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인사대부들의 놀이문화 (Ⅱ)

  • 469호
  • 기사입력 2021.06.14
  • 편집 이수경 기자

글 : 조민환 교수 유학대학원 특수대학원장


◆ 음다(飮茶)문화와 투차(鬪茶) 놀이


문인들의 삶에서 차는 빼놓을 수 없는 음료다. 음다 과정에서도 놀이를 통한 즐거움을 얻고자 하였다. 황제이면서 서화에 뛰어난 장기를 보인 송대 휘종(徽宗)이 그린 <문회도(文會圖)>에서 볼 수 있듯이, 휘종은 신하들과 차를 마시는 다연(茶宴)을 베풀고, 아울러 차와 관련된 전문서적인 『대관다론(大觀茶論)』에서는 “맑음을 이루고 조화로움을 유도하는[致清導和]” 차의 효용성을 거론하여 일반 백성[庸人孺子]들과 다른 차문화를 거론한다. 송대에 오면 당대 차문화와 달리 색·향·미를 제대로 갖추어진 우아한 차문화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는데, 이런 정황은 어떤 사람의 차가 색·향·미를 제대로 우려냈는지를 다툰 이른바 ‘투차(鬪茶)[혹은 茗戰]가 유행한다. 이같은 투차 문화는 동일한 차를 마시더라도 문인들이 마시는 차는 일반 백성들이 마시는 차문화와 다른 차에 대한 구별짓기 사유가 담겨 있다.



▲송휘종의 (문회도) 부분 : 회면 왼편 가운데 흰옷을 입고 오른손을 들고 신하들에게 차 들라고 하는 인물이 휘종이다.


▲ 투다도(鬪茶圖) 국부



◆ 낚시와 뱃놀이를 통한 놀이


은일적 삶의 상징 중에 하나가 바로 어부로서 삶을 사는 것이다. 도륭은 『고반여사』「유구전(遊具箋)」에서 노는 도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낚시대[漁竿]’와 ‘배[舟]’에 관한 것을 보자.

 


「유구전」(어간),


강가에 도롱이 하나를 걸치고 낚시를 드리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이른바 (明德馬皇后가 읊은) ‘낚시 바늘로 푸른 물결 속에 잠긴 달을 당겨, 천추의 만고심을 낚아올린다[一鉤掣動滄浪月, 釣出千秋萬古心]고’ 한 것은 그 즐거운 뜻[樂志]을 표현한 말이다. 뜻은 고기에 있지 않다. 때로는 홍요화 핀 여울 가에서, 때로는 푸른 수풀에 둘러싸인 오래된 언덕에 있거나, 혹은 서풍이 얼굴 때리는 것을 만나거나, 혹은 머리에 흩날리는 눈을 맞을 때 깃으로 만든 도롱이와 삿갓을 쓴 채로 안개가 피어오른 물에 낚싯대를 드리면 미불(米芾)의 <한강독조도(寒江獨釣圖)> 속에 있는 듯 하다. 엄릉(嚴陵)이나 위수[주나라 呂尙(=太公望)이 낚시 하던 곳]에서 했던 낚시에 견주어 본다 해도 또한 고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유구전」(주)


따로 나뭇 잎같은 작은 배 하나를 버드나무 그늘진 곳에 매어놓고서 때로 한가로우면 낚시대를 잡고서 강 중간으로 나간다. 눈이 멎고 달 밝은 때나 복사꽃 붉고 버들가지 멋들어지게 휘어질 때에 배를 저어 여울에 나간다. 퉁소[紫簫]나 젓대[鐵笛]을 불어 소리가 대자연에 울려퍼지면 외로운 학 한 마리가 바람 타고 하늘에서 운다. 이 때 혹 뱃전을 두들기며 노래하고 마음껏 풍월에 취하였다가 뱃머리를 돌린다. 벼슬을 관두고 돌아와 솔 창에 누웠으니, 한세상을 소요하는 정이야말로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낚시하는 것이 고기를 낚는 것에 있지 않다는 발언, 낚시하는 것도 고상함을 따지는 것, 벼슬을 내던지고 배를 타면서 소요하는 은일이 주는 즐김을 논하는 것에는 어부를 직업으로 하는 것과 차별화된 문인의 탈속적이면서 향기가 있는 삶에 대한 자긍심이 묻어 있다.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쓴 구양수(歐陽修)는 평생 좋아하는 것, 다섯 가지[책, 금석문, 거문고, 바둑판, 술]에다 '자기 자신'을 추가하여 호를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이런 방내적 차원의 놀이는 문인사대부라면 누구나 추구하고자 했던 숭아 관념이 깃든 놀이였다.


