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으로 얽힌 인간의 삶, 양귀자의 『모순』

  • 520호
  • 기사입력 2023.07.27
  • 취재 유영서 기자
  • 편집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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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작가는 1955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광수의 『유정』을 읽고 문학적 충격을 받은 후 백일장과 문예 현상공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1978년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 문단에 등장해 9년 후, 『원미동 사람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쓰인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 결과 1992년 유주현 문학상을 는 영예를 안았다. 양귀자 작가의 작품은 능란한 구성과 섬세한 세부묘사,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장편소설 『모순』은 양귀자 작가가 처음으로 연재 형식을 빌리지 않은 작품이다. 그녀는 작가노트를 통해 “마감날짜도 없는 글쓰기. 언제라도 파기할 수 있고 또한 언제라도 연기할 수 있는 글쓰기였음에도 나는 거의 충실하게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모순』을 쓸 때 ‘절대 몰입’의 단편 정신으로 가고자 애를 썼기에 수월하게 넘어가는 부분 없이


 노력을 통해 얻은 값진 한 권의 책이 됐다고 밝혔다. 이에 양귀자 작가는 소설이 절반쯤 완성됐을 때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모순』은 25살 여성인 안진진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모순은 총 두 가지인데, 그중 첫 번째는 안진진의 배우자다. 안진진은 ‘나영규’라는 철저한 계획으로 살아가는 남자와 ‘김장우’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자, 반대 성향의 두 남자를 만나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갈등을 겪는다. 두 번째 모순은 엄마와 이모다. 안진진에게는 엄마와 생김새와 나이, 결혼기념일까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이모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똑같은 외모로 비슷한 삶이었던 엄마와 이모는 결혼 이후 정반대로 살게 된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자와 사고뭉치 아들과 살면서 불행을 계속 겪는 엄마와 달리, 차갑지만 이성적인 이모부와 미국에 유학 가서 잘살고 있는 자식을 둔 이모의 삶은 반듯하다. 소설에서는 이 두가지 모순을 통해 어떤 것을 선택해도 모순을 마주치게 되는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술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 가족과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안진진의 아버지는 부랑자의 삶을 살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안진진의 동생은 조직 보스 연기에 심취해 진짜 자신의 모습보다 ‘모래시계’와 ‘대부’ 속 인물로 살기를 자처한다. 이러한 아버지와 동생 때문에 안진진의 가정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는 책으로 배운 이론으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며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는다. 그러다 엄마는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초인이 됐다. 안진진은 엄마를 보며, 삶의 부피를 늘리는 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엄마를 쉬지 못하게 했던 가정의 역경은 오히려 어머니의 삶이 싫증 나지 않고 재미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역설적으 반듯한 삶을 살던 이모는 거칠고 어렵지만 높낮이가 있는 생생한 엄마의 삶을 부러워했다. 역경을 이겨낼 용기조차 없어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사는 삶이 이모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삶에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이며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순을 이해해야 비로소 우리들 삶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으로 가리키지 않는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안진진은 반대 성향의 두 남자 사이에서 배우자를 고민한다. 자유분방한 아버지를 닮은 김장우와 항시 예외 없이 올바른 이모부 같은 나영규는 안진진이 평생을 보고 비교한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이모의 모순된 삶을 계속 봐온 안진진은 김장우와 나영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이모’의 삶을 여러 번 빗대어 봤을 것이다. 이 선택에서 안진진은 삶의 어떤 교훈도 자신의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고 하며 또다시 모순을 야기한다. 안진진과 같이 인간은 여러 번의 선택을 하며 때로는 그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선택이 잘못됐더라도 우리는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며, 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모순투성이, 실수투성이인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을 ‘탐구’하게 된다. 결국 모순과 실수는 역설적으 우리 삶을 발전시킨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성 탓에 이름조차도 스스로를 부정하는 숙명을 타고난 ‘안’진진이 됐다. 안진진은 이 세상을 ‘모순’으로 대한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사랑을 선택할 때도 진심과 어긋난 선택을 한다. 그러나 안진진은 특이하지 않다. 안진진을 미워할 수도 없다. 모순으로 얽힌 인간은 평생을 한 방향으로 살지 못한다. 가끔은 거짓말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할 때도 있고, 작은 고통을 과장해서 굴복해버리는 것이 안전할 때도 있다. 따라서 모순으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는 건 그만해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가슴 속에 안진진, 즉 모순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양귀자 작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이 문장처럼, 모순으로 가득한 삶은 너무 어렵고 고되다. 하지만 안진진의 엄마가 불행을 통해 행복을 맛본 것처럼 모순은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