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소리[嘯]’에 담긴 저항과 은일의 미학
- 592호
- 기사입력 2026.08.04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140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외롭고 그리울 때 휘파람을 불어달라’ 하고, ‘휘파람 소리에 꿈과 사랑이 담겨 있다’고 읊은, 1970년대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노랫말에서 보듯 현대 대중문화 속 휘파람은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한없이 낭만적인 매개체였다. 그러나 유가(儒家)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휘파람 부는 것을 지양(止揚)하고 엄격히 규제해야 할 부정적인 행위로 인식했다. 휘파람[嘯]은 불경(不敬), 감정 통제 실패, 신체적 경망함을 뜻하는 예법[禮]의 금기 사항이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서는 부모나 윗사람 앞에서 집중력을 잃고 상대를 가볍게 여기는 오만한 행위로 보아 “부모 앞에서는 재채기나 기침을 하지 않으며,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않는다. 비스듬히 서지 않고, 곁눈질로 보지 않으며,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不嘯]”라고 명시했다. 『시경(詩經)』 「소아·백화(小雅·白華)」의 “휘파람 불며 노래하니 마음이 상하도다[嘯歌傷懷]” 같은 구절에 대해 후대 유학자들은 군자가 평정심을 잃고 정서적 과부하에 빠진 미성숙함의 징후이자 깊은 시름의 신음으로 해석했다. 성리학의 수양론 차원에서도 입술을 모아 소리를 내는 신체적 행위 자체를 방탕하고 경망스러운 것으로 취급했다.
유학이 이토록 휘파람을 부정하고 억압했는데, 역설적으로 후대 위진(魏晉) 시대의 명사들은 유교적 위선과 예법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휘파람’을 선택하였다. 위진시대 성공수(成公綏)의 「소부(嘯賦)」는 이러한 휘파람의 미학을 전면적으로 찬미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 ‘嵇琴阮嘯’는 위진시기 명사를 대표하는 혜강(嵇康)의 ‘금[거문고]’과 완적(阮籍)의 ‘휘파람’이라는 뜻으로, 뛰어나고 고결한 재주를 비유한다.
『천자문』에서 거론할 정도로 완적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2. 「소부(嘯賦)」에 나타난 ‘긴 휘파람[장소(長嘯)]’의 의미
성공수는 먼저 ‘긴 휘파람’을 부는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명한다.
‘무리 중에 빼어나게 출중한 공자[逸群公子]’는 타고난 기질이 비범하였고, 늘 남다른 것을 좋아했다. 세속에 초연하여 부귀영화를 잊었고, 인간 세상의 번잡한 일들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막히고 치우친 세속의 길이 답답하여 저 넓은 하늘길을 바라보며 초연히 걸어갔다. 외식(外飾)만 일삼는 세상을 멀리한 채 자신의 몸마저 잊어버리고, 호방한 기개로 길게 소리 높여 휘파람을 불었다.
중국 역사에서 뜻있는 선비들이 선택한 은둔은 현실을 단순히 외면하는 행위가 아니라, 부패하거나 도를 잃은 세상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택에 속했다. 유가적 사유가 지배하는 세속의 질서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인데, 이런 점의 상징적 행동거지 중 하나가 바로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
성공수가 「소부(嘯賦)」에서 형상화한 은일 군자의 삶은 외적 성공보다는 내면의 자유와 도덕적 완성 및 진리 탐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은 것이다. 이는 세속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철학적 결단이다. 즉, 인간의 참된 행복과 자유는 사회적 명예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우주의 도(道)를 실현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삶은 단순히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소극적 은둔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가’에 대한 주체적인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성공수는 무리 중에 빼어나게 출중한 인물인 ‘일군공자(逸群公子)’의 이러한 은일적 삶을 시각적·청각적으로 상징하는 매개로 ‘긴 휘파람[장소(長嘯)]’을 거론한다.
