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예술에 나타난 음주 문화와 광기 (Ⅰ)

  • 475호
  • 기사입력 2021.09.13
  • 편집 이수경 기자

글 : 조민환 동아시아학과 교수


동양문화에 나타난 통음痛飮


중국역사를 보면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문인을 비롯하여 서화에 장기를 보인 탁월한 예술가들이 술을 좋아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취광醉狂’ 혹은 ‘취옹醉翁’ 등과 같이 술을 연계하여 자신의 호를 짓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문화에는 유가의 경敬을 근간으로 한 문화와 도가의 광狂을 근간으로 한 문화가 있는데, 도가의 광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는 음주 문화 찬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취大醉’와 연계된 예술가들의 광적 기질과 행동거지는 서화예술 차원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이런 인물들의 경우에는 도가사유에 경도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술에 대한 광태어린 행위는 위진시대 명사들의 임탄任誕(유가의 예법주의나 제도에 구애되지 않고 ‘방약무인傍若無人’하면서 제멋대로 허탄한 행동을 일삼는 것)한 행태에 자주 나타난다. 위진魏晉시대 명사들의 통음痛飮 및 대취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이후 중국문인 및 예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이런 현상은 조선조도 차이는 있지만 거의 동일하다.


그렇다면 많이 마시는 경우 자칫하면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비이성적인 행위를 유발시킬 수 있는 술이 예술적 차원에서 어떤 효용성이 있다고 여겼기에 중국문인들은 그렇게 술을 찬미하는지, 왜 양해梁楷가 <발묵선인도潑墨仙人圖>를 그린 것처럼 술취한 것이 예술적 소재가 되었는 지 하는 것을 술을 찬미한 인물들의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즉 서양이었다면 ‘알콜 중독자’로 여겨질 만한 음주문화와 통음문화를 왜 긍정적으로 여겼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양해, <발묵선인도潑墨仙人圖>, 지본수묵紙本水墨, 48.7x27.7cm, 대북 고궁박물관 소장.

양해의 광기어린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북 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그림에 대해  “큰 붓질로 먹을 칠한 후 어깨부터 옷의 끝단까지 그려냈는데, 날아가는 듯한 붓의 기세와 먹의 리듬은 폭발적이어서 마치 우레와 천둥이 치는 듯하다. 간단한 필치이지만 선인의 탈속한 기질을 충분히 잘 표현해냈다. 이 그림은 비록 순간에 완성된 것이지만 평생 노력하고 다듬은 기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양해의 예술창작은 술을 빌어 흥을 돋우고 그 취기를 빌어 뜻을 펼치는데 그 어떤 것에도 속박되거나 구속됨이 없는 가장 진실한 자아의 발현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런 그림을 이해할 때 “순간에 완성된 것이지만 평생 노력하고 다듬은 기량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란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같이 술을 먹고 취한 모습을 찬양하는 것도 동양문화의 독특한 현상 중 하나라고 본다.



술에 관한 저술 및 행태


문인사대부들이 추구한 문화와 예술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식물은 술과 차다. 예술 차원에서 볼 때 차는 마음을 가라앉힌 상태에서 요구되는 창작행위에 필요한 음료였다. 아울러 문인들의 고상함을 표현하는 일종의 구별짓기 차원의 문화음료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경직된 몸과 마음을 풀어헤치고 일필휘지의 붓놀림이나 발묵법 등을 행할 때 혹은 예술가로서 도를 표현하고 조물주와 동일시되는 차원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술창작을 도모하는 경우 술은 매우 유효한 음료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술은 유가의 음식이다. 유가가 긍정한 음주 행태는 상대방에 대한 존경, 신분의 존비와 고하의 차별화에 맞는 예법 및 상호간의 조화로움을 꾀하는 음주로서 기본적으로 절제됨을 강조한다. 하지만 광기어린 삶과 예술세계를 펼치고자 했던 인물들은 절제된 음주문화를 거부했다. 유가식의 절제를 강조하는 음주문화를 거부하는 삶과 예술정신에는 문예 차원의 진정성과 창신성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 예술창작에서 도 혹은 진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 있다.


술의 긍정적인 면을 찬송한 대표적인 것은 위진魏晉시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유영劉伶이 술의 덕을 찬송한 「주덕송酒德頌」이다. 유영은 「주덕송」에서 천지개벽 이래의 시간을 하루아침으로 삼고, 만 년을 순간으로 삼고, 해와 달을 창의 빗장으로 삼고, 광활한 천지를 뜰이나 길거리로 삼고 ‘오직 술 먹는 것[유주시무唯酒是務]’에만 힘을 쏟는 ’대인大人 선생’을 통해 유가 인물들이 예법과 시비를 가리는 행태를 비웃는다.


팔대산인, <주덕송>, 지본紙本[行書], 25.7×531.1㎝ 상해 박물관 소장.

석문釋文: 有大人先生, 以天地為一朝, 萬朝為須臾, 日月為扃牖...

