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성대뉴스 - 대학일반

정두식동문(前총무과장) 500만원 기부 2009.03.30
  • 홍보팀
  • 조회수 : 3153
게시글 내용

정두식동문(前총무과장) 연금모아 500만원 기부
93년 정년퇴직때 ‘600년기념사업’ 600만원 쾌척

정두식동문(鄭斗植, 78, 국어국문학과 58학번). 1974년 모교 교직원이 되어 학적과, 체육실 등에서 일하다 1993년 총무과장을 끝으로 20년동안의 교직원생활을 마쳤다. 퇴직할 즈음 ‘건학 600주년기념사업회’가 발족돼 대대적으로 기금을 모금할 때, 정동문은 선뜻 600만원을 기부하여 화제가 되었었다.

정동문은 그후에도 늘 모교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다. 아들(44) 딸(47)도 성균관대를 졸업, 명실공히 ‘성균가족’이기에 더했다. 2004년 뇌졸중으로 뇌수술을 받은 후 마음이 급해졌다. 1950년 황해도 수안군에서 단신 월남(19세때의 일이다), 그야말로 혈혈단신, 어렵게 산 인생역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40년동안 쓴 일기 중에 시(詩)를 흉내낸 161수를 골라 ‘슬픈 자유’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낸 것(삶과꿈 발간)도 그 때문이었다.

그후 정동문은 사학연금을 얼마간 모아 발전기금이라고 500만원 갖고 30일(월) 대외협력팀(팀장 김성영)을 찾았다. 정동문이 퇴직할 당시 주임이었던 담당팀장은 대선배의 갑작스런 방문에 “몸도 불편하고 살림형편도 어려울텐데…”라며 감격해했다. 정동문이 대외협력팀 사무실에서 회고한 학창시절을 털어놓았다. 천애고아가 된 정동문은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해도 학업을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운좋게 58년 성균관대에 처음으로 야간학부가 생겼다. 당시 국문학과 교수로는 월탄 박종화(결혼 주례까지 서주셨다), 조윤제박사, 김구용교수와 강신항교수 등 쟁쟁한 분들이 계셨다고 기억한다. 낮에는 체신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대학을 마쳤다. 62년 학사고시에 합격했다. 교직원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체신부 공무원으로 13년간 일했다.

정동문이 일생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19살 이후 부모․형제(8남매 중 다섯번째) 소식 등 고향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 남북이산가족 상봉신청도 ‘이북오도청’에서 일한 때문인지 신청이 원천봉쇄되었다. 한 갑자(60년)가 흐른 지금도 눈만 감으면 선하게 떠오르는 고향산천 생각에 목이 메인다. 생전에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갈 수 있을까. 부모산소에 성묘나 한번 할 수 있을까. 뇌수술로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정동문은 “모교 발전이 눈부시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다. 자랑스럽다”며 점심을 강권하는 당시 후배직원과 방을 나서며 쑥스러워 했다.

이전글 "끼와 열정" 퀴즈원정대 성대편 29일방영
다음글 대입전형/정시 수능시험 비중 높아졌다
  • 상기 콘텐츠 담당
  • 홍보팀 ( 02-760-11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