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 교수님

  • 475호
  • 기사입력 2021.09.12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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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계절의 골목.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 바야흐로 가을이다. 작열하는 여름의 위태로운 잎맥 끝에서 가까스로 마주한 무르익는 계절. 원시의 빙하기 이래 수도 없이 반복되었을 가을이라는 계절의 윤회가 징그럽게 낯설다. 생경한 9월의 이유를 찾을 때까지 이 가을을 닮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돌고만 싶어진다. 그 길의 끝에서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을 발견한다면 나는 그제서야 이 쏟아지는 시절을 자백할 수 있을까?


이번 <외국인의 성대생활>에서는 다가오는 가을처럼 쿨(?)한 성격의 성균관대학교 인기 교수, 데이비드 로버츠(David Roberts) 교수를 인터뷰했다. 데이비드 로버츠 교수의 수업을 직권배정 받기 위해서는 3대가 덕을 쌓고 이웃에게 진솔한 정을 베풀어야 한다던데,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일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자.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로 멋진 대학교인 성균관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데이비드 로버츠입니다. 웨일스(Wales)에 있는 에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대학교에서 유전학을 공부했고, 석사과정 중에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법을 배우는 교사 양성 과정)을 공부했어요.


저는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축구 열성 팬이랍니다. 여느 영국사람들처럼요. 저는 30년이 넘도록 토트넘 홋스퍼의 팬이에요. 최근까지는 서울 근교의 산에서 암벽등반을 즐기기도 했는데요,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영 기회가 생기질 않네요.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기타를 연주하는 것도 좋아해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수업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기도 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진도도 느려지고 새로운 내용을 배우기가 점점 힘들어지네요. 여러분들은 최대한 젊음을 활용하시기를!


◎ 교수님 나라와 지역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영국의 레딩(Reading)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제가 태어난 이후로 저희 가족이 워낙 이사를 많이 다녀서 어느 한 곳을 집어 고향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영국으로 돌아갔을 때 꼭 방문하는 곳들을 고향 삼아 소개해드릴게요. 


다들 잘 아시겠지만 런던은 여행자를 위한 활기로 가득한 도시예요. 런던의 오래된 신문사들이 모여있는 플릿 스트리트(Fleet Street)에는 ‘Ye Olde Cheshire Cheese’라는 작고 오래된 펍이 있어요. 펍에 들어가면 마치 과거로 돌아온 것만 같지요. 건물이 오랜 세월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거든요. 펍 내부의 분위기는 밝고, 동시에 환상적인 메뉴들을 뽐내기도 해요. 소시지와 으깬 감자, 피시 앤드 칩스, 그리고 수많은 지역 특색이 살아있는 음식들을 즐기실 수 있어요. 영국 현지의 에일 한 두 잔과 곁들이면  환상적이랍니다!


물론 영국은 런던 말고도 멋진 곳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영국의 서부를 여행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영국 남서부의 콘월(Cornwall)은 성(城)과 서핑 해변으로 유명해요. 기회가 된다면 콘월에서 패스티(Pasty), 스콘, 그리고 코니쉬 아이스크림(Cornish Ice-cream)을 꼭 먹어보시길 바래요. 콘월 지방의 지역명 속에서 고대 콘월 언어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무엇이 교수님을 한국으로 이끌었나요? 일터로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2005년, 재미있는 경험을 찾아 한국을 방문했어요. 원래 계획은 한국에서 일 년 일하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일터를 옮기는 거였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모험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일 년 동안만 한국에서 지내려던 계획을 많이 수정했어요.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점점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어요. 서울이 비로소 제 집이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매년 제가 서울에 더 머물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겠죠. 특히 프라이드 치킨이요. 편리한 대중교통과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훌륭한 장소들은 또 어떻고요. 따뜻하고 친근한 사람들과 수많은 한국의 매력들이 저로 하여금 한국을 집으로 삼고 가정을 꾸리도록 만들었어요.



◎한국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었어요. 온 세상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죠. 살면서 그렇게 추운 날씨는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이 추위에 제대로 대비할 수도 없었고요. 서울의 잿빛 빌딩들, 쓸쓸한 나무들과 남루한 나뭇가지, 뺨 위로 흩어지는 세찬 바람과 바싹 마른 채로 얼어붙은 제 눈물이 떠올라요. 시간이 흘러 봄이 찾아왔고, 그제서야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이렇게 한국에 정착한 덕분에 제 삶에 공백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경험들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생활 중 힘든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 지내면서 힘들었던 점이 몇 개 없긴 한데요, 하나를 꼽자면 (영국에 있는) 가족들과 멀리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거예요. 몸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곁에 없잖아요.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사람(가족)과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중요한데, 길게는 몇 년 동안 그러질 못해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낸 만큼 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긴 시간 동안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성균관대학교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성균관대학교에서 자그마치 11년을 지내면서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지만, 이 대학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일이 하나 있어요. 몇 년 전, 집에 일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제 딸을 수업에 데리고 올 수 밖에 없었던 적이 있어요. 그 때만 해도 아이는 다섯 살이었고, 교실에 학생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많이 불안해했어요. 저도 수업 도중에 아이가 제가 있는 쪽으로 오고 싶어할까 봐 많이 걱정이 되었죠.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학생들은 친절하고 따뜻했어요. 아이가 이 수업의 일원으로 느껴지도록 많이 신경을 써주었어요. 성균관대의 학생들 덕분에 어쩌면 조금은 긴박했던 그 상황이 제 딸에게는 멋진 경험으로 기억되었을 거예요.




◎교수님께서 담당하는 수업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영어 쓰기, 영어 발표, 그리고 영어 토론 수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수업들이 졸업 요건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친숙함을 느끼는 과목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 밖에도 학생들의 요청으로 개설된 ‘커리어영어’라는 수업도 맡아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지원서를 작성하는 방법도 당연히 몰랐으며, 면접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제 대학 졸업 증명서를 유의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저는 성균관대학교의 학생들이 졸업 이후에 남들보다 조금 더 앞선 출발선에서 대학 바깥의 삶을 꾸려나가길 원했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수업이 ‘커리어영어’ 예요. ‘커리어영어’ 수업에서는 탄탄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이력서와 이상적인 지원서를 가지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방법 등 대학 이후의 생애 설계에 대한 내용을 얻어갈 수 있으실 거예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에 어려움이 있다면?

학생들 역시 면대면 수업을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학생들을 직접 만나 가르치며 한 학기에 걸쳐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온라인 수업이 효율적이고 때로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온라인 수업(녹화강의)에는 수업 도중에 학생들과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없고 사담을 나눌 기회도 없어서 수업 자체가 좀 단조로워요. 하지만 이런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 보다 넓은 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배웠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으로써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최선이겠죠. 이건 어쩌면 우리가 배우고, 가르치고, 수업에 참여하는 방식을 보완할 좋은 기회인지도 몰라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새내기 시절의 여러분들은 앞으로의 대학 생활이 까마득하게 느껴지셨을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상상한 것보다 대학 생활은 빠르게 끝나고,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과 같은 대학 졸업 이후의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게 되시겠지요. 미래를 철저하게 계획하되,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짧은 추억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학교란 자고로 여러분들, 즉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대학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많은 경험들을 하시고 아름다운 대학 생활을 하시길 바래요.


과연 ‘데이비드 로버츠 교수님의 수업을 직권배정 받기 위해서는 3대가 덕을 쌓고 이웃에게 진솔한 정을 베풀어야 한다던데’라는 소문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아니, 어쩌면 3대 가지고는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데이비드 로버츠 교수님께서 이 가을 성균관대학교에서 뜻깊은 생활만을 하시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