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누는 크리스마스 씰

사랑을 나누는 크리스마스 씰

  • 361호
  • 기사입력 2016.12.12
  • 취재 이수진 기자
  • 편집 송예균 기자
  • 조회수 9113

어린 시절, 겨울 방학이 되기 전 학교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을 사본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씰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씰을 구매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단지 그림이 예뻐서 사기도, 친구들을 따라 씰을 산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씰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잘 이해한다면 더 의미 있는 나눔이 될 것이다. 의미 있는 나눔으로 더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를 바라며 이번 학술에서는 크리스마스 씰의 의미와 목적, 그 유래와 종류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크리스마스 씰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증표’이다. 더 정확히는 결핵계몽, 엑스선 검진, 결핵균 검사, 환자진료, BCG 생산 및 결핵관리정책의 연구와 국제기술교류 등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한결핵협회에서 매년 발행하고 있으며 해당연도의 씰은 크리스마스 전에 우체국 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씰을 처음으로 고안한 것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 홀벨(Einar Holboell)’이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하자 어린이를 좋아하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 퇴치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1904년 12월 10일 처음으로 씰을 발행했다. 이후 덴마크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크리스마스 씰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 영향으로 미국, 스웨덴, 독일 등 여러 나라가 뒤따르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는 1910년 필리핀에서 처음 씰이 발행되었고 이어 1925년 일본에서는 자연요양사라는 민간 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 선교 의사인 셔우드 홀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시작해 1940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 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씰을 발행했다. 당시 황해도의 한국인 도지사의 협조로 씰 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관련 정보와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씰이 결핵과 싸운다는 광고를 보고 씰을 결핵 치료제로 착각해 가슴에 붙이고 효과가 없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사건도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과거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 주도로 한국 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했고 1952년에는 조선기독교 의사협회가 씰을 발행했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부터이다. 이후 크리스마스 씰은 민간주도의 결핵퇴치 운동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매년 발행되고 있다.

씰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지지를 바탕으로 씰 운동은 1963년의 극장 모금, 1964년의 고궁 입장료 모금, 1974년 우표 첨가 모금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대한결핵협회의 창립 30주년에는 크리스마스 씰 첩을 발행하고 씰 수집 경연 대회를 개최해 씰에 대한 관심을 촉구, 홍보하기도 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크리스마스 씰 역시 모양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초기 우표형태의 씰 모양은 전통성을 위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실용성과 더 많은 모금 참여를 위해 씰을 스티커 형태로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전자파 차단 소재를 사용한 씰을 발행하고 김연아, 뽀로로, 야구, 역사인물 등 국민의 관심 촉구를 위해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대한결핵협회 크리스마스 씰 쇼핑몰 (http://loveseal.knta.or.kr/main/main_real.asp)에서 씰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역대 크리스마스 씰과 소개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출처
두산백과, ‘크리스마스실’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박문각, ‘크리스마스 씰’
대한결핵협회 크리스마스 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