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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의 동양예술정신
- 554호
- 기사입력 2024.12.27
- 편집 이수경 기자
- 조회수 639
글 :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사전적 정의로 말하면,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은 컴퓨터에서 음성 및 작성된 언어를 확인, 이해, 번역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추천하는 기능을 포함하여 다양한 고급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기술로서, 일반적으로 인간 지능이 필요하거나 인간이 분석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대규모 데이터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추론, 학습 및 행동할 수 있는 컴퓨터와 머신을 빌드하는 과학 분야다.
이같은 사전적 정의에서 주목할 것은, ‘작성된 언어’를 확인, 이해, 번역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추천하는 기능이란 것과 그 기능을 컴퓨터 등에 ‘인공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하는 노장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같은 방식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인위(人爲)에 의한 결과물에 해당하고, 따라서 ‘언어로서는 내면에 깃든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言不盡意]’라는 입장에서 언어를 부정하고 무위자연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보면 제한점이 있게 된다.
본 글은 AI 시대 도래에 따라 요구되는 동양예술정신은 무엇이어야 하고 AI예술가와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를 노장철학과 예술정신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한 것이다.
▲ 푸젠성 취안저우시 청위안산에 있는 노자 석상. 『신선전』 등에 의하면 노자의 이마에는 깊이 패인 주름살이 세 개 있었다고 한다.(사진 오른쪽)
2. 노장의 도론(道論)과 상도(常道)로서의 예술
노장철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성과 문제점을 지적한다. 『노자』 1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점을 보여주는데, 왕필(王弼)의 해석을 통해 이해해보자.
도[道]를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도라고 규정할 수 있는 도[可道之道]는 (노자 내가 생각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항상된 도[常道]가 아니다.
왕필은 노자가 말한 도를 ‘말[언어]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물을 말로 규정할 수 있는 도’[可道之道]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常道]’ 두가지로 구분하는데, 이런 점을 AI와 연계하여 말한다면 AI에 의한 예술창작 결과물은 ‘가도지도(可道之道)’에 속한다. 즉 언어와 형상 및 부호를 통해 창작된 인위적 결과물은 AI에 의한 결과물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노자식으로 말하면 이런 예술은 노자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常道로서의 예술]이 아니게 된다.
동양예술은 종병(宗炳)의 말을 빌면, 기본적으로 ‘우주의 원리[혹은 도, 대자연에 깃든 원리]’를 ‘기예를 통해 도를 아름답게 형상화한 예술[以形媚道]’이면서 작가의 ‘예술정신과 감성을 자유롭게 표현한 예술[暢神]’이라고 한다. 아울러 이같은 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예술창작 경향은 달라진다.
언어를 인정하고 ‘상을 세움으로써 뜻을 다한다[立象以盡意]’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근간으로 하는 유가의 예술창작 정신, 즉 인간의 인위적 조작과 기교 운용에 의한 유가의 예술창작은 AI에 의한 예술창작과 일정 정도 연결성을 갖는다. 하지만 노장이 말하는 도는 구체적인 형상과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無狀之狀,無物之象] 인식 불가능하고 언어화할 수 없다. 따라서 이같은 도를 미적 차원에서 예술창작에 적용하고자 할 때 기술 차원에서는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구체화하여 인식하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아울러 체득한 도를 인간이 AI에게 하나의 정보 및 자료로 입력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장자는 인간이 도를 체득하였다고 해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데이터와 언어[기호]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요구되는 정보를 생성, 처리, 활용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는 특정한 규칙에 따라 코드화되는데, 그 코드 역시 일종의 언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언어를 떠난 데이터는 존재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같은 언어가 인간이 생각하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과 관련해 노장에서는 ‘언부진의’라는 언어 부정 사유에 입각해 단계적으로 ‘상을 얻으면 언어를 잊는다[得象忘言]’라는 것과 그 이후의 ‘뜻을 얻으면 상을 잊는다[得意忘象]’라는 이론, 이른바 ‘망언(忘言) 철학’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장철학에서 ‘무위자연의 도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모르는 자다[知者不言과 言者不知]’라는 사유에 입각해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황홀(恍惚)’한 도를 예술창작의 근간으로 하는 경우는 AI에 의한 예술창작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
3. 노장 미추관(美醜觀)의 특수성
장자는 “천지자연은 커다란 아름다움[大美]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같은 천지자연에 깃든 불언의 대미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로 형상화하지 않기에 인위적 차원의 미와 추로 분별되지 않는다. AI는 기본적으로 미와 추가 분명하게 분별하는 분별지 차원에서의 예술창작에 임한다고 본다. 따라서 부언의 대미와 친소·이해·귀천의 무분별성과 관련된 ‘현동(玄同)’ 차원의 미적 인식은 AI가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히 노자는 미와 추에 대해 미추 전화(轉化) 가능성 및 판단 보류를 강조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가(儒家)는 맛과 소리 등과 관련해 요리사인 ‘역아(易牙)’의 맛과 음악가인 ‘사광(師曠)’의 소리의 미적 보편성[天下皆以爲美]을 제기한다. 하지만 노장은 미가 추로 전화될 수 있음을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와 추라고 규정된 것이 미와 추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미와 추에 대한 판단 보류를 강조한다. 『노자』 2장에서 말하는 것이 그것인데, 두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하나는 천하 사람들이 미라고 규정하는 것이 추악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른바 ‘이미 규정된 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는 시공간의 다름에 따라 추로 전화될 수 있다는 식의 해석 가능성이다. 어떤 해석이건 모두 이미 있었던 기존 미와 추에 대한 고정 불변의 인식에 대한 비판에 해당한다.
