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심산 선생님. 다시 5월이 왔습니다. 선생님 가신지 어느덧 59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선생님이 남기신 뜻을 되새기고자,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이들이 여기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해방 이듬해의 일입니다. 1946년 9월, 선생님이 앞장서서 성균관대학을 설립하셨을 때, 도열해 있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서 본교의 학문 이념을 이렇게 천명하셨습니다.
“우리 성균관대학의 특색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숭고무비한 윤리도덕의 진수를 천명하여 우리 문화를 세계 만국에 선양하려는 바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유교 정신은 결코 옛 봉건시대의 진부한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것이 아니오, 또한 외래사상이나 문화를 무조건 배척하거나 숭배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직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가장 좋은 점만을 절충하여 우리의 고유한 유교 정신에 귀납 함양시키려는 바이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성균관대학의 학문 이념은 ‘전통의 진수’를 오늘날에 천명하는 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옛것 그대로 ‘답습’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계승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둘째, ‘외래 사상과 문화’를 주체적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 밖에서 들여온 사상과 문화란 곧 서양 학문을 가리킬 것입니다. 선진적인 것이므로 흡수하고자 힘써야 하지만, 숭배해서도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통 학문과 서양 학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온당하게 다루는 것이 성균관대의 ‘특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균관대학 뿐이겠습니까?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의 신문화를 수립하는 책무를 가진 한국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나아갈 길을 표명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오늘 되살리는 까닭이 있습니다. 아직도 불충분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전통 학문의 창조적 계승도, 구미 학문의 주체적 수용도 여전히 달성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전통 학문의 계승은 실날처럼 가늘게 이어지고 있고, 서양 학문은 날것 그대로 소화도 시키지 못한 채 폭주하고 있습니다. 저희 후학들이 불민한 탓입니다. 선생님의 뜻을 밝게 드러낼 수 있도록 저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기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절정에 달하던 때였습니다. 1940년, 과거의 동지들이 절개를 잃고 친일 대열에 합류하던 암담한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울산 백양사에 방을 하나 얻어서 고문과 감옥살이의 여독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감옥살이를 같이했던 벽초 홍명희가 시골에 낙향해서 지조를 지키던 중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가 겉으로는 번영의 절정에 달해 있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패망하고 말리라는 암시와 은유가 가득찬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은 7언절구 네 수를 지어서 화답했습니다. 그중에 세 번째 시입니다.
나는 아노라 그대의 밝고 빛나는 마음 我識夫君炯炯心 천근이나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千斤擔子雙肩任 칼 같은 봉우리 험난한 벼랑길에 刀山釰樹重重路 백번 넘어져도 다시 설 것을 百仆猶應百起尋
커다란 신뢰를 표명하셨습니다. 아직 독립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식민통치에 영합하는 자들이 득세를 하고 있지만,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잊지 않고 지조를 지키며 사는 홍명희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은 선생님이 간절하게 바라시던 남북통일도 이뤄지지 않았고, 물신 숭배의 시장 만능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문제점 많은 시절입니다. 그래도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잊지 않고 그를 지키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선생님, 심산 선생님. 우리는 오늘도 선생님이 남기신 뜻을 되새깁니다. 대학 교육의 마땅한 길이 어디인지, 정의롭고 마땅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웁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선생님의 가르침은 더욱 새롭기만 합니다. 오늘 선생님 가신지 59주년을 맞았습니다.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이들이 모여서 삼가 분향하고 배례를 올립니다.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우리의 간곡한 그리움을 부디 흠향하소서.
2021년 5월 7일 심산김창숙연구회 회장 임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