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 <br>무엇이 진보와 번영의 길인가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
무엇이 진보와 번영의 길인가

  • 363호
  • 기사입력 2017.01.11
  • 취재 김규현 기자
  • 편집 김규현 기자
  • 조회수 9028

# 프롤로그 

한 해의 시작인 새해를 밝은 마음으로 맞기가 왜이리 어려울까. 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그 문 넘어 더 나은 삶이 펼쳐질 것만 같은 이상향(理想鄕)은 안간힘을 다해도 이상(異常)하게 닿을 수 없는 심연으로 도망하는 것 같다. 나이는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취준생은 점점 좁아지는 취업의 문턱에 더더욱 아프게 끼이고 뒤에서 밀려오는 갓 졸업한 학생들은 그들을 더 세게 밀어낸다. 어떤이는 절규한다. 그렇지만 소리지르지 않는다. 나만 겪고 있는 고초가 아니라고,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이 모두 이러고 있다 스스로 위로하며.

일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주머니에 얼마 남지도 않은 몇 푼으로 캔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설 무렵 아르바이트생 뒤에선 뉴스 앵커의 말이 흘러나온다. 상품수지의 흑자가 전년보다 10억 달러 증가한 105억 2,000만 달러라고. 캔맥주 한 캔과 남루해진 주머니 속을 뒤져대며 저 많은 돈 중에 한 푼도 내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는 사실에 너절해져만 간다.

 '진보와 번영의 길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의 답변은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의 시작을 알렸던 국부론의 출간 이후로부터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왜 누군가는 105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만지고,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를 사려해도 전전긍긍해야 하는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내의 제한된 자원으로 지구 상의 전인류에게 어떻게 나누어주는 것이 효율적인가' 에 대한 경제학의 기본적인 물음은 바로 이런 불평등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학술 섹션에서는 세 번에 걸쳐 '무엇이 더 나은 길인가' 를 탐구했던 여러 경제학파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한민국 경제의 발자취와 미래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알 수도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예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세계 주류 경제와 대한민국 경제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현재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엿보게끔 만들기를 희망한다. 이 글을 읽는다고 그리고 쓴다고 우리 주머니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닥치게 된 배경과 경제학자들이 밝은 미래를 위해 한 수많은 노력을 생각하면 세상이 차갑지만 않다는 것을 느낀다. 생각보다 경제학자는 꾸준히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 각고의 노력을 펼쳤으니 말이다.

◈고전학파 : 학문의 새 지평선을 열다

1776년 세상을 뒤흔든 새로운 책이 세상의 빛을 본다. 저서 명 국부론. 정식명칭은 <국가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고찰,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이 책은 세상을 바꾸었다. 아담 스미스가 이 책을 쓸 무렵엔 모든 나라가 황금과 은을 나라의 부, 즉 국부(國富)로 생각하는 사상이 퍼져있었다. 황금과 은을 국고에 쌓아둘수록 국가는 더더욱 부유해진다는 것이 상류층 - 귀족과 왕족 - 의 생각이었다. 나라의 왕들은 외국에 물건을 팔아 돈을 얻을 수 있는 상업을 장려했고, 외국의 물건을 사서 돈을 유출하는 수입을 나쁜 것으로 치부했다. 국가 역시 수입하는 상품의 양도 줄이기 위해 수입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매기며 수입을 막았다. 이런 중상주의가 가열됨에 따라 각 나라들은 자신의 상품을 외국으로 수출하기가 점점 어려웠고 황금과 은은 전보다 얻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자국에서 얻기 힘든 물건을 외국에서 쉽게 얻지 못하니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스스로 물건을 생산하게 된다. 높아진 무역장벽과 비효율적인 생산은 결국 황금과 은의 유통을 어렵게 만들었고 국고 안에 남아있는 금과 은 역시 줄어 간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이런 보호무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국부 증진의 길은 자국의 산업을 과도하게 보호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국가 간의 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국부 역시 자연스레 쌓일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개인이 오직 사익을 위해서 경쟁하더라도 사회구성원 전체에게는 결국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과 양조장,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계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한다."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은 우리들에게 식사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 그럼에도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푸줏간, 양조장, 그리고 빵집 주인 모두가 이로 인해서 이득을 얻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지만 그로 인해서 모두가 이로워진다는 것은 신비로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물가나 명목 임금과 같은 지수들은 시장 자체의 탄력적인 가격 조정으로 불균형이 발생한다 해도 자동으로 균형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이를 방해하는 정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중상주의처럼 수출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 과도한 관세를 지급하는 등 국가가 시장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이 알아서 바람직한 균형을 형성하도록 놔두면 바람직한 공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담 스미스의 이런 주장은 기존의 프레임을 깨고 국가가 따르는 주류 경제학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결국 중상주의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국부론'은 이후 경제학의 바이블로 자리잡으며 1930년 미국 경제 대공황이전까지 경제이론을 차지했다.

