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자를 통해 본 동양문화(1)
- 575호
- 기사입력 2025.11.17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33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기가 막혀 죽겠다.”
흔히 매우 어이없거나, 너무 놀랍거나, 정도가 심해서 할 말을 잃은 상태를 과장하여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막힌 상황이 극단화되어 기가 끊어지면 ‘기절(奇絶)’이 된다. 물론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정말 최고다’라는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당신의 연주는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다”라는 감탄 표현이 그것이다.
이같은 기는 특히 철학 측면에서는 노장[老子와 莊子]은 도(道)를 말했지만 그 도는 바로 기를 말한 것이고, 송대 형성된, 이른바 성리학(性理學)은 이기론(理氣論) 차원에서 ‘리(理)’와 대대(對待) 개념으로 기를 파악하게 된다. 이후 기는 송대 이후는 형이상자로서의 리와 형이하자로서 기로 규정되고, 이에 우주와 세계를 구성하고 설명하는 근원의 하나로 자리매김된다. 이에 이기론 차원의 리와 기는 선재성, 주재성 등과 관련하여 리를 중심으로 하고 우선시하면서 차별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기를 우주와 세계를 구성하고 설명하는 근원으로 보는 이른바 기철학 입장에서는 기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오늘날 인간의 삶에서 기가 적용되는 분야는 철학과 과학은 물론 매우 다양하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강조하는 예술, 기맥을 통해 병을 치유하는 한의학,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및 지기(地氣)의 흐름을 통해 길지(吉地)를 찾는 풍수지리 등 인간이 삶을 누리면서 생명 활동을 하는 모든 분야와 대상에 적용된다. 따라서 ‘기’ 자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친숙한 용어 중 하나다.
▲ 行氣玉佩銘. 제작 연도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오늘날 ‘기’ 자가 갖는 의미와 연관성이 있는 최초의 유물로 여겨진다.
2. ‘기(氣)’ 자의 의미
‘기’의 옛글자는 오늘날 사용하는 ‘氣’ 글자에서 ‘쌀 미(米)’ 자가 빠진 기(气) 자다. 은(殷)·주(周)시대 이전부터 기는 바람이나 구름을 포함한 기상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기’ 자를 ‘구름의 기운[雲氣]’을 상형한 모양이라 하는데, 글자의 위쪽은 하늘에 퍼져 있는 구름이나 증기를 나타내고, 아래쪽은 땅에서 피어나는 기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한 기자는 ‘쌀 미[米]’ 자가 포함된 것인데, 이것은 쌀이 상징하는 농경사회에서 쌀을 통한 음식물 섭취가 우리 몸에 기운으로 작용하여 생명을 유지하게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렇게 본다면 ‘기’ 자는 농경사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은대 갑골문자의 마지막 가로획 끝이 아래로 삐쳐있는 ‘석 삼(三)’자는 ‘气’ 자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명사로서의 ‘운기(雲氣)’를 의미한다고 여겼지만, ‘끊어짐(斷開)’을 뜻하는 지사자(指事字)로서 기상 현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 ‘기’ 자가 오늘날 의미로 쓰인 최초 기록은 금문(金文)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기 초기[대략 기원전 380년 추정]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하는 「행기옥패명(行氣玉佩銘)」에는 45자의 다음과 같은 호흡과 관련된 행기법이 있는데,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기를 운행하는 호흡이 깊어지면 ‘기가 쌓인다[蓄氣]’. 기가 이루어지면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퍼지면 하단전으로 내려가고, 내려가면 신(神)이 안정되고, 신이 안정되면 기가 확고해진다. 기가 확고해지면 단전에 진기의 싹이 트고, 순양(純陽)의 싹이 트면 자라나고, 다 자라나게 되면 몸 안의 음사(陰邪)가 물러나고, 물러나면 하늘과 같이 순양의 몸이 된다. 순양의 천기가 들고나는 혈은 몸 상부의 백회이며, 순음의 지기가 들고나는 혈은 몸 하부의 회음이다. 천지음양의 도리를 따르면 살고, 천지음양의 도리에 어긋나면 죽는다.” *
* “行氣,深則蓄,蓄則伸,伸則下,下則定,定則固,固則萌,萌則長,長則退,退則天。天气舂在上,地气舂在下。順則生,逆則死。”
▲ 行氣玉佩銘의 글을 풀어서 나열한 것이다. 글자 밑에 있는 ‘=’이란 부호는 동일한 글자를 생략한 것이다.
‘기가 쌓인다[蓄氣]’라는 방법을 통해 몸에 있는 생명을 소멸하게 하는 음기에 해당하는 음사를 깊은 호흡을 통해 물리친 다음 생명의 근원이 되고 그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하늘과 같은 순양을 회복하게 되면 인간이 무병장수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행기’는 도교의 양생 차원의 기의 운용이란 점에서 오늘날 기의 개념과 유사하다.
3. 기의 축적 : 유가와 도교 차이
인간에게 불로장생의 삶과 신선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일찍부터 있었는데, 도교에서는 이런 점을 기를 복용하는 것[服氣]과 연계하여 이해하기도 한다. 도사(道士), 의학자(醫學者)이면서 도교 모산파(茅山派)의 개조(開祖)인 남북조 도홍경(陶弘景)이 바로 그 예다. 도홍경은 양생 차원의 행기가 갖는 의미를 『양생을 통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킴(養生延命錄)』이란 저술 가운데 호흡을 통해 기를 몸 안으로 들이마시는 복기법(服氣法)을 통해 병을 치유한다는 「복기료병편(服氣療病篇)」에서 강조한다.