『장자』에서는 노자의 이같은 미와 추에 대한 사유를 다양한 실례를 통해 제시하는데, 특히 장자는 인위적인 미적인 것을 거부하는 차원에서 천연의 자연미에 해당하는 소박미(素樸美)를 최고의 미로 친다. 이런 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추의 극치는 미의 극치’라는 사유로도 전개된다. 문제는 이같은 미추관에 입각한 미를 구체적으로 언어를 통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인간이 입력한 분별지에 의한 정보에 입각해 판단할 수밖에 없는 AI가 이런 차원의 미의식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체득한 도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아울러 이같은 미추관에 입각한 미적인 내용을 AI에 정보와 자료를 입력하는 인물이 제대로 입력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인간은 살아온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토대로 한 축적된 경험치를 나름대로 소화하여 창작에 임한다는 장점이 있고, 이런 사유가 노장철학과 결합되었을 때는 AI와 차별화된 예술창작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고 본다.
▲ 정선이 노자가 함곡관을 나가는 것을 그림 〈청우출관도〉(사진 왼쪽) , 조맹부가 그린 〈노자상〉: 『노자』 1장 문장은 조맹부가 쓴 것이다.(사진 오른쪽)
4.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예술창작 정신과 우연성(偶然性)
노장철학은 예술창작과 관련하여 ‘도의 본질은 자연스러운 것이다[道法自然]’라는 정신을 강조하고, 아울러 ‘도를 하는 공부는 날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지식을 덜어낸다[爲道日損]’라는 것을 통한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를 강조한다. 노자는 ‘위도일손’과 상대적으로 ‘학을하는 공부는 날마다 자신의 분별지를 더한다[爲學日益]’라는 것을 말한다. 후천적 경험의 축적으로 형성된 ‘학’을 통한 분별지와 관련된 ‘위학일익’은 AI가 접근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날마다 분별지를 덜어내어 결과적으로 어떤 편견이 없는 허정의 상태를 요구하는 ‘위도일손’의 경지는 AI에게는 낯선 세계다.
노장은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기교를 강조한다. 이런 점은 이후 예술창작 차원에서는 결과적으로 원(圓)도 아니고 방(方)도 아니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을 핵심으로 하는 일격(逸格)과 형사(形似)에 유의하지 않고 신사(神似)를 중시하면서 ‘일기(逸氣)’를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인간에게는 흥취가 일어났을 때의 ‘우연욕서(偶然欲書)’, ‘우연욕화(偶然欲畵)’, ‘우연욕시(偶然欲詩)’ 등과 같은 예술창작 정신이 있다. 물론 이같은 우연성도 필연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흥취가 일어났을 때의 무위자연적 속성이 있는 우연성에 의한 예술정신, 창작 의도가 AI에게도 적용될지 궁금하다. 고도의 기교 숙련 이후의 무위자연에 입각한 ‘법천귀진(法天貴眞)’에 의한 진정성 표출 및 천진난만성 차원의 예술창작 경지도 마찬가지다.
AI는 아직까지는 인간의 조작에 의한 인위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도법자연에 입각한 노장의 예술창작 정신 및 우연성에 의해 표출된 예술창작 및 기교 표현 등과 같은 점은 차별화된다 할 수 있다.
5. 나오는 말
인간과 AI는 문화 학습에 있어 서로 다른 강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예측하는 데 뛰어난 점이 있다. AI는 데이터 기반 창작, 패턴 인식 및 예측, 규칙 기반 생성 등을 통해 상상력과 유사한 기능을 구현하거나 창조적인 활동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은 동양예술 차원에서 본다면 여전히 언어를 인정하는 사유에서 출발해 ‘법고’ 이후에 ‘창신(創新)’을 이룬다는 것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이미 있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예술창작, 예를 들면 유가 성인과 스승을 본받고자 하는 인위적 법고(法古) 차원의 예술, 형사(形似)를 주로 한 예술인 경우 인간보다 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생성형 AI일수록 이같은 강점은 더욱 배가된다.
인간은 AI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험을 통해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아울러 창의적인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노자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을 통해 언어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성과 문제점을 강조하고, 아울러 예술창작의 무위자연성과 광기를 강조하는 노장철학에 입각한 경우라면 이런 점은 배가된다.
이처럼 AI 시대가 도래해도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예술이라 규정되는 可道之道(가도지도)로서의 예술이 아닌 常道로서의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으로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노장철학에 근간한 동양예술정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물론 과학의 발달함에 따라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의 소유자로서의 AI’가 출현한다면 이같은 차이점도 점차 줄어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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