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물[水] 철학
- 580호
- 기사입력 2026.01.26
- 편집 성유진 기자
- 조회수 665
글: 조민환(전 동아시아학과 교수)
1. 들어가는 말
공자께서 냇가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흘러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 『論語』 「子罕」 : 子在川上, 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가 따사로운 봄날 오랜만에 제자들하고 냇가에 산책을 나갔다가 손가락으로 흘러가는 물을 가리키면서 한말씀하신 것이다. 공자의 이 말씀에 대해 송대 ‘성리학자[程頤, 朱熹]’들은 공자가 ‘성과 천도를 드물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에서 벗어난 천도를 말씀하신 것으로 풀이한다. 그냥 흘러가는 물일 뿐인데 웬 천도냐고?
▲ <子在川上圖>
“저 인간은 성격이 물 같아”라는 말이 상징하듯 물은 때론 인간 성품에 비유할 때 자주 사용하곤 하지만 철학 차원에서 이해된 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실 공자보다도 더 물의 철학성에 관심을 가진 인물은 노자다. 『노자(도덕경)』를 읽지 않았어도 ‘최고의 절대적 선은 물과 같다[『老子』 8장 : 上善若水]’라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물을 보고 공자와 노자는 다른 관점에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노자가 물을 보고 다투지 않는다는 ‘부쟁不爭’의 철학을 설파한 것이 그것이다. 노자의 물에 대한 철학은 공자의 ‘물[水] 철학’을 논한 다음에 하기로 한다.
2. ‘逝’ 자와 ‘不舍’의 천도 유행적 의미
공자가 말한 문장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서(逝)’ 자와 ‘사(舍)’ 자가 갖는 철학적 의미다.
‘서’ 자는 ‘간다[往]’라는 의미인데, 그냥 간다는 것이 아니다. 먼데, 멀리 간다는 의미가 있다. 이른바 어떤 인물이 죽었을 때 그 죽음을 높여서 ‘(가기는 갔는데 인간 세상을 떠나) 멀리 가셨다[逝去]’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때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歲月如流水]’라고 하듯 세월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읊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서’ 자 글자 부수의 구성은 ‘꺾을 절[折]’자와 간다는 ‘책받침[쉬엄쉬엄갈 辶]’으로 되어 있다. 즉 멀리 가는데 꺾어서 간다는 것은 직선이 아닌 구부러진 곡선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같은 구부러진 곡선은 멀리 가는데, 그 멀리 간 것이 그 곡선 상태를 유지하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이같은 ‘서’ 자의 의미를 자연의 변화에 적용하여 철학 차원에서 규명한 인물은 노자다. 이른바 『노자』 25장에서 ‘혼돈 상태 있지만 천지보다 앞서 존재하는 도’를 ‘대(大)’라 규정하는데, 그 ‘대’로 말해지는 도의 큰 기운이 쌓으면 꺾어서 가고, 가면 멀리 가고, 멀리 가면 다시 되돌아온다[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라고 하면서 도의 혼돈 상태의 큰 기운의 쉼이 없는 운동성을 말한 것이 그것이다.
‘사’ 자는 집이란 의미도 있는데, 사람들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쉰다는 의미에서 연역되어 ‘멈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불사(不舍)’는 물의 흘러감이 어느 한 시점도 멈추지 않는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주역』 「건괘乾卦」에서 말하는 ‘하늘의 (멈춤이 없이 항상 작용하는) 강건함을 본받아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고 멈추지 않는다[天行, 健, 君子, 以, 自强不息]’라고 할 때의 ‘자강불식’과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서’ 자는 물이 굽이지면서 가는 운동성을 의미하고, ‘불사’는 천도 유행의 멈춤이 없음을 의미한다.
▲ 탈레스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하였다.
3. 물[水]의 천도 유행과 수양론
문자의 자구 해석에만 매달린 이른바 ‘훈고(訓詁)풍 의 학문’을 지향한 한대 유학자들은 천도 유행의 불식 차원의 물의 철학적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송대에 와서 천지의 변화와 관련된 철학적 분석이 이루어진다.
먼저 정이(程頤)가 “이것이 곧 도의 본체이다. 하늘의 운행은 그침이 없어서, 해가 가면 달이 오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며, 물은 흘러 쉬지 않고, 만물은 생겨나 다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이 다 도를 체(體)로 삼아 이루어진 것이며, 밤낮 사이를 운행하면서 일찍이 멈춘 적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 그 경지에 이르면, 그 순수함 또한 역시 그침이 없다”라고 풀이하여 천도의 변화와 그 변화의 유행을 물의 흐름과 연계하여 이해한다.