방내적 차원에서의 은일적 삶에는 부귀관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작동하고 있다. 葛洪은 『抱朴子』에서 일반적인 경제적 부유함, 신분적 고귀함과 전혀 다른 차원의 부귀관을 전개하고 있다. 德을 쌓고 言行一致의 삶을 살고, 모범이 되는 行動擧止와 脫俗적 맑은 마음을 갖고, 자신의 뜻을 高尙하게 하고, 官僚로 살면서 욕됨을 받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부귀라고 하는 무형의 富貴을 전개한다. 관료적 삶을 止揚하고 낙천지명을 추구하는 은일적 삶에서의 부귀관에는 일에 의한 경제적 부를 쌓는 행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진(吳鎭)의 〈동정어은도(洞庭漁隱圖)>

화제에는 ‘낚시하는 것이 농어를 낚는 것이지 이름을 낚는 것이 아니다[只釣鱸魚不釣名]’라는 글이 있다.



◆ 도가 : 경계 허물기의 방외적 놀이


앞서 중장통이 밤에 시간을 보내면서 노자의 현허(玄虛) 세계 탐색, 양생을 통한 지인(至人) 경지 추구,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도를 논하면서 우주 밖에서 소요하기 등을 통한 놀이에는 도가 차원의 방외적 놀이가 담겨 있다. 이런 놀이에 대한 것은 『장자』에 잘 나타난다.


장자는 100번 이상의 ‘유(游)[혹은 遊]’자를 통해 심신을 얽매이게 하는 각종 제도와 제한된 앎에서 벗어나는 경계허물기 놀이를 추구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지인(至人), 신인(神人)을 비롯한 이상적인 인간 및 광성자(廣成子), 자상호(子桑戶) 등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무궁(無窮)에서 노니는 것’을 비롯하여 ‘사해의 밖’, ‘진구(塵垢)의 밖’, ‘육합(六合)의 밖’,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등에서 노니는 이른바 ‘방외의 노님‘을 말한다. 아울러 혜시(惠施)와 호량(濠梁) 가의 대화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知魚樂]’는 노님을 통해 사물과 사물의 경계허물기 및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난 물아일체의 놀이 경지를 말한다.


친구도 인간 이외의 친구를 사귄다.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고 자연의 변화를 친구로 삼고자 한다. 「천지」에서 “홀로 천지의 정신과 더불어 왕래하며 만물을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고 세속에 순응하여 살아간다. 위로는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고, 아래로는 죽음과 삶을 도외시하며 처음도 끝도 없는 자와 친구한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런 놀이에는 종교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장자의 이런 노님은 총체적으로 ‘소요유(逍遙遊)’라는 용어로 귀결되는데, 장자는 궁극적으로 ‘우물 안의 개구리[井底之蛙]’가 상징하는 소지(小知)에서 벗어나 구만리 창공을 날아가는 붕새의 비상을 통한 대지(大知) 추구의 노님을 전개한다. 이같은 ‘소요유’가 상징하는 방외 차원의 놀이는 ‘부분[一曲]’ 아닌 전체를 통관하는 눈을 가지고 세계를 재인식하는 철학적 놀이를 대표한다. 장자의 방외적 놀이문화는 이후 죽림칠현이 청담(淸談)을 즐기는 현학적 놀이문화의 소재가 되었고, 아울러 많은 문학 소재가 되었다. 명대 주권(朱權)은 차를 마시면서 “현허함을 탐구하며 조화에 참여하고, 심신을 맑게하고 세속을 벗어난다” 라고 하여 차에도 방외적 놀이문화를 가미하고 있다. 갈홍(葛洪)은 『포박자(抱朴子)』에서 무위자연의 현묘한 도[玄道]를 깨달은 사람이 진정으로 부귀한 자임을 말하기도 한다.


