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꽃, 공연 한 편 어때요?

  • 492호
  • 기사입력 2022.05.28
  • 취재 박정원 기자
  • 편집 김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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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을 나서면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햇살과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어딘가로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밤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시간에는 거리를 무대삼아 흘러나온 노랫소리를 따라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기도 하다. 길목을 지나면 문화예술의 성지 대학로답게 극장들이 쭉 늘어선 거리가 펼쳐진다. 극장은 저마다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심장을 간질이는 로맨스부터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까지, 막이 오르는 순간 우리는 그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빨려 들어간다. 그렇다면 조만간 그중 한 곳의 문을 직접 열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대학로 공연 네 편을 소개한다.



▶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 – 뮤지컬 <미드나잇: 액터뮤지션>

자정을 앞둔 1937년 12월 31일의 아제르바이잔. 부부는 둘만의 새해를 준비하며 한껏 들떠 있다. 그 순간 현관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마치 시간과 공간까지도. 자신을 소비에트 정부의 비밀경찰이라 소개한 낯선 방문자는 두 남녀가 서로에게 숨겨온 추악한 진실을 드러내는데… 도대체 그는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방문했으며,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시의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아내와 자신을 찾아왔는지 절규하는 남자에게 방문자는 섬뜩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 내가 여기에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


(사진1) - 뮤지컬 미드나잇 공식 트위터

예그린씨어터 2022.01.19. (수) ~ 공연 종료일 미정


뮤지컬 미드나잇은 혁명 이후 스탈린 체제의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동일한 각본에 앤틀러스와 액터뮤지션 두 가지 버전의 연출이 존재한다. <미드나잇: 액터뮤지션>에서는 다섯 명의 액터뮤지션이 무대 위에서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 연기를 선보인다. 관객들은 극의 오케스트라이자 동시에 배우인 그들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눈앞에서 생생히 즐길 수 있다. 처절한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간의 선악이란 무엇인지 물음을 던지는 가운데, 강렬한 극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서늘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 우리만의 달에서 살자 – 뮤지컬 <렛미플라이>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남원과 우주를 동경하는 정분. 그들이 꿈과 사랑을 노래하던 1969년 어느 날 밤, 국제복장학원 합격 통보를 받은 남원은 정분과 함께 서울로 떠나기로 약속한다. 희망찬 내일을 그리며 집에 돌아가는 길, 어쩐지 밤하늘의 달이 평소보다 커진 듯한데. 일순간 정신을 잃은 남원이 낯선 할머니의 부름에 눈을 뜬 것은 다름아닌 환한 대낮. 이럴 수가! 당장 정분이와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해! 한달음에 달려간 남원의 눈앞에는 폐쇄된 기차역과 주민 휴식 공간만이 펼쳐져 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 조금 전 남원을 깨운 선희 할머니는 그를 영감이라 부르며 뒤쫓아온다. 그런데 잠깐. 거울 속의 저 할아버지는 대체 누구야?


(사진2) - letmefly_musical 공식 트위터

예스24스테이지 1관 2022.03.22. (화) ~ 2022.06.19. (일)


창작뮤지컬 렛미플라이는 ‘평범한 오늘 시작된 특별한 시간여행’을 부제로 꿈을 향해 나아가기 하루 전, 갑작스레 2020년의 미래에 떨어진 청년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극중 템포가 느린 장면마저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등장하는 웃음 포인트와 통통 튀는 넘버가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유쾌한 힐링 스토리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과거와 미래의 시간선이 포개지며 낭만과 실상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꿈과 사랑, 현실 등 수많은 선택의 길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각각에게 자신만의 나침반을 쥐여 주는 극이다.



▶ 돈이 사람을 사로잡는다는 것 – 연극 <보이지 않는 손>

투자 전문가 닉 브라이트는 파키스탄의 지하 벙커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그를 납치한 무장단체는 미국에 천만 달러를 요구하나 협상은 진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향에서 기다릴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떠올리며 그는 결국 투자를 통해 스스로 몸값을 벌겠다는 위험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파키스탄의 봄을 되찾겠다는 신념을 가진 조직원 바시르와 함께 닉이 옵션 거래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편, 조직의 수장 이맘은 수상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방 안에서 뻗어 나간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떻게 한 국가의 경제를 뒤흔들게 되는가?


(사진3) - 연극열전 공식 트위터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2022.04.26. (화) ~ 2022.06.30. (목)


연극 보이지 않는 손은 세계경제와 자본주의, 종교, 국가 간 힘의 균형, 인간의 욕망 등 무게감 있는 여러 주제들을 한 곳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끔 담아냈다. 금융 스릴러라는 생소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심리묘사와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플롯이 보는 이들을 완전히 극 안으로 끌어다 놓는다. 특히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점이 이 연극의 큰 매력이다. 극중에서 네 명의 인물이 각각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지 고심하며 작품을 관람해보자.



▶ 저 하늘에 쓴다, 새로운 결말 – 뮤지컬 <사의 찬미>


1926년 8월 4일 새벽 4시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德壽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진다.

캄캄한 어둠. 적막한 바다.


유망한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대표 소프라노 윤심덕은 부산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어딘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우진과 신경이 날카로워진 심덕. 그들을 쫓는 불길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온다. 때가 왔어, 곧 그가 올 거야.


(사진4) - 뮤지컬 사의 찬미 공식 트위터

대학로 TOM 1관 2022.05.16. (월) ~ 2022.07.24. (일)


창작뮤지컬 사의 찬미는 1926년 세간을 들썩이게 한 실제 사건을 각색한 작품이다. 당시 김우진과 윤심덕 두 사람이 항해 중 돌연 사라진 사실이 밝혀지자 즉시 배를 멈춰 인근을 수색했으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극의 제목이기도 한 ‘사(死)의 찬미’는 윤심덕이 생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이다. 몇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의 선율은 때때로 음산하게 혹은 애달프게도 들린다. 이야기는 관부연락선에 오른 현시점과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첫만남부터 시작된 과거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어떠한 ‘운명’과도 같이 옥죄어 오는 공포는 두 인물을 따라서 온 객석이 저절로 숨을 죽이게 만든다. 과연 그들은 이대로 비극의 결말을 맞이하고 말 것인가?



※ 해당 기사는 모든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