성공수는 ‘장소’가 지닌 미학적 가치를 음악철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규명한다. 인간의 순수한 숨결과 목소리로 자아내는 휘파람은 인공 악기의 제도적 한계를 초월한 ‘자연의 지극한 소리[至音]’이다. 나아가 이는 대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조화롭게 만드는 현묘한 효능을 지닌다. 그 소리는 하늘의 구름을 흩어버리고 만 리의 바람을 불러 모을 만큼 위력적이며, 신령한 존재와 공명할 만큼 신비롭다. 가뭄에는 비를 내리고 타오르는 햇볕을 그늘로 바꾸듯 대자연의 음양(陰陽)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슬프거나 음란한 세속의 음악을 정화하여 ‘슬프되 상처 입지 않고[哀而不傷] 즐거우되 방탕하지 않은[樂而不荒]’ 종용(中庸)의 평온을 이끌어낸다. 즉, ‘긴 휘파람[長嘯]’은 인간의 내면[心]과 기운[氣]을 운용하여 우주적 조화를 이루어내는 예술적 극치이자 영적인 에너지의 원천에 해당한다.
의미를 더 확장하면, 휘파람 소리는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삼라만상의 형상과 인간의 감정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울려 퍼지며 세속의 혼탁함을 맑게 씻어낸다. 자연계의 애절하면서도 역동적인 정경을 완벽하게 묘사하는 휘파람 소리는 대자연과 강력하게 공명함으로써 주체 내면의 울분을 날려버릴 뿐만 아니라 음란한 풍조와 더러운 풍속[淫風穢俗]까지 정화한다. 이처럼 ‘장소’는 번잡한 세상을 벗어나 순수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몰입’을 성취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특히 높은 산과 맑은 샘물을 배경으로 터뜨리는 이 휘파람 소리는 가슴 깊이 쌓인 난세의 울분과 집착을 남김없이 발산하는 강력한 ‘정서적 카타르시스[淨化]’의 수단으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에 성공수는 ‘장소’의 효용성을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얽매임이 없게 하고, 뜻을 세속에서 떠나 표연하게 만든다[心滌蕩而無累, 志離俗而飄然]”라고 선언한다. 즉 ‘장소’는 바로 세속을 초월하여 바람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를 체현한 것으로 규정한다.
▲ 金弘道, 〈扇面圖〉. 「竹裏館」,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가 쓰여있다.
최종적으로 성공수는 역사·신화적 권위를 두루 동원하여 휘파람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위의 예술적 경지이자 소리의 정점[音聲之至極]’임을 선언하며 글을 맺고 있다. 기공 차원에서 보면,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숨을 끌어올려 오랫동안 내뿜는 ‘장소’의 행위는 내면의 억압된 울분[悱憤]과 고뇌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자연의 맑은 기운으로 채운다는 점에서 도가의 전통적인 호흡법인 ‘토고납신[吐故納新, 낡은 기운을 뱉고 새 기운을 마심]’과 통한다.
그럼, 중국 역사에서 왜 「소부」가 위진시대에 지어졌는지를 보자. 「소부」에 형상화된 ‘긴 휘파람’은 단순한 청각적 유희나 일시적인 감정 배출구가 아니다. 그것은 위진시대 지식인들이 난세의 폭력성과 유가(儒家)가 강조하는 명교(名敎)의 위선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신체적 예술 수양론의 결정체’이다. 이는 위진 명사들의 핵심 명제인 ‘명교를 초월하여 자연에 맡긴다[越名敎而任自然]’라는 사유와 궤를 같이한다. 위진시대 명사들의 ‘장소’는 타락한 현실 정치에 대한 거부와 탈세속적 은일 정신의 필연적 외화(外化)였다.
인공 악기가 ‘제도와 예교’를 상징한다면, 오직 ‘인간의 몸과 숨결만을 사용하는 내뱉는[[役心御氣]’ 차원의 ‘장소’는 그 어떤 가공도 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自然)’을 상징한다. 위진 명사들에게 휘파람은 난세 속에서 미치거나 파멸하지 않은 채 위선적인 명교의 세계를 향해 던지는 가장 순수하고도 강력한 ‘신체적 저항의 사운드’였다.
