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아트포영 ‘人’ 수상
유수민(미술학과 19) 학우

  • 541호
  • 기사입력 2024.06.09
  • 취재 오채연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 조회수 282

자연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흔히 인공과 대비되는 것이 떠오른다. 묵비자연(默祕自然), 자연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인공적인 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한 폭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유수민(미술학과 19) 학우 <호접난><양난 키우기> 두 작품으로 제2회 천만아트포영 공모전에서 ‘人’ 을 수상했다. 천만아트포영은 재단법인 천만장학회와 삼천리그룹이 주관하는 공모전으로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시각예술 분야의 인재를 발굴하고자 지난해부터 주최되었다. 자연스러움의 원형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면을 발견해 내는, 자연을 바라보는 그녀의 남다른 시선을 인터뷰를 통해 빌려 보자.


| 천만아트포영 공모전 ‘人’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듣고 싶어요.

감사하고 기쁜 마음입니다. 사실 공모전을 준비할 당시에는 좀 주저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1년 더 준비한 상태에서 출품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미루다 보면 못 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제 실력을 복기하고 느껴보고자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수상하게 되어 기쁩니다. 또 수상자들끼리 식사하고 전시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내가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과 같이 있구나’하며 자신감도 얻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 수상하신 작품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이번에 출품한 <양난 키우기>와 <호접난>은 권위적인 영전 선물로 자주 보내는 호접란을 주제로 한 양면 복제 병풍입니다. 호접란은 앞모습에서 꽃이 모두 보이는데요, 그 꽃을 뒤에서 보면 앞에서 꽃이 잘 보이도록 철사랑 클립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요. 이걸 보면서 보여주고 싶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다른, 앞뒤가 다른 모습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알고 보니 이렇게 값비싼 프리미엄 호접난 화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년간 높은 온도에 위치시켜 꽃대만 줄줄이 내리고, 주문이 들어온 시기에 맞춰 개화 온도로 이동시켜 일제히 꽃을 피우게 해야 하더라고요. 그렇게 여러 송이, 여러 촉, 여러 화분으로 배양된 호접난은 축하 장소로 이동되죠. 자연의 일부가 인공으로 복사되는 과정을 작업의 과정에서도 담고 싶어 하나의 도안으로 두 번, 네 번 반복해 그렸어요. 이 ‘프리미엄’을 위해 호접난이 인공적으로 생육되고 반복적으로 복제되는 일련의 과정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자연과 인공의 충돌이라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회화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사진설명 : (왼쪽)_호접난,(오른쪽) <양난 키우기>]


| 작품에 적용하신 표현 기법이 궁금합니다. 

<양난키우기> 와 <호접난> 두 작품은 각각 하나의 도안을 이용한 양면 복제품이에요. 두 작품에 공통으로 탁본 기법을 적용해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어요. 먼저 하나의 도안을 반복적으로 본을 떠 배양된 호접난이 계속해서 복제되고, 축하를 위한 ‘프리미엄화’로 배송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요즘 AI 파생 이미지가 많아지면서 ‘인외(人外)’라는 말 많이 쓰잖아요. 저에겐 식물도 그런 자연스럽지 않은 지점이 눈에 띄곤 해요. 그래서 인공적으로 생육되는 호접난에 대한 제 시선을 반복적인 탁본 기법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또 병풍에 작업했는데요, 하나의 도안으로 네 번 본을 떠 2폭 병풍으로 제작했습니다. 한 면의 본을 그대로 두고, 옆면에 반전시킨 본을 붙이면 한순간에 3촉뿐이었던 호접난이 6촉 프리미엄으로 바뀌잖아요. 이 과정에서 프리미엄 호접난이 복제되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영전 선물이라는 과시적이고 권위적인 느낌과 병풍이 주는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과거 임금이나 사대부의 뒤편에 항상 병풍이 자리해 그들의 권위를 세워주고 과시했다는 점이 잘 맞아떨어져 호접난을 병풍 위에 표현했습니다. 알루미늄 프로파일이란 다소 인공적 재료로 병풍의 틀을 제작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호접난에 대한 이질적인 저의 시선을 담았습니다.  


<양난 키우기>와 <호접난>의 양면


|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이번에 출품한 두 작품은 공통으로 파란색으로만 형태를 따서 그렸어요. 파란색으로 자연에 침투된 인공성에 대한 처연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두 그림의 한 면은 모두 파란색 그러데이션 형태뿐인데요, 배접된 앞면이 아닌 한지 뒷면에 채색한 뒤, 색이 스며들어 비치는 면을 앞면으로 사용하는 배체 기법을 사용했어요. 채색하고 뒷면의 스며든 색을 확인하려 여러 차례 종이를 들어보는 과정에서 탁본을 찍는 것과 유사하다고 느껴 그 지점도 작품의 이야기로 담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 연수 당시 봤던 어탁(魚拓)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어탁이란 사진기가 없던 시절 갓 잡아 올린 생선의 크기를 과시하고 기록하고자 생선 뒷면에 먹을 발라 종이에 찍어낸 것인데요, 유한한 생물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이라는 무한성에 박제하고, 가두려는 행위가 제 작품의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 또한 프리미엄 호접란을 기록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어 어탁을 뜨듯이 탁본을 떠 표현했습니다.