▲ 陶弘景像.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라고 하는 시가 유명하다.
깊은 산속에 은거하면서도 나라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황제의 자문을 받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산중재상’으로 일컬어진 도홍경은 ‘생기를 들이쉬고 사기를 내쉬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이른바 도교 차원의 ‘토고납신법(吐故納新法)’을 인용하고 있다. ‘토고납신법(吐故納新法)’은 『장자』 「각의(刻意)」에서 말한 “호흡법으로 묵은 숨을 내쉬고 새로운 숨을 들이마시며 곰처럼 목을 빼고 새처럼 쭉 펴는 것은 장수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는 도인지사(導引之士)로 양형(養形)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만 장자는 토고납신하는 것을 장수를 위한 양형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후 당대 사마승정(司馬承禎)도 「복기정의론(服氣精義論)」에서 복기를 논하고 있다. 도홍경은 「복기료병편」에서는 유안(劉安)이 말한 생기를 들이쉬고 사기를 내쉬면 오래 살 수 있다는, 이른바 ‘도교적 토고납신법’을 인용하고 있다. 사마승정은 복기정의론에서 기는 ‘도(道)가 드러난 가장 미세한 자취’라는 점에서 신선에 오르는 방법론을 논한다. 신선이 되는 방법으로 단액(丹液)을 날려 증발시키는 신비한 약력(藥力)을 쓰는 법, 재계하고 내면을 보존하여 닦음으로써 공을 이루는 법 등을 말한다. 그런데 금석(金石)의 약은 허망하고 얻기 어려운 점이 있고, 공부는 세월이 오래 걸려 도달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빠르게 효험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으로 행기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같은 사마승정의 행기에 의한 복기는 실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司馬承禎像 : 장생불사는 인간의 꿈이다.
이같은 점을 司馬承禎[司馬眞一]은 「坐忘論」을 통해 장생불사를 표방하는 도교의 득도(得道) 성선(成仙)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송대 정주이학자들은 이같은 「좌망론」을 비판한다.
물론 ‘기의 쌓임’이 이처럼 생명 유지와 관련된 양생 차원에서만 이해된 것은 아니다. 맹자가 말하는 ‘광대[浩然]한 기’는 다르다. 맹자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고 의(義)와 도(道)에 짝하면서 천지 사이에 꽉 차 있다는 호연한 기를 잘 기른다[我善養吾浩然之氣]라고 하는 ‘호연지기’를 말한 적이 있다. 그 호연지기의 핵심에 해당하는 ‘의가 모인 것[集義]’에 대해 주희는 “집의는 선을 쌓은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集義, 猶言積善]”라고 주석한다.
이밖에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온몸에 축적된 성선적 덕(德)의 기운으로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도 기운의 쌓임과 관련이 있다. 맹자는 이렇듯 마음에 충실하게 쌓인 선의 결과물로 나타난 아름다움을 ‘충실지위미(充實之謂美)’라고 규정한다. 이른바 ‘적덕’과 ‘적선’을 통해 쌓인 덕의 기운이 그 빛을 발한다는 유가 차원의 ‘덕휘(德輝)’ 미학은 기의 쌓임과 관련이 있다. 이후 기존 자연 현상에 관한 ‘기상’을 북송대부터 인격미 차원에서의 ‘성현기상(聖賢氣象)’으로 거론하는 것도 이런 점과 관련이 있다. 애국가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하는 기상은 비덕(比德) 차원에서 유가가 지향하는 긍정적 인간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따라서 기의 쌓임을 논하려면 어떤 요소가 쌓인 것인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유가는 비이성적 행동으로 귀결될 수 있는 생리적 욕구인 기를 다스리고 제어해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예를 들면 공자가 혈기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자칫하면 어린 시절에는 ‘여색[色]’에 빠지고, 젊은 시절에는 ‘싸움[鬪]’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나이 들어서는 ‘노욕[得]’에 빠질 수 있는 혈기를 멋대로 부리지 말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상 본 바와 같이 축적된 기라도 어떤 관점에서 접근했는가 하는 것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공통적인 것은 기가 쌓이지 않으면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를 쌓는 차원의 ‘수양’ 공부가 강조된다.
4. 나오는 말
춘추전국시대에는 기가 자연과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철학 개념으로 정립되고, 아울러 음기와 양기라는 관념이 제기된다. 『좌전(左傳)』에서는 “하늘에 육기가 있다[天有六氣]”고 하고, 『노자(老子)』에서는 “만물은 음을 짊어지고 양을 품고 충기로 조화를 이룬다[萬物負陰而拘陽, 沖氣以爲和]”라는 ‘충기’를 말하여 기의 범주를 음양론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장자(莊子)는 일기(一氣)를 통한 ‘기일원론(氣一元論)’ 사유를 전개한다. 구체적으로 기가 모이면 사람과 만물이 생겨나며, 기가 흩어지면 사람과 만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람의 삶과 죽음을 기의 모임과 흩어짐[聚散]으로 여겼다. 이같은 기의 ‘취산론’에는 ‘기불멸(氣不滅)’이란 사유가 담겨 있다. 이상과 같은 기의 변천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원기자연론(元氣自然論)을 펼쳤다고 하는 한대 왕충(王充)의 기론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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