▲ 傳) 李公麟, 《陶淵明歸隱圖》局部, 37.0× 521.5. 미국 워싱턴 D.C. 프리어 미술관[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프리어 컬렉션] 소장.
명아주 지팡이와 葛巾을 쓴 인물이 도연명이다. “登東臯以舒嘯, 臨淸流而賦詩.”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3. 도연명(陶淵明)과 왕유(王維)의 휘파람
후대 문인들 중 은일(隱逸)을 지향하며 삶을 살아갔던 이들의 발자취에서도 휘파람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도연명과 왕유를 들 수 있다. 먼저, 동진 시기 전원시인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타난 휘파람이다.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노라.
[陶淵明, 「歸去來辭」, “登東臯以舒嘯, 臨淸流而賦詩.”]
전원으로 귀거래한 도연명이 동쪽 언덕에 오르고 맑은 시냇가에 다다른 행위는 세속 문명과의 단절이자 자연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뜻한다. 이때 터져 나오는 휘파람[舒嘯]은 가슴속에 엉겨 붙어 있던 세속의 때와 고단한 벼슬살이의 피로를 자연의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내는 정화의 몸짓이다. 즉, 그가 지향하고자 했던 ‘귀거래’의 은일적 삶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인 셈이다. 당대의 시불(詩佛) 왕유는 「죽리관(竹裏館)」에서 휘파람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정신세계를 노래한다.
홀로 깊은 대나무 숲에 앉아, 금(琴)를 타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을 부네.
[王維, 「竹裏館」,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번잡한 성도가 아닌 대나무가 있는 산속의 거처는 은일적 정황을 보여준다. 타인과의 교류가 끊어진 상태에서의 독좌(獨坐)가 참된 자아를 마주하기 위한 고독이고 탄금(彈琴)이 자아를 가다듬는 과정이라면, 장소(長嘯)는 그렇게 다듬어진 자아마저 잊고 자연과 동화된 무심(無心)의 발현이다. 이때의 휘파람은 외로움의 신음이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충만한 상태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생명의 숨결이다.
본래 금[우리는 흔히 거문고[玄琴]라고 한다]은 군자의 고상한 마음을 닦는 훌륭한 수행의 도구이지만, 이 역시 줄과 악기라는 물질에 의존해야 하는 인위적인 행위에 속한다. 왕유는 유가의 군자를 상징하는 고상한 거문고 음악마저도 일종의 집착임을 깨닫고 미련 없이 내려놓은 채, 오직 자신의 호흡만으로 소리를 낸다. 인위적인 도구라는 방편마저 초월해 버리는 이 단계적 전회야말로, 언어와 생각을 끊어내는 선(禪)적 수행의 경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미학적 근거가 된다.
과거 위진 시대 명사들의 휘파람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핏대를 세우며 질렀던 ‘저항의 카타르시스’였다면, 도연명의 휘파람은 벼슬살이의 피로를 씻어내는 은일의 해방감이었고, 왕유의 휘파람은 ‘금[악기=인위]’마저 내려놓은 비움의 상태에서 ‘홀로 앉아[獨坐]’ 자연과 하나 된 선(禪)적 평온함이었다. 이처럼 후대로 갈수록 휘파람은 세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찾아가는 내면적 안식의 상징으로 심화되었다.
4. 나오는 말
인류의 오래된 신체 행위인 ‘휘파람’ 하나만 보아도 유가와 도가의 선명한 사상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유가에서 휘파람은 엄격한 예법의 테두리 안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격한 감정을 다스려야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금기였다. 반면, 도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위진시대 명사들에게 휘파람은 세속의 위선을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유로운 선언이었다. 결국 작은 휘파람 소리 하나에 유가의 엄격한 절제와 도가의 거침없는 자유가 숨 가쁘게 교차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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