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균_장구균(Enterococcus faecium) (1)
- 병독성은 낮지만 위험한 세균

  • 539호
  • 기사입력 2024.05.16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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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관수 의학과 교수


열처리 유산균, 반코마이신-내성 장구균에 효과적

- <서울경제> 2015년 12월 15일


세계는 지금 유산균 열풍이다. 일반적으로 유산균은 살아있는 미생물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SCI급 논문에 따르면 열처리한 유산균은 다양한 생물학적 반응을 보이면서 기존 생균이 가진 면역 활동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열처리 유산균은 살아있는 유산균이 그 자체로 병원성을 야기할 위험이 남아있는 것에 비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경우로 면역결핍 환자를 생균인 유산균으로 치료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는데 열처리 유산균은 오히려 안전하기 때문에 치료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갓 부화한 병아리에게 열처리한 유산균을 먹이의 0.05 % 해당하는 양을 먹이와 함께 주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자 위장관계 면역계를 자극하고 반코마이신-내성 장구균(VRE)에 대한 면역 반응을 강화해 배변을 증진하는 효과를 보였다.



지난 글에 소개한 ESKAPE의 첫 번째 글자 ‘E’는 Enterococcus faecium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장구균, 혹은 장알균이라 부르는 세균이다. 1899년에 심내막염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처음 보고되면서 알려진 세균이다(당시 학명은 Micrococcus zymogenes였다). 이름만으로도 이 세균의 특성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장’은 ‘腸’, 즉 창자를 의미하고, 구균, 알균은 공 모양의 생김새를 표현한다. 학명도 그렇다. ‘Entero-’가 장, ‘-coccus’가 공 모양을 의미한다. 여기에 종소명 faecium은 대변(feces)의 찌꺼기를 의미한다. 장에 사는 공 모양의 이 세균은 (당연한 얘기지만) 대변에서 잘 검출된다. Entorococcus faecium과 함께 Enterococcus 속에 속하는 대표적인 세균에는 Enterococcus faecalis가 있는데, 이 세균 역시 이름 그대로 대변에서 잘 검출된다. 과거에는 E. faecalis가 환자에서 훨씬 많이 분리되었지만, 21세기 들면서 전 세계적으로 E. faecium이 훨씬 많이 검출된다. 그래서 ESKAPE의 ‘E’도 E. faecium을 의미하게 되었다.


항생제 내성을 가진 장구균에 감염되면 쓸 수 있는 항생제가 굉장히 제한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래서 다른 병원균에 비해 병독성이 특별히 높지 않은데도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장구균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특별한 항생제에 대한 내성 때문이다. 바로 반코마이신(vancomycin)이라는 항생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는 장구균은 반코마이신-내성 장구균(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us spp.), 줄여 VRE라고 한다. 이것들은 주로 병원 내에서 환자를 감염시킨다. 바로 이 VRE라고 하는 특별한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장구균은 ESKAPE의 일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의 흙에 포함된 세균(방선균)에서 찾아낸 항생제다. ‘Vanquish’, 즉 ‘정복하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에서 이름을 가져온 이 항생제를 맨 처음 분리하고 연구했던 일라이릴리라는 제약회사의 연구팀은 ‘미시시피 진흙(Mississippi Mu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용매에 녹였을 때 걸쭉한 갈색의 액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항생제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뭘까? 물론 VRE에 감염되면 치료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오랫동안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MRSA)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항생제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MRSA는 장구균보다 병독성도 강하고, 병원 내에서 감염이 훨씬 많이 일어나는 세균이다. 그래서 의사와 연구자 들은 MRSA가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VRE가 매개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졌다. 하지만 그 사례가 흔치는 않다. 다행히). 그래서 VRE에 감염된 환자는 병원에서 격리해서 치료한다.


그럼 장구균에서 반코마이신 내성은 어떻게 생길까? 반코마이신 내성 유전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vanA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함께 반코마이신 내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서로 뭉쳐서 존재하는데, 이는 이 유전자들이 한꺼번에 다른 데서 전해졌다는 얘기다. 바로 트랜스포존이라고 하는 이동성 인자에 실려 장구균 염색체에 끼어들어 간 것이다. 이 반코마이신 내성 유전자는 세균이 세포벽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본 단위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낸다.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는 세포벽 기본 단위에 결합해서 세균이 세포벽을 합성하는 것을 막는데, vanA 유전자의 산물은 세포벽을 만들 수는 있지만 원래의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반코마이신이 결합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항생제를 무력화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 VRE 감염이 거의 병원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환자가 원래 가지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감염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의 손이나 옷, 의료 기구, 물품, 또는 다른 환자 등을 통해서 전파되고 감염되는 것이다. 이를 병원 내 감염(hospital-acquired infection 또는 nosocomial infection)이라고 한다. 병독성은 그리 세지 않은 데 반해 여러 악조건, 이를테면 온도라든가 건조 조건 등에서 잘 버티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많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어서 병원 내에서 잘 전파되고 환자를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는 환자, 혈액 투석을 받거나, 이식 수술을 받거나, 혈액 종양 환자와 같이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위험한 병원균이 바로 장구균, 반코마이신-내성 장구균이다.


<참고문헌>

고관수 《세상을 바꾼 항생제를 만든 사람들》 (계단)

유진홍 《내 곁의 적》 (군자출판사)

Arias CA, Murray BE. The rise of the Enterococcus: beyond vancomycin resistance. Nat. Rev. Microbiol. 2012;10(4): 266–278

Lowy FD. Antimicrobial resistance: the example of Staphylococcus aureus. J. Clin. Invest. 2003;111(9):1265-1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