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을 낚는 그럴듯한 함정 <br> 맥거핀

관객을 낚는 그럴듯한 함정
맥거핀

  • 333호
  • 기사입력 2015.10.13
  • 취재 김나현 기자
  • 편집 김혜린 기자
  • 조회수 9986

맥거핀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맥거핀이란 영화계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로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단어를 들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맥거핀(MacGuffin)이란 기법은 한 천재적인 영화감독이 '창조'해낸 것으로 현대에 만들어진 영화에서조차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렇다면 앞으로 맥거핀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맥거핀이 사용된 예시작을 살펴보면서 이 오묘한 용어를 한 번 파헤쳐보도록 한다.

맥거핀은 창조된 개념이다. 따라서 창조한 의도와 그 역할을 파악하기 위해선 창조자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가운데 사진은 맥거핀 창조자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는 서스펜스와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다. 영화계에서 손꼽는 명감독에 거론될 정도로 유명하다. 구체적으로 히치콕은 스릴러라는 장르를 확립했으며 신선하고 실험적인 연출로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곤 했다. 몇 개의 사랑을 다룬 영화를 빼고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표작을 꼽으라면 위 사진의 첫 번째, 세 번째 사진에 나와 있는 "사이코(Psycho, 1960)""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34)"가 유명하다. 그래도 그를 잘 모르겠다면 이 장면을 떠올려보자. 숏컷의 금발 여배우가 샤워부스에서 샤워하던 중 손에 칼을 쥔 괴한이 샤워커튼을 젖히자 여배우가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것은 1960년 작 사이코에서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직접 감독한 영화라고 하면 조금 덜 낯설지 않은가?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명예로운 칭호 말고도 그의 연출이 독특한 것 또한 특징이다. 그것들이 굉장히 신선했기 때문에 히치콕의 평가에도 괴짜 같은 천재라고 일컬어진다고 한다. 맥거핀은 그가 발명한 것이기에 그 의미가 오묘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먼저 맥거핀이라는 단어가 명명된 일화를 보자.

두 남자가 기차에 타고 있다.
한 남자가 물었다. "저 선반에 있는 것은 뭔가요?"
다른 남자가 대답했다. "아 저건 맥거핀(MacGuffin)입니다."
다시 남자가 물었다. "맥거핀이 뭐하는 데 쓰이죠?"
"음,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데 쓰인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남자가 반문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네요!"

1966년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했을 때 맥거핀을 설명하기 위한 대목이다. 김빠지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엔 중요한 것처럼 바람 잡아놓고 마지막에 결국 무의미로 남는 것. 이것은 맥거핀의 정체성이다.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관객을 향한 낚시미끼, 함정 여러 의미로 불리는 맥거핀의 정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매우 중요한 것처럼 꾸며 독자나 관객의 주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하는 속임수(국립국어원)"다. 맥거핀이 사용된 영화들은 대부분 느와르(Noir)영화나 스릴러다. 보통 관객들을 영화의 발단과 전개에서 맥거핀에 집중하도록 연출한 뒤 극의 후반부에 갈수록 맥거핀의 존재나 행방이 결국 무의미한 것이라 자각하게끔 한다. 히치콕의 영화 중 초반부에 이 기법이 쓰인 것은 '39계단(The 39 Steps, 1935)'이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도 훌륭한 맥거핀이 쓰인 대표작이다. 맥거핀이 보통 갈등의 중심 소재로 관객들이 복선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나중에 그들이 결말을 보았을 때 느끼는 허무함은 맥거핀이 훌륭히 작용했다는 증거다. 스코틀랜드에서 사자 잡기란 결국 아무 의미 없는 말장난이라 느끼듯이 말이다. 맥거핀의 정의는 조금 추상적이다. 그러므로 맥거핀의 의미를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밑의 예시작을 함께 살펴보면서 맥거핀의 핵심 특징을 알아보자

맥거핀은 주요 특징 3가지를 가진다.

맥거핀은 히치콕이 발명한 단어지만, 영화계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맥거핀은 넓은 의미로 플롯(Plot)이 있는 어떤 형태의 '극'에서 극을 이끌어나가는 중심소재를 일컫기도 한다. 주인공과 그 악역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큰 예를 들어 맥거핀이 많이 쓰이는 장르인 갱, 누아르 영화에서 '큰돈이 든 가방'은 맥거핀이다. 이것을 빌미로 주인공과 악역들은 이것을 쟁탈하기 위해 갈등을 고조시킨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돈 가방의 원래 주인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돈 가방을 가지고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싸워가는가? 이다.

더 정석인 예는 2006년에 개봉한 '미션임파서블3'에 나오는 토끼 발이다. 이단 헌트는 악명 높은 암거래상인 오웬 데이비언과 '토끼발'을 두고 거래한다. 토끼발은 그저 생체조작된 바이러스라는 설명만 나올 뿐, 토끼발의 정확한 용도와 만든 자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나오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단 헌트의 약혼녀를 되돌려받기 위해 그리고 악역 오웬 데이비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토끼발을 중심으로 싸움을 벌인다. 중심소재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맥거핀이다. 토끼발이 맥거핀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은 후반부에 나오는 담화다. 이단 헌트는 바뀐 국장에게 '토끼발'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지만, 국장은 다음번에 말해주겠다며 답을 미룬다. 중심소재, 미끼같이 극 중 치고 빠지기, 불투명한 정체까지.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맥거핀의 예시를 나열해보면, 주로 물건이 많다. 앞에서 말한 누아르 물의 돈 가방, 마약과 생체실험약. 또는 희귀한 보석, 가치가 높은 세공품, 매우 오래된 유적, 전설 속 무기 등 '매우 비싸거나, 가치가 높은 물건'이 맥거핀이 되는 비율이 높다. 극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개연적으로 주인공과 악역 모두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 이하 놈놈놈'에서 나오는 보물지도와 소설에 기반한 영화 '몰타의 매(1941)'에서의 매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놈놈놈'에서 나오는 보물지도는 세 주인공들에게 양보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걸 쫓게 하지만, 결국 극 후반부에는 삼인방의 대립양상과 격투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그 누구도 보물지도의 행방엔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매 조각상'은 여러 가지 보석으로 치장한 검은 매 조각상을 중심으로 주인공이 휘말려 들어간다. 하지만 꼭 물건만 맥거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주변 등장인물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등, 주인공의 행동이 극 전개에 중심을 둘 때 주인공은 맥거핀이 된다. 예를 들어 '굿 윌 헌팅(1997)'에 나온 주인공 윌 헌팅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윌 헌팅은 좁은 의미의 맥거핀이 아닌 넓은 의미의 맥거핀, 즉 극의 중심소재가 된다.

맥거핀을 정석으로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한 후 마지막에 전혀 의미 없게 된 연출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의 의도 없이 플롯에서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맥거핀이라 부르기에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복잡한 플롯을 기획하다가 작가가 깜빡하고 필요한 설정을 서술하지 않은 것은 맥거핀이 아니다. 비슷하게, 요즘 흔히 쓰이는 '반전 소재' 또한 맥거핀이라 부를 수 없다. 반전 소재는 극 초반에 독자나 관객의 이목을 끄는 것은 맥거핀과 비슷하지만, 그 정체가 명확히 드러남으로써 충격을 주고 그 반전 속성이 극 후반까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맥거핀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플롯이 있는 연극, 소설에서 즐겨 사용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투명한 정체성과 극 중심소재, 마지막에 존재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연출까지 삼박자가 맞아야만 될 수 있는 까다롭고 오묘한 장치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