.25참전용사 초청 행사인데요. 자기 나라도 아닌데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전쟁에 참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값진 일이거든요. 어린 나이에 죽을 각오로 싸우면서 지켜낸 우리나라의 현재모습을 보여드리면서 그들의 희생이 가치 있었음을 직접 보여드리는 행사기에 의미있고, 그 행사를 10년 넘게 진행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껴요. 희생에 대한 보은을 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이고, 이를 제가 진행한다는 것도 굉장한 영광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니까요. 

 

Q. 아나운서의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도전을 좋아하는 성향이 저에게 원동력이 돼요. 새로운 도전이 새로운 인연,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에피소드를 하나 예로 들자면, 제가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결심하게 된 이후, 학교에서 언론계 진출한 선배님들을 수소문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저의 지금 남편인 왕종명 기자예요. 앞서 말했듯,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도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제 성격 덕이기도 해요. 주변 친척들에게 수소문하고 도움을 청해서 아나운서의 삶을 간접 경험해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거니까요. 도전이 가져올 결과보다는 도전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되면, 도전 자체를 즐기게 돼요. 그리고 그 도전이 저에게 새로운 인연, 새로운 길을 맞게 하는 것 같아요. 

 

Q. 아나운서이기도 하지만 (주) YA의 경영자시죠, 어떤 회사인가요? 

YA는 아나운서 에이전시예요. 예전에 아나운서란 직업에 대해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어요. 아나운서는 백조와 같아요. 백조처럼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품위있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버둥치기가 필요한 것처럼 많은 한계에 부딪히곤 해요. 아나운서도 결국은 직장인이고, 월급도 높지 않은 게 현실이예요. 이러한 아나운서의 실상에 한계를 느끼게 되고, 나의 3,40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후배들을 위한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를 차리게 되었고, 후배들을 제자로 양성했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그 수명이 매우 짧아서 방송 출연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제자들이 좀더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고자 고민 한 끝에, 아나운서 에이전시까지 도맡아서 하게 되었어요.  아들을 낳고 3주만에 바로 회사를 차리게 되었죠. 현재 15년째 회사를 경영해오고 있습니다. 


YA는 스타트업이기도 해요. 대면 강의, 행사가 전면 취소되면서, 이 코로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성균관대학교와 창업진흥원이 만든 초기창업패키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후, 법인을 세워서 AI 보이스 진단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목소리를 진단하고 음색, 발음, 성량을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정량평가해주는 서비스로, 곧 출시 예정이예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목소리인데, 좋은 목소리를 평가하는 것도 대부분 주관적인 평가잖아요. 이 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영어영문학과 96학번 윤희정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저는 모범생에 속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1도 안 했어요. 홍보모델 일 하면서 학교를 잘 안 나왔으니까요. (웃음) 그나마 학교에 왔던 때는 중어중문학과 다니던 제 가장 친한 친구를 보러 중앙도서관 입구에서 기다리던 때였네요. 방송활동을 2학년 때부터 시작하니까 학교 생활을 소홀히 했어요. 3학년 2학기가 되던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3학기밖에 안 남았는데 졸업하려면 60학점이 넘게 모자라다는 연락이었어요. 그 때 마침 제가 출연하던 아침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고, 졸업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로 돌아왔죠. 다른 친구들은 졸업학기에 6학점 들을 때 한학기에 26학점씩 계절학기까지 다 들어가면서 학점 채우기에 열중했어요. 그렇게 1년 반을 열심히 공부해서 143학점을 다 채웠죠. 졸업할 때 모든 교수님들이 기립박수를 치시더라구요. (웃음) 


하지만 저는 제가 이렇게 대학시절을 보낸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비록 학점에 열중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그 대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제 진로와 적성을 찾아내고 제가 앞으로 살아갈 길의 방향을 정했거든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해주고 싶어요. 알리미 활동으로 시작해, 홍보모델, 방송출연까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해보니까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었어요. 진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20대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저는 이 친구들에게 학점보다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고그럴 수 있는 시간이 20대가 유일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Q. 20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 인생의 가치

“다양한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해라.”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저도 학교에 애착을 갖기 위해 시작했던 알리미가 제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될지 몰랐어요. 하지만 새로운 기회에 계속해서 도전하다 보니 저에게 맞는 적성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학점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도 애기해주고 싶어요. 학점보다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럴 수 있는 시간이 20대 밖에 없어요. 그러니 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끽하는 멋진 20대를 보내세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