◆ 일과 놀이 경계의 모호성


노자는 ‘일삼는 것이 없는 것을 일삼아[事無事]’라고 한다. 명사로서 ‘일삼는 것[事]’은 일반적 일의 범주에 속한다. 명사로서의 ‘일삼는 것[事]’은 관료적 삶을 살면서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삶이다. 그런데 이처럼 관료적 삶을 통한 부귀 추구의 행위[有事]는 인간의 심신에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주고 더 나아가 자칫하면 생명의 안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노자는 이런 점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차원에서 ‘일삼는 것이 없는 것[無事]’을 일삼을 것을 말한다. 이런 점은 양생과 보신 차원에서 ‘일[일삼을 것]’이 주는 문제점을 제시한 것인데, 노자가 말한 ‘무사를 일삼을 것’과 관련된 삶은 은일 지향의 삶을 추구하는 문인들의 화두였다. 정호(程顥)가 「어느 가을날 우연히 읊은 것[秋日偶成]」에서 읊은 “한가롭게 일삼는 것이 없으니 삶이 조용하지 않은가[閑來無事不從容]”라고 읊은 것은 이런 점을 잘 말해준다.


『장자』「양생주」에는 소 잡는 장정[庖丁]이 소를 해체하는 장면[解牛]이 나오는데, 직업으로 하는 소 잡는 행위가 도의 경지에 오른 칼놀림에 의해 득의만만한 놀이로 변하게 된다. 운용하는 기교의 경지가 어떤 경지냐에 따라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회화쪽에 적용하면, 송대 이후 문인화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에 훈도(薰陶)를 받은 문인화가들은 때론 경제성이나 상품성과 관련이 없는 ‘먹 장난[墨戱]’를 통한 사의(寫意)적 심화(心畵) 차원의 서화 창작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런 놀이는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에 속한다. 이같은 묵희 차원의 예술창작은 때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이같이 기교의 탁월함이 주는 차원에서의 일, 무사를 추구하는 일, 즐거움을 동반하는 일,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놀이, 예술화된 우아한 삶에는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 결론


유가는 ‘도로써 욕망을 제어한다[以道制欲]’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에 의하고 예에 노닌다 라는 것을 통해 ‘사물을 완상하다가 뜻을 잃는다[玩物喪志]’라는 차원이 아닌 ‘사물을 완상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적정선에서 조절한다[玩物適情]’라는 경지에 해당하는 놀이는 긍정하였다. 위진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들이 유가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 즐긴 ‘임탄(任誕)’ 차원의 놀이를 제외하면 동양 문인사대부들은 이른바 ‘인물 기물’을 통한 의미 있는 ‘맑은 놀이[淸玩]’를 추구하고자 했다.


경제성 추구와 같은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청완’으로 상징되는 동양 문인사대부들의 운치 있는 놀이문화에는 ‘고상하고 우아하면서 세속적인 것을 떠난[高雅絶俗] 취향’, ‘그윽한 흥취[幽趣]’, ‘맑은 바람이 주는 우아한 흥취[淸風雅趣]’, ‘속세를 떠난 특별한 풍취[物外風趣]’를 추구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이처럼 아와 속을 구분하면서 ‘속된 것을 제거하고 우아한 것을 숭상한다[去俗崇雅]’라는 놀이에는 타인과 차별화되는 신분, 인품, 학식 등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삐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이른바 ‘구별짓기[distinction]’가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