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세계로의 초대장
'미쉐린 가이드'

  • 484호
  • 기사입력 2022.01.28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4488

의식주는 더이상 생존의 필요조건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는다. 바야흐로 개성의 부재가 죽음을 의미하는 시대. 크고 작은 문화가 생산되는 중심지에는 바로 의식주가 존재한다.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사회 현상으로서 자리잡은 것은 의(衣)와 주(住)만이 아니다. 식(食)을 소재로 한 컨텐츠는 많은 이들의 알고리즘을 정복한 뒤 미식 트렌드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인플루언서의 맛집 탐방부터 지인들의 식사 인증샷까지, 음식은 우리 일상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엄선된 레스토랑’이라 함은 어쩐지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곤 한다. 대표적으로 미쉐린 가이드는 모두가 익히 들어봤지만 모두에게 친숙하지는 않다.

사실 미쉐린 레스토랑과 미식의 세계는 우리에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우리는 그저 약간의 관심만 기울이면 된다. 이번 문화읽기를 통해 미쉐린 가이드가 선사하는 미식의 즐거움에 한발짝 다가가보자.


★ 맛있는 여행, 그 역사적인 첫걸음

새하얀 튜브 같은 몸과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인 이 캐릭터.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보았을 ‘비벤덤’은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의 마스코트다. 사업을 막 시작했을 무렵 미쉐린은 타이어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동차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담은 책자를 발간했다. 타이어 교체 방법, 주유소 위치, 식당과 숙박시설 목록 등을 실은 여행 가이드북이 바로 우리가 아는 미쉐린 가이드의 전신이다. 가이드북에 수록된 레스토랑 섹션이 점차 권위를 인정받자 미쉐린은 전문 평가단을 비밀리에 파견하고 선정 기준을 구체화했다. 그후 수년간 평가 방식을 개정한 끝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스타가 빛나는 밤에

1~3스타를 수여하는 평가 방식은 1931년부터 도입되었다. 레스토랑의 평가 기준은 요리의 수준, 조화로운 풍미, 요리의 완벽성, 셰프의 창의적인 개성,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이 다섯 가지 척도에 따라 평가를 거친 뒤 등급이 분류되는데, 스타의 개수는 단순한 수적 지표가 아니라 각각 의미를 지닌다. 3스타는 특별히 여행해서 찾아갈 만큼 요리가 훌륭하다는 뜻이고, 2스타는 이 식당을 위해 먼 길을 우회해서 갈 만한 수준이다. 1스타는 앞의 두 경우보다는 아니지만 좋은 평가를 얻은 식당이다. 올해로 여섯 번째 발간을 맞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는 두 곳의 3스타 레스토랑이 등재되었다. 미쉐린 가이드 에디션 중 3스타가 아예 없는 지역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자그마한 도시의 놀라운 저력을 보여준 셈이다. 잔잔한 한강 위를 불빛이 환하게 수놓은 야경처럼, 서울 레스토랑 씬은 별의 형태로 그 영예를 밤하늘 높이 쏘아 올리고 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미쉐린 가이드와의 거리감이 조금 좁혀졌는지 생각해보자. 예측해보자면 그다지 가까워진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왠지 그런 레스토랑이라면 메뉴 이름의 글자수도, 가격표에 쓰인 0의 개수도 한없이 뻗어 나갈 것만 같다. 접근하기 쉬우면서 지갑 사정까지 고려할 수 있는 미쉐린 레스토랑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 미쉐린 가이드 공식 사이트


★ 훌륭한 맛을 훌륭한 가격으로 – 빕 구르망(Bib Gourmand)

미쉐린 가이드의 상징은 뭐니뭐니 해도 스타지만 그것이 등급의 전부는 아니다. 빕 구르망은 모두를 위한 미식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에 수여된다. 즉 빕 구르망 셀렉션은 좋은 가성비를 자랑하는 식당의 목록인 격이다. 올해 빕 구르망으로 선정된 서울의 식당은 총 61곳으로, 1~3스타 식당이 33곳임에 비추어보면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 미쉐린 가이드 매거진에 따르면 만두, 파스타, 우동, 족발, 게장, 소바, 설렁탕 등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빕 구르망 셀렉션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부담 없이 한끼 식사로 즐기기 좋은 라인업인 만큼 미식 입문자에게도 안성맞춤이다.


★ 미식의 선한 영향력 – 그린 스타

작년부터 도입된 그린 스타는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레스토랑 중 특별히 환경을 생각하며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곳에 수여된다. 해당 레스토랑들은 운영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을 줄이고 농업, 어업 종사자들과 직거래하는 등 친환경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몇몇 식당은 자체적으로 농장을 차리거나 삼림에서 자연 식재료를 구하기도 한다.


- 꽃밥에피다 공식 사이트


서울에서 그린 스타가 수여된 레스토랑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안국역 근처에 위치한 빕 구르망 식당 ‘꽃밥에피다’가 그중 하나다. 꽃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친환경 밥상을 차린다는 뜻에 걸맞게 주방에 공급되는 식재료의 95%가 국내산 유기농이다. 공식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원산지가 기재된 식재료 목록과 함께 토종 농산물의 유지와 친환경 재배를 장려하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꽃밥에피다는 채식 메뉴를 선보이며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지구의 미래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그린 스타 레스토랑은 요식업계의 귀감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 친화적인 미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 미식과 낯가리는 사람들에게

작년 11월 25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 발간 행사가 온라인 중계로 진행되었다. 올해의 주제 서울 속의 세계(The world in Seoul)는 세계 무대에서 미식 문화를 선도할 레스토랑을 엄선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탓에 전세계적으로 레스토랑 운영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레스토랑은 독창적이고 훌륭한 음식으로 가득하다. 미쉐린 가이드 매거진은 그 모습이 마치 서울이 세계를 품은 듯하다고 평했다.


앞서 언급한 꽃밥에피다, 그리고 올해 1스타를 획득한 한식 레스토랑 묘미와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는 인문사회캠퍼스와 가깝다. 그 외의 미쉐린 레스토랑은 미쉐린 가이드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탐색할 수 있다. 혹은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사이트에 ‘미쉐린 가이드’를 검색하면 식당들의 위치가 지도 위에 표시된다. 등급에 따른 분류를 확인할 때는 전자, 위치에 따른 분류를 확인할 때는 후자가 적절하다.


어느 날 당신은 소중한 사람과 한끼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먹겠는가? 맛있는 것,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기 마련이다. 미식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 결코 아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미각적 즐거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미쉐린 가이드를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