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에서 온
Akhunboboeva Azimakhon 학우

  • 473호
  • 기사입력 2021.08.09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 조회수 7099

약 2주간 진행된 2020 도쿄 올림픽이 폐막을 알렸다. 태권도 종목의 종주국이기도 한 우리나라는 은메달 한 개, 동메달 두 개로 총 세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때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태권도는 세계적인 입지를 인정받아 올림픽 종목으로서 자리를 유지했다. 실제로 태권도는 ‘국가 최초 올림픽 메달’의 무대가 되는 경우가 잦다. 베트남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kg 종목에서 건국 이래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요르단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대훈 선수를 꺾고 남자 -68kg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했다. 점점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수출이 피상적인 유행에만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 본격적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셈이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한국어 역시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 중 하나다. 미국 대학생의 한국어 수강은 2006년에 비해 10년 만에 95%가량 증가했고 지난 2020년 인도는 공식적으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채택했다.


오늘 <외국인의 성대생활>에서 만나볼 학우는 

이러한 한국어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놀라운 한국어 실력으로

‘제23회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아훈버버예바 아지마혼 학우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동양과 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화목한 가정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Akhunboboeva Azimakhon(아훈버버예바 아지마혼)이에요. 우즈벡 나이로 하면 아직 19살도 안 됐지만, 한국에서는 02년생이 스무살이다보니 저조차도 제 나이가 자꾸 헷갈리네요. 저는 올해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계열에 21학번으로 입학해 3월에 처음 한국에 왔습니다.


누군가 저의 취미에 대해 물어본다면 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독서라고 답할 것 같아요. 밖에 나가 여행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책이라는 취미 자체가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지금의 저를 만든 건 무엇보다도 책이라고 생각해요. 며칠 전 광화문 쪽에 갔을 때 교보문고 건물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고 적힌 문구를 봤어요. 저는 그 문장이야말로 저라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독서 말고도 저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사람이란 존재를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책이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듯이 모든 사람들은 종이에 옮겨 적지 않았을 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각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종종 제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도 해요.


▶ 고향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제 고향은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라는 따뜻한 도시에요.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이 따뜻한 기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 고향인 페르가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이 떠올라 한 번 ‘따뜻함’이라는 단어를 붙여 봤어요. 페르가나에 가면 ‘온 세상 좋은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나?’ 하고 놀라실지도 모르겠어요. 페르가나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친절한 페르가나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거든요. 페르가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에너지로 가득 찬 도시래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 밖에도 페르가나는 과일이 유명해요. 한국에 오고 나서야 ‘우즈베키스탄은 과일의 천국이다’라는 말이 이해 되더라고요. 우즈베키스탄은 땅도 넓고 비가 잘 내리지 않는 편이라 과일 수확량도 많고 맛도 훌륭해요. 언젠가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하신다면 수박, 체리, 사과, 포도 혹은 석류같은 우즈베키스탄의 맛 좋은 과일들을 실컷 드셔보시길 바래요.


▶ '제23회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어떤 내용의 발표를 준비하셨나요?

이번에 진행된 한국어 말하기 대회의 주제는 2가지였어요. 하나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길’ 이었고, 또 하나는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였어요. 그중 제가 선택한 것은 두 번째 주제였어요. 우리 모두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 시대에 해외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이 같은 인종차별 이슈를 조사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힘든 시기에 서로에게 힘이 되질 못할 망정, 서로 다르다는 그 작은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서로를 혐오하는 것은 잘못된 거잖아요? 그래서 ‘너와 나 달라. 하지만 우리 하나’라는 제목의 발표를 준비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외모, 종교, 인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지구라는 하나의 큰 집에서 살고 있으니까 서로 조금 달라도 우리는 결국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저는 이 메시지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손’과 비유하면서 전달했어요. 손가락 각각이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그 손가락들이 다 함께 모여야 한 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지구촌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었어요.



▶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열 한 살이었을 때 오빠가 한국에 유학을 갔어요. 아마 그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오빠가 보내주는 한국 대학교 사진을 보고, 전화 너머로 한국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한국에 유학 가고 싶더라고요. 제가 한국어를 공부하게 된 것도, 지금 여기 한국의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오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한국어 공부를 열세 살 때 처음 시작해서, 저보다 5살 10살이 많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한국어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언니 오빠들의 수준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힘들어하는 저를 많이 도와준 언니 오빠들 덕분에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어려움 외에도 저는 한국어 ‘쓰기’를 배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기본적인 문법과 단어를 배우면 어느 정도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지만,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돈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매일 한국어로 일기쓰는 습관을 들였어요. 결과적으로는 큰 도움이 됐죠.


▶ 좋은 한국어 발음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한국어에 대한 사랑’ 아닐까요? 한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당연하지만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발음도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저는 종종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한국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저는 제가 상상하는 미래의 제 모습처럼 되기 위해서 발음 부분에 특히나 신경 썼어요. 드라마를 볼 때도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입으로 따라 해가면서 들었답니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발음을 연습했어요.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이나 아쉬웠던 점이 있으신가요?

한국에서 멋진 대학생활을 하리라 6년을 넘게 기대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기대했던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해 아쉬워요. 적극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동아리는커녕 대학 수업조차 직접 들을 수 없었어요. 고향에 있을 때는 컴퓨터를 쓸 일이 별로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대학 수업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수업 방식에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대면 수업에 참석하지 못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쉬워요.


▶ 졸업 후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대학 졸업 후에는 핀란드의 대학원에 입학해서 교육에 대해서 공부할 예정이에요. 교육 제도와 관련된 공부를 해서 우즈베키스탄에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예요. 제게 교육이란 멀리 날아갈 수 있는 날개 같은 것이거든요. 제가 지금 한국에 와서 견문을 넓히게 된 것도 다 교육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요.



“모르면 알 때까지,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각오를 항상 마음에 담고 살아 가시길 바래요. 

무엇이든지 노력한다면 유의미한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전력을 쏟는 것이 중요하고요.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한 학교생활 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