◈케인즈학파 : 고전학파의 실패를 극복하다

 1930년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에는 고전학파가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대부분의 논리를 차지했다. 대공황 발생 이전에도 낌새가 심상치 않은 여러 증후가 나타났으나 고전학파는 이를 일시적인 불균형 상태일 뿐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복귀한다며 다가올 위험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하며 기나긴 논쟁의 시발점이 된 대공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었다.

대공황은 기존 경제의 방향과 매우 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대폭락했고 사람들은 불투명해진 미래를 걱정하며 은행에서 돈을 찾기 시작했다. 은행으로 돈을 찾기 위해 밀려오던 사람들은 맡겼던 돈을 요구했고 은행은 하는 수 없이 기업에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돈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각 부문에 급속도로 경제가 악화되었고 기업도산이 속출했다. 실업자의 비율은 모든 근로자의 약 30%를 차지하는 1,500만 명으로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였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일시적인 변동이 생긴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균형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원상태로 복구되지 못했다. 기존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계속 발생하자 고전학파는 크나큰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어디부터 손을 댈지 상상도 못했다. 최고라고 자부했던 경제학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 볼뿐.

국부론 이후 다시 한번 세상을 일깨워준 한 편의 논문이 발간됐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1936년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통해 고전학파의 치부를 낱낱이 비판했다. 케인즈는 불황을 타개할 경제주체로 정부를 지목했다. 정부가 개입해 기업의 투자를 대신하고 가계의 소득을 올려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야 시장 실패를 극복하고 죽어가는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 역시 실패할 수 있다. 시장을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 케인즈학파의 주요 주장은 이 점에서 시작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고전학파의 믿음을 송두리 채 부정하고 있다. 시장은 신기하게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균형에 도달하게끔 만들 수 있으나 어느 특정 상황에서는 균형점으로의 도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부효과이다. 21세기 들어 자동차의 보급이 넘쳐났고 이에 따라 한 가정당 차의 개수도 두 대가 넘는 곳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가로등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가로등을 개인이 설치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처럼 구석 구석에 가로등이 설치 될수 없을 것이다. 굳이 내 돈을 들여가며 남이 무료로 사용하는 빛을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로등은 밤거리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있게 해주는 필수 요소지만, 개개인의 이기심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절대로 생산될 수 없다. 이로써 가로등이 설치되었을 때 얻는 모두의 이익은 무시된다.

시장 실패는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케인즈 학파의 주장이다. 가로등 설치 처럼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시장 곳곳에 존재하며 그래서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더 큰 공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0년에 일어났던 대공황은 시장의 회복성만으로 타개할 수 없고 시장 실패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교정하고 유효수요를 정부에서 창출한다면 해결될 것이라 보았다. '성역은 없다'는 태도로 고전학파의 굳건한 맹신을 무너뜨리고 수요의 창출만이 위기의 타개방법이라 보았다.

케인즈학파의 주장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뉴딜이라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수립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유효 수요의 창출을 통해서 뉴딜은 대공황을 타개하도록 설계되었고 미국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대공황에서 탈출한다. 초기에 케인즈의 이론과 대공황에 대한 처방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지만 대공황을 탈출하는 미국의 성공드라마를 통해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해냈다.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탈출한 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고 말하며 그의 경제학을 세계로 알렸다.

케인즈학파이후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여러 학파가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두 주류 경제학파를 비판하거나 보완하여 나온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대두했다. 다음 학술 세션에서는 통화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그에 따른 영향을 알아보고 행동학파나 실험경제학 등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경제학 분야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차례--

 1.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 : 무엇이 진보와 번영의 길인가


2.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학문간 모호해지는 경계선
3. 대한민국 경제의 발자취와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