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의 지혜를 담는 방식, 선장본

  • 585호
  • 기사입력 2026.04.10
  • 취재 강나연 기자
  • 편집 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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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인 『전한서』에 초한쟁태기에 법전과 도서를 금은보화보다 먼저 가져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을 만큼 지식과 지혜를 담은 책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지혜와 지식이 책을 통해 오래 보전되기 위해서는 책을 만드는 방식, 즉 장정의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사용된 방식은 선장(線裝)이다. 글씨가 바깥으로 향하게 접어 속 제본을 거쳐 실로 묶어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고서는 선장본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훈민정음 혜례본』, 『조선왕조실록』, 『동의보감』 등 유명한 고서들 또한 대부분 선장본이다. 오래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튼튼히 그 지혜를 담고 있도록 제작되었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그 유산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다양한 곳에서 선장본을 옛날의 방식대로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인쇄된 종이를 속지가 바깥으로 향하도록 각각 접는다. 접힌 종이들에 구멍을 9개 뚫어, 2개씩 한지로 묶어 속 제본을 마친다.


▲ 능화판에 종이를 놓고 문양을 새기는 모습


이후, 능화판(菱花板)에 밀랍을 묻힌 겉표지를 두고 돌로 눌러가며 문양을 새긴다. 만들어둔 속지와 겉표지를 실로 꿰매고, 표지에 제목을 써서 붙이는 제첨까지 완료하면 선장본이 완성된다. 고서에는 이 외에도 총 책수를 표시하거나, 책에 관한 내용을 책의 앞뒷면에 작성하는 내사기, 장서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선장본과 그 의의에 대해 문헌정보학과 윤현정 교수와 이야기해 보았다.



|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관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교강사로 수업하고 있는 윤현정입니다. 우리 학교 같은 학과에서 학부와 석사,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후배들을 <서지학개론>, <고전자료의이해1> 등의 수업을 통해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세부 전공은 한국서지학이며, 정조 편찬 문헌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 선장본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동양의 장정 방식 중 한 가지로, 그 변천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선장(線裝)으로 만들어진 고서(古書)를 말합니다. 글씨가 바깥으로 향하도록 접어 중첩한 뒤, 종이 끈으로 묶어주고, 표지 두 장을 덧대어 실로 묶는 방식으로 만듭니다. 마지막 단계에 실로 튼튼하게 묶기 때문에 '실 선(線)' 글자를 씁니다. 현존하는 고서의 대부분은 선장으로 장정되어 있습니다.


| 선장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의의를 지닐까요?

오늘날에는 양장본이 제본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고, 그 외의 책의 형태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약 120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에서 '책'이라고 하면 대부분 선장본의 모습이었고, 그 역사도 약 600년 가까이 됩니다. 이와 같은 선장본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을 통해, 우종서(右縱書: 오른쪽에서부터 세로로 글을 쓰는 방식)로 낯설기도 하고, 해지고 낡아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고서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세대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세대의 우리를 돌아보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선장본 만들기 체험도 그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왼쪽) 동의보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선장본만 가지는 특성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우리나라의 선장본은 표지를 실로 묶을 때 반드시 구멍을 다섯 개 뚫어 제본하였습니다. 이를 오침안정법(五針眼訂法)이라 하는데, 중국이나 일본의 선장본은 주로 짝수의 구멍을 뚫었던 것과 차별화되는 우리나라 고서의 고유한 특성입니다. 이때, 실은 대체로 붉게 물들인 홍사(紅絲)를 썼고, 표지는 황염(潢染)한 뒤 능화판(菱花板)을 통해 여러 가지 무늬를 박아내어 사용하였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의 선장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성입니다.


| 마지막으로 기사를 읽는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져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워야 하는 오늘날, 책이 정보를 담고 있는 유일한 매체였던 시대의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마음으로 대하였는지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무엇도 알아내지 못하거나 성취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고서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으로 즐거운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