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거리 위 미술과 소통하다

'공공미술', 거리 위 미술과 소통하다

  • 485호
  • 기사입력 2022.02.13
  • 취재 이경서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 조회수 4217

매일 아침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러 풍경과 마주한다. 보도블록과 정류장, 줄지은 가로등과 가로수 등. 매일 보는 풍경은 우리에게 지루함을 주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상에 숨어든 지극히 무미건조한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 바로 거리의 공공미술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공공미술에 대해 알아보자.



공공미술(Public Art)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공공의 장소에 놓이는 미술이다. 일반적으로 지역사회가 소유하고, 대중들이 거리를 거닐며 쉽게 접할 수 있다. 공공미술은 노후된 담벼락의 작은 벽화부터 석촌호수의 ‘러버덕’과 같은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가 다양하다.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는 1967년 영국의 존 윌렛이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윌렛은 공공미술을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어 누구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의했다. 한때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액자 속 미술을 일상 속에서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공공미술을 고안한 것이다.


공공미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공공미술을 만나볼 수 있다. 1929년에 시작된,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불린 미국의 대공황이다. 대공황은 미국 나아가 세계 경제를 흔들었는데, 이를 극복하고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예술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뉴딜미술 정책도 시행했고, 이들의 작품 중 일부는 공공미술로서 도시에 전시되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3,300여 개의 벽화, 1만9,000개의 조각이 생산되었다고 하니, 미국의 많은 공공미술이 이때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미술 정책은 이후 1960년대에 다시 등장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건물을 지을 때, 일정 비용을 공공미술에 할애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거리에서 대형 건물과 조형물이 함께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한 공간에 머무르며 그 공간을 대표하고 나아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상암 MBC 사옥 앞 조형물 ‘미러맨(Mirror Man)’이 그 예이다. ‘미러맨’을 보면 곧바로 MBC 사옥을 떠올릴 만큼, 이 조형물은 상암동을 대표하는 공공미술이다. 이는 유영호 작가의 작품으로, “미디어 세상과 인간의 만남, 소통”을 표현했다. 이러한 의도는 작품이 상암 디지털 미디어 시티라는 공간에 위치함으로써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해 작품이 그 공간에 존재했을 때,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다. ‘미러맨’외에도 청계천의 ‘스프링’, 광화문의 ‘해머링 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듯 공공미술 중 대부분의 옥외 전시들은 장소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공공미술도 그 형태가 점점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공공미술이 거리에 놓인 조각에 불과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공동체의 연대, 작가와 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새 장르 공공미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공공미술은 단지 도시 미관이나 공간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은 채 퍼포먼스나 미디어 아트와 같은 새로운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지난 2020년, 디스트릭트(d’strict)의 ‘Wave’는 도심 한복판에서 시원한 파도를 선사하며 많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냈다. ‘Wave’는 교통체증으로 막힌 도로를 보며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역동적인 파도가 특징인데, 이를 표현하고자 평면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3D 효과를 극대화하는 ‘아나모픽(Anamorphic)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Wave’는 도심과는 거리가 먼 자연 속 파도를 소재로 삼아 도심의 장소성을 뒤집었다. 또한, 미디어 아트라는 형태로 공공미술을 구현했다. 이 점에서 기존의 공공미술과의 차이점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공공미술은 캔디 창의 ‘Before I Die’ 프로젝트다. 벽 위에 ‘내가 죽기 전에, 나는 __을 하고 싶다.’라는 문장이 빼곡히 쓰인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전 세계 75개 이상의 나라에서 35개 이상의 언어로 재현됐다. 작가 캔디 창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을 공공의 장소에서 이끌었다. 그리고 비로소 사람들이 이 생각을 벽 위에 그려 나갈 때, 하나의 공공미술이 완성되었다. 프로젝트를 통해 삶을 고찰하고 개인의 열망을 나눌 기회와 미술과 소통할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미술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 밖으로 나와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공공미술은 이러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우리의 공공 공간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끝없이 의문을 품는다면, 우리가 구축한 환경은 깊은 소통과 교감의 순간을 제공할 수 있다.”-캔디 창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1분 1초가 아까운 우리에게 거리란, 그저 목적지로 가는 통로에 불과하다. 특히 지금처럼 추운 날이면, 입김을 연료 삼아 걸음에 가속도를 붙여 거리를 지나치기 바쁠 것이다. 이때 바삐 걷는 대신, 거리의 공공미술을 천천히 바라보는 것은 어떠한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공간 속, 미술과 소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