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br> 순수함을 그리다

일본 애니메이션,
순수함을 그리다

  • 364호
  • 기사입력 2017.01.28
  • 취재 정혜인 기자
  • 편집 노한비 기자
  • 조회수 7823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세계가 존재할까? 인간이 아닌 괴이한 생명체로 가득하거나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어떨까?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학교나 회사에 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우리나라에서 300만 관객이라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또 우리 내면의 순수함을 찾게 해 준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관객들은 작품을 보며 현실과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통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에는 실제 배우들이 아닌 애니메이터의 손을 통해 탄생한 캐릭터들의 모습이 환상적인 느낌을 가미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으로 전 세계인들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섬세하게 묘사된 캐릭터를 통한 특별하고 순수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너의 이름은.’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입문했을 당신을 위해 독특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가득 찬 세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한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영화.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온 세계를 작품 속에 펼쳐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그린 세계는 인간세계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꿈속인 듯한 환상적인 장면들은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시선을 이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 치히로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치히로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때 가슴이 덜컥하고, 죽을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는 꼭 살아남길 바란다. 이토록 사람들이 치히로를 응원하는 것은 치히로의 성격 때문이다. 그녀는 언뜻 보면 답답하고 느리고 약한 소녀 같지만 시종일관 물질에 욕심 없는 착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매료한다.

다양한 캐릭터 또한 명품조연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작자는 기괴한 생김새를 가진 생명체들을 그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 만화들에 등장하는 몬스터, 괴물들보다 한층 더 기이하고 흉측한 모습은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발칙함을 지닌다. 이러한 캐릭터들은 티 없이 맑은 소녀 치히로의 모습과도 대비되어 그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가오나시’가 영화 외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도 이전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함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영화. 수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보는 것만큼 확실하게 신세계를 경험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TV로 방영되고 있는 일본 시리즈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이것 역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고등학생 탐정이 약을 먹고 작아진 뒤 음성변조기와 위치추적기 등 다양한 물건들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처음 작품을 본 시청자들은 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미심쩍어하지만 갈수록 그 설정에 빠져들어 이야기에 함께하게 된다.

살인사건, 탐정, 추리물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갖고 있음에도 이 작품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라인 덕분이다. 매번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코난이 해결한다는 이야기 설정은 같지만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내용에 다양성을 주어 시청자들을 매혹했다. 곳곳에 로맨스적인 요소를 배치해 추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작품에 빠져든 시청자들은 코난이 추리를 펼치기 전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기도 하고 범인을 맞추면 뿌듯해 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명탐정 코난>은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이 소통의 힘은 우리나라에서 20편의 극장판 시리즈를 상영하는 쾌거를 가능케 하기도 했다.

이 작품 또한 살벌하고 피폐한 사건 현장 속에서 일본 특유의 감성을 담아냈다. 순수함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을 배치하여 ‘절제된 순수함’을 보여준다. 코난을 따라다니는 어린이 탐정단이 그 예다. 코난이 사건을 해결할 때 살인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범인과 선한 사람을 대비시킴으로써 악한 사회 속에 남아있는 선과 순수성을 암시한다. 단순히 다양성을 위해 인물을 배치한 것이 아닌, 반드시 특정 인물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명백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치밀한 설계를 통해 ‘명탐정 코난’은 단순한 추리물에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람이 늑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인간과 늑대인간의 사랑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여자는 어떻게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 정말 늑대인간이 존재할까? 늑대인간과 사람 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이와 같은 궁금증을 자아내며 사람들이 늑대인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

작품 속 여주인공은 ‘세상은 내가 모르는 일들로 가득 차 있구나.’라고 말하며 늑대인간의 존재를 인정한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에게도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이처럼 ‘늑대아이’는 비현실적인 영화 속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오는 힘을 지녔다. 사람들로 하여금 늑대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으며, 늑대인간을 만나는 상상을 하도록 했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늑대인간을 피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작품은 늑대인간도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보다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동물들이 생김새만을 이유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물음을 던지면서 말이다.


이 세 작품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과 극찬을 받았다. 일본은 이처럼 독특한 작품들을 통해 탄탄한 애니메이션 산업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믿고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작품 특유의 감성 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필하는 순수함의 매력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통한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 내면의 순수함을 찾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고 속세에 물들어도 순수함만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여기에 섬세하고 독특한 이야기와 캐릭터들까지 가미되어 탄탄한 작품들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사람들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주는 매력을 갖고 있다. 오늘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가득한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을 통해 잊고 있었던 순수함을 들춰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