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 과연 가능할까?

  • 470호
  • 기사입력 2021.06.24
  • 취재 천예원 기자
  • 편집 윤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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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는 지난 수 십 년간 인공의 인류를 만들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만약 인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인류의 개발이 성공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이 지구 위의 인류로서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의 기술을 개발한 것임이 틀림없다. 오늘날 21세기, 우리는 인간 이성의 모방을 넘어 감정의 구현까지를 목표로 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꿈꾸는 시대를 살아간다.


2020년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 스캐터랩은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를 출시했다. ‘이루다’는 인공지능 챗봇의 성능을 평가하는 SSA(Sensibleness and Specificity Average) 지표의 78% 수준을 기록했다. 실제 인간의 대화가 평균적으로 SSA지표의 86%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루다’는 인간의 대화 방식과 높은 유사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스캐터랩 측은 ‘이루다’라는 가상의 자아를 가진 챗봇에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정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루다’가 보내는 채팅 속 자연스러운 오타나, 실제 20대 온라인 사용자가 구사하는 말투의 구현은 사용자에게 기계가 아닌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챗봇 ‘이루다’는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무분별한 혐오 표현의 사용과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현재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의 논란을 차치하고 ‘이루다’의 등장은 대중에게 인공지능의 발전 수준을 알림과 동시에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감정적 교류의 가능성을 환기시켰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지던 ‘감정’의 영역에 인공지능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감정을 인간만이 지니는 속성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로봇의 감정 소유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레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실제로 국내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연애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미혼 남성의 약 57%는 ‘인공지능이 사랑의 영역을 대체할 것이다.’라고 응답했고, 반대로 미혼 여성의 약 68%는 ‘인공지능이 사랑의 영역을 대체할 수 없다.’라고 응답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인공지능이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가 ‘감정의 공유와 공감이 불가능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에 가지고 있는 대중의 인식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과의 사랑에서는 아직까지 다소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의 인식과 반대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있다. 영화 <HER(2013)>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과학 기술이 크게 발전된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편지 대필 회사에서 근무하며 매일같이 편지를 적어 내려가지만, 낭만적인 글과는 다르게 아내와의 이혼으로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 외로움을 느끼던 도중, 그는 새롭게 출시된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함께 대화를 하는 것부터 시작해 여행을 다니는 등 실제 연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테오도르는 외로움을 극복한다.


영화 속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사뭇 진정한 감정적 교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입력과 출력을 사랑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랑’의 분류를 기준으로 우리가 가진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가 보자.




먼저 ‘일방향적 사랑’이다. 인공지능을 향한 인간의 일방향적 사랑은 복잡한 철학적 논의나 눈부신 기술의 발전 없이도 제법 있음직해 보이는 사랑의 형태다. 대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을 향한 열렬한 애정이 아니더라도, 특정 사물을 향한 애착이나 고인(故人)에게 느끼는 애틋함을 아울러 ‘사랑’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방향적 사랑’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외적인 특성을 모방한 경우 추가적인 개연성을 획득한다. 가령, 시중의 많은 사용자 친화적 로봇은 인간의 외적인 특징을 모방하고 있다. 애플(Apple)의 지능형 개인 비서 ‘시리(Siri)’나, 소프트뱅크 사의 휴머노이드 ‘페퍼(Pepper)’가 그 예시다. 인간은 인간의 외적인 특성을 가지고 (비록 설계되었을지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에 쉽게 애착을 가진다. 인간의 모습을 많이 닮으면 닮아갈수록 (불쾌한 골짜기의 수준을 제외하고) 인간은 더 쉽게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불쾌한 골짜기 현상(uncanny valley)은,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인간이 로봇에게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그 유사성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급격하게 호감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사성이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지면 낮아진 호감도는 다시 급격하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에 있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쌍방향적 사랑’의 경우다. 로봇이 능동적으로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며 감정적인 ‘교류’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물론(唯物論)적인 관점에서 감정을 이해한다면 로봇과의 감정적 교류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유물론은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물질로 이해하고, 정신적인 현상 역시 물질 작용의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물론적 시각에서는 과학 기술이 인간 이성과 논리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것처럼 인간의 감정 역시 물질로써 구현 가능하다.


로봇공학자들은 로봇의 감정 개발 과정에서 감정 체계를 ‘감정 인식’, ‘감정 생성’, 그리고 ‘감정 표현’의 세 단계로 분류했다. 여기서 ‘쌍방향적 사랑’의 핵심이 되는 건 단연 ‘감정 생성’과 관련한 부분이다. 만약 ‘감정 인식’과 ‘감정 표현’만이 구현된다면, 그것은 학습된 데이터에 의한 입출력(‘일방향적 사랑’)일 뿐이지, 쌍방향의 감정적 교류가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외부로부터의(사용자의) 감정 인식을 토대로 자율적인 감정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특정 기준을 가지고 감정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하는 ‘원초적 자아(proto-self model)’가 필요하다. 고차원적인 자의식의 수준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로봇개체의 충동과 결핍을 중심으로 쾌와 불쾌, 호와 불호를 판단할 수 있는 감정 생산의 기반이 요구된다. 이렇게, 로봇의 ‘원초적 자아’를 구현할 기술의 발전만 뒷받침 된다면, 인간의 감정 구현 메커니즘을 닮은 ‘로봇 감정’의 구현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세상 만물을 물질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가정한 경우에 한해서이다. 가령, 유심론(唯心論)은 유물론의 반대에 위치한 개념으로 물질과 독립된 비(非)물질적인 정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유심론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면, 물질을 통해 인간 정신과 감정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유물론의 입장에 반대할 것이다. 유물론과 유심론 두 극단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날의 현대 과학이 유물론에 기반하고 있 어 인공지능과 관련된 담론에서는 유물론의 입장이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은 모두 이론적인 수준에서의 추측일 뿐이지 인공지능과 인간이 실제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로봇과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한 것보다 빠른 시일 내에 그런 미래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감정을 가진 로봇’이 마냥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지금, 미래의 인공지능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 상상해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