팔대산인이 북송대 서예의 운치를 강조한 ‘황정견黃庭堅’ 필법을 모방해 유영의 <주덕송>을 쓴 작품이다. 팔대산인은 괴기스럽고 광기어린 화풍을 보였는데, 글씨에도 그런 점이 많다. 팔대산인은 유영이 〈주덕송〉에서 말하고 있는 ‘오직 술먹는 것만 일삼는 대인선생’의 기풍을 독특한 서체를 통해 풍격높게 표현하고 있다.


유영은 늘 술을 마시고 술주정을 했는데, 통음痛飮으로 얻어진 어떤 걱정 근심도 없는 ‘즐거움’이란 상징성을 통해 유가의 경외敬畏적 삶과 이성을 해체하고자 했다. 유영의 술에 대한 이런 찬송은 이후 술을 논하는 많은 인물들의 표본이 된다. 왕적王績이 「주덕송」의 취지를 이어서 쓴 ‘술에 관한 유토피아’를 읊은 「취향기醉鄕記」와 백거이白居易의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 이 그것이다. 백거이는 “술 깼다 다시 취하고 취했다 다시 깨보니, 인간 세상 예나 지금이나 우습기만 하다”라고 읊은 ‘주성환취酒醒還醉’의 경지를 읊기도 한다.


중국문화에서 술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 및 그들의 행태에 대해 전문적인 문장을 쓴 인물은 원굉도袁宏道다. 원굉도는 술과 관련된 다양한 사유를 담아 「취수전醉叟傳」을 쓰는데 자신의 정감과 의지를 간접적으로 취수에 융입하여 풀이한 것이다. 원굉도는 ‘술 취한 늙은이[취수]’를 ‘용의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은둔하는 인물’이라 규정한다. 제왕에게나 적용하는 용의 덕을 들먹이는 원굉도의 이런 사유는 술이 갖는 효용성을 최고로 높인 것이다.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쓴것이 이른바 음주에 관한 ‘정령政令’ 혹은 ‘헌장’ 정도에 해당하는 「상정觴政」이다.


원굉도는 ‘술의 헌장[상정觴政]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두머리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런 발언은 유가의 성인이 지향하는 덕치德治 위주의 정치이념과 매우 다르다. 이에 원굉도는 「상정」에서 중국역사에서 술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과 유명한 인물들을 거론하는데, 「팔지제八之祭」에서는 공자를 주성酒聖으로 꼽기도 한다. 그 이유로 주량의 한도가 없고 아무리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은 점을 거론하면서, 공자를 ‘상정’의 비조鼻祖요 ‘음주’의 종주宗主라고 한다. 공자가 술을 많이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종의 ‘술의 성인[주성酒聖]’급 이라 규정한 것은 유가인물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할 것이다.


중국 고대 유명 시인 가운데 술을 좋아하고 즐긴 이른바 기주자嗜酒者가 많았고 직접 술을 빚은 인물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백, 두보, 백거이는 주량이 해량海量이었고, 하지장賀知章은 애주가였다. 하루 온종일 마셔도 오 흡을 넘지 못했지만 손님이 술 먹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이 세상에 이렇게 술을 좋아한 자는 자기 이외 없다고 한 소식蘇軾은 『동파주경東坡酒經』을 써 술 담그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주굉朱肱은 술에 관한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북산주경北山酒經』을 쓰는데, 술이 제사, 예법 지킴,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 예술창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쓰임새가 있음을 말한다.  


중국 역대 시를 보면 도연명의 「음주飮酒」 20 수首가 말해주듯, 술을 매개로 자신의 시흥을 읊은 시들이 많다. 단순 음주를 넘어 ‘취주醉酒’를 주제로 한 시들도 많고, 술에 취한 것과 연계해 호를 삼은 예술가들도 있었다. 이처럼 술을 취하도록 먹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술을 잘 마셔 ‘주태백酒太白’이라고도 불리운 이태백[=이백李白]은 「달 아래에서 혼자 술 마신다[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술 세잔이면 큰 도에 통하고[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한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하리[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라고 하여 ‘술 마시는 가운데의 진취眞趣’를 읊고 있다.


이백의 「월하독작」 1 수首다. “꽃나무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화간일호주花間一壺酒]

홀로 따르네 아무도 없이[독작무상친獨酌無相親]”로 시작하는 「월하독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혼술’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딱 적합한 시다.


이처럼 중국문화와 예술에서는 술은 단순히 먹는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예술창작의 경우 음주문화를 찬미하거나 술에 취하는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난다.


요컨대 이른바 ‘주선酒仙’이라 일컬어지는 이백이 ‘오랫동안 취하고 깰 것을 원하지 않은 것[장취불원성長醉不願醒]’을 읊은 「장진주將進酒」에서 고래로 성현보다 술을 잘 마신 인물만이 ‘역사에 이름을 날렸다’는 이른바 유가에서 말하는 ‘삼불후三不朽’ 이외의 새로운 차원의 ‘불후’를 말하고 있는 이러한 사유는 동양문명권에서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사유인데, 이백의 이같은 발언은 왜 중국문인과 예술가들이 술을 그렇게 취하도록 마셨는지를 특화시켜 말한 것에 속한다. 특히 통음을 통한 예술창작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에 술이 갖는 문예적 차원의 독특한 의미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