주희는 공자의 물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천지의 변화는 지나간 것은 흘러가고, 오는 것은 이어져서, 한순간도 멈춤이 없으니, 이것이 곧 도의 본래 모습이다”라고 해석한다. 자연과 천지의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을 도의 본체로 이해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송대 성리학자들은 군자의 수양 또한 그러한 무궁한 지속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유로 전개된다. 도의 본체를 군자[인간]가 체득한다는 것을 통해 도천와 군자[인간]가 합일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합일은 바람직한 수양 공부론 차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같은 자연의 멈춤이 없는 천지의 변화를 왜 ‘물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해 보자. 이런 질문에 대해 주희는 “그것을 손으로 가리킬 수 있고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것 가운데에서는 강물이 흐르는 것만 한 것이 없다.”라고 풀이한다. 즉 우리가 일상적 삶 속에서 천지의 변화를 실제로 체득할 수 있고 지시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흘러가는 강물이 최고라는 것이다. 주희가 「관란기(觀瀾記)」에서 ‘거센 물줄기가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보고서 본체가 있는 것의 무궁함을 깨닫는다[觀湍流之不息,悟有本之無窮]’라고 읊은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출발하여 부단한 물의 흐름을 닮은 수양 공부론이 전개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그것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니, 학자들로 하여금 언제나 스스로 살피고 반성하여 털끝만큼의 간단(間斷)도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이를 돌이켜 몸과 마음에서 구해보면, 몸과 마음 또한 본래 생생하여 쉼이 없고, 기 또한 흘러 통하여 쉼이 없으니, 이 두 가지 모두 하늘에서 받은 것이며, 천지와 한 몸이 된 것이다.”라고 주석하는 것이 그것이다. 즉 사람은 반드시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는 공부를 하여 밝지 않은 이치가 하나도 없게 하고, 또 자신을 이기는 공부를 하여 사사로운 마음이 혹여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공부 방법 두 가지는 모두 ‘경(敬)’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신독(愼獨)’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만일 신독하지 않으면 은미한 곳에서 끊어지게 되고, 신독할 수 있어야 비로소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즉 하다가 혹시라도 쉬면 어찌 천지와 같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정이와 주희는 물을 통한 천도와 인도를 합일하는 사유 및 수양론을 강조한다. 맹자는 산 위에서의 남상(濫觴) 정도의 적은 물부터 시작된 흐름이 멈춤 없이 최종적으로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웅덩이[科]가 있으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간다’라는 이른바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의 학문의 단계별 학습을 강조한다.
▲ 河圖와 洛書 모두 ‘시작[1: 天一生水]’은 ‘북방 [水]’에서부터 시작한다.
4. 농경사회에서의 물의 의미
물은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 차원에서 매우 중시되었다. 서양철학자 탈레스가 모든 만물의 근본 물질이 물(ὕδωρ, hydros)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동양과 같이 농경사회인 경우에는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물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같은 점을 좀 어렵게 말해보자.
『주역』에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존재 근거 및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방식인 ‘선천을 상징하는 하도(河圖)’와 ‘후천을 상징하는 낙서(洛書)’가 모두 북방의 수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물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우주 생성과 생명 창조의 시원(始原)은 물[水]이며 만물의 근원인 물의 기원을 밝힌 ‘태일생수太一生水’라는 말도 이런 점을 상징한다. “태일이 물을 낳았는데, 물은 돌아가 태일을 도우니 이로써 하늘을 이루고, 하늘은 돌아가 태일을 도우니, 이로써 땅을 이룬다. 하늘[天]과 땅[地]은 태일이 낳는 바이다.[太一生水, 水反輔太一, 是以成天. 天反輔太一, 是以成地. 天地者,大一之所生也。]”라는 것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천지는 모두 태일이 낳은 것인데, 그 태일의 핵심은 물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흘러가는 물을 보지만 물이 맑은지 탁한지 정도는 구분하는 그 이상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자인 공자는 달랐다. 자공이 “부자[공자]의 문장은 얻어 들을 수 있지만, 부자께서 성(性)과 천도(天道)를 말하는 것은 얻어 들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왜 공자는 성과 천도를 말하지 않았을까? 주희는 자공의 말에 대해 “성은 사람이 하늘의 이치에서 품부 받은 것이고, 천도는 천리자연의 본체이다. 그 실체는 하나의 이치다.[性者, 人所受之天理; 天道者, 天理自然之本體, 其實一理也]” 라고 주석한다.
주희의 주석에서 보듯, 후대 성리학의 우주론과 인성론의 핵심에 해당하는 ‘천리, 천도, 자연의 본체, 일리’ 등과 같은 용어를 통한 인간본성 및 자연의 일치성을 공자가 생각하기에 그 시대에 맞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이해된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공자의 물에 대한 철학적 의미 부여는 매우 중요한 발언에 속한다.
▲ 姜世晃, 〈사군자〉[蘭, 菊, 竹, 梅]
5. 나오는 말
한국은 금수강산이라고 하듯 주변에 참으로 좋은 산과 좋은 물이 많았다. 지금은 오염되어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과거에는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면 옆의 냇가에서 그냥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곤 하였다. 그런 물을 보고 단순히 음료 차원의 ‘먹는 것’이란 것 이외에 무슨 철학을 가미해 이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 공자는 달랐다.
동양의 철학자들은 하나의 사물을 봐도 단순 자연 사물로 이해하지 않았다. 하나의 사물이 사물로서 존재하는 그 존재 원리와 근원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서양과 다른 자연물에 대한 남다른 인식이 있었다. 비덕(比德) 차원에서 ‘매·난·국·죽’을 사군자(四君子)라고 일컬은 것은 그 하나의 예다. 공자가 철학적으로 규명한 물도 그런 예의 하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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