[일본의 어탁]


|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나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제 작품 설명을 들으면 제가 의도했던 내용과 작품 결과물이 딱 맞아 떨어지니까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하고 작업에 들어갔을 것 같다고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요, 제가 재료 실험을 되게 많이 해요. 동양화에서의 재료 실험은 재료 하나하나를 커스터마이징한다고 볼 수 있어요. 한지부터 안료, 안료랑 섞는 미디움까지 직접 선택해 만들 수 있어 재료 선택의 폭이 커요. 이런 작품 실험이나 태도를 학과 교수님들께 많이 배웠어요. 졸업 전시 시기에도 병풍 재료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표현 방식의 재료기법 등 고민이 있을 때 미술학과 교수님들께서 직접 같이 재료 실험을 해주시기도 하고, 제 산발적인 아이디어를 듣고 정리된 코멘트를 남겨주시는 등 한 학기 내내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저와 함께 도전적으로 재료 실험을 도와주시고, 부모님처럼 많이 애써주셔서 아직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작품도 한지 제작부터 서양화 재료 동양화 재료를 섞어보는 실험 등 많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재료 실험 과정에서 얻는 영감들을 점점 녹여내다 보니 작품이 완성되었고, 이런 작업 공정을 거쳐 결국 제 의도와 결과물이 맞춰지는 것에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 본인의 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제 졸업 작품인 <영원의 묵비자연>이라는 작품입니다. 엄청나게 잘해서, 자랑스러워서 애착이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첫 시도여서 지금 보면 미흡하고 고치고 싶은 부분도 많이 보여요. 그렇지만 그때 막연하게 도전했던 그 과정들이 작품 하나에 다 담겨 있어서 타인의 평가와 상관없이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제 모든 작품과 예술적 영감의 시작인 강서구 이야기를 담았어요. 저 어렸을 때 강서구는 논이었어요. 얼은 논 위로 스케이트를 타고, 엄청 넓은 황야에서 뛰놀며 갈색의 풀들과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을 만지고 경험하면서 자연과 함께 자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원시의 자연이 사실은 기간제였던 거예요. 제겐 영원히 가질 수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은 이 땅이 곧 마곡지구로 개발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황야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생긴 서울식물원에는 원주 식물들이 아닌 외국의 예쁜 종자들이 이 땅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매우 낯설게 다가왔어요. 이런 생각을 풀어낸 작품이라 제 작가 노트의 첫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에요.


<영원의 묵비자연> 


| 수민 님이 생각하시는 동양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회화를 동양화, 서양화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동양화를 전공하며 직접 피부로 와닿게 느낀 동양화의 매력은 확실히 서양의 미술사와는 별개로 동아시아가 서로 교류하며 성장시킨 미술이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고유의 전통인 줄 알았던 이미지가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에서도 보이는 것처럼요.


몇 개월 전에 학교지원 프로그램으로 교수님들과 일본 군마-하루나코 레지던시로 연수를 다녀왔어요. 제 졸업작품인 병풍을 소개하니 “びょうぶ(병풍)!”라고 하면서 알아보더라고요. 직접 그린 청룡 그림도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들도 올해 용의 해라며 같이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서로 문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직접 느낀 것이 신기했고 설렜던 경험이었어요. ‘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될 수 있는 의미가 있구나!’ 하면서요. 이 부분이 동아시아사 미술의 전통적 이미지를 배우는 동양화과의 매력인 것 같아요.


| 유수민 학우의 작품세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묵비자연(默祕自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묵비자연’이란 제가 만든 개념어인데요, 그 중 묵비(默祕)가 ‘비밀로 지켜주다’라는 뜻의 한자어예요. 모든 게 다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자연물 모두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하지만 그 안에 인공적인 것들, 비밀로 하고자 하는 것들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시야로 보이는 묵비 자연들을 좀 풀어내고 싶다고 생각해서 개념을 따로 만들었어요.


|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제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많이 주는 작가를 꼽자면 박래현 작가인 것 같아요. 이분의 전시를 대학 생활 초반에 봤었는데요, 하나의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작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좋다기보다는 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작품에 풀어내려고 노력한 것이 보여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 전시에서 박래현 작가의 일본 유학 졸업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졸업 작품이 병풍이었어요. 당시 박래현 작가가 쓰던 작업실 크기는 2폭 병풍 작품을 하기에도 버거웠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작품을 병풍으로 하겠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설명이 아래 적혀있었어요. 저도 졸업작품을 준비할 때 막연하게 병풍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박래현 작가의 졸업작품이 제게 인상을 깊게 주었던 것 같아요.


|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제까진 과정과 형식에 의미를 담아보는 실험을 거쳤다면 이젠 평면 회화 안에서 승부를 볼 수 있게 완성도를 올린 그림을 제작하고자 합니다. 이번 공모전과 전시를 거치며 제 눈에 보이는 작품 속의 미숙한 면들을 보완하고, 실력을 키우려 노력할 계획입니다. 졸업작품에서 다뤘던 식물원이라는 큰 주제에서 ‘난’으로 시야를 좁혀본 것이 이번 작품인데요, 이렇게 주제를 좁혀보니까 어느 부분에서 확장할지가 보이더라고요. 다음 작품에서는 식물과 파란색에 국한되지 않고 더 포괄적으로 섞어보면서 확장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연말에 있을 제 개인전 전까지 위 두 가지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 학우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 나이대인 25살, 26살 정도 되면 친구들이 하고 싶은 거를 대부분 다 포기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 해야만 하는 길로 접어들어 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요즘 글에서 ‘꿈을 포기했다’ 이런 문장만 봐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환경이나 자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도 꿈을 포기했다는 게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 이입되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보이면 열렬히 격려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우분들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꿈의 크기가 작든, 크든 간직해온 꿈이 있다면 숨기지 마시고 꿈을 향한 자기 마음의 소리를 조금 더 들어주었